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길은 강원도 철원군 '쇠둘레 평화누리길'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5월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 역사자원이 깃든 생태탐방길' 중 하나로 선정한
쇠둘레 평화누리길은 짙은 녹음과 한탄강, 군사분계선을 품은 분단 현실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역사ㆍ생태탐방 코스다.
휴전선으로 가로막힌 채 60년 세월을 감내해온 철원에는 백마고지 위령비와 기념관, 옛 노동당사 등
6ㆍ25전쟁 상흔이 켜켜이 서려 있다.
맑은 물, 빼어난 산세
천혜의 비경 자랑
분당의 아픔 간직한
역사, 생태탐방 11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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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석정으로 가는 현무암 계단길. 녹음 속에서 홀로 걷는 기분이 상쾌하다. 이 계단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하느님이 지으신 자연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
#승일공원에서 시작한 발걸음
서울에서 차를 몰아 2시간 남짓.
평일에도 교통정체가 극심한 도심에서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상쾌하다.
뻥 뚫린 도로를 달려 숲길에 접어들자 그동안 쌓인 마음속 먼지가 모두 날아간 기분이다.
출발할 때 내비게이션에 찍은 '승일공원'이 보인다.
'후~' 심호흡부터 한 번 해본다. 첫 걸음을 뗐다. 길에 오르니 휴식 같은 느낌이 든다.
각박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것은 휴식이다.
휴식이야말로 하느님이 수억 년 들여 지으신 자연이라는 '선물'을 느껴보라는 명령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승일공원은 승일교(承日橋) 입구에 있는 작은 공원으로, 쇠둘레 평화누리길 1코스의 시작 지점.
철원군은 최근 승일공원부터 승일교-고석정-송대소-직탕폭포까지 약 4.5㎞ 구간을 자전거 전용도로로
새로 깔았다. 걸어서 70분, 자전거로는 15분쯤 걸리는 가족 하이킹 코스다.
거리도 적당한데다 부담이 없어 걷기에 꼭 알맞다.
물론 평화누리길 1코스는 직탕폭포에서 그치지 않고, 도로를 따라 무당소와 칠만암까지 이어지는
총 11㎞ 구간이다.
공원을 둘러보다 낡은 승일교에 발을 내디뎠다.
"영차! 영차!", "하나 둘 하나 둘!" 젊은이들 구령소리가 들린다.
인근 군부대에서 훈련받는 소리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다리 밑에서 한탄강을 따라 래프팅을 하는
젊은이들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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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탄강에서 래프팅을 즐기는 젊은이들. |
길을 걷다 손은호(55)ㆍ이경임(52)씨 부부를 만났다.
철원이 고향이라는 손씨는 "어린 시절 여름이면 학교 갔다 돌아와서 늘 한탄강에서 멱을 감곤 했다"며
고향 자랑에 여념이 없다.
손씨 자랑처럼 철원은 맑은 물과 공기, 빼어난 산세로 유명하다.
서북쪽 백마고지 인근에는 산명호와 동송ㆍ토교ㆍ학 저수지가 줄지어 있다.
또 대성산(1175m)과 복계산(1057m), 금학산(947m) 등 높은 산들이 철원평야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철원 오대쌀이 전국에서 맛 좋기로 소문난 것도 깨끗한 자연환경 덕분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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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나이아가라라 불리는 직탕폭포. |
#직탕폭포에서 멈춘 발걸음
지금은 북한 땅이라 갈 수 없는 평강과 철원-김화를 잇는 북위 38도 북쪽 중부에 있는 지역을
'철의 삼각지대'라고 부른다. 군사 요지로 6ㆍ25전쟁 때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 격전지다.
발걸음이 고석정(孤石亭)에 이르렀다.
조선 명종 때 의적당 두목 임꺽정이 고석정 옆에 돌벽을 쌓고 칩거하면서 한양으로 싣고가는
곡식을 탈취해 빈민을 구제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고석정과 송대소를 지나면 '한국의 나이아가라'라고 불리는 직탕폭포에 이른다.
직탕폭포는 한탄강을 가로지르는 높이 3~5m, 너비 80m가량인 작은 폭포다.
높이 50m, 너비 900m에 이르는 나이아가라폭포와는 규모나 수량 면에서 너무 차이가 나 실망만
가득 안고 가던 길을 재촉한다.
다음 코스인 무당소와 칠만암을 찾아 헤매길 1시간여. 길을 잃었다.
고석정에서 향토가든을 운영하는 철원 토박이 한일기(62)씨가 "무당소와 칠만암은 개방된 곳이 아니라서
주민도 잘 모른다"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그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평화누리길로 지정은 됐지만 아직은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보이지 않는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도 길을 제대로 아는 이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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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둘레 평화누리길을 걷다 만난 철원평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고 푸르다. |
주민들에게 들은 이야기 하나.
송대소나 무당소 등 소(沼)는 강줄기에서 갑자기 깊어지는 늪 같은 곳이다.
무당소는 옛날 한 무당이 굿을 하다 이곳에 빠져 죽어 '무당소'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한나절 코스로 일정을 잡은 탓에 발걸음은 멈췄지만, 철원은 아직 기자를 놓아주지 않는다.
소리 없이 다가와 목 뒤로 흐르는 땀을 살며시 닦아주는 시원한 산들바람과 가슴까지 뚫리는
듯한 확 트인 평야, 강변에서 만난 다람쥐와 잠자리가 마음 속에 남아 있어서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 인근 성당 안내
-철원성당(033-455-9669): 철원군 동송읍 이평7리 854
-갈말성당(033-452-7708): 철원군 갈말읍 지포리 133-1
-김화성당(033-458-2179): 철원군 서면 와수6리 1223
▨승일교(承日橋)
한탄강 협곡 위에 세워진 아치형 다리
2002년 5월 등록문화재 제26호로 지정
한탄강 중류 한탄대교 바로 옆에 있는 길이 120m, 높이 35m, 폭 8m의 철근콘크리트 아치형 다리다.
철원의 옛 관문에 있는 승일교에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1948년 김일성이 교각을 세우고, 1958년 12월 3일 이승만 대통령이 완성해 이 대통령의 '승'자와
김일성의 '일'자를 합친 남북합작 다리라는 이야기와 6ㆍ25전쟁 당시 한탄강을 건너 북진하다 전사한
박승일 대령을 기리려 명명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3개의 교각 위에 아치형을 이루고 있어 모양이 아름답다.
등록문화재 제26호(2002년 5월)로 지정되면서 통행이 금지됐으나, 최근 통행이 다시 허용됐다.
이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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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일공원에서 승일교를 바라보는 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