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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라는 것 정말 신비로운 존재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고 사라지고 있습니다.
기쁨과 슬픔 분노와 평온이 한순간에 바뀌기도 합니다.
어떤 날은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모든 것이 밝게 보이고 또 어떤 날은 똑같은 풍경이 우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같은 말을 들어도 어떤 때는 기분이 좋아지고 어떤 때는 상처가 됩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요?
2,500년 전 인도의 카필라 바스투에서 태어난 시따르타 왕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완공을 떠났습니다.
사실 5년간의 수행과 가르침을 통해 그가 발견한 진리는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면서도 깊었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마음이 악하면 괴로움이 따르고 마음이 청정하면 행복이 따른다.
법구경의 첫 구절입니다.
겨우 몇 줄의 짧은 문장이지만 여기에는 인간의 모든 고통과 해방에 대한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같은 비를 맞아도 누군가는 우울해하고 누군가는 시원해합니다.
같은 소리를 들어도 누군가는 소음이라 하고 누군가는 음악이라 합니다.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마음에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제자가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같은 세상을 살면서도 어떤 이는 괴롭고 어떤 이는 즐거워합니까? 부처님께서 답하셨습니다.
마음이 마음이 다르기 때문이니라
마음이 흐리면 맑은 물도 탁해 보이고 마음이 맑으면 탁한 물도 맑아 보이느니라.
마음의 힘이 이토록 강력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마음보다 외부 세계에 더 관심을 둡니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집 직장을 얻으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얻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여전히 괴롭습니다.
부처님은 이것을 수레바퀴의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소가 수레를 끌 때 바퀴가 소를 따라가듯이 우리의 행복과 불행은 마음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선하면 행복이 그림자처럼 따라오고 마음이 약하면 괴로움이 그림자처럼 따라온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법구경은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첫째는 마음의 작용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둘째는 좋지 않은 마음이 일어날 때 그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셋째는 좋은 마음을 기르는 것입니다.
마음다스리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마음은 원숭이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처럼 여기저기 흔들립니다. 하지만 꾸준히 수행하면 누구나 마음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을 이기는 자가 천 명을 이기는 자보다 위대하다.
여기서 자신을 이긴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분노할 때 분노를 조절하고 욕심이 일 때 욕심을 절제하고 어리석은 생각이 들 때 지혜로 극복하는 것입니다.
마음 공부는 평생의 과제입니다.
하지만 그 여정 자체가 이미 축복입니다. 마음을 알아갈수록 세상이 다르게 보이고 삶이 더욱 의미 있어집니다.
지금부터 함께 법 구경을 통해 마음의 신비로운 세계를 탐험해 보겠습니다.
이 여행이 끝날 즈음에는 마음의 진정한 힘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Man pub on gama
담마 팔리어로 된 이 구절은 법 구경의 첫 번째 개송입니다.
모든 것은 마음이 앞서고 마음이 으뜸이며 마음으로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이 한 문장 속에 불교 전체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이 마음의 작용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맡는 것 맛보는 것 만지는 것 그리고 생각하는 것까지 이 모든 경험이 마음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어느 날 사위성에서 한 부자가 부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많은 재산과 명예를 가지고 있었지만 늘 불안하고 괴로워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모든 것을 다 가졌는데도 왜 행복하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그대의 재산이 그대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아닙니다. 재산이 있어도 도둑 걱정 화재 걱정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대의 명예가 그대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그것도 아닙니다. 명예를 잃을까 봐 늘 불안합니다.
부처님께서 미소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보거라 그대를 괴롭히는 것은 재산도 명예도 아니다. 그대의 마음이 그대를 괴롭히고 있느니라.
이 일화는 마음의 근원적 힘을 보여줍니다. 외부의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마음이 평화롭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외부 조건이 불완전해도 마음이 평화로우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가 외부세계라고 부르는 것조차 마음의 작용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는 점입니다.
꽃을 본다고 할 때 실제로는 빛이 눈에 들어와 뇌에서 처리되어 꽃이라는 인식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아는 모든 세계는 마음이 만들어낸 세계인 셈입니다.
