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옹선사] 토굴가 해설
청산림(靑山林) 깊은골에 일간토굴(一間土窟) 지어놓고
깊은 산골에 한 칸의 토굴을 지어 놓고
일간토굴(一間土窟),
스님들은 자신의 공부가 일정 수준에 이르면
조용한 산 속에 토굴 한 칸 지어놓고 마지막 정진을 하는 곳.
송문(松問)을 반개(半開)하고 석경(石經)을 배회(徘徊)하니
송문, 눈을 반쯤 감고, 석경, 돌에 새겨둔 석존께서의 가르키시는 곳을 떠 올리다!
녹양(綠楊)춘삼월하(春三月下)에 춘풍(春風)이 건듯 불어
시절은 버들가지 푸른 춘삼월 봄날에 훈훈한 봄바람이 건듯 불어오고
정전(庭前)의 백종화(百種花)는 처처(處處)에 피었는데
뜰 앞에는 여러 가지 이름 모를 꽃들이 여기저기 만발하였는데
풍경(風景)도 좋거니와 물색(物色)이 더욱 좋다
풍경은 말할 것도 없고 봄날의 싱그러운 자연의 빛깔들이 더욱 좋다
그 중에 무슨 일이 세상에서 최귀(最貴)한고
무엇이 세상에서 제일 귀하고 중요한 것인가?
나 자신이 무엇인지? 본래 나의 참 모습은 어떤 것일까?
이 도리를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일편무위(一片無爲) 진묘향(眞妙香)을 옥로중(玉爐中)에 꽂아두고
한조각의 묘한 법(法)향을 옥 향로에 꽂아 두고
적적(寂寂)한 명창하(明窓下)에 묵묵히 홀로 앉아
아주 고요한 밝은 창가에 묵묵히 홀로 앉아서
십년을 기한정(期限定)코 일대사(一大事)를 궁구(窮究)하니
한 십년은 죽었다 생각하고 이 도리를 기필코 깨치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정진하니
일대사(一大事),
아무리 둔한 사람도 10년만 죽자고 붙잡고 메달이면 해결된다고 한다.
증전(曾前)에 모르던 일 금일(今日)에야 알았도다
일찍이 모르던 세상 이치를 어느 날 갑자기 깨우쳐
일단고명(一段孤明) 심지월(心地月)은 만고(萬古)에 밝았는데
훤히 깨달아보니 오래 전부터 밝게 떠 있었지만 모르고 지냈을 뿐 이였네.
무명장야(無明長夜) 업팔랑(業波浪)에 길 못 찾아 다녔도다!
무지에 쌓여, 참 행복 이 무엇인지 모른 체 세속을 헤매고 다닌 것 이었구나!
영축산(靈蹴山) 제불회상(諸佛會上) 처처(處處)에 모였거늘
부처님 설법하실 때와 같이 풀 한 포기 돌 맹이 하나하나가 모두가 다 무상 설법을 하고 있는데
깨닫고 보니 세상사, 풀 한 포기, 돌 하나 물소리 하나가 그대로 부처님 법문이 아닌 것이 없더라!
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도 깨친 자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사 그대로가 법이라는 것으로 이해해도 별로 틀린 말은 아닐 것이지만
더 큰 뜻은 말로 표현이 불가능하다
소림굴(少林窟) 조사가풍(祖師家風) 어찌 멀리 찾을 소냐!
마음과 마음으로 전하는 불법을 어찌하여 멀리서 찾으려 하는가?
자신이 본래부터 갖고 있는 불성을 깊이 참구하여 밝혀야 할 것인데.
청산(靑山)은 묵묵(默默)하고 녹수(綠水)는 잔잔한데
청산은 아무 말이 없을 뿐이고, 맑은 물은 잔잔히 흐르는데
청풍(淸風)이 슬슬(瑟瑟)하니 이 어떠한 소식(消息)인가
시원한 맑은 바람 슬슬 불어오니 이것이 어떠한 깨침의 도리인가?
