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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여름 방학때 을지로 입구 서울사진관에서 1960년 졸업앨범에서
1960년 6월 16일 2교시 후 교정에서 ~ 박 일웅,예 융양. 양 방수.
1960년 10월 27일 2교시 후~교정에서 ~ 양 방수.이 붕해, 최 수철
梁芳秀,박일웅,예융양,이붕해,최수철군과 校庭에서
서라벌고등학교 4회 졸업생(1961졸업)카페보기 아래 크릭 하세요 !
A반 (A Class) 담임 : 정 병기 선생님
위쪽부터 ~권 종만, 임 우찬, 김 신일, 백 광현, 고 동훈, 손 행래, 조 영철, 손 형배, 신 동명, 전 민철, 영 인명, 이 근성, 전 일선, 이 기대, 강 정엽, 김 원시, 박 일웅, 이 홍구,
김 종현, 임 충무, 노 시원, 장 경남, 손 창교, 성 대원, 박 상헌,박 영배, 이 종대, 박 윤서, 윤 치환, 유 은용, 김 풍래, 이 태권, 이 강의, 김 일호, 김 철호, 공 종건, 김 유검, 이 정환, 김 종일, 간 현수, 차 원국, 정영량, 안 정웅, 허 무영, 임 종빈, 유 택수,한 정남, 전 무웅, 노 수해, 엄 성렬, 변 창원, 임 수재, 원 주일, 한 풍언, 배 연수, 성 기철, 윤 석린, 권 정길, 이 동영, 신 상국, 김 길황, 문 광식, 이 금철, 김 윤선, 최 수철, 김 영일, 이 붕해, 원 청무, 유 연복, 안 봉승, 박 희태, 오 근 섭, 이 한종, 양 방수, 이 충우, 정 일선, 홍 덕희, 오 원택, 유 영대, 김 기수, 예융양.
졸업후 몇몇 친구들은 만났으나 이제는 영영 만날길이 없어 여기 그때의 추억 어린 사진만 남긴다.
B반 (B Class) 담임 : 김종옥 선생님
임 창식, 조 시정. 이 무윤, 김 효승, 문 광호, 심 혁재, 김 학종, 전 용랑, 김 영일,
안 인환, 김 영기, 이 치환, 이 상호, 김 재근, 문 복길, 박 인서, 김 정용, 최 한섭, 나 명천,
유 관봉, 윤 재봉, 장 무의, 김 윤호, 박 영작, 문 정옥, 조 창래, 장 우의, 강 신욱, 손 장섭, 노 성봉, 이 만성,
강 창현. 임 의중, 권 재환, 조 종복, 곽 성균, 김 일환, 장 욱, 권 오수,
박 한길, 김 장욱, 방 일랑, 정 근생, 이 명웅, 이 건희, 한 창호, 문 대원, 윤 태영, 장 인섭
강 두희, 조 점환, 노 왈수, 유 재호, 석 병철, 윤 정진, 정 호기, 박 노원, 김 경수, 신 두경,
공 만식, 김 동구, 주 균선, 박 용재, 최 효원, 김 영철, 주 홍규, 손 만수,
심 재일, 장 원일, 방 규영, 권 성진, 안 호장, 정 공호, 손 상현, 김 진홍, 강 동원, 홍 성봉, 최 재영, 이 춘구,
C반 (C Class) 담임 : 이 우재 선생님
김 병삼, 유 성, 이 실, 백 종화, 박 일동, 이 정웅, 김 재남, 강 정일, 전 봉식, 이 관희
이 규민, 유 우종, 신 평원, 박 순구, 조 태형, 유 주열, 공 전일, 윤 상기, 박 호진,
최 종철, 정 형진, 송 운열, 김 남수, 서 윤옥, 박 찬구, 이 득원, 강 번, 장 명성, 전 시봉,
장 구용, 주 영길, 구 창부, 박 송림, 황 영주, 양 흥주, 김 영길, 김 영민, 장 우일, 유 인행,
이 영복, 이 장수, 김 원태, 김 석중, 유 춘목, 이 정문, 임 무학, 양 희필, 백 윤상,
오 부근, 김 명길, 정 진재, 김 창윤, 정 재풍, 정 준근, 추 기원, 신 언일, 정경호, 노 환길,
권 병섭, 김 용원, 이 기행, 차 우덕, 김 성효, 강 신철, 김 유,
김 선홍, 이 재진, 전 두석, 정 정태, 정 순길, 이 순호, 장 성문, 곽 청수, 김 영식,
강 문식, 김 의웅, 이 상철, 김 안전, 박 노삼, 안 맹환, 김 인평,
정 진수, 김 재환, 문 성모, 강 래연, 김 우하, 조 한백, 김 승택, 오 중홍, 김 승호,
다음은 우리들의 일과
남가주 서라벌 중고등학교 총동문회
http://cafe.daum.net/sorabolusa
세월이 여기까지 흘러서
글을 보내주신 동문은 1960년 서라벌 고등학교 3학년 A반 권 종만 동문으로 당시 서라벌 고등학교 학생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모범생으로 공부도 잘해 반창들중에 당시 선망의 대상이 된 동문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우연히 서라벌 고등학교 총동문 카페에서 만나 주고 받은 내용이다. 이곳 남가주 서라벌 4회 동문 카페에서 만난 김 철호군은 컴퓨터는 하지 않아 만나면 술잔으로 추억의 학창시절의 추억을 남기는 처지로 다른 친구는 아직 만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2015년 6월 30일. 4회 양 방수 정리.
수시로 좋은 소식 보내줘 고마우이.
며칠 전 우연히 한국방송 KBS에서 라디오와 TV 해외 방송에 대해 우수작 施賞(시상)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 LA 우리방송 수상작이 없었던 것 같아. 어쨌든 방수가 명산 등산도 다니고,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니 반가웠네.
