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 맞추어 하던 생리가 끊겼다.
한참이 지나도 안 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테기를 여러개 했지만 모두 너무나 단호박 한 줄이었다.
불현듯 든 생각이 '폐경이 왔구나' 란 생각이었다.
최근 일년간 체중도 6킬로그램이나 불어서 빠질 생각을 안하고 피로감도 부쩍 늘었다.
이 모든 것이 폐경의 전조 증상인 것 같았다.
시험관 시술을 14차로 종료하고 안 한지 1년이 넘었지만 그래도 한줄기 희망의 끈은 놓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폐경이라니 자연임신에 대한 기대마저 모두 내려놓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깊은 무력감과 상실감이 왔다.
'아이를 갖지 못한다면 내 일에 헌신하며 살아가리라' 고 다짐했건만, 일에 대한 흥미도 애정도 어딨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우울감이 강하게 밀려왔다.
8월 가족세우기 워크숍에 가서 '폐경 후 상실감'에 대한 이슈를 세워보았다.
울먹이며 말하는 내게 촉진자 유명화 선생님이 따라해보라고 했다.
"나는 이제 상팔자다!"
참석했던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가천대 이길여 총장님 이야기를 하셨다.
그 분이 90살 넘어서도 최강 동안에 건강한 이유 중 하나가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인터넷에 떠돈다는 얘기이다.
이길여 총장님이야말로 결혼과 자녀 양육에 쓸 에너지를 몽땅 일에 헌신하며 성공적인 삶을 사신 분 같다.
옛말에 '무자식 상팔자'란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나에게 자식이 없다는 것은 엄청 큰 복이 될 수 있는데 자기한테 주어진 복을 귀하게 여기지 못한다면 그로 인해서 내가 쓸 수 있는 기회들을 잃어버린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그리고 요즘처럼 장애인을 많이 낳는 시대에 당연히 건강한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는 것을 어찌 장담하느냐는 말씀을 하셨다.
멀쩡하게 똑똑한 부모들 밑에서도 장애아가 태어나고,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유명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무겁고 슬펐던 마음이 매우 가벼워졌다.
나에게 무자식 상팔자 복이 있다면 그것을 귀하게 여기고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의 대역을 세우니 가만히 서 있다가 손과 팔을 계속 꼼지락꼼지락 거리며 움직였다.
이대로 쭉 가면 춤도 출 수 있고 지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크진 않지만 어쨌든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으니 그 힘으로 무언가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임신에 매달려왔던 지난 6년 집착의 세월이 솔직히 지긋지긋하고 이젠 정말 자유로워지고 싶다.
정말 기적이 일어나서 건강한 아기가 생기면 그보다
더 한 축복이 없겠지만, 만약 자식의 인연이 없다면 그 또한 커다란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있든 없든 일 속에서 보람과 기쁨을 느끼고, 남편과 검단이(강아지)와 오래오래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다 가고 싶다.
#가족세우기 #폐경 #임신 #무자식상팔자 #유명화 #자연스런치유
첫댓글 이 지점 오기까지
무수한 시간들에
마당 가득한 가을 햇살 한 바구니를
선사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선물을 감사하게 받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복이
내가 원하는대로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매일이
주어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가기를
연습하는 날 같아요
앞으로 새롭게 만나게 될 일과
희망에 응원을 보냅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소원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집착심이 불행을 가져오는 원인인 것 같네요. 매순간이 완전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우칠 날이 오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