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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을 경배하며 나를 드릴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삼상4:1-11)
2025, 3/16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삼상4:1-11절 말씀으로“하나님을 경배하며 나를 드릴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정치인들의 욕심과 탐욕으로 상당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어느 당이 정권을 잡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느냐 공산사회주의로 가느냐 체제전환의 문제입니다.
힘 있는 자가 국민들 눈치 안 보고 법을 막 만들고 집행하거나, 선거로 정권을 바꿀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이미 그 나라는 독재가 시작된 것입니다.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인 중 하나인 플라톤이 말하길‘정치에 무관심한 가장 큰 벌은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받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교회가 정치에 관여하면 안 된다.’는 말을 하는데 불교와 천주교는 괜찮고 교회는 왜 안 되는 걸까요? 이 프레임은 일제 강점기에 교회가 정치에 관여해 지속적으로 일제에 항거하자 교회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일제가 만든 프레임입니다.
세계 어떤 나라도 이런 말을 하지 않고, 성경도 그런 말씀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정책과 정치인에게 저항할 수 있어야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세상을 바로 보는 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주님께 나를 맡길 때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3절)
둘째로, 하나님은 경배의 대상이지 이용 대상이 아닙니다.(4절)
셋째로, 하나님을 거스르면 대가를 지불해야합니다.(11절)
그러면 본문 말씀을 따라가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며 나를 맡길 때 어떻게 행복한 삶이 가능한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주님께 나를 맡길 때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3절)
본문 3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아멘.
사무엘사건이 있은 후 약 15여년이 흐른 후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공해와 전투가 벌어졌는데, 그 결과 4,000명이 죽임당하는 대패를 당합니다. 이렇게 전쟁에 패하면 왜 졌는지 그 실패를 바로잡아 다음 전투에 임해야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선민들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세상 사람과는 다르게 하나님 중심의 삶이 되어야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야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실패의 원인을 찾아야하는데 저들은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았다고 원망합니다. 이런 처신은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도움을 구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여호수아가 아이성과 전투에서 패배한 후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기도하며(수7:6) 하나님의 뜻을 물었고, 히스기야도 앗수르가 185천의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왔을 때 하나님 전에서 정말 간절하게 기도하여 이사야를 통해서‘네 기도를 들었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습니다.
여호사밧도 아람이 쳐들어오자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간절히 기도함으로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이때 야하시엘 선지자를 통해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이런 응답도 받게 됩니다.(대하20:15)
그럼에도 오늘 저들은 전투에 앞서 묻지도 않았고, 패배원인도 자신들 신앙에서 찾지 않고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았다고 되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이럴 수밖에 없는 게 3절에서 이스라엘장로들이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우리’라는 표현을 무려 5번이나 사용하는 것을 볼 때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표현이 왜 문제가 될까요?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이 지금 하나님은 없고,‘우리’라는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를 앞세우면 하나님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내 삶의 중심에‘내’가 있고, 하나님은 단지 내 뜻을 이루고, 복을 주는 도구정도로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이것이 바로 그들이 전쟁에서 실패의 원인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나를 내세우며, 하나님은 단지 자신들 뜻을 이루는 도구로 전락시켰으니 그들이 실패에 이른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경외의 대상이지 내 이익과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도구나 방편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경험이 많고, 아무리 유능해도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조족지혈, 세발의 피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하나님을 뒤로 돌려세우고서는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이스라엘이 그걸 잘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나를 하나님께 맡기는 삶이 되어야합니다. 이런 것이 당장은 어리석어 보이고, 잘못된 것 같고, 어딘가 세련돼 보이지 않아도 그것이 의의길이고, 승리의 길이며, 행복한 삶을 보장받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인생의 핸들을 주님께 맡겨보십시오. 불완전하고 나약한 내가 운전하는 것보다는 완전하시고 모든 것에 통달하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고 빠르고 정확하지 않겠습니까? 완전하신 하나님께 맡기면 나는 자유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식하는 사람은 잘 아겠지만 내가 직접 하는 경우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경우가 있는데, 주식에 대해 전문가 정도로 잘 안다면 모를까 모르면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고 수익도 많이 낼 수 있듯이, 내 인생도 당장 한치 앞을 모르는 내가 주도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이끌면 안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지혜롭고 똑똑한 사람은 당연히 내 인생을 주님께 맡길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도 내 삶을 온전히 주님께 내어드리고 주님이 내 삶을 주관하도록 해보십시오. 그러면 그때부터 여러분은 자유함과 성공적인 삶이 가능해집니다.
그런 여러분 되어 날마다 행복한 삶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경배의 대상이지 이용 대상이 아닙니다.(4절)
본문 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 아멘.
이스라엘백성들이 블레셋과 전투에서 패한 이유를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란 결론을 내렸는데 일단 진단은 잘했습니다. 그러면 왜 도와주시지 않았는지 그 이유가 자신들의 신앙 때문이란 걸 알았을거고, 그러면 회개하고 돌아서야하는데, 그럴 마음은 손금만큼도 없고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도와주도록 만들면 된다는 각오로 하나님을 전쟁터 맨 앞에 총알받이로 내세우는 결정을 합니다.
하나님을 인질로 전쟁터 맨 앞에 세웠는데 설마 가만히 있겠냐는 심보입니다.
정말 대단한 족속들입니다. 어떻게 하면 저런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요?
