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이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부르짖음의 모습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다.
이스라엘의 불신자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다른 지휘관을 세우려고 한 걸 보라. 그들의 목적은 하나님의 역사를 수포로 돌리는 거였다.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 민 14:4
여기서 우리는 원망의 목적을 알 수 있다.
애굽 노예로 돌아가는 것. 비전은 ‘악평’하되 과거는 ‘미화’하는 것(민 13:32).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불신을 확정 지으려는 것이었다.
원망은 부르짖는 기도와 상극이다.
광야의 불신자들은 가나안 땅을 정탐한 직후, 불신 지휘관을 세우려고 했는데, 그 목적은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였다(민 14:4).
부르짖는 기도는 광야 여정의 문제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하는 믿음의 방법이다.
하지만 원망은 하나님의 능력을 가져오는 연결 고리를 끊어버려 광야 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하나님이 없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광야에서 무능하다.
불신자들에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노예 생활로 돌아가는 차악(次惡)이 그들의 최선이다.
구약 광야 생활은 신약 교회인 우리 신앙생활의 그림자와 같다. 오늘 우리의 원망 역시 목적이 같다. 원망은 크리스천을 다시 죄의 노예로 바꾼다.
모세를 세워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세우셔서(히 9:1-28) 우리를 모든 죄와 그 영향력으로부터 구원하셨다.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여, 예수님과 함께 살고 있다(갈 2:20).
우리는 죄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완전히 바뀌었다. 새 길이 펼쳐졌다(고후 5:17).
하나님나라를 향해 전혀 다른 항로로 진행하는 인생이 되었다(눅 13:24).
그래서 다시 죄의 노예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벧전 2:16).
만약 새로워진 인생 항로에서 문제를 만난다면, 그때마다 원망을 포기하고 부르짖는 기도를 선택하면 된다.
광야의 불신자들은 보이지 않는 고무줄에 묶인 듯했다. 문제만 생기면 뒤를 돌아보며 되돌아가려 했다. 처음에 음식 원망을 했을 때부터 그랬다(출 16:2,3).
그들은 과거를 있는 그대로 돌아보지 않고 미화했다. 현재는 악평했고, 미래상에는 먹칠을 했다.
원망은 과거를 미화한다. 예수님을 믿고 새로워진 많은 인생도 그렇다. 자꾸만 세속의 일을 그리워한다.
이스라엘의 불신자들은 영적으로 음란한 신부와 같았다.
그들은 영적 신랑이신 하나님을 끊임없이 떠나고자 했다. 하나님의 구원 이전의 애굽 노예 생활을 미화하며 그리워했다.
오늘날 거듭난 크리스천이 하나님을 원망할 때의 모습이기도 하다.
음란한 여인이 옛 남성들을 그리워하듯, 크리스천 대부분이 그리스도에게서 떠나기를 소원하며 살아간다.
원망은 영적 간음으로 길을 낸다. 야고보서에 따르면, 이런 모습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길이다.
간음한 여인들아…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 약 4:4
광야의 불신자들은 원망으로 부르짖었다. 그 이유는 열두 정탐자 중 불신자들의 첩보를 들었기 때문이다(민 13:31-33).
하지만 그들은 불신 첩보뿐 아니라, 믿음의 정보도 들었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 민 13:30
불신자들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하나는 하나님이 이끄시는 땅에 대한 불신이고, 다른 하나는 신앙이었다. 하나는 안 된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된다는 정보였다.
하지만 광야의 그들의 선택은 ‘불신’이었다. 아직 가보지도 않은 땅에 대한 불신을 확정 지으며 불평했다. 그들은 갈렙이 했던 믿음의 보고는 무시하기로 선택했다.
이처럼 원망은 불신을 확정 지으려는 경향성이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자신의 부정적 판단으로 끝장내려는 의도다.
부르짖는다고 다 기도가 아니다.
부르짖음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외적 표현이다. 중요한 건 그 중심이다. 왜 부르짖는지가 중요하다.
만약 원망으로 부르짖는다면 거기에는 아무 능력이 없다. 겉보기에 기도 같아도, 그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이 이뤄질 것에 대한 신앙이 없다면 원망에 지나지 않는다.
원망.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기 위한 과거 지향성. 이것은 부르짖는 기도와 상극을 이룬다.
- 부르짖는 기도의 비밀, 송준기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롬 6:6)
† 기도
하나님, 저를 죄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제를 만날 때마다 과거를 떠올리며 미화하고, 현재를 악평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부정하며 원망함으로 부르짖지 않게 하소서.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믿음 가운데 부르짖으며 나아가게 하소서
'주님만이 (나 약해 있을 때에도)
https://youtu.be/3_X6S50cKp4
신랑 예수님 품에 안기어
/작사.박영숙권사/작곡.주평안
https://youtu.be/HRoyxdQt0Qk
신은미---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라면
https://youtu.be/IAO0jB1z-hM
오 신실하신 주 (하나님 한 번도 나를)
https://youtu.be/siLFG-Z64N4
권오중 아들 권혁준의 두번째 특송 *분당우리교회 2부 예배 찬양팀과 함께* (2023.7.2)
https://m.youtube.com/watch?v=FHDWfoifa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