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본질과 그리스도
(사무엘하 12:1~6)
칼빈은 종교개혁을 하면서 기독교 교리를 집대성한 ‘기독교 강요’라는 책을 집필합니다. 기독교 강요는 총4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2권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논하고 있습니다. 제2권은 17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처음 1장부터 3장은 인간의 죄에 대해서 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다루는데 왜 먼저 죄를 다루는가? 왜냐하면 죄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에 죄를 먼저 다루어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다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죄의 원죄성을 강조합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고 이 죄는 전가된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어거스틴을 인용하면서 인간의 교만이 죄라고 합니다. 교만은 우리를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만듭니다.
교만과 불순종이 어떻게 죄의 근본일까요?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서 설명하고자 합니다. 사무엘하 12장에 보면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나단에게 책망을 듣는 장면이 나옵니다. 다윗의 생애를 우리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물맷돌 하나로 골리앗을 쳐죽이는 것이 대표적인 것입니다. 후반부의 대표적인 사건은 밧세바 간음사건입니다. 이 둘 중에 어느 것이 중요할까요? 우선 이 두 사건이 성경의 다른 곳에 인용한 횟수를 참고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의 인용을 볼 때 밧세바 사건은 성경의 다른 부분에 수십 번 인용되었습니다. 그런데 골리앗 사건은 성경에 한 군데도 인용한 곳이 없습니다. 그만큼 밧세바 사건이 중요한 것입니다. 밧세바 사건의 내용은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그 죄를 의식하지 못할 때 나단 선지자가 와서 양이 많은 부잣집에서 양이 한 마리 있는 가난한 집의 양을 빼앗았다고 말할 때 정점에 달합니다. 다윗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합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양을 빼앗은 자는 마땅히 죽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때에 나단 선지자는 다윗에게 ‘그 자가 바로 당신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이 사건의 의문점이 생깁니다. 다윗이 밧세바 사건을 범했을 때 그것을 죄로 알았을까요? 아니면 몰랐을까요? 라는 의문입니다. 제가 느끼는 것은 다윗이 몰랐다는 것입니다. 남의 아내를 뺏고 그를 죽이는 것을 죄라고 정말 몰랐을까? 여기에 이 사건의 엄청난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 비유를 듣고 그 놈을 죽여라라고 화를 내며 말했는데 그것이 자기인줄 알고 엄청난 쇼크를 받습니다. 그 충격으로 다윗은 시편 51편에서 회개합니다.
시편 51편에 보면 얼마나 울었는디 다윗은 눈물로 침상을 적셨다고 말합니다. 죄는 알고 짓는 죄가 있고 모르고 짓는 죄가 있습니다. 죄 중에 모르고 짓는 죄가 90% 이상입니다. 로마서 7장 7절에서 사도 바울은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라고 말씀합니다. 탐심은 율법 때문에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탐심의 헬라어는 ‘선한 의도와 선한 바램’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선한 바램이 죄인 줄을 율법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불쌍한 사람을 데려와서 밥을 먹여 줬는데 알고 봤더니 북한 공비였습니다. 그가 힘을 얻어 나가서 더 많이 사람을 죽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와 탐심의 아이러니입니다. 이렇게 부분적인 입장에서는 올바른 일을 한 것 같은데 전체적인 입장에서 보면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전체가 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부분에서는 공평한데 어느 부분에서는 불공평합니다. 인간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자기 이해와 관계되면 불공평하게 됩니다.
우리가 다 스스로 어떤 타당성을 가지고 판단하고 행동하지만 전체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심각한 죄라는 것입니다. 유명한 전쟁 영화 중에 ‘콰이강의 다라’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 네 사람의 주인공이 나옵니다. 첫 번째 주인공은 영국군을 포로로 잡고 다리 공사를 시키는 일본군 부대장입니다. 그는 자기 국가에 대해 충성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무사도를 지키려고 합니다. 두 번째 주인공은 영국 포로군의 대장입니다. 그는 비록 포로지만 영국군의 우수성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사보타지를 해야 되지만 하지 않고 보란 듯이 다리를 만들어 보이길 원합니다. 세 번째 주인공은 특공대 대장입니다. 그는 다리를 폭파시켜 연합군이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네 번째 주인공은 기회주의자로서 사명에 관계 없이 어떻게 해서든지 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계급이 일등병인데 소령이라고 속입니다. 그렇게 해서 편하게 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수용소에서 목숨을 겨우 건져 나왔는데 특공대장과 함께 거기를 또 가라고 합니다. 그가 거부하니까 그러면 일등병이라 폭로하겠다고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가게 됩니다. 가다가 특공대장이 중상을 입습니다. 특공 대장이 애국을 위해 자기 보고 가라고 그럴 때 ‘국가고 애국이고 쓸 데없는 소리. 그만해라고 소리치면서 네가 죽으면 그만이지 무슨 애국이냐?’라고 말합니다.
일본은 인류를 위한다고 전쟁을 합니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은 대동아 전쟁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아시아를 깨우치기 위해 하는 전쟁이라는 의미입니다.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인간이 사람의 기준에 모자르는 지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일본은 이렇게 자신들의 탐욕을 아름답게 미화시켰습니다. 이것이 바로 큰 죄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 네 사람의 입장이 다 다릅니다. 그들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 선하다고 확신을 가지고 일을 수행합니다. 그들 사이에는 큰 공통분모가 없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죄인 줄을 그들은 모릅니다. 모르고 그렇게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욥기에 보면 욥이 친구들과 논쟁한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질문을 당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깨달으면서 그동안 아무 것도 모르고 잘 안다고 지껄인 것을 회개합니다. 욥기 42:2~3절에서 욥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욥은 여기서 인간의 죄의 본질을 명확히 말합니다. 자신의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고 깨닫지 못한 일들을 함부로 말하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인간 죄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참된 이치를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지껄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이 깊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죄의 깊이를 알고 있는 사람을 가리켜 신앙이 깊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이 깊은 사도 바울은 로마서 7:19~24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아니하고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 누가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라고 절규하며 자기의 죄성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카톨릭의 수장인 프란시스코 교황이 지난달 슬로바키아를 방문해 53명의 신부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때에 한 신부가 교황에게 과감히 질문하기를 “당신을 비판하고 당신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어떻게 다룹니까?”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대해 교황은 “나를 죄인이기 때문에 개인적 차원에서는 공격과 모욕을 당할 수도 있지만 카톨릭 교회에 대해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답하였습니다. 사실 교황의 이러한 대답은 놀라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천주교는 교황무오설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황 무오설이란 교황은 죄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프란시스코 교황은 여기에서 자기도 죄인이라고 고백하며 인정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프란시스코 교황은 지금까지의 교황 중에 가장 신앙이 깊은 교황인 것 같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내가 죄인의 괴수라고 말씀합니다. 그는 자기가 심각한 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성도는 신앙이 깊어질수록 죄에 민감해지고 죄가 깊어질수록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명심해야 할 것은 내 힘으로 죄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죄는 예수님의 힘으로 예수를 붙잡고 해결됩니다. 죄 문제의 해결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달려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이 깊을수록 여러분은 죄를 계속 지을 것이고 계속해서 그 죄와 씨름할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붙잡아야 합니다. 죄는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용서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승리하게 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