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 양 여 행
명옥헌(鳴玉軒)
조선 중기 명곡(明谷) 오희도가 자연을 벗 삼아 살던 곳으로 그의 넷째 아들 오이정이 선친의 뒤를 이어 이곳에 은둔하면서 자연경관이 좋은 도장곡에 정자를 짓고, 앞뒤로 네모난 연못을 파서 주변에 적송, 배롱나무 등을 심어 가꾼 정원입니다. 시냇물이 흘러 한 연못을 채우고 다시 그 물이 아래의 연못으로 흘러가는데, 물 흐르는 소리가 옥이 부딪히는 것만 같다고 하여 연못 앞에 세워진 정자 이름을 명옥헌이라 했습니다. 주위의 산수 경관이 연못에 비치는 모습을 명옥헌에서 내려다보며 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하였습니다.
오희도는 인조가 왕이 되기 전인 능양군 시절 세 번이나 찾아가 시국을 논했던 인물입니다. 명옥헌 마루에 ‘三顧’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배롱나무를 심은 것은 후대의 오대경입니다. 정자 앞뒤에 두 곳의 연못을 파고 주변에 스물여덟 그루의 배롱나무와 다섯 그루의 소나무, 느티나무 등을 심었습니다. 연못은 네모지게 팠고 그 가운데 둥근 섬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우주관이었던 ‘땅은 네모나고 하늘은 둥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나타낸 것입니다. 명옥헌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아담한 규모입니다. 가운데 방을 두고 ㅁ자 마루를 놓았고 팔작지붕입니다. 전형적인 호남지방 정자의 모습으로 꾸밈이 없으면서도 품격이 있습니다.
연못을 중심으로 가장자리의 둑방길을 따라 배롱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못 한가운데 있는 섬 안에도 배롱나무가 자리하고 있어 배롱나무가 이 정원을 온통 뒤덮고 있습니다. 특히 배롱나무는 대부분 고목이 되어 총총히 가지를 뻗고 그 빼곡한 가지마다 빨갛게 탐스러운 꽃무리를 수관 가득히 달고 있습니다. 늦여름 배롱나무 꽃이 질 때면 붉은 꽃비가 되어 정원 곳곳에 흩날리고, 꽃잎이 못 위에 호사스런 붉은 융단을 만드는 아름다운 자미(紫薇, 배롱나무)의 정원이 명옥헌 원림입니다. 이곳은 담양 지방의 정자원림 중에서도 배롱나무 꽃이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삼지내마을
아시아 최초의 슬로우 시티 마을로 지정된 담양 창평의 중심마을입니다. 1510년경에 형성된 마을로 동편에는 월봉산, 남쪽에는 국수봉이 솟아 있습니다. 마을 앞을 흐르는 내의 모습이 봉황이 날개를 뻗어 감싸고 있는 형국이라 하는데, 세 곳에서 오는 물 즉 월봉산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월봉천과 운암천, 그리고 유천이 만나는 곳이어서 삼지내[三支川] 마을이라 불렀습니다. 이 마을은 들판 가운데에 있어 예로부터 농산물이 풍부한 지역이었습니다. 마을 내에는 시도민속자료 제5호 ‘담양 고재선 가옥’을 중심으로 여러 채의 전통한옥이 잘 남아 있어 전통마을로서의 가치를 더하고 있습니다.
의병장 고경명(1533-1592) 후손들이 살고 있는 창평 고씨 집성촌입니다. 동학 때 한 집안은 의병을 일으키고 한 집안은 군자금을 댔습니다. 개화기에는 영어선생을 서울에서 모셔와 가르칠 정도로 깨인 사람들이었습니다. 해방 후에도 후손들은 상당수 사법부와 행정부 고위관료를 지낸 명문가입니다. 흙과 돌로 쌓아 만든 마을 담장은 보기에도 일품입니다. 담장 아래에는 작은 개울이 흐릅니다. 담장의 구조는 전반적으로 돌과 흙을 사용한 토석담으로 비교적 모나지 않은 화강석 계통의 둥근 돌을 사용하였고, 돌과 흙을 번갈아 쌓아 줄눈이 생긴 담장과 막쌓기 형식의 담장이 혼재돼 있습니다.
토담의 길이는 약 3,600m. ‘S'자 형으로 자연스럽게 굽어진 마을 안길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으며 고가들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골목길을 걷다 보면 마치 그 옛날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듭니다. 이곳에서는 종종거릴 일이 없습니다. 그냥 천천히 걸으면 됩니다. 옛 돌담길을 따라 느릿느릿하게 걷는 즐거움을 누리고, 전통방식으로 쌀엿을 만드는 집도 있으니 쌀엿도 사먹고 마을 근처 창평장 구경하다 창평시장국밥집(061-383-4424)에서 창평국밥 한 그릇 먹는 것도 좋습니다. 일대를 국밥거리로 만들어버린 창평시장국밥의 원조집입니다.
죽녹원(竹綠園)
2003년 담양읍 향교리 성인산 일대에 31만여㎡ 규모로 조성된 대나무숲 원림입니다. 분죽, 왕대, 맹종죽 등이 자생하는 울창한 대숲에 들어서면 댓잎 스치는 소리와 대나무 향이 가득하고 대숲 아래에는 댓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먹고 크는 죽로차가 자라고 있습니다. 녹색의 대나무 숲길은 '운수대통길-사랑이 변치 않는 길-철학자의 길-추억의 샛길-죽마고우의 길' 등 총길이 2.4㎞의 8개 테마 별로 산책로가 조성돼 있습니다.
