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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3월 18일 수요일
[(자) 사순 제4주간 수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로하시고, 당신의 가련한 이들을 가엾이 여기셨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땅을 다시 일으키려고 내가 너를 백성을 위한 계약으로 삼았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9,8-15
8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은혜의 때에 내가 너에게 응답하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내어 백성을 위한 계약으로 삼았으니
땅을 다시 일으키고 황폐해진 재산을 다시 나누어 주기 위함이며
9 갇힌 이들에게는 ‘나와라.’ 하고
어둠 속에 있는 이들에게는 ‘모습을 드러내어라.’ 하고 말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가는 길마다 풀을 뜯고 민둥산마다 그들을 위한 초원이 있으리라.
10 그들은 배고프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으며
열풍도 태양도 그들을 해치지 못하리니
그들을 가엾이 여기시는 분께서 그들을 이끄시며
샘터로 그들을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11 나는 나의 모든 산들을 길로 만들고 큰길들은 돋우어 주리라.
12 보라, 이들이 먼 곳에서 온다.
보라, 이들이 북녘과 서녘에서 오며 또 시님족의 땅에서 온다.
13 하늘아, 환성을 올려라. 땅아, 기뻐 뛰어라. 산들아, 기뻐 소리쳐라.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로하시고 당신의 가련한 이들을 가엾이 여기셨다.
14 그런데 시온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고 말하였지.
15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7-30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17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18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20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
그리고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들을 아들에게 보여 주시어,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
21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22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하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넘기셨다.
23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듯이 아들도 공경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자는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않는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26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아들도 그 안에 생명을 가지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27 아버지께서는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셨다.
28 이 말에 놀라지 마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다.
29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
30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어기셨다는 이유로, 또 하느님을 ‘내 아버지’라 부르며 당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다는 이유로 그분을 죽이려 합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인간의 입에 올리는 것조차 죄로 여겨지던 시대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시며 친밀한 관계를 드러내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하신 일은 당시 사람들에게 신성 모독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복음에 자주 나오는 안식일 논쟁을 떠올리면, 왜 예수님께서 굳이 충돌을 받아들이시면서까지 안식일에 치유하셨는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마치 ‘일부러’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주신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이 전하는 안식일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창조 사업과 구원 사업입니다. 병자를 일으키시는 치유의 행위는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창조이며, 고통에서 해방하는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쳐 주신 것은 안식일이야말로 하느님의 일, 곧 창조와 구원이 가장 분명히 드러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그 치유 행위는 안식일의 주인이신 하느님 아버지와 이루는 깊은 일치를 드러내는 표징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이들에게 그분은 율법을 어기는 이,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을 모욕하는 이로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안식일이 지닌 창조와 구원의 의미는 이제 ‘주일’ 안에서 더욱 충만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거룩한 주일을 지낼 때마다 우리도 하느님의 창조 사업과 구원 사업에 초대받음을 기억합시다.(김재형 베드로 신부)
오늘 우리도 신성모독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큽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혹시라도 지금까지 이 세상 살아오시면서 누군가로부터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실제로 살의(殺意)를 지니고 달려드는 누군가를 겨우 피해 달아나본 기억이 있습니까?
