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TENNIS magazine. 8월호에 기재된 특집기사 ‘China: Rising tennis superpower or paper tiger?’를 번역한 것입니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하며 수백만 달러를 쏟아 부었고 올림픽이 끝난 이후에도 투자는 계속될 전망이다.
13억의 인구를 가진 중국은 차세대 테니스 강국으로 자리매김할 것인가 아니면 일본처럼 실망스런 결과를 안겨줄 것인가?
중국 어디를 가봐도, 변화가 일고 있다. 호텔과 오피스 타워들은 700년이 넘은 집 사이의 골목길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자전거는 여전히 거리를 메우고 있다. 여행객들과 늘어나는 중상류층을 위한 쇼핑몰, 전자제품 가게, 화려한 레스토랑 등은 도처에 있다.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중국정부는 베이징에 약 400억 달러를 들였다. 중국 테니스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리나는 최근에 베이징에서 쇼핑하던 중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니 ‘중국사람이면서 그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되묻더라’며 과거의 베이징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했을 정도다.
베이징이 몰라보게 달라진 것처럼, 최근 중국 테니스는 십대 페드컵(Fed Cup)의 팀메이트였던 리팡과 쳔리가 데니스 반데르 미어(Dennis Van der Meer - Van Der Meer Tennis University and the Professional Tennis Registry 의 설립자이자 대표 – 역자 주)에게 훈련을 받으러 미국에 건너갔던 80년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반데르 미어의 부인에 따르면 리와 쳔은 당시에 스폰서나 장비들이 전혀 없었다며 쳔의 낡은 운동화를 갈아주던 것을 기억한다. 리는 랭킹 36위까지 올라갔으나 98년 호주오픈의 첫 경기에서 메리 피어스에게 6-0, 6-0으로 졌고 당시 중국 테니스의 미래는 막막하기만 했다.
10년 뒤, 중국의 탑플레이어들은 재정적 여유, 스폰서 그리고 명성까지 얻게 되었다.
순티엔티엔과 리팅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복식 우승으로 역사상 첫 테니스 금메달을 중국에 안겨주었고 CTA(중국테니스협회)는 이후 그 이상을 목표로 지속적으로 복식에 투자했으며 베이징 올림픽에서 더 큰 성공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단식, 특히 남자 프로선수들에 대한 지원이 급선무이다. 중국 선수로는 세 여자선수만이 랭킹 100위 안에 포진해 있고 한때 중국인 중 최고의 성적인 16위까지 올랐던 리나가 이를 주도하고 있다.
중국 남자는 400위 이내에 든 선수가 없으나 우디, 장제 같은 주니어 남자선수들이 미래를 주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ATP(세계남자프로테니스협회) International의 CEO이자 2002년 상하이에서 열린 테니스 마스터즈컵의 토너먼트 디렉터인 브래드 드루웻은 테니스 비즈니스 측면에서만 본다면 중국은 이미 붐이 일고 있다고 판단한다.
드루웻은 2002년 초 마스터즈컵을 준비하기 위해 중국을 처음 방문하였을 때 본 중국의 테니스 시설을 보고 ‘재미있지만 너무나 무서워 딱 한 번 만 타고 싶은 놀이기구’에 비유했다.
대회가 열린 국제 이벤트 센터는 선수들의 교통문제, 기자들의 자격, 티비 중계, 음식 제공 등 기본적인 것부터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전세계 관중들이 지켜본다는 점을 의식한 중국 정부의 투자로 인해 기대했던 것보다는 잘 진행되었다.
이후 ATP는 2005년에 시작하는 마스터즈컵을 상해에서 개최하기로 하였으며 2009년의 토너먼트는 상해에서 마스터즈 레벨의 남자 대회로 대체될 정도로 중국은 지난 십 년 동안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테니스 불모지에서 메이저 국가로 급부상해 왔다.
그러나 두루웻이 ‘지금도 붐이지만, 중국출신 수퍼스타만 있으면 그 이상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듯이 테니스는 중국 대중들에게 아직도 상대적으로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CTA에 따르면 테니스는 중국에서 탁구, 배드민턴, 농구, 축구에 이어 다섯 번째로 인기종목이다.
CTA의 국제관계 대표인 선웬빙은 현재 중국에서 6백만명이 테니스를 즐긴다고 했는데 이는 중국 인구의 1%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숫자다. USTA(미국테니스협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2천 5백만명이 테니스를 즐기며 이는 미국 전체 인구의 8.3%에 달한다.
중국 전체인구의 8.3%라면 1억1천명에 해당하며 장차 중국에서 그 정도의 인구가 테니스를 치게 될 날이 오면 리닝사(社)(올림픽 체조 금메달리스트인 리닝이 세운 스포츠 용품 회사로서 테니스 용품 매출이 최근 크게 증가하였음)같은 회사들은 더 큰 성장을 할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테니스 현상에 대해 두루웻은 ‘성장세는 좋으나 어서 훌륭한 선수들을 배출하지 않으면 고사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중국은 큰 대회에서 성공적이었던 복식과 달리 단식에서는 부진했다. 2004년 올림픽 복식 금메달리스트인 리팅-순티엔티엔 조, 2006년 호주오픈과 윔블던에서 우승한 얀지-정지에 조는 이번 올림픽에서도 금메달 혹은 최소한 메달권에 진입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2005년과 2006년 시즌에 한달 동안 중국의 탑플레이어들을 지도했고 2007년 US오픈 이후 풀타임으로 고용된 토마스 획스테트(현재 세계랭킹 40위 토미 하스의 전 코치)는 ‘중국 선수들은 전례없는 부담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획스테트는 이번 올림픽에서의 결과가 다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중국은 메달이든 다른 것이든 올림픽 이후에 더 많은 것을 이룰 것이며 이제 시작인 만큼 남자 테니스 분야에서 발전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이 2001년, 올림픽 개최국으로 선정되기 전 CTA는 외국의 코치와 트레이너들의 조언을 귀담아 듣지 않았으나 최근에는 외국에서 훈련을 받기도 한다. 리나는 텍사스의 존뉴컴 아카데미에 갔으며 리팡과 쳔리는 반데르 미어에게서, 일부는 닉 볼리티에르에서 훈련을 받았다.
