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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아장성, 봉정암 사리탑에서
경대에 올라 금담을 굽어보니 瓊臺俯金潭
오른편에 부챗살같이 청봉이 늘어섰구나 右扇排靑峰
우뚝 솟아 온갖 묘함을 갖추었으니 融峙備衆妙
어찌 장하고 기이하다 말로만 그칠까 豈惟勢奇壯
명산을 찾아들어 이곳저곳 두루 밟아 名山蠟屐遍
신선이 사는 곳 생각하니 비로소 유쾌하네 始愜丹丘想
금강암에 떨어지려 하다가 欲落金剛巖
깜짝 놀라 지팡이 고쳐 잡네 驚吁更柱杖
――― 삼연 김창흡(三淵 金昌翕, 1653~1722, 조선 후기의 학자), 『右飛僊層潭(오른편에 층층
담의 물줄기는 춤추며 날고)』
▶ 산행일시 : 2014년 7월 5일(토), 맑음, 더운 날씨
▶ 산행시간 : 8시간 24분
▶ 산행거리 : 이정표 거리 20.0㎞
▶ 갈 때 : 동서울터미널에서 06시 05분발 ‘백담사 입구’ 경유 속초 가는 버스 탐
▶ 갈 때 : 한계령에서 속초~양양~오색~한계령~장수대~동서울 가는 버스 탐(16 : 56 ~
19 : 25)
▶ 시간별 구간
06 : 05 – 동서울터미널 출발
07 : 35 – 백담사 입구
08 : 02 – 백담사 입구 주차장
08 : 16 – 백담사 주차장, 산행시작
09 : 23 – 영시암(永矢庵)
09 : 40 – 수렴동(水簾洞)대피소
10 : 56 – 관음폭포, 쌍룡폭포
11 : 25 – 봉정골 입구
11 : 46 – 봉정암(鳳頂庵)
12 : 38 – 소청산장, 점심
13 : 07 – 소청봉(1,633m)
13 : 22 – 중청봉(1,665m)
13 : 45 – 끝청봉(1,610m)
14 : 21 – 1,461m봉
15 : 40 – 한계령 갈림길
16 : 10 – 1,307m봉
16 : 40 – 한계령, 산행종료
1. 공룡능선 1,275m봉. 소청산장 테라스에서
▶ 영시암(永矢庵)
언젠가 대구에 산다는 어느 사진작가의 얘기를 ‘월간 산’지에서 읽었다. 그는 어르신들의 영정
사진을 무료봉사로 즐겨 찍어드렸다고 한다. 몇 해가 지나자 특별한 까닭 없이 심신이 피곤해
지기에 용하다는 한의원을 찾았더니 영정사진 찍느라 노인의 쇠약한 기가 침투해서라고 하더
란다. 노인의 얼굴 주름에 새겨진 오랜 세월 그 신산스런 삶의 기를 고스란히 받았다나.
그래서 영정사진 찍기를 그만 두고 산의 정기를 받고자 카메라 둘러매고 산으로 산으로 돌아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몸은 나아지고, 백두산 천지 사진 한 장으로 꽤 큰돈을 벌기도 했더
란다. 한밤중 잠을 자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비바람 눈보라가 몰아쳐도, 문득 계시를 받았다
고 한다. 지금 당장 저 산에 오르면 좋은 작품을 찍을 것이라는. 그러면 곧바로 뛰쳐나갔다고
한다.
오늘 설악산을 가는 내가 대구에 산다는 그분과 비슷하다. 불현 듯 봉정암 사리탑이 있는 암봉
에 올라 이 여름날 용아장성과 공룡능선을 보고 싶었다. 하여 ‘백담사 입구’ 가는 차편을 서둘
러 수배했다. 오늘 동서울터미널에서 06시 05분발 ‘백담사 입구’ 경유하여 속초 가는 첫차를
지난 수요일에 가까스로 애매했다.
버스는 춘천고속도로에 진입하자마자 막힘없이 냅다 달려 논스톱으로 ‘백담사 입구’까지 간
다. 백담사 입구에서 만차 승객 중 절반이 내린다. 다 등산객들이다. 백담사 셔틀버스가 운행
하는 주차장까지 거리가 상당히 멀다. 1.4㎞. 해 걸러 열매가 가지가지 풍성한 마가목 가로수
길이다. 벌써 양주 향기가 난다.