누군가가 내게 살의를 지니고 있다는 것,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고 있다는 것 참으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목숨을 빼앗아버리려고 작심하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공포와 깊은 상처, 큰 트라우마를 남기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주변에 둘러서 있는 유다인들로부터 살기를 느끼십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요한 5,17-18)
유다인들은 대체 왜 예수님에게 돌을 던져 죽이려고 했을까요? 이유는 ‘신성모독죄’였습니다. 그들은 메시아로 오신 구세주 하느님을 자신들의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도 그분을 끝끝내 거부했습니다.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
유다인들은 끝끝내 예수님에 대한 신원 파악에 실패했습니다. 그저 깡촌 나자렛에서 성장한 별 볼 일 없는 예언자겠지, 생각했습니다. 유다인들이 그간 보여주신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 말씀 한 마다 한 마디에 조금만 집중했더라면, 그분 안에 깃들어있는 신성(神性)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니고 있었던 고리타분한 율법주의와 그릇된 신앙관으로 인해 끝까지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신성모독죄를 저지르신 것이 아니라 유다인들이 신성모독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다 보면 신성모독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많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때 그렇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의 역할, 그분의 존재 이유, 그분의 신원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려는 노력을 쉬지 않고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언제나 우리 삶 한가운데 현존하시며 살아 숨 쉬는 분이 아니라, 그저 2천 년 전의 역사 속에 잠시 등장했다 사라진 예언자 정도로 여길 때, 우리 역시 신성모독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헛된 망상이나 허무맹랑한 현세적 기대를 지속적으로 충족시켜주는 분 정도로만 생각할 때, 우리 역시 신성모독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인류와 세상의 구원을 위해 보내주신 외아들이요, 메시아,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늘 고백해야겠습니다. 그분은 하느님 아버지와 하나이며, 언제나 그분과 일치하고 계시며, 하느님 그분 자체라는 진리도 늘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순종하지 않는 자는 진리를 말할 수 없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오늘은 사순 제4주간 수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신앙의 가장 날카롭고도 본질적인 원리를 선포하십니다.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한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요한 5,30)
예수님은 당신의 판단이 올바른 이유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순종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뒤집어 보면 참으로 무섭습니다. 순종하지 않는 자는 결코 진리를 말할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순종하지 않는 입술에는 반드시 자기 이익과 자아의 욕망이 섞이게 되고, 그 말은 결국 생명이 아니라 죽음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본래 주인이 있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내가 하느님이라는 권위에 순종하지 않으면, 반드시 내 안의 자아, 곧 뱀에게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뱀은 언제나 '네 판단이 옳다'고 속삭이지만, 그 끝은 파멸입니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이도 파멸로 이끕니다.
예를 들어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형제가 하는 말은 아무리 그럴듯해도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부모의 생명이 아니라 자기 자아의 이익을 위해 당신을 이용하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포장된 학문적 탐욕 - 지니 위그먼(Genie Wiggman)의 비극」
1970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13년 동안 방안에 갇혀 지냈던 이른바 야생아 지니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아이를 구하겠다고 나선 학자들과 치료사들은 처음엔 세상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지니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것처럼 보였고, 자신들이 지니에게 언어와 인간성을 되찾아줄 '구원자'라고 자부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에는 하느님의 질서에 대한 순종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전문가라는 자신의 '자아'에 순종했습니다. 학자들은 지니를 한 인격체로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논문을 증명할 '연구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물론 그 연구 대상이 되게 하는 것이 하나의 사랑이라고 자신들을 설득시켰습니다.
결국 지원금이 끊기고 연구가 한계에 부딪히자, 그들은 지니를 차가운 위탁 시설로 내던졌습니다. 지니는 다시 벙어리가 되었고, 구원받기 전보다 더 비참한 상태로 전락했습니다. (출처: 수전 커티스, 『지니: 야생아의 언어 습득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 1977)
자아에게 순종하는 이들이 말하는 '치료와 사랑'은 진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한 영혼을 자아라는 뱀의 목구멍으로 밀어 넣는 잔인한 유괴였습니다. 순종하지 않는 자의 말끝에는 창조자가 아니라 그 사람의 ‘자아’가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저도 사제가 되라는 뜻이 마음에 들어왔지만, 몇 년 동안 부정하였습니다. 그렇게 만약 제가 결혼을 해서 제가 사제가 되는 대신 아이들을 사제로 만들고 수녀로 만들려고 했다면 어땠을까요? 저의 말은 아이들에게 참으로 진리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제가 사제가 되지 못한 것을 저 스스로 위로하는 데 이용당하였을 것입니다.
진리와 옳은 말은 다릅니다. 옳다고 진리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당신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은 창조자가 줍니다. 그러니 창조자에게 순명하지 않는 자는 생명으로 이끄는 진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창조의 질서에 순종할 줄 모르는 사람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죽음으로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거창한 선교 계획을 접고 '순종의 고해소'에 자신을 가두었던 성 레오폴도 만디치(St. Leopold Mandić)가 그 좋은 모델입니다.
크로아티아 출신의 레오폴도 신부님은 평생의 숙원이 있었습니다. 바로 갈라진 동방 교회(정교회)의 일치를 위해 동방으로 가서 선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하느님이 주신 일생일대의 소명이자 진리라고 믿었습니다. 매일 밤 지도를 보며 동방으로 떠날 날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장상들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레오폴도 신부, 당신은 몸이 약하고 키도 작으니 이탈리아 파도바의 고해소에서 신자들의 고해나 들어주시오." 신부님은 처음엔 큰 내적 갈등을 겪었습니다. '내 지식과 열정은 동방을 향해 있는데, 왜 나를 이 좁은 상자 속에 가두는가?' 그러나 그는 자신의 '옳은 판단'을 접고 순명했습니다.