획스테트 외에 다른 코치들도 CTA를 도와 중국 선수들의 연습, 체력단련, 선수 영입에 일조하고 있다. 이들 전문가 중 더그 맥커디는 과거 USTA와 국제 테니스 협회의 선수개발 디렉터 출신이며, 호주 출신의 데스 타이슨은 중국의 남자 주니어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1986년에 처음 중국을 방문한 맥커디는 2005년부터 1년 동안 거주하면서 본 결과 엘리트 선수에 대한 CTA의 노력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CTA는 탁구와 베드민턴처럼 자국의 힘으로 세계적인 선수들을 육성하려고 했다. 남녀 각각 세계 탁구 5위권 선수 10명 중 9명이 중국인이며, 세계 베드민턴 10위 내에서 7명이 중국인이다. 따라서 중국은 해외에 의존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즉 어린 선수들을 세계의 최고 기량을 갖춘 선수들과 접촉할 기회를 주지 않고 반복적인 연습을 주로 시켰다. 맥커디는 ‘요즘에는 그런 식으로 지도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경쟁 없이 오랜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선수들의 판단력을 증진하지 못한다. 모든 레벨에서 보다 많은 경쟁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홍콩에서 30분 떨어진 심천의 미션 힐즈 골프 클럽에 테니스 아카데미를 개설한 전 프랑스오픈 우승자인 마이클 창은 ‘미국에서는 매주 주니어 토너먼트 대회가 열린다. 주니어 토너먼트가 없으면 내 아버지는 나를 남자 오픈 토너먼트에 밀어 넣었을 것이다’라며 중국에서는 주니어 토너먼트 경기가 없음을 아쉬워했다.
2002년에야 CTA는 국내의 부족한 경쟁을 보완하기 위해 선수들이 해외 대회에 많이 참여하도록 했다. 대부분의 탑플레이어들은 자신의 스케줄을 계획하지만 물론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얀과 같은 선수는 CTA가 허락하는 대회에 출전하며 얀은 지난 시즌 단복식을 합하여 총 100 경기나 출전하였을 정도다.
선수들의 은퇴도 자유롭지 못한 면이 있다. 중국의 보고에 따르면 2004년 복식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리팅은 네 번이나 은퇴를 거부당했다. CTA 대변인은 영자신문 차이나 데일리에서 리는 부상에서 회복하기 위한 휴식 중이며, 2007년 초 이후 세 복식 경기에서 모두 졌음에도 올림픽에서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고 해명했다.
이러한 CTA의 입장을 보면 CTA가 선수 개인 보다는 팀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얀은 CTA가 요구하는 스케줄에 불평하지는 않는다. 여섯살 때 처음 테니스를 접한 얀은 2003년 프로선수가 된 이후CTA에 많은 긍정적인 변화를 보아왔다. 해외 대회에도 출전하고 상금의 50~65%를 챙길 수 있으며(예전에는 협회가 65%를 가져갔다.) 정지에와 함께 롤렉스와 광고계약도 맺었다.(물론 수입은 협회와 나눠 가졌다.)
차이나 데일리에 따르면 얀과 정지에의 상금과 후원금은 합해서 2백만불에 이른다며 CTA는 선수들이 많은 보상을 챙길 수 있게 하고, 이런 명성과 수입은 더 많은 유소년층을 테니스로 끌어들이는 등 희망적인 소식도 들린다.
그러나 CTA의 디렉터이자 전 배구 우승자였던 선진팡을 비롯한 다른 선수들은 스타덤을 통해 얻는 부와 명성을 염려한다. 선은 개인적인 영광에 관심이 없다.
2006년 마이클 창이 CTA의 파트너로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당신은 훌륭한 선수였지만 훌륭한 코치인지는 모르겠다’며 거절했다. 선은 자신이 지도하는 선수들이 어렸을 때부터 많은 돈을 버는 것을 걱정한다. 왜냐하면 선이 현역시절에는 자신보다는 팀, 나아가 국가가 먼저였기 때문이다.
전 세계 탁구 챔피언이었던 덩야핑 또한 1979년 자녀 하나 갖기 정책 이후 출생한 선수들은 자기 중심적이고 기강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펑슈아이는 몇 해 전 선수촌에서 7시 기상을 거부했을 때도 이와 유사한 비난을 들은 바 있다.
그러나 프로 테니스의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극단적으로는 개인 중심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차이니즈 페드컵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올림픽 복식에서 몇 개의 메달을 땄는지가 아니라 선수 개인의 성취이다.
등소평이 30년 전 중국 경제를 개방한 이후, 중국 비즈니스는 빠른 속도로 자본주의에 적응해 온 가운데 중국선수들도 이와 유사한 기념비적 변화의 순간에 놓여 있다.
그들은 더 이상 중국 선수가 아니라 중국 출신의 프로선수이다. 물론 러시아 선수들처럼 성공할 수도 있고 80년대 한 때 테니스 붐을 일으킨 일본 선수들처럼 실패할 수도 있다. 얀에게 중국 테니스의 전망에 대해 물으니 ‘아직은 알 수 없다’는 조심스러운 답을 던진다.
올림픽을 기점으로 중국 테니스의 행보가 더욱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