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6월 14일 뉴멕시코주 로즈웰 북서쪽 1백 km 지점의 한적한 시골마을 상공에서 UFO가 날아가는 것이 여러 명의 현지 주민에게 목격됐다. 이어 추락한 UFO의 파편들과 외계인 시체 4구가 발견됐으며 목격자 가운데 한 명인 윌리엄 브레이즐 씨는 '지구상에는 존재하는 않는 물질로 만들어진 파편 조각까지 습득할 수 있었다. 목격자들의 일치된 증언과 구체적인 증거물로 인해 인류공동의 관심사인 UFO의 비밀은 곧 밝혀질 태세였고 이 소식은 보도를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됐다.
그러나 이 사건은 곧 의혹만 남긴 채 베일 속에 가려지고 만다. '괴물체는 UFO가 아니라 기상관측용 풍선에 불과함이 밝혀졌다'는 미심쩍은 발표문만 내놓고는 회수해간 자료와 증거물의 공개를 일절 거부했다. 이렇게 되자 목격자들의 이야기들이 입에서 입을 통해 더욱 부풀려지게 됐고 뭔가 사실을 은폐하려는 듯한 당국의 태도는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UFO의 존재를 더욱 확신하게 해주었다.
UFO 연구단체는 물론이고 일반인들조차 '정말 UFO가 아니었다면 자료공개를 꺼릴 이유가 없다'며 미공군의 석연찮은 사건처리에 여론의 화살을 퍼부었다. 특히 브레이즐 씨가 습득했다가 당국에 압수당한 괴파편은 무엇보다 강한 설득력으로 UFO존재론자들의 믿음을 굳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목격자 중 유일한 생존자인 로리타 프록터 씨(여,80)는 "당시 브레이즐 씨가 보여준 만년필 크기의 파편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우리는 한번도 보지 못한 그 나무 비슷한 물건을 불에도 태워보고 칼로 잘라보고 했지만 타지도 긁히지도 않았다. 맹세코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질은 아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반세기가 다 지나도록 풀리지 않았던 이 미스터리는 지난 9월 미공군이 특급기밀에 묶여있던 자료를 마침내 공개하면서 백일하에 드러났다. 47년 로즈웰에 괴비행물체가 떨어졌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UFO도 기상관측 풍선도 아니었다는 것. 그 괴물체는 바로 미공군이 1급비밀 작전(작전명 모굴 프로젝트)의 하나로 구소련 지역을 정탐하기 위해 띄웠던 군사목적의 특수비행선이었다는 것이 미공군의 최종발표였다.
냉전 초창기였던 47년 당시 미소는 치열한 정보전을 전개하기 시작했고 미국측은 소련 상공에 음향탐지 비행선을 은밀히 날려보내고 있었다. 이때 상대의 레이더망을 교란시킬 목적으로 함께 띄워보냈던 레이더 교란용 특수비행선 중 하나가 고장을 일으켜 지상에 추락한 것이 로즈웰 사건을 일으킨 문제의 UFO가 됐다는 설명이다. 일반인의 호기심을 자극한 브레이즐씨의 괴파편도 발사나무를 아교에 절여 제작한 것으로 결코 화성이나 금성 같은 곳에서 가져온 우주 물질이 아니며 뉴욕의 한 장난감 공장에서 제작한 것일 뿐이라고 못박았다.
모굴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퇴역 공군대령 앨버트 트라코프스키 씨(74)는 "군사기밀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그동안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50년 가까이 착잡한 심정으로 왜곡되고 있는 진실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에겐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면서 "이 모두는 냉전시대가 남긴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로즈웰 사건은 완결되었다고 할 수 없다. 샌틸리라는 은퇴한 미군 카메라맨에 의해 95년 5월 영국 TV방송을 통해 로즈웰 사건의 필름 일부가 공개됐다.
필름은 4구의 외계인 시체를 해부하는 과정을 촬영한 것으로, 47년 이후 미국정부가 감춰온 실제 필름의 폭로로 알려져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47년의 대사건 이후로 로즈웰에는 UFO 박물관 및 연구센터가 들었으며 곳곳에 우주선, 우주인 모형을 파는 기념품점이 성업중이다. 전 세계에서 UFO의 실체를 느껴보고자 몰려온 관광객 수도 이미 3만 6천 명을 넘어섰다. 비록 진실에는 접근하지 못했다지만 로즈웰은 UFO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의 성지가 돼버렸다. 그들은 이제 새로운 UFO의 출현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