그는 2평 남짓한 낡은 고해소에서 하루 12시간 이상을 40년 동안 앉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마다 성인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나의 동방은 바로 여기입니다. 장상의 명령에 순종하는 이 자리가 바로 하느님의 진리가 실현되는 곳입니다." 그렇게 자아를 죽이고 순종의 자리를 지켰을 때, 성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하느님의 진리가 되었습니다. 「성 레오폴도 만디치의 예언적 진리: 파도바 대공습의 기적」
성인이 선종하기 전인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 파도바는 연합군의 극심한 폭격 대상이었습니다. 성인은 동료 수도자들에게 놀라운 예언을 남깁니다. "우리 수도원도 폭격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고해소만큼은 하느님께서 지켜주실 것입니다. 이곳은 수많은 영혼이 하느님의 자비를 만난 성소이기 때문입니다."
성인이 선종한 뒤인 1944년 5월 14일, 실제로 파도바에 대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카푸친 수도원은 직격탄을 맞아 처참하게 파괴되었습니다. 성당의 지붕이 날아가고 벽들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런데 먼지가 가라앉은 뒤 사람들이 목격한 광경은 전율 그 자체였습니다. 거대한 수도원 건물 전체가 폐허가 되었는데, 오직 성 레오폴도 신부님이 40년 동안 순종하며 지켰던 그 좁은 고해소 '나무 상자'와 그 곁에 있던 성모상만이 유리창 하나 깨지지 않은 채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판단을 버리고 장상의 명령에 무작정 순종했던 성인의 삶이, 그 공간을 진리의 요새로 만들었습니다. 순종하는 자가 내뱉은 말이 '진리'였음이 하느님의 손가락에 의해 증명된 사건입니다. (출처: 파도바 성 레오폴도 만디치 성지 기록)
혼자서는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생명에 순종하는 자여야 진리를 말하고, 올바른 판단과 심판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순종하기에 진리이십니다.
성 요한 23세 교황은 자신의 사목 표어를 "순명과 평화(Oboedientia et Pax)"로 정하였습니다. 그는 외교관 시절이나 주교 시절, 자신의 뜻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발령을 자주 받았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왜 나를 이런 험지로 보내는가?"라고 따질 법도 했지만, 그는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교회가 시키는 대로만 한다. 그것이 내가 가장 안전하게 진리의 길을 걷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성 요한 23세, 『영혼의 일기』 참조)
그가 교황이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지식이나 고집으로 교회를 다스리지 않았습니다. 오직 성령의 목소리에 순종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었습니다. 많은 이가 반대했지만 그는 교회의 전통과 성령의 인도에 철저히 순명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공의회를 해야 할 이유조차 없었지만, 결국 끝나고 나서는 역대 가장 필요하고 완전했던 공의회가 되어 교회 쇄신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교부 성 이레네오는 『이단 반박』에서 이렇게 단언했습니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인간의 생명이며, 그분께 불순종하는 것이 인간의 죽음이다." 또한 성 베르나르두스는 "순명은 자신의 의지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의지 안에 나를 완성하는 것이다"라고 가르쳤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며 생존 본능을 죽여가는 아이가 진짜 어른으로 성장하듯, 우리도 교회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우리 안의 뱀을 죽입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나 자신과 나를 따르는 누군가에게 올바른 판단과 충고를 해 줄 수 있는 진리의 말씀의 소유자가 됩니다. 아멘.
<하느님 따라 하느님의 사람이>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 그리고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들을 아들에게 보여 주시어,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요한 5,19-20)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람을
믿으시어
믿음을 건네시니
하느님의 사람이
하느님을
믿어
믿음을 드림으로
오롯이
온 누리가
믿음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람을
희망하시어
희망을 건네시니
하느님의 사람이
하느님을
희망하여
희망을 드림으로
오롯이
온 누리가
희망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람을
사랑하시어
사랑을 건네시니
하느님의 사람이
하느님을
사랑하여
사랑을 드림으로
오롯이
온 누리가
사랑입니다
오늘의 성인
성 프리그디아노(Frigdianus)
활동년도 : +588년?