백담사 셔틀버스는 08시부터 운행하는데 승객이 덜 찼는지 빨리 오시라 손짓한다. 요금 2,30
0원. 설악산을 무박으로 다니던 시절 백담사까지 이 길 7㎞를 고스란히 걸어 다녔다. 이 길 걷
느라 녹아나 정작 산행에서는 그 여파로 헤매기 일쑤였다. 차창 밖 내다보며 백담 세며 간다.
엊그제 비로 담마다 차고 넘친다.
봉정암 가는 길. 순례자의 길이다. 절대거리 10.6㎞가 만만하지 않을 뿐더러 숱한 골골은 물론
갈림길, 지능선의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굳게 맘 다잡고 간다. 백담사는 이번에도 들리지 않
는다. 여기 올 때마다 시간에 쫓긴다. 대로인 숲길을 뭇 등산객들과 행렬 지어 간다. 계류 낭랑
한 물소리는 시원한데 그늘 밖으로 나오면 불볕이다.
여울만 못한 황장폭포는 여전히 황당폭포다. 저 골짜기가 흑선동계곡이고 이 산릉은 감투봉으
로 이어지렷다. 길골, 곰골의 흐릿한 인적은 통제 아니던 때 내 족적이 거들었다. 쉰길폭포 큰
귀때기골은 그냥 지나치는데도 손바닥에 땀이 밴다. 설악산은 도대체 소홀한 데가 없다. 다 두
고 가자니 어려운 걸음일 수밖에.
산모퉁이 돌아 개활지 나오고 영시암(永矢庵)이다. 영시암은 조선 후기 학자인 삼연 김창흡(三
淵 金昌翕, 1653~1722) 선생이 지은 암자다. 영시란 멀리 떠난 화살이란 뜻으로 절대 속세에
나가지 않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아버지와 형제의 고초를 지켜본 선생은 이곳에 암자를 짓
고 세상에 나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내 생애에 괴롭고 즐거움이 없으니 吾生苦無樂
속세에서는 모든 일이 견디기 어렵네 於世百不甚
늙어서 설악산에 묻혀 살려고 投老雪山中
여기에 영시암을 지었네 成是永矢庵
선생의 삶은 참으로 기구했다. 영의정인 아버지 김수항(金壽恒)은 숙종 15년(1689년) 기사환
국(己巳換局) 때 진도(珍島)로 유배 가서 사사되었고, 형 창집(昌集)은 경종 1년(1721년~172
2년) 신임사화(辛壬士禍) 때 거제도에 위치안치 유배 갔다가 성주에서 사사되었다. 형의 죽음
은 선생의 명을 재촉했다. 그해 죽었다.
머리는 세었으나 마음은 한층 맑아지고 髮白心愈活
형색은 말랐으나 도는 익어간다 形枯道益肥
안위는 산 밖의 일이니 安危山外事
결코 벽운정사를 열지 않으리라 長掩碧雲扉
벽운정사는 김창흡 선생이 지은 집으로 나중의 영시암이다
雲守虛樓鹿守園 구름은 빈 누각을 지키고 사슴은 정원을 지키고
檢看春井宛然存 자세히 보니 절구와 우물은 그대로 있네
牛於耕日勤生犢 소는 힘써 밭 갈고 송아지 태어나고
蜂在花時閙出孫 벌들은 꽃 필 때 요란스레 분봉하네
可村山奴治事密 알만하구나 절 식구들 일이 바쁜 것을
亦知隣寺護緣敦 또한 알겠다, 이웃 절 도움에 인연이 도타움을
西遊得喪都休說 서쪽 유람의 득실일랑 말하지 말게
且據殘冬受飽溫 그저 남은 겨울 배부르고 등이나 따뜻하길
영시암 주련이다. 어째 절 냄새가 안 난다 했더니 김창흡 선생의 시다.
2. 황장폭포. 폭포 같지 않아 황당하다
3. 영시암(永矢庵), 현판은 김창흡 선생의 후손인 여초 김응현의 글씨다
4. 용아장성의 관문인 옥녀봉, 수렴동대피소 앞에서
5. 수렴동계곡 주변
6. 수렴동계곡
7. 수렴동계곡 주변
8. 용아장성, 수렴동계곡에서
9. 용아장성, 수렴동계곡에서
10. 용아장성, 수렴동계곡에서
11. 수렴동계곡의 수렴
12. 수렴동계곡의 수렴
13. 용아장성, 수렴동계곡에서
14. 용아장성, 수렴동계곡에서
15. 용아장성, 수렴동계곡에서
▶ 봉정암(鳳頂庵)
영시암에서 노송 숲길로 들어 데크계단 한차례 오르면 Y자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오세암
2.5㎞, 오른쪽은 봉정암 7.1㎞다. 오세암으로 가서 마등령 올라 공룡능선을 탈까 잠시 망설이
다 봉정암 길로 든다. 산굽이 돌고 돈다. 골짜기가 막다를 듯 정면에 우뚝 솟은 첨봉이 보인다.