산책로는 왕대숲에 가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여서 죽림욕장으로도 인기가 높습니다. 전망대에 오르면 담양천과 수령 300년이 넘은 고목들로 이뤄진 관방제림과 담양의 명물인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등이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코스를 따라 나오면 대통나무가 깔려 있어 맨발로 걷는 체험도 할 수 있습니다. 생태전시관, 인공폭포, 생태연못, 야외공연장 등의 시설물이 있고 정원 안에는 죽향정, 의향정, 예향정 등 한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꼭 가봐야 할 추천 관광지인 ‘한국관광 100선’에 2회 연속 선정돼 ‘만인의 휴식처’라는 타이틀을 다시 한 번 입증한 곳입니다.
관방제림(關防堤林)
조선조 1648년(인조 28년)에 영산강의 상류인 담양천의 물길을 다스려 강 주변 마을의 수해를 막고자 성이성(成以性) 부사가 6km에 이르는 제방을 축조하면서 조성한 숲입니다. 그 뒤인 1854년(철종 5) 부사 황종림(黃鍾林)이 관비(官費)로 연인원 3만여 명을 동원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관방제라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즉 ‘관에서 조성한 제방의 숲’이라는 뜻입니다. 남산리 동정자마을에서 수북면 황금리를 거쳐 대전면 강의리까지 숲길이 이어지는데, 수백 년 된 아름드리 팽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푸조나무, 벚나무, 은단풍 등 177그루가 보호수로 지정, 관리되고 있습니다.
약 2km에 걸쳐 이어지는 제방의 산책로는 사계절 가족 나들이 코스로 인기 만점입니다. 벚꽃으로 가득한 봄과 매미 울음소리 자지러지는 여름 등 언제 찾더라도 운치가 넘쳐납니다. 옛날 이곳 관방제에서는 삼백 년 동안이나 큰 변화 없이 닷새에 한 번씩 죽물시장이 열렸습니다. 장이 서는 날이면 먼동이 트기도 전에 소쿠리나 바구니를 산더미같이 머리에 이거나 지게에 지고 쏟아져 나오는 행렬이 끝없이 이어져 호랑이도 도망쳐 버리더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조선시대에는 이 장터에서 하루에 3만 장이 넘게 삿갓이 팔렸다고 해서 이 시장을 '삿갓점머리'라 불렀다 합니다.
천연기념물 366호로 지정받았으며, 2004년 '전국 아름다운 숲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낙엽 활엽수로 우거진 거대한 풍치림 옆으로 한가롭게 흐르는 관방천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룹니다. 관방천의 운치 있는 돌다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됩니다. 인근 향교다리에는 양파, 대파, 멸치 등을 넣고 푹 끓여낸 육수에 국수를 말아주는 국수가게가 12곳쯤 늘어서 있는 국수거리가 있습니다. ‘백종원의 3대 천왕’에 나왔던 ‘옛날 진미국수’집도 있습니다.
메타세쿼이아 숲길
1972년 전국적으로 가로수 조성사업이 한창일 때 담양의 시범 가로수로 지정돼 국내 처음으로 중국산 수종 1500여 그루를 들여와 심었던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가로수 길은 담양읍~전북 순창 경계에 이르는 24번 국도 8.5㎞ 구간에 펼쳐져 있는데, 그 중 담양읍 학동리 2.1㎞ 구간이 전용 숲길로 조성됐습니다. 우회도로가 생기면서 폐선된 구간을 산책길로 만든 것입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높이가 30~40m에 이르는 아름드리나무로 자라 수백m에 걸쳐 열병하듯 늘어서 마치 나무숲 동굴에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오래 전 고속도로 건설계획 때나 국도 확포장 계획 때 사라질 위험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1000여 그루가 살아남게 되어 담양을 대표하는 명소가 된 것입니다. 길 양편으로 곧추 자란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터널을 연상케 하는 이곳에서, 2007년 개봉한 영화 ‘화려한 휴가’의 주인공 김상경이 택시를 타고 달리는 장면을 연출한 이후 방송국의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영화촬영 명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아름드리나무들이 계절마다 갖가지 색깔로 갈아입는 이 숲길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데다 속이 후련할 정도로 시원합니다. 2002년 '가장 아름다운 거리 숲'으로 선정된 이후 오늘날까지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담양 맛 기행
담양 떡갈비
원래 떡갈비는 담양 정읍 사대부집안의 잔치음식입니다. 떡갈비의 원조 덕인관(061-381-7881)의 창업주인 장막래(77) 할머니가 구전으로 내려오던 떡갈비를 40여 년 전(1963년) 전통방식으로 재현한 후 남도의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997년엔 남도음식 대축제 대상을 받았습니다. 갈비뼈에 붙은 갈비살 그대로를 떨어지지 않도록 잔칼질해 씹을수록 갈비 고유의 쫄깃함과 고소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가 약한 부모님을 위해 만든 음식이어서 원래 이름은 '효(孝)갈비'이지만 외지 손님들이 떡 모양을 닮았다 해서 붙인 '떡갈비'란 이름이 엉뚱하게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