화엄경에서는 이것을 일체유심조라고 표현했습니다.
모든 것이 오직 마음이 만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단순히 철학적 관념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 경험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이 진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기분이 좋을 때와 나쁠 때 맛이 다릅니다.
같은 사람을 만나도 마음의 상태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것은 마음이 앞선다는 말에 실제적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은 정확히 무엇일까요?
법구경에서 말하는 마음은 단순히 생각하는 기능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고 생각하는 모든 의식 작용을 포함합니다.
즉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의 근원이 마음입니다.
상류다니까야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한 비구가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답하셨습니다.
마음이 마음이란 깃발과 같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바람이 없으면 고요하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라는 바람이 불면 마음이 흔들리고 이런 바람이 없으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이 비유는 마음의 본성을 잘 보여줍니다.
마음 자체는 본래 맑고 고요합니다. 하지만 탐욕 성능 어리석음 같은 번뇌가 일어나면 마음이 어지러워집니다.
따라서 수행의 목표는 번뇌를 제거하여 마음의 본래 모습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법구경에서는 이것을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마음이 약하면 괴로움이 수레바퀴가 소 발자국을 따르듯 따른다. 소가 수레를 끌고 가면 바퀴가 소 발자국을 정확히 따라갑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이 악한 쪽으로 기울면 괴로움이 그림자처럼 따라온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악한 마음이란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물든 마음을 말합니다.
반대로 마음이 청정하면 행복이 떠나지 않는 그림자처럼 따른다고 합니다. 청정한 마음은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없는 맑고 지혜로운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어떤 상황에서도 평화롭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행복과 괴로움이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마음의 상태가 직접적으로 우리의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어느 날 왕사성의 한 장자가 부처님께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제 아들이 병들어 죽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슬픔을 이길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답하셨습니다. 그대가 슬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슬픔에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대 마음의 선택이다. 슬픔을 느끼되 슬픔의 지배당하지 않는 것 이것이 지혜로운 마음이니라.
이 가르침은 마음의 근원적 힘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는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감정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선택의 힘이 바로 마음의 근원적 힘입니다. 금강경에서는 이것을 '의무소주 이생기심'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어떤 상황에도 마음이 고착되지 않고 자유로워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현실적으로 이것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먼저 마음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화가 날 때, 아 지금 화가 나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런 알아차림만으로도 마음에서 한 발 물러설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마음의 무상함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어떤 감정이나 생각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습니다. 기쁨도 지나가고 슬픔도 지나갑니다. 이것을 깊이 이해하면 마음에 덜 집착하게 됩니다.
셋째로는 자비심을 기르는 것입니다. 자신과 모든 존재에 대한 자부심은 마음을 부드럽고 평화롭게 만듭니다. 자비심이 있는 마음에서는 탐욕과 성냄이 일어날 여지가 줄어듭니다.
법구경의 가르침은 이론이 아닙니다.
삶의 실제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진리입니다. 마음이 모든 경험의 근원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외부 조건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평화와 행복을 만들어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마음은 강물과 같습니다. 끊임없이 흐르고 변화합니다. 한순간도 같은 상태로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이 변화의 성질을 이해하는 것이 마음 공부의 핵심입니다.
어느 날 사립을 존재가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음이 이토록 빨리 변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답하셨습니다. 마음은 본래 머무는 곳이 없다. 과거에도 머물지 않고 현재에도 머물지 않으며 미래에도 머물지 않는다.
이것이 마음의 본성이니라 이 가르침은 마음의 무상성을 보여줍니다. 무상이란 영원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불교의 근본 진리입니다. 마음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변화의 성질이야말로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지금 괴로운 마음 상태라고 해서 영원히 괴로울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은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구경에서는 이것을 명확히 말합니다.
전에는 방일했던 자가 나중에 방일하지 않으면 그는 이 세상을 비추기를 구름에서 벗어난 달과 같다. 방일이란 마음을 방종하게 놓아두는 것을 말합니다. 욕망에 끌려다니고 감정에 휩쓸리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태에 있던 사람도 노력하면 마음을 바꿀 수 있습니다. 마치 구름 뒤에 가려져 있던 다리 다시 밝게 빛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번뇌가 섞이면 어두워지지만 번뇌를 제거하면 본래의 밝음을 되찾는다.