용아장성의 첫 관문인 옥녀봉이다.
수렴동대피소. 한산하다. 다람쥐가 등산객을 맞이한다. 다람쥐와 놀다 간다. 수렴동대피소 왼
쪽은 가야동계곡인데 출입을 막았다. 수렴동대피소 오른쪽 사면 살짝 돌아 용아장성 오르는
희미한 소로 역시 막았다. 곁불에 게 잡는 식으로 용아장성을 혹시 묻어 갈 수 있을까 한참 서
성거렸으나 소연할 뿐 무망한 일이었다.
비로소 침봉의 제국에 들어선다. 수렴 드리운 골짜기 양쪽으로 침봉이 군진의 기치창검처럼
늘어섰다. 고개 꺾어 수렴 들여다보다 고개 젖혀 침봉 우러르자니 발걸음이 적이 더디다. 용아
폭포, 용소폭포, 관음폭포 ……, 굳이 이름하는 게 부질없다. 계류 옆 등로 완급에 따라 층층
와폭 중소대폭 구별할 뿐인 것을.
곧추선 철계단 올라 쌍룡폭포다. 관폭대에 서서 승천하는 쌍룡의 모습을 오래 감상한다. 쌍룡
폭포 위쪽 계류 건너 끝청봉 오르는 지능선 샛길 살짝 엿보고 간다. 등로는 봉정골 입구에서
왼쪽 협곡을 오른다. 봉정암까지 0.5㎞. 돌길. 가파르다. 마의 구간이다. 한 피치 0.3㎞ 올라 휴
식할 겸 등로 벗어난 사자바위에 들린다. 너른 암반이다. 발아래 산 첩첩 펼친다. 방금 된 고역
을 까맣게 잊는다.
나머지 봉정암 0.2㎞는 평탄하게 산허리 돈다. 봉정암이 한적하다. 점심 공양시간 등산객이 뜸
하다. 예의 미역국인데 전자밥통 자유배식에 오이무침이 더 있다. 내 공양시간을 맞추고 이렇
게 한산할 줄 알았더라면 도시락을 싸오지 않았으리라. 사리탑을 보러간다. 계단 놓았다. 나의
예감은 조금도 그릇되지 않았다. 단박 원근가경에 취한다.
문화재청은 2014.7.3. 이 봉정암 사리탑을 보물 제1832호로 지정했다. 보물명칭은 ‘인제 봉정
암 오층석탑(麟蹄 鳳頂庵 五層石塔)’이다. 보물이다 하여 다시 본다. 2014.7.9.자 법보신문의
소개다.
“인제 봉정암 오층석탑은 설악산 소청봉 아래 해발 1244m 높이에 위치한 봉정암 경내에 있는
높이 3.6m 규모의 석탑이다. 석탑은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의 3부분이 조화를 이루며 건립되
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봉정암 오층석탑은 거대한 자연 암석을 기단으로 삼아 바위 윗면을
다듬어 2개의 단을 만들고, 그 주변에 16개의 연잎을 조각해 기단부를 조성했다.
그 위에 올린 몸돌인 탑신석(塔身石)은 3층까지 모서리에 우주(隅柱, 기둥)가 모각(模刻)돼 있
다. 탑신석 위에 올린 두꺼운 지붕돌은 낙수면의 길이가 짧고 경사가 급하며 끝부분만 살짝 반
전된 형태이다. 상륜부는 연꽃 봉오리 또는 보주 형태의 석재를 올려 단순하게 처리했다. 특히
기단부를 생략하고 자연 암반을 기단으로 삼았다는 점, 진신사리를 봉안한 석탑이라는 점, 고
대의 일반형 석탑이 고려 후기에 단순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16. 용아장성, 수렴동계곡에서
17. 수렴동계곡
18. 용아장성, 수렴동계곡에서
19. 수렴, 쌍룡폭포 위
20. 용아장성, 수렴동계곡에서
21. 용아장성, 수렴동계곡에서
22. 용아장성, 수렴동계곡에서
23. 용아장성, 봉정골 입구 지나 봉정암 가는 도중 사자바위에서
24. 용아장성, 봉정골 입구 지나 봉정암 가는 도중 사자바위에서
25. 봉정암 사리탑, 2014.7.3. 보물 제1832호로 지정되었다
26. 공룡능선, 봉정암 사리탑 위 암봉에서
27. 오른쪽이 공룡능선 1,275m봉
28. 공룡능선 나한봉
29. 용아장성
30. 용아장성
31. 공룡능선과 그 너머, 소청산장에서
▶소청봉(1,633m), 한계령
적막하기 절간이라더니 오늘 봉정암이 그렇다. 식수대에서 물통 가득 채우고 소청산장을 향한
다. 소로 돌길이다. 아까 운해는 공룡능선을 금방이라도 무너뜨릴 기세였는데 상황이 궁금하
다. 잰 걸음 한다. 길섶은 참조팝나무, 금마타리, 은꿩의다리 화원이다. 꽃술 든 응원이다. 이윽
고 소청산장-‘대피소’라는 행정명칭보다는 ‘산장’이라는 산꾼명칭이 더 어울린다-이다.
