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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수는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장승을 부르는 명칭으로 순우리말이다. 장승은 나무로 만든 목장승과 돌로 만든 돌장승 두 가지가 있다. 목장승은 비바람에 쉽게 썩어 주기적으로 교체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원래의 모습에 다소 변화가 생길 수 있으나, 돌장승은 한번 세우면 반영구적으로 전승되기 때문에 조형성이나 미의식에 대해 다양한 접근이 가능했다. 사람의 얼굴을 한 장승을 마을 입구에 세워두면 전염병을 가져오는 역신이나 잡귀들이 겁을 먹고 마을로 들어오지 못한다고 믿었으며, 재화를 막고 복을 가져다주는 신비스러운 힘이 있다고 여겨 마을의 벅수에게 여러가지 크고 작은 소원을 정성스레 빌었다. 또, 벅수는 전문적인 장인이 아닌 마을 주민 중에서 견문이 있거나 장승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제작한 것으로 형태 또한 정형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 공동의 요구에 따라 그때 그때 만들어졌다. 따라서 우리 민초들의 삶과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석조물이며, 그들의 희로애락이 그대로 드러난 천진한 표정, 해학적 표현 등이 특징이다.
또 다른 나르시시즘
나르키소스가 죽었을 때 숲의 요정들이 호숫가에 왔어요.
그들은 호수가 쓰디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지요.
'그대는 왜 울고 있나요?' 요정들이 묻자
'나르키소스를 애도하고 있어요.' 호수가 대답했어요.
'가장 가까이서 그의 아름다움을 보았을 테니 그럴 수 있겠네요.'
요정들이 말하자 가만히 듣던 호수가 물었지요.
'나르키소스가 그렇게 아름다웠나요?'
'아니 그대만큼 그를 잘 아는 이가 어디 있어요?' 요정들이 반문하자
호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어요.
'그가 그토록 아름다운지 몰랐어요.
그가 제 물결 위로 몸을 구부릴 때 그의 눈 속에 비친 나를 봤지요.
그가 죽었으니 이제 그럴 수 없잖아요.'
알고 있는 나르시시즘과 다르지요?
나르키소스는 매일 호수에 자신을 비춰보며 아름다움에 도취되었고,
결국 그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호수에 빠져 죽어요.
그가 죽은 자리에 한 송이 꽃이 피었고,
사람들은 그 꽃을 수선화(나르키소스)라 불렀지요.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나르시시즘입니다.
우리는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만,
타인에게 비친 자신에게 더 관심을 가진다고 해요.
그러나 나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만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지요.
나에 대한 단점내지는 부정적인 견해도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이는
좀 더 익은 사람이겠죠?
- 최선옥 시인
작 품 명 사슴
환성사 대웅전 수미단 - 연리지와 비익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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