이 비유는 마음수행의 핵심을 보여줍니다. 마음 자체는 본래 깨끗합니다. 다만 탐욕 성내 어리석음이라는 오염물질이 섞여서 어두워질 뿐입니다. 이 오염물질을 제거하면 마음의 본래 모습이 드러납니다.
마음을 바꾸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입니다. 맞지만 이까야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제자가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수행이 너무 어렵습니다. 더 쉬운 방법은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답하셨습니다. 길을 걷는 자만 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아무리 정확한 지도를 가져도 걷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느니라.
수행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해야 합니다. 마음의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변화가 일어납니다. 법구경에서는 이것을 물방울의 비유로 설명합니다. 물방울이 하나씩 떨어져 물덩이를 채우듯이 지혜로운 자는 선을 조금씩 쌓아가며 완전한 선에 이른다. 한 번에 큰 변화를 기대하면 실망하기 쉽습니다. 대신 매일 작은 변화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어제보다 조금 더 참을성을 발휘했다면 조금 더 자비롭게 행동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마음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알아차림입니다. 자신의 마음 상태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능력입니다. 화가 날 때 지금 화가 나고 있다고 알아차리는 것 욕심이 일 때 지금 욕심이 일고 있다고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숱한 파타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마음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라. 좋아하지도 말고 싫어하지도 말고 단지 지켜보라.
이것이 바로 윗바사나 수행의 핵심입니다. 마음의 움직임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찰을 통해 마음에서 한 발 물러설 수 있습니다. 마음에 휩쓸리지 않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됩니다.
또 다른 중요한 수행법은 자비 명상입니다. 자기 자신과 모든 존재에 대한 자비심을 기르는 수행입니다. 자비심은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고 분노와 미움을 녹여줍니다. 이것은 영원한 진리다. 이 가르침은 법구경의 유명한 구절입니다. 원수를 미워하면 자신의 마음만 괴로워집니다. 반대로 자비심을 기르면 자신의 마음이 평화로워질 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자비심을 기르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먼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행복하기를 내가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내가 평화롭기를 심지어 원수에게까지 같은 마음을 보냅니다. 처음에 처음에는 어색하고 형식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연습하면 진짜 자비심이 생깁니다. 자비심이 생기면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평화로워집니다.
마음의 변화는 점진적으로 일어납니다. 처음에는 작은 변화만 느껴집니다.
예전에는 하루 종일 화를 냈는데 이제는 한 시간만 화를 낸다면 그것도 큰 진전입니다. 예전에는 온갖 욕심에 사로잡혀 살았는데 이제는 가끔 만족할 줄 안다면 그것도 의미 있는 변화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너그럽게 대하는 것입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실수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면 됩니다.
법구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넘어진 코끼리도 다시 일어나거늘 하물며 사람이 넘어졌다고 포기해야 하겠는가. 마음의 변화는 평생에 걸친 여정입니다. 목적지보다 여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일 조금씩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 마음이 점점 평화로워지는 것을 느끼는 행복 이런 것들이 수행의 진정한 보상입니다.
법구경에서는 이것을 매우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몸은 몸으로 짓는 업보다 말로 짓는 업이 열 배 강하고 말로 짓는 업보다 마음으로 짓는 업이 백배 강하다. 이 말씀은 업의 본질을 꿰뚫어 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보다 그 행동에 동기가 되는 마음가짐이 훨씬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같은 행동이라도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탐욕 성내 어리석음에서 나온 행위는 악업이 되고 무탐욕 무성렘 무어리 석음에서 나온 행위는 선업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업이 숙명론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업은 변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바꾸면 업도 바뀝니다. 과거의 악업 때문에 영원히 고통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핵심은 마음의 의도입니다.
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세 가지 요소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는 동기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둘째는 행위 자체입니다. 실제로 무엇을 했느냐도 중요합니다. 셋째는 결과에 대한 인식입니다. 자신의 행위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도 업에 영향을 줍니다.