깨달음의 경지에서 보면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 부처님 법아님이 없고,
희열이 아님이 없는 것인데 무지한 중생들은 좋다 슬프다,
사랑 한다 미워한다, 귀하니 천하니 분별 심을 내는 것이겠지!
일리제평(一理齊平) 나툰 중에 활계(活計)조차 풍족하다
하나의 밝은 이치가 확연히 들어 나니 살림살이(어디에도 집착하지 않아)가 풍족할 수밖에
천봉만학(千峰萬壑) 푸른 송엽(松葉) 일발중(一鉢中)에 담아두고
천 봉우리와 만 골짜기에서 나무 그릇에 솔잎 담아 양식으로 일용하고
백공천창(百孔千瘡) 기운 누비 두 어깨에 걸쳐으니 먹는 것에 관심이 없는데
입는 것에 관심 없어, 백 구멍이 나면 어떻고 천 군데가 헤지면 그 어떠랴,
의식(衣食)이 무심(無心)커든 세욕(世慾)이 있을손가
의식주에 관심이 없는데 세상사에는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욕정(欲情)이 담박(淡泊)하니 인아사상(人我四相) 쓸데없고
부질없는 세속적인 욕심이 없어 깨끗해지니 잘못된 집착들이 붙을 곳이 없고
四相,
我相: 내가 아닌 것을 나라고 생각하는 것
人相: 나와 구별하여 그 대상을 남이라고 생각하는 것
衆生相: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느끼는 그 육체가 나라고 오해하는 관념,
壽者相: 위와 같은 느낌의 5온이 잠시 존재하는 것을, 수명에 집착하는 관념,
사상산(四相山)이 없는 곳에 법성산(法性山)이 높고 높아
위와 같은 4상이 없으면, 참 모습(眞我)이 드러나 높고 높아
일물(一物)도 없는 중에 법계일상(法界一相) 나투 었다!
이쯤 되면 만물이 부처 아님이 없고 법문 아님이 없어, 참 나의 법성만이 뚜렷이 밝을 것이다.
교교(皎皎)한 야월하(夜月下)에 원각산정(圓覺山頂) 선뜻 올라
교교한 달빛 같은 완전히 깨달은 열반의 언덕에 오롯이 올라서서
원각산정,
깨달음의 경지- 완전히 깨달아 아무런 걸림이 없는 부처의 경지
무공저(無孔笛)를 빗겨 불고 몰현금(沒絃琴)을 높이 타니
형상에 집착함이 없어 구멍 없는 피리를 불지 못할 이유가 없고,
줄 없는 가야금을 타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무위자성(無爲自性) 진실락(眞實樂)이 이중에 갖췄더라
인위적으로 조작되고 생멸을 하지 않는 진짜 자신의 참모습,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불성이 들어 나면, 그보다 더 한 즐거움이 어디 있겠는가?
석호(石虎)는 무영(舞詠)하고 송풍(松風)은 화답(和答)할 제
얼마나 즐거운지 돌사자가 춤을 추고 솔바람이 화답하겠는가?
깨달음의 희열은 깨달은 이만이 아는 법
무착령(無着嶺) 올라서서 불지촌(佛地村)을 굽어보니
부처의 경지에서 보면 세상사 그대로가 부처 아닌 것이 없고,
그 자체가 그대로 부처일 것인데 .................
불지 촌을 굽어보니
각수(覺樹)에 담화(曇花)는 난만개(爛慢開)더라
각覺을 세운 나무에 꽃들은 흐릿하고, 문드러지고 오만하고 거칠게 펼쳐져 있구나!
나무 영산회상 불보살 (南無 靈山會上 佛菩薩)
영축 산에 부처님 설법하실 때 모인 모든 불법승, 그리고 사부대중께 머리 숙여 귀의합니다.
첫댓글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벽운합장
벌써, 재작년 일이네요!
벽운 거사님과 문 팅 했을 적 생각이 떠오릅니다!
열심히 함께 하시는 벽운님 만나 뵙게 되어 기쁩니다!
오래 전부터 토굴가에 해석을 붙여보고 싶었는데
몇 군데 막히는 곳이 있어 못 하고 있다가
어느분의 해석을 수정도 하고 하여 올려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