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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167_22 「和盧侍御通塘曲」李白
-盧侍御史(盧虛舟)의 통당곡에 답함-
君誇通塘好, ①(군과통당호) -자네가 通塘이 좋다고 자랑하면서,
通塘-江西省 九江市 근처의 저수지 이름을 말한 것임.
通塘勝耶溪。 ②(통당승야계) -통당은 會稽의 若耶溪(약야계) 보다 아름답고 했지.
通塘在何處, ③(통당재하처) -통당이 있는 곳이 어디쯤인가?
遠在尋陽西。 ④(원재심양서) -심양의 서쪽에서 멀리 있다네.
青蘿裊裊掛煙樹,⑤(청라뇨뇨괘연수) -싱싱한 댕댕이 넌출은 하늘하늘 안개 낀 숲속에 걸쳐 있고,
白鷳處處聚沙堤。⑥(백한처처취사제) -꿩닭은 여기저기 모래 둑에서 살고 있으며.
石門中斷平湖出,⑦(석문중단평호출) -돌 갑문은 중간이 잘려나간 채 수면 위로 툭 튀어
불거졌고. 石門-3.控制水流的石閘。(물 흐름을 제어하는 돌 갑문)
百丈金潭照雲日。⑧(백장금담조운일) -백 길이나 깊은 못은 구름과 해를 비추고 있네,
金潭-깊은 못의 美稱
何處滄浪垂釣翁,⑨(하처창랑수조옹) -푸른 물결에 낚시 대 드리우던 늙은 어부는 어디 있는가?
鼓棹漁歌趣非一。⑩(고도어가취비일) -노를 두드리며 부르던 어부가는 취미 중에 하나가 아닌가
보다.
相逢不相識, ⑪(상봉불상식) -자네와 서로 만났을 테지만 일아 보지 못하여,
出沒繞通塘。 ⑫(출몰요통당) -통당을 둘러보며 구경 잘하고 돌아왔네.
浦邊清水明素足,⑬(포변청수명소족) -물가의 맑은 물에 하얀 발 담그고 비단 빨래하는 것,
別有浣沙吳女郎。⑭(별유완사오녀랑) -浣沙溪에서 吳나라 처자들만 별나게 있는 일이네.
行盡綠潭潭轉幽,⑮(행진록담담전유) -비단빨래가 끝나면 푸른 못은 다시 그윽한 못으로
돌아가니,
疑是武陵春碧流。⑯(의시무릉춘벽류) -무릉도원의 봄물이 푸르게 흘러가는 것인가 의심할
정도일세.
秦人雞犬桃花里,⑰(진인계견도화리) -秦나라 사람들이 아직도 닭과 개를 키우며 무릉도원
도화리에 살고 있으니,
將比通塘渠見羞。⑱(장비통당거견수) -장차에 비슷하게 통당에 있는 도랑에서도 볼 수 있어야
하네.
通塘不忍別, ⑲(통당불인별) -통당에서는 유별나게 참지 못하여,
十去九遲回。 ⑳(십거구지회) -열 번을 갔다면 아홉 번은 늦게 돌아왔다네.
偶逢佳境心已醉,①(우봉가거심이취) -우연히 만난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 마음은 이미
빠져들었고,
忽有一鳥從天來。②(홀유일조종천래) -홀연히 한 마리 새(盧侍御)가 하늘에서 날아오더니.
忽有-홀연히
月出青山送行子,③(월출청산송행자) -달뜨는 청산으로 여행객을 안내해 주고,
四邊苦竹秋聲起。④(사변고죽추성기) -사방의 참대나무에서는 가을 소리 일어 반겨주는 듯
하였네.
長吟白雪望星河,⑤(장금백설망성하) -漢武帝의 아름다운 秋風辭를 길게 읊고서 은하수
바라보며, 白雪-4.喻指高雅的詩詞。
雙垂兩足揚素波。⑥(쌍수량족양소파) -둘이서 양 다리 드리우고 흰 물결을 날리네.
梁鴻德耀會稽日,⑦(양홍덕요회계일) -漢나라 梁鴻이 덕행으로 빛나는 회계에서 지내던 날에,
寧知此中樂事多。⑧(영지차중락사다) -이번 통당 여행 중에는 즐거운 일이 많을지 어찌 알기나
했나. 寧[차라리 녕]-1.[부사][문어]어찌. 설마. 2.[부사]차라리.