내설악 최고의 경점인, 세계를 훑어보아도 이만한 경점을 찾기가 그리 쉽지 않을 소청산장에
나 혼자다. 테라스에 앉아 점심 도시락 펼친다. 천상오찬! 호사다. 영화 『아이거 빙벽(The Ei
ger Sanction』(1975)이었다. 미술사학 교수인 헴록 박사(클린트 이스트우드 분)가 클라이네
샤이덱 호텔의 테라스에서 아이거 북벽을 실눈 뜨고 바라보던 장면을 생각나게 한다.
소청봉 가는 길. 수수만년 풍설 버틴 관목 숲길이라 걸음걸음이 경점이다. 땡볕이 직사하지만
대기가 삽상하여 더운 줄 모르겠다. 소청봉 너른 공터에 배낭 기대고 일광욕 즐기는 등산객들
은 노랑머리다. 내쳐 중청봉을 향한다. 대해의 파고는 서북주릉을 넘지 못한다. 화채봉은 섬
아닌 여다. 넘실거리는 운해에 가물가물한다.
중청봉-언제 한번 직등해야겠다고 맘먹는다- 사면 돌고, 대청봉이 천주(天柱)로 듬직하다. 대
청봉을 들리지 않고 바로 끝청봉을 향한다. 이제부터 ┤자 한계령 갈림길까지는 줄곧 내리막
이다. 만고강산 유람할 제 늘어진 팔자걸음 한다. 마주치는 등산객들과 수인사 씩씩하게 나눈
다. 끝청봉 전망대에서는 답답한 등산객들에게 조망 교육한다. 저기 고도는 점봉산, 망대암산
이고 저 반도 끝은 가리봉이요.
모처럼 역행하는 서북주릉이라 낯선 길처럼 새롭다. 끝청봉 내리고 하늘 가린 숲속 길 갈 때는
길섶 단장한 풀꽃이 정겹다. 독주폭포 독주골로 빠지는 1,461m봉은 맘 변할까 얼른 넘는다.
1,456m봉은 너덜지대다. 암릉 같은 너덜도 나온다. 경점이려니 등로 비킨 선답의 자취 쫓다보
면 더러 화장실이다.
너덜지대는 계속된다. 살아 천년인 주목 우러르며 침봉 돌면 ┤자 한계령 갈림길이다. 서슴지
않고 한계령을 향한다. 데크계단 내린다. 1,307m봉 오르는 길이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다.
가파르기도 하려니와 종착지가 가까웠다는 정신의 해이가 주범이다. 그리고 돌길 내리막 1㎞.
무르팍 닳는 소리가 나는 것 같다. 화끈거린다.
하긴 늘 그랬다. 오르막에서는 팔팔했고 내리막에서는 겔겔했다. 운해 속으로 잠수한다. 차량
굉음과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소리로 한계령을 짐작한다. 해류가 이럴 것. 운해가 한계령 협곡
을 거세게 흐른다. 금방 춥다. 버스가 잠수함이다. 승선한다.
32. 등로의 단풍나무
33. 금마타리(Patrinia saniculaefolia), 마타릿과의 여러해살이풀
34. 참조팝나무(Spiraea fritschiana), 장미과의 낙엽 활엽 관목
35. 대청봉
36. 점봉산
37. 멀리 가운데가 공룡능선 1,275m봉
38. 가리봉
38-1. 점봉산
39. 가리봉
40. 한계령 갈림길 직전 암봉
41. 한계령 갈림길에서
42. 한계령 가는 길에서, 하늘금 앞이 망대암산이다
43. 서북주릉
첫댓글 金錢無 님이 실수로 지워버렸다 하여 다시 올립니다.
소중한 댓글은 복원할 수 없어 송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