신분 : 주교
지역 : 루카(Lucca)
같은 이름 : 프레디아노, 프리그디아누스
이탈리아에서 프레디아노(Frediano)라 불리는 성 프리그디아누스(또는 프리그디아노)는 북아일랜드 얼스터(Ulster) 지방 왕의 아들로서 아일랜드에서 교육을 받고 사제가 되었다. 그는 이탈리아를 순례하던 중에 루카를 지나다가 몬테 피사노(Monte Pisano)의 은둔소에 마음이 이끌려 스스로 정착하였다. 그가 주교로 간택된 이유는 그의 높은 성덕 때문이었다. 교황 요한 2세(Joannes II)까지 동원되어 은수생활을 중지하고 교회를 위해 더 많은 활동을 하도록 요구하였다고 한다. 7년 동안 평화스럽게 주교직을 수행하던 중에 랑고바르드족(Langobard)의 침략을 받고 주교좌가 불탔다. 그 후 그는 이를 재건하였다.
그는 모든 이들에게 애정을 표시하였고, 남루한 옷을 입고 다녔을 뿐만 아니라 고통 받는 이와 병자들을 직접 치료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한 번도 은수생활을 잊은 적이 없었고 기회가 오면 즉시 돌아갈 자세로 살았다. 그는 성직자로 살았으나 생활은 은수자의 엄격한 생활이었다.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의 “대화집” 속에는 그에 의한 기적들이 기록되어 있다. 임종이 다가 온 줄 알아차린 그는 주변에 있던 자기 수도자들을 불러서 함께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바치면서 마치 잠을 자는 듯 고요하게 운명하였다
성 에두아르도 (Edward)
활동년도 : 962-978년
신분 : 왕, 순교자
지역 : 영국(UK)
같은 이름 : 애드워드, 에두아르두스, 에드아르도, 에드아르두스, 에드와드, 에드워드, 에드워즈
영국의 평화 왕으로 불리는 에드가(Edgar)의 아들인 성 에두아르두스(Eduardus, 또는 에두아르도)는 962년에 태어났다. 에드가 왕이 죽었을 때 성 에두아르두스와 그의 이복동생 에텔레드(Aethelred) 사이에 왕위 계승권을 두고 논쟁이 있었으나 결국 그가 13세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얼마 후 성 에두아르두스는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는 양어머니 엘프리다(Elfrida)의 명령으로 도르셋셔(Dorcetshire)의 코프(Corfe)에서 무참하게 살해되어 웨어햄(Wareham)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성 에두아르두스는 그가 평소에 베푼 선정과 뛰어난 신앙심으로 인하여 성인으로 또 순교자로서 늘 공경을 받아왔다. 그는 단순한 생활을 했고 또 순교자에게 어울리는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성 안셀모 (Anselm)
활동년도 : 1036-1086년
신분 : 주교
지역 : 루카(Lucca)
같은 이름 : 안셀름, 안셀무스, 안쎌모, 안쎌무스
이탈리아 만투아(Mantua) 태생인 성 안셀무스(Anselmus, 또는 안셀모)는 삼촌인 알렉산데르 2세(Alexander II) 교황에 의하여 1073년 루카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안셀무스는 즉시 황제의 서임권 논쟁에 적극 가담하였고, 헨리 4세 황제가 주는 주교직의 상징 접수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그는 클루니악 수도원으로 은퇴해야 했고, 그곳에서 베네딕토회 수도자가 되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ius VII)로부터 소환 받은 그는 엄격한 생활이 결여된 사람들을 조정하는 일을 보았다.
1079년에 그는 카노사(Canossa)로 은퇴하여 마틸다 백작 부인의 영적 지도자로 지내면서 수도자 개혁운동에 헌신하였으며, 평신도 서임권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려는 교황 그레고리우스의 투쟁을 적극 지원하여 맹활약하였다. 그레고리우스의 사후 빅토르 3세(Victor III)가 그를 교황청 시찰자로 임명하여 롬바르디아(Lombardia)의 여러 지역을 관리하게 하였다. 그는 만투아에서 운명하였다. 그의 성덕과 성서 지식 그리고 해박한 학식은 높이 평가받는다.
성 살바토르 (Salvator)
활동년도 : 1520-1567년
신분 : 수사, 증거자
지역 : 오르타(Horta)
같은 이름 : 살바도르, 살바또르, 쌀바또르
오르타의 성 살바토르는 에스파냐 헤로나(Gerona) 교구의 산타 콜룸바(Santa Columba)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은 매우 가난했는데, 설상가상으로 그는 아기 때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그는 이때부터 거리를 헤매다가 바르셀로나(Barcelona)에서 신기료장수가 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20세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수도자가 되려는 열망으로 가득하여 작은 형제회 회원이 되고자 하였다.