■盧虛舟 (?~?) 字幼眞, 范陽(今 河北 保定 涿州)人,
唐 肅宗 때에 殿中侍御史에 임명되었고. 전하는 바에 의하면, ‘操持有淸廉之譽(청렴을 명예를 지켰다.)라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일찍이 이백과 함께 廬山을 유람했고, 詩를 지어 서로 주고받았다고 한다.
◆-屈原의 漁父詞 (끝부분)-
漁父莞爾而笑 (어부완이이소) -어부는 씩 웃고는
鼓枻而去 (고설이거) -노를 두드려 떠나면서.
乃歌曰 (내가왈) -노래하기를,
滄浪之水淸兮 (창랑지수청혜) -창랑의 물 맑으면
可以濯吾纓 (가이탁오영) -내 갓끈을 씻을 것이고,
滄浪之水濁兮 (창랑지수탁혜) -창랑의 물 흐리면
可以濯吾足 (가이탁오족) -내 발을 씻으리라.
遂去不復與言 (수거불복여언) -마침내 말이 끝나자 떠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遂去不復與言는 遂 去不復 與言으로 끊어서 번역해야 함.
漢 武帝
上行幸河東, 祠后土. 顧視帝京欣然.
泛舟汾, 中流與群臣飮燕.
上歡甚. 乃自作秋風辭曰,
천자께서 하동에 행차하시어, 地神에 제사지내고, 장안을 돌아보며 즐거워하셨다.
汾河에 배를 띄우고, 강 한가운데에서 여러 신하들과 더불어 주연을 벌였는데,
천자께서는 매우 기뻐하시며, 스스로 秋風詞를 지으셨다.
◆秋風辭 漢 武帝
-추풍사-
秋風起兮白雲飛, (추풍기혜백운비) -가을바람 일고 흰 구름 떠도니,
草木黃落兮鷹南歸. (초목황락혜응남귀) -초목은 시들어 떨어지고 송골매는 남쪽으로 돌아가네.
蘭有秀兮菊有芳, (난유수혜국유방) -난초 빼어나고 국화는 향기로우니,
懷佳人兮不能忘. (회가인혜불능망) -가인을 그리워하는 내 마음 떨칠 수 없네.
泛樓船兮濟汾河, (범루선혜제분하) -다락배 띄워 분하를 건너며,
橫中流兮揚素波. (횡중류혜양소파) -강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흰 물결을 날리고.
簫鼓鳴兮發棹歌, (소고명혜발탁가) -퉁소와 북소리 울리면서 뱃노래를 부르니,
歡樂極兮哀情多. (환락극혜애정다) -기쁘고 즐거움 다하였으나 애달픈 마음 또한 많기만 하네.
少壯幾時兮, (소장기시혜) -젊고 장한 내 모습 언제까진가?
奈老何. (내로하) -어찌 할꼬 늙어가는 내 모습 어찌하는가!
●擧案齊眉(거안제미)의 故事
남편을 깍듯이 공경함으로써 내외가 서로 신뢰를 쌓고 가정을 화목하게 함을 이르는 교훈의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양홍전(梁鴻傳)〉에 보인다.
후한 때 양홍(梁鴻)이란 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비록 집은 가난하지만 절개만은 꿋꿋해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는 뜻하는 바 있어 장가를 늦추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같은 마을에 사는 얼굴이 못생긴 맹광(孟光)이란 처녀가 나이 서른이 넘는 처지에서도 "양홍 같은 훌륭한 분이 아니면 절대로 시집을 가지 않겠다"며 버티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러자 양홍은 그 처녀의 뜻이 기특해 그 처녀에게 청혼을 하였고 곧 결혼을 하였다. 그런데 양홍이 결혼 후 며칠이 지나도 색시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자 색시가 궁금하여 그 까닭을 물었다. 이에 양홍이 대답하기를, "내가 원했던 부인은 비단옷을 걸치고 짙은 화장을 하는 여자가 아니라 누더기 옷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깊은 산속에서라도 살 수 있는 여자였소"라고 하자 색시는 "이제 당신의 마음을 알았으니 당신의 뜻에 따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후부터 아내가 화장도 않고 산골 농부 차림으로 생활하다가 남편의 뜻에 따라 산 속으로 들어가 농사를 짓고 베를 짜면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양홍이 농사일의 틈틈이 친구들에게 시를 지어 보냈는데, 그 중에서 몇몇 시가 황실을 비방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것이 발각되어 나라에서 그에게 체포령이 떨어졌다. 이에 환멸을 느낀 양홍은 吳나라로 건너가 고백통(皐伯通)이라는 명문가의 방앗간지기로 있으면서 생활을 꾸려나갔다.