마음이 바르면 모든 행위가 바르게 됩니다.
따라서 수행의 우선순위는 마음 닦기입니다. 법의 법칙을 이해하면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집니다. 남을 원망하거나 환경을 탓하는 대신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돌아보게 됩니다. 현재의 상황이 불만스럽다면 그것은 과거의 업 때문일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입니다.
마음공부에 궁극적 목표는 해탈입니다.
해탈이란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괴로움의 원인이 외부에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괴로움은 마음의 집착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해탈도 마음에서 이루어집니다. 법구경에서는 해탈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모든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 이것은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으로 전해집니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무상의 진리를 깨달아 집착해서 벗어나라는 뜻입니다. 집착이 사라지면 괴로움도 사라집니다.
그렇다면 집착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요? 우리는 좋은 것은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고 나쁜 것은 빨리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것도 변하고 나쁜 것도 변합니다. 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할 때 집착이 생기고 괴로움이 시작됩니다.
어느 날 한 부자가 부처님께 찾아와 울면서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요. 제가 아끼던 아들이 죽었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이 슬픔을 견뎌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답하셨습니다. 그대가 슬퍼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슬픔에 집착하여 헤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괴로움이 된다. 슬픔을 느끼되 슬픔에 사로잡히지 말라. 이 가르침은 해탈의 핵심을 보여줍니다. 감정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감정에 집착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쁨을 느끼되 기쁨에 들뜨지 않고 슬픔을 느끼되 슬픔에 빠지지 않는 것 이것이 해탈한 마음의 특징입니다.
해탈은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초기 단계는 일시적 해탈입니다. 명상하거나 좋은 책을 읽을 때 잠시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경험을 말합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헤탈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 단계는 부분적 해탈입니다. 어떤 특정한 괴로움에서는 벗어났지만 다른 괴로움은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예를 들어 분노는 조절할 수 있게 되었지만 욕심은 아직 강한 경우입니다. 마지막 단계는 완전한 해탈입니다. 모든 집착과 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라한의 경지입니다.
물론 이런 경지에 이르는 것은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숱한 이 파타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집착하지 않는 자에게는 번뇌가 없고 번뇌가 없는 자에게는 두려움이 없으며 두려움이 없는 자는 완전한 열반에 든다. 이 구절은 과정을 단계별로 보여줍니다. 집착을 놓으면 번뇌가 사라지고 번뇌가 사라지면 두려움이 없어지며 두려움이 없으면 완전한 평화에 이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집착을 놓는다는 것이 무관심해지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입니다. 해탈한 사람도 감정을 느끼고 상황에 반응합니다. 다만 그것의 메이지 않을 뿐입니다. 어느 날 사립을 존재가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요. 헤탈한 자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답하셨습니다 그렇지 않다 해탈한 자도 모든 것을 느낀다. 다만 느끼는 것에 사로잡히지 않을 뿐이다. 마치 연꽃이 진흙 속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 것과 같다.
이 비유는 ha의 참된 의미를 잘 보여줍니다. 세상을 등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자유롭게 사는 것입니다. 모든 상황을 경험하되 그것에 지배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해탈을 위해서는 먼저 사성제를 이해해야 합니다. 사성제란 고성재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를 말합니다. 즉 괴로움이 있다는 것 괴로움의 원인이 있다는 것 괴로움이 소멸될 수 있다는 것 소멸로 가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성재는 인생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첫 번째 진리조차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괴로움을 부정하거나 회피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괴로움을 인정해야 해결책 찾을 수 있습니다. 집성제는 괴로움의 원인을 찾는 것입니다. 괴로움의 근본 원인은 가래입니다. 가래란 목마른 사람이 물을 갈구하듯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추구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가래가 있는 한 괴로움은 계속됩니다. 멸성제는 괴로움이 소멸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보여줍니다. 가래를 완전히 끊으면 괴로움도 사라집니다.