바르셀로나에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한 그는 처음에는 수도원 부엌일을 담당하였는데, 그의 덕이 급속도로 성장하여 토르토사(Tortosa)의 예수 마리아 은둔소로 갔다. 여기서 그는 그 누구보다도 엄격한 생활을 하였는데, 맹인과 벙어리 그리고 불구자들이 그에게 오면 항상 치유를 받는 기적이 일어나곤 하였다. 그는 항상 맨발로 다녔고, 매일 편태를 했으며, 길고 엄격한 단식을 끊임없이 계속했다. 그는 특히 성모 마리아와 성 바오로(Paulus)에 대한 신심이 투철했으며, 수 차례에 걸쳐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하였다. 그는 47세의 일기로 선종하였으나, 생전에 이미 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었다. 그는 1606년 2월 5일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해 시복되었고, 1938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는 살바도르(Salvador)로도 불린다
성 치릴로(Cyril)
신분 : 주교, 교부, 교회학자
활동지역 : 예루살렘(Jerusalem)
활동연도 : 315?-387년
같은이름 : 시릴, 시릴로, 시릴루스, 치릴루스, 키릴로, 키릴로스, 키릴루스
315년경 예루살렘에서 로마 제국 황제 가문의 그리스도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듯한 성 키릴루스(Cyrillus, 또는 치릴로)는 예루살렘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았으며, 342년 또는 그 후에 성 막시무스 2세(Maximus, 5월 5일)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았다. 성 키릴루스는 수년 동안 예비신자 교육에 전념하다가 350년 또는 351년에 예루살렘의 주교인 성 막시무스 2세가 사망하자 그를 승계하여 주교가 되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대한 교계적인 관할권을 주장하던 카이사레아(Caesarea)의 아리우스파(Arianism) 주교이던 아카키우스(Accacius)와 아리우스주의자들에 의하여 그는 자신의 주교좌에서 해임되고 유배를 당하였다. 또 다른 이유는 성 키릴루스가 아리우스파에 반대하는 인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재산을 매각하여 기근의 희생자들에게 주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교회 재산을 불법으로 매각했다는 누명을 쓴 성 키릴루스는 타르수스(Tarsus)로 갔으나 359년 셀레우키아(Seleukeia) 주교회의에 의해 복직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재차 아카키우스의 음모에 의하여 황제 콘스탄티우스로부터 축출되었다가,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에 의하여 다시 복직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성 키릴루스는 367년에 세 번째로 유배되었으나, 발렌스 황제가 율리아누스 황제의 통치 기간에 유배된 모든 종교인들을 사면함으로써 석방되어 다시 주교좌로 돌아왔다.
또 다음 해에는 안티오키아(Antiochia) 공의회가 니사(Nyssa)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3월 9일)를 팔레스티나(Palestina)로 파견하여 그가 역설하던 ‘호모우시오스’(Homoousios)로 인한 잡음을 조사하게 하였는데, 이 용어는 니케아(Nicaea) 신경의 기본 용어이다. 성 그레고리우스는 예루살렘 주교좌는 파벌주의와 아리우스주의로 뒤엉켜 있고 또 윤리적으로 타락해 있다는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성 키릴루스의 신앙과 그 주교좌는 올바르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 후 성 키릴루스와 성 그레고리우스는 381년의 제1차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공의회에 참석하였고, 여기서 성 키릴루스는 니케아 공의회의 정통 교리를 따르는 주교로 인정받았다.
사실 성 키릴루스는 성서학자이자 뛰어난 설교가였다. 그의 작품 중에서 24편의 강론으로 구성된 “예비자 교리”(Catecheses)가 가장 유명한데, 이는 콘스탄틴 대제가 336년 예루살렘에 완공한 성묘 성당(Church of the Holy Sepulcher)에서 348년 사순과 부활시기에 한 강론으로 예비신자와 새 영세자들의 신앙과 생활을 위한 명쾌한 지침서이자 교리 해설서이다.
또한 전례적으로도 4세기의 팔레스티나 전례를 자세히 보여주는 소중한 문헌이다. 역사가인 소크라테스와 소조멘은 성 키릴루스는 철저한 아리우스주의 반대자였고, 그의 정통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기술하였다. 387년 3월 18일에 세상을 떠난 그는 교황 비오 10세(Pius X, 1903-1914년 재위)에 의해(또는 1882/3년에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