〈양홍전〉의 한 구절에, '매귀처위구식 불감어홍전앙시 거안제미(每歸妻爲具食 不敢於鴻前仰視 擧案齊眉;양홍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 아내는 늘 밥상을 차려 양홍 앞에서 감히 눈을 치뜨지 않고 밥상을 눈썹 위까지 들어 올려 바쳤다.)'라는 말이 보인다. 또 고백통은 이 부부의 사람됨을 예사롭지 않게 여겨 여러 면에서 도와주어 양홍이 수십 편의 훌륭한 책을 저술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남편의 인품을 존경하며, 그의 의지를 따르고 극진한 내조로 집안을 화목하게 꾸려 남편으로 하여금 마음놓고 학문을 파고들어 명저(名著)를 저술할 수 있게 하였으니, 이 내외가 반듯한 인생을 완성한 것이다.
[출처] 거안제미 [擧案齊眉] | 네이버 백과사전
<解說>
이 詩는 詩題에서 알 수 있듯이 盧侍御 虛舟가 李白에게 보낸 贈詩에 대한 和答詩다. 아마도 두 사람이 廬山을 함께 유람하고 詩文을 주고받으면서 親交를 더욱 敦篤하게 쌓아간 것이 아닌가 한다.
詩의 구성은 盧侍御 虛舟가 贈詩에서 통당이 會稽의 浣沙溪 보다 더 아름답다고 자랑을 한 것에 대하여, 통당의 자연 경관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屈原의 漁父詞에 나오는 漁翁에 대한 故事를 들어 통당의 면모를 깎아내린 ①~⑫의 前班部와, ⑬~⑱의 中間部에서는 회계의 浣沙溪에 대하여 西施의 浣紗와 武陵桃源의 故事를 내세워 浣沙溪가 通塘 보다 優位에 있음을 誇示하여 盧詩御의 贈詩에 대하여 이의를 提起하였고, ⑲~⑧의 後班部는 통당을 유람하면서 느낀 자신의 소감을 漢武帝의 秋風詞와 梁鴻의 故事 擧案齊眉를 들어 盧侍御의 자랑이 사실임을 인정하는 反轉의 妙手로 相對方을 한껏 鼓舞시키고 和答詩로서 모양새를 갖추었다고 할 것이다.
자세히 풀이를 하자면,
▲①~②구는 起句部로 和答詩를 표방하였고,
▲③~⑫구는 承句部가 되며 盧侍御가 하도 자랑을 하기에 직접 가보고 경관을 본 사실대로
묘사하면서, ⑨~⑩에서 굴원의 어부사 漁翁과 같은 故事가 없어 역사적 勝地가 못되고
한낱 있는 보통의 경치일 뿐이라고 깎아내리고 있으며, ⑪~⑫에서 자신이 직접 다녀왔다는
것임을 盧侍御에게 알리고 있다.
▲⑬~⑱구는 中間部로 연극에서 ‘幕間’과 같은 것으로서, 浣沙溪는 西施의 浣紗에서 侵魚落雁이란
民譚과 武陵桃源의 전설을 거론하면서 會溪의 浣沙溪가 통당 보다 더 좋다는 자랑으로
盧侍御의 통당의 자랑 을 反轉시키고 있다.
▲⑲~⑥구는 轉句部로서 통당을 盧侍御와 같이 유람하면서 느낀 감동을 漢武帝의 秋風詞에서
‘揚素波’를 次韻하여 마치 자신이 漢武帝 라도 된 듯한 기분을 간접화법으로 묘사하여,
盧侍御의 자랑을 再反轉하여 인정하였다.
▲⑦~⑧구는 結句部로서 자신을 梁鴻으로 盧侍御를 추녀 孟光으로 比喩하면서 두 사람이 함께
즐겁게 유 람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盧侍御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다.
和答詩 한 首를 쓰면서 자신의 생각을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고 다양한 故事, 民譚, 傳說 등을 들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유감없이 확실하게 전달하는 이백의 탁월한 作詩能에 탄복이 절로 날뿐이다.
友人에게 友情을 보내 친교를 쌓아가는 한편의 잘 꾸며진 書簡文 한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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