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졸업 전시회 이후의 10년
2000년에 대학원 졸업 전시회를 가진 후에 2009년에 프랑스 루불 박물관 전시실에서 전시회를 가지기까지 거의 10년이 흘렀습니다. 내 인생에서 또 하나의 의미라면 60세를 방금 넘어선 것입니다. 서예인들의 연령이 다른 장르의 예술인보다는 조금 많다고 하나, 그래도 내 서예인생을 뒤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 것도 사실입니다.
내 나름으로는 내 길을 착실하게 걸어왔다고 믿지만, 내가 걷는 길이 옳았는가? 아니라면? 자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루불 전에서 전시한 작품을 갖고 귀국하고 나서 나의 지난날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졸업 전시회는 대학이라는 전혀 다른 서예의 장에 발을 들여놓고 나서 , 그곳에서 느끼고 배운 것을 표현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순수한 나의 창작품은 없었다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지도 교수인 근원 선생의 작품을 모방해 보았다는 것이 바른 말일 것입니다. 선생은 도자기를 매개로 하여 작품을 만들었고, 나는 그 작품을 모방하였습니다. 도자기를 통한 작품 제[작은 너무 많은 시간을 잡아먹었고, 만들기도 어려워서 졸업 전시회 이후로는 더 이상 하지 않았습니다.
이후로는 조용히 침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두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저기서 작품을 출품해 달라는 의뢰가 오면 전통 서예작품을 출품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실험작품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도자기 작품에서 흥미를 느끼지 못한 반면에 나의 흥미를 끄는 다른 장르도 있었습니다.
민화와 서각이었습니다. 더욱이 민화는 나에게 무척 매혹적이었습니다. 이유는 강렬한 색상이었습니다. 나에게는 색에 이끌리는 유전자가 있나 봅니다. 그 다음에는 글자를 멋대로 비틀어서 쓴 서각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서예에서도 미적 표현을 ‘조형미’라는 것에서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서예의 기본 가치는 의미전달이 우선인데, 의미 전달이 무시될 만큼 형태를 비틀수가 있을까? 전통 서예인들이 신주처럼 모시는 법첩을 지키면서도 관람자를 매혹할 수 있는 조형미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서법의 법칙에 구속받지 않고 형태를 비틀 수 있는 것이 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대구에서 ‘유장식 서각 전시회’를 관람하고 나서 ‘바로 이거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추구하는 조형미의 방법을 찾았습니다. 이때부터는 담미헌(나의 서실)에서 민화와 서각을 활용하는 작품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건 나만의 비밀 이야기이지만, 도제제도의 방식으로 서예 공부를 하면서 사승관계는 소의 코에 ‘코두레’를 꿰듯이 스승의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억지로 꼬뚜레를 벗어버리면 서예계에 나쁜 소문이 나고, 왕따를 당한다는(국전 등등의 공모전을 위시하여)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민화와 서각을 배우면서 사승관계를 맺지 않으려, 일부러 도서관이나 백화점의 문화교실을 찾아가서 기초를 배웠습니다. 민화의 경우는 스승에 따라 사용하는 물감이 달랐으므로 고루고루 배우려 여기저기를 찾아다녔습니다. 사실은 도서관이라 해도 스승은 수강생을 제자라면서 코뚜레를 쒸우려 했습니다. 이건 타파해야 할 나쁜 관습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나의 방법이 현명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제작을 하면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가 구상한 방식대로 그림도 그리고, 색칠도 합니다. 순전히 나의 방식대로라는 생각이 됩니다.
이후에 서각을 공부하는 서각인들이 함께 모여서 작업할 수 있는 작업실을 마련하였습니다. 스승이 아니고 동료로서 모여서 서롤 조언도 하고, 색칠하기 등의 기법을 서로 배우고, 가르쳐도 주면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한 스승 밑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민화는 완전히 나의 방식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물론 바림이라든지, 전통의 기법은 충실히 따르지만 작품 전체를 구상하는 것은 나의 의도대로 합니다. 그러고 보니 민화 같기도 하고, 문인화 같기도 하고, 현대서양화 같기도 하고, 또한 민화같지 않기도 하고, 문인화같지 않기도 하고, 현대서양화와는 맛이 전혀 다른 그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책이나 도판을 통하여 중국의 현대서예와 일본의 전위 서예도 곁눈질해 보았습니다. 전통 서예 전시회에 이런 작품을 슬쩍 출품하였다가 반송당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거의 10년이나 세월이 흘렀습니다. 서예계에서도 전통 서예를 벗어나, 중국의 학원파 서예를 닮은, 또는 현대서예를 닮은 작품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하여도 우리나라의 전통서예 전통은 철벽이어서 여전히 서예계의 중심 권력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이후로 대구에서 ‘여류 중진 5인 작가전’에 참여하면서 나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루불 미술관 전시회를 끝내고 나는 나의 작품세계에 대한 회의를 털어냈습니다. 방향을 정하고 나니, 나의 작품으로 전시회를. 그것도 서울에서 전시회를 가지고 싶었습니다.
나의 고민을 표출한 전시회가 2009년에 가진 두 번 .째의 백악 갤러리 전시회였습니다.
첫댓글 표준말이 언어 어휘의 정체를......?
물론 순기능도 많지요
도제식
코뚜래
사승관계
절대적으로 동의 합니다
늘 잘읽고 있습니다
저도 풀깍는 집에서 수학을 배운 적 있습니다
지금 생각 하면 살짝 웃지요
구름집 선생은 아직도 딱딱한
하드를 물고 있습니다
산이 높으면 그늘도 길다 합니다
처음처럼 선생님의 그림자 들이
처음이 아닌 다음으로 새상을
웃김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