이것이 바로 열반입니다. 열반은 죽음이 아니라 괴로움의 소멸을 의미합니다. 도성제는 괴로움 소멸로 가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바로 8 정도입니다.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렴 정정입니다. 이 여덟 가지 길을 닦으면 해탈에 이를 수 있습니다. 금강경에서는 해타를 다른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응무소주의 생기심이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짓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이것은 매우 깊은 통찰입니다. 우리는 보통 좋은 것에는 집착하고 나쁜 것에는 거부감을 갖습니다. 하지만 금강경은 좋은 것에도 집착하지 말라고 합니다. 심지어 깨달음에도 집착하지 말라고 합니다. 어느 날 한 제자가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요 깨달음을 얻고 싶다는 마음도 집착입니다. 부처님께서 답하셨습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되 깨달음에 집착하지는 말라. 마치 강을 건너기 위해 배를 타지만 강을 건넌 후에는 배를 버리는 것과 같다.
이 비유는 수행의 역설을 잘 보여줍니다. 해탈하기 위해서는 헤탈에 대한 집착도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무화의 지혜입니다. 해탈의 또 다른 특징은 무화를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몸도 나가 아니고 감수도 나가 아니고 생각도 나가 아니고 의식도 나가 아닙니다.
해신밀경에서는 이것을 의식의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의식의 변화일 뿐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깨달음을 얻으면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자아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면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거부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이 모두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보호해야 할 나라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화를 깨달았다고 해서 개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의 습관과 성향은 남아 있습니다. 다만 그것에 대한 집착이 없을 뿐입니다. 마치 배우가 연기할 때 역할에 몰입하되 역할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해탈한 마음의 특징은 자유로움입니다.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 반응할 수 있습니다. 화가 날 만한 상황에서도 화를 내지 않을 수 있고 슬플만한 상황에서도 평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화를 참는 것도 욕심을 줄이는 것도 교만을 버리는 것도 모두 해탈의 과정입니다. 법구경에서는 해탈의 기쁨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모든 족쇄에서 벗어난 자의 기쁨은 하늘을 나는 새와 같다. 이 기쁨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자유의 기쁨입니다.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고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다는 완전한 자유의 기쁨입니다.
해탈은 목표이자 과정입니다.
완전한 해탈을 이루지 못했더라도 해탈을 향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어제보다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면 조금 더 집착을 놓을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하루입니다.
이 말씀은 일상 수행에 핵심을 보여줍니다. 특별한 조건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바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면서도 마음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 짜증이 날 때 그 짜증을 알아차리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심을 보내는 것 이런 것들이 모두 모두 수행입니다.
심지어 잠들기 전에도 수행할 수 있습니다. 하루 동안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돌아보는 것 잘못한 일이 있다면 반성하는 것 잘한 일이 있다면 기뻐하되 교만하지 않는 것 내 일을 위한 좋은 다짐을 하는 것 등이 모두 의미 있는 수행입니다.
법구경에서는 이런 일상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길을 가다가도 법을 생각하고 서 있을 때도 법을 생각하고 누워 있을 때도 법을 생각하는 자는 위없는 깨달음을 얻는다. 여기서 법을 생각한다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항상 깨어있는 마음으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비로운 마음으로 자신을 대하면서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혼자서만 하려고 하지 말고 좋은 동반자를 찾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함께 공부하고
서로 격려하는 도발이 있으면 수행이 훨씬 쉬워집니다. 부처님께서도 좋은 것이 수행길에 전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책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불교 경전이나 좋은 법문집을 읽으면서 지혜를 기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책만 읽고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읽은 것을 일상에서 적용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명상도 큰 도움이 됩니다. 하루에 10분이라도 조용히 앉아서 마음을 관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처음에 처음에는 잡념이 많이 일어나지만 꾸준히 하면 마음이 점점 고요해집니다.
하루 이틀 열심히 하다가 그만두면 소용없습니다. 평생에 걸쳐 꾸준히 해야 합니다. 마음공부는 끝이 없는 여정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것은 마음 공부의 목적입니다. 단순히 개인의 평안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행복해져서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목표입니다. 자비로운 마음으로 모든 존재의 행복을 바라는 것 이것이 마음 공부의 궁극적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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