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챗봇 ChatGPT에게 “ChatGPT는 어떤 문제들을 야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첫째, ChatGPT는 언어와 의사결정에서 편견을 무심코 학습하여 지속시킨다. 둘째, ChatGPT는 오독되거나 사실이 아닌 텍스트를 생성하여 잘못된 정보를 확산한다. 셋째, ChatGPT는 개인 정보를 포함한 엄청난 데이터에 접근함으로써 사생활 침해를 불러일으킨다. 넷째, 사람들이 ChatGPT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비판적 사고가 줄어들고 인간의 판단보다 기술에 의존하게 된다. 다섯째, ChatGPT의 발전과 사용을 통해 ‘데이터 프라이버시’(data privacy)나 ‘알고리즘 투명성’(algorithmic transparency) 같은 이슈를 중심으로 윤리적 문제가 야기된다.
챗GPT의 대답에서 드러나듯이, 인간의 존재와 운명이 걸린 ChatGPT 같은 인공지능을 제대로 활용하는 문제는 이제 기술적 문제라기보다는 인문학이나 윤리학이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하기도 한다. 더욱이, 인공지능 전문가들조차 챗GPT 같은 인공지능 기술의 무서운 발전 속도를 부담스러워하는 지경이다. 하지만 이렇게 엄청나게 발전하는 인공지능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 아직 사회적 합의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크 엘륄(Jacques Ellul)의 분석을 통해, 오늘날 ChatGPT를 필두로 하는 인공지능 전성시대에서 그리스도인이 마주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인공지능을 인간 지능과 비교하면서 인공지능의 한계를 내세우는 주장도 있지만, 이 주장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첫째, 인공지능은 인간의 포괄적 지능에서 ‘분절된 것’을 완벽히 복원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다. 이 포괄성과 관련하여, 빅데이터와 맞물려 인공지능은 이미 인간 지능 이상의 포괄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상상력이 없으면 인간 지능이 아니며 선험적으로 인공지능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다. 상상력, 감정, 정서와 관련하여, 고도의 상상력을 요구하는 예술 분야 특히 미술과 작곡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보조할 정도로까지 성장했으며, 인간을 능가하는 일은 시간 문제라는 것이다. 셋째, 인공지능은 ‘즉흥적인 것’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엄청난 정보를 불러들여 가장 개연성이 있는 것을 취하기에, 실제 환경에서 무엇이 적절한지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다. 이 즉흥성과 관련하여, 대표적으로 자율주행 기술과 맞물려 인공지능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라는 것이다. 특히, 인공지능도 수많은 학습을 통해 인간 이상의 직관을 가졌다는 것이다. 다양한 관습과 의사소통 가운데 일어나는 비언어적 요소를 데이터화하여 인공지능도 이에 대해 학습할 수 있고 실제 결과도 유의미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물론, ChatGPT 같은 인공지능이 인간 삶의 일부 영역에서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인공지능이 인간과 공존하면서 일관되게 돕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 특히, 인공지능 기술을 연구하는 공학자는 자신의 전문성에 기반하여 인공지능 기술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유용한 도구로 활용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즉, 인공지능과의 최선의 공존방안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같은 기술에 대한 통제방안에 대해서도 진지한 논의와 탐구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한계도 제한도 없이 이루어지는 인공지능 기술 연구처럼, ‘지적 탐구’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기술에 예속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하다. 그 해결책은 ‘세속적인 것’과 ‘신성불가침의 것’이라는 두 영역이 있음을 인식하고 두 영역 사이의 경계를 발견하는 것이다. 물론, ‘지적 탐구’가 ‘신성불가침의 것’의 경계까지는 나아갈 수 있다. 그렇지만 ‘지적 탐구’는 ‘신성불가침의 것’ 너머로 가지 말아야 하며, ‘신성불가침의 것’ 안으로 들어갈 위험이 있을 때 반드시 멈추어야 한다. 따라서 ‘지적 탐구’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해서 무엇이든 하지 말아야 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이 자세는 ‘지적 탐구’보다 뛰어난 외부의 판단 기준이 있음을 전제로 한다. ‘지적 탐구’의 힘이 미치는 범위를 벗어난 분야나 혹은 기술적 수단의 활동 범위를 벗어난 분야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ChatGPT 같은 인공지능 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을 초월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시를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은 세상의 고삐 풀린 기술적 지배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 된다. 하나님은 인간을 참된 자유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분이다. 따라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방된다면, 우상처럼 군림하는 인공지능 같은 기술의 신성함을 숭배하지 않고 기술의 신성함을 떨어뜨릴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확립되기를 소망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개인적 맥락이나 혹은 사회적 맥락에 의해서만 아니라, 종말론적 관점에 따라 자신의 행위와 결단을 선택해야 한다. 이런 선택을 함으로써, 인공지능 같은 기술적 문제를 풀어나갈 실마리를 발견하여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