그래서 실로에 있던 언약궤를 전쟁터로 메고 왔는데, 언뜻 보면 하나님을 대단히 의지하는 사람들처럼 보이고, 신앙이 매우 좋은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만약 저들이 하나님을 의지했다면 모세처럼 여호수아처럼 전쟁에 앞서 이 전쟁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먼저 물었을 것입니다. 처음엔 어찌하다보니 놓쳤다 치고 전투에 패했으니 그 원인을 물어야했는데도 저들은 전혀 묻지를 않았습니다.
저들이 전쟁에서 패하자 저들이 내린 결론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이용하여 전쟁에서 승리하겠다고 언약궤를 가지고 출전하자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공경하고 경배할 대상이요, 내 삶의 주관자로 나의 주인이요 왕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내 이익을 위한 수단,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도구로 하나님을 이용했다는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사랑을 바탕으로 한 인격적 관계여야 합니다. 인격적 관계를 바탕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경배해야합니다.
그런데 저들은 하나님과 그런 인격적 관계가 아니라, 내 이익을 위해서라면 하나님도 이용할 수 있다는 이해관계로 전락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관계가 무너질 수밖에 없고, 그 결과 백성들이 2차 전투에 하나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를 메고 나갔음에도 1차보다 더 큰 참패를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런 악한 자들에게 이용당하실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과거 이스라엘백성들과 같이 하나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믿는 것처럼 하나님을 이용해 목적을 달성하고 심적 안정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하나님과 상관없이 종교적 행위를 통해서 자기 배를 채우는 자들이 있고, 하나님을 이용해 사업을 확장하고, 매출을 올리고, 인지도를 높이려는 자들도 있습니다. 물론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신앙인들끼리 더 사랑하고 돕고 세워가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런 게 신앙의 결과로 나타나야지, 이런 걸 목적으로 교회 다니고 예수 믿는 척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많아지면 교회는 변질과 타락의 길로 가게 됩니다. 행 8:20-21절에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될 것도 없느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고 경배함으로 온전한 신앙을 이뤄가야 합니다. 그런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거스르면 대가를 지불해야합니다.(11절)
본문 1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아멘.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블레셋과의 2차 전투에 나섰는데 무려 3만 명이 죽임당하고, 법궤를 멨던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전사했으며, 심지어 법궤까지 빼앗기는 그야말로 믿지 못할 대 참사가 벌어지고 맙니다. 이때 이스라엘백성들이 느꼈을 충격은 가히 상상조차 안 됩니다.
왜냐면 말씀드린 대로 법궤는 하나님 임재의 상징으로 법궤만 앞서면 전쟁에서도 이겼고, 광야에서 백성들이 머물 곳도 해결됐고, 넘실대던 요단강도 물이 멈췄고, 그 견고하던 여리고성도 법궤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법궤가 맨 앞에 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법궤를 맨 앞에 세웠는데도 대 참패를 당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들이 대 참패를 당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이 하나님께 묻지도 않았고, 하나님을 신앙의 대상 경배의 대상이 아니라, 이익의 대상 이용의 대상으로 보았기 때문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저들이 1차 전투에서 4,000명이 죽는 참패를 당했을 때 회개하고,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패배 앞에서도 여전히 교만한 저들에게 하나님은 다리가 후덜거리고 머리가 쭈뼛서는 엄청난 공포와 두려움을 안겨주신 것입니다.
이걸 통해서 우리는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당신을 무시하고 경홀히 여기는 저들에게 대가를 치루신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는데, 사실 이들의 만행이 얼마나 악랄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2:34절에서 그들을 한날에 죽이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전쟁터에서 죽일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제사장은 전투에 나가지 않아 전쟁터에서 죽을 가능성이 희박함에도 죽었는데,
여러분!!! 이것이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아무리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돈이 많아 떵떵거리며, 아주 건강해서 150살은 살 것 같아도 하나님 눈 밖에 나면 대가를 치룬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제사장은 병역의무가 없어서 성전에만 있는데, 이들을 전쟁터로 끌어내 한날에 죽여 당신의 말씀을 성취할 거라고 누가 예측이나 했겠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방법으로 당신의 말씀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미신적인 신앙을 갖고 있던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 홉니와 비느하스가 법궤를 메고 전쟁터 최전방에 세우도록 했는데, 그들의 직무가 법궤를 메는 것이라 법궤가 움직여야하니 어쩔 수 없이 법궤를 메고 따라 나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는 깊고 오묘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뒤에 숨어있다고 못 찾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139:7-8절에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이렇게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며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는 이 땅의 축복과 내세의 상급을 주시지만,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자는 결코 용서치 않는다는 걸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악인들이 잘 먹고 잘살고 잘나간다고 너무 속상해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불의한 자를 반드시 찾아내고 속아내시기 때문입니다.
악인들은 당장은 번성하는 것 같아 보여도 그 가는 길이 정해져 있습니다.
원래 더 높은 곳에서 떨어질수록 충격이 크고 더 아픈 법입니다. 하여 저들이 긁어모은 번영과 영광은 저들이 망할 때 더 큰 고통과 아픔을 가중시켜줄 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악인의 형통을 전혀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잠24:4절에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다 이유가 있어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공의롭고 공정하신 하나님만 믿고, 사무엘처럼 세상에 휘둘리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정한 때가 이르면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한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높이실 것입니다.(시37:1-2.10)
이런 신앙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줄줄 알고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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