한 가지 소식은 2014년 11월 19일 박영작, 문대원, 문의웅, 장우의, 이동웅, 김병두, 김경수 등이 같이 서울 종로 5가에 모여 몇 시간 동안 추억을 안주로 술도 몇 잔씩 마시고, 떠들며 시간도 보냈지. 인생사 다양해 각기 달리 살다가 반 세기 넘어 오랜만에 만나니, 반갑기 그지 없었어.
학창시절의 양 방수
이 외에도 손행래, 손형배, 조영철, 김영철, 이명웅, 최태랑, 김종일, 서정욱, 박인서, 오근섭 등이 연락되고 있으나 이젠 노년들이라 11월 28일에 몇 명이나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군. 늘그막에 이따금 모여 우정 우물 파본다고 하지만, 10여년 전보다 와병자가 많아 다수가 동창회에 모이기는 힘든 것 같아. 기반이 튼튼해 노년을 미리 대비한 동창들도 많지만, 힘들게 지내는 동창들도 있고, 소식 두절이 돼 있는 동창도 많아.
난 혼자서 우리가 고3일 때 기하나 국어도 가르치셨던 김영혁 선생님을 연세대 밑 연희동 집근처에 찾아가 만나 뵙고, 3시간 동안 담소를 했었고, 김한근(현재 개명해 김한준) 음악 선생님 부부를 내 개인이 초청해 식사대접을 하며, 이야기를 나눴었어. 아들 김동규는 해외에서도 명망이 높은 성악가로 현재도 KBS에 출연하고 있지. 또 대학교 61학번 동창들 모임을 3년째 내가 주도하고 있어서, 현재 LA에 거주하고 있는 34년간 미국에 거주한 용산고 출신 홍성권이 일시 귀국해 대학동창들과 모교(고려대)를 돌아다니고 밤늦게 까지 세월을 안주로 시간을 요리했었지.
난 고교 시절 너무나 가난해 불가능한 진학을 했고, 불행하게도 10명의 가족을 부양하느라 재학시절 장학생으로 교수님 연구실을 맡은 조교를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대학원 진학을 권유하시는 교수님을 따르지 못하고 말았지.그래도 동생들도 같은 대학을 나오게 해주고, 모두 기반을 잡을 수 있도록 해주었으니, 내 맘은 편하다고 해둘까?
자식들도 모두 제 자리를 잡았고, 귀엽고 예쁜 손자,손녀들 있으니 , 난 요즘 이따금 조선시대 문인 정철의 安貧樂道 思想, '曲肱而枕之(안빈낙도 사상, '곡굉이침지)라도 樂亦在其中(낙역재기중)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젊은 시절엔 200대 국내산과 일본 등지와 중국까지 등산을 다녔으나, 이젠 집에서 문 밖에만 나서면, 대국의 자연처럼 광활하지는 않지만, 부드러운 곡선의 산이 있고, 청계수가 흐르는 개울과 호수가 있는 내 나라에서 남은 여생 행복한 나날을 엮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면 과장일까?
2014. 11.24. 권 종만.
학창시절의 권 종만
54년만의 만남에서
2014년 11월 28일 낮 1시, 늦가을 비가 추적이며 내리던 서울 종로 5가에서, 1961년 2월 25일에 그 추운 운동장에서 졸업식을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방수의 메일을 읽고 친구들과 만나 전하며 담소를 나눴지. 모두들 방수의 소식에 반가운 기색이지만, 현실감을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더군.
더구나 老軀(노구)라 대부분 종합병원이라며 참석하지 못한 동창도 있지만, 개인사정이 뭔지는 몰라도 온다고 해놓고는 불참한 동창들도 많더군. 방수처럼 自手成家(자수성가)하고 누구 앞에서도 떳떳하고 부끄러움이 없는 동창들은, 경제적 기반도 튼튼해 즐겁게 자리에 어울리지만, 의기소침한 친구들은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선뜻 나서질 못하는 것 같기도 해.
그래도 가장 가난하고 청년 시련기를 겪은 竹馬故友(죽마고우)들이라, 신뢰감이 묻어나는 유쾌한 친구들도 많이 있어, 과거를 안주로 쏴주(?)를 1인당 서너 병씩 마시며, 장시간 스스럼 없이 늙어서 입에 오른 精氣(정기)를 내뿜기도 하더군, 재밌잖은가?
전화번호 우선 수집한 것을 보내 줄까 하네. 대부분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어 미국에서도 카톡은 소통이 될 거야. 또 내 경우는 집전화가 인터넷전화라 크게 요금 부담이 없지. 집에만 있지 않아 탈이지만. 2015년도엔 양방수란 친구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전해줬던 거지.
요즘 서라벌고등학교는 명문고등학교로 쟁쟁한 후배들이 참 많더군. 판검사는 물론 국회의원이나 대기업 간부도 많고, 회사 대표나, 사회적 평판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연예인이나 가수, 배우, 작가들도 수두룩하지. 다만 내가 몰라서인지 4회졸업생에는 별로 없는 것 같아. 오늘도 이명웅이 전화해 이제 다 늙었으니, 모여서 얼굴보며 즐거운 시간 보내는 것도 좋다고 다시 모인을 갖자고 제안을 하는군.
이 나이에 서로 마음(友情)을 나누는 것이 간혹 실수들을 할지라도 커다란 흠집이 되겠나? 대부분 7학년 5반이 넘었으니 말일세. 명예와 부귀영화보다 뭐니뭐니 해도 노년에는 건강이 우선 아닌감? 항상 건강하시게나. 동창들 전화번호(휴대폰)이다 ~
죽기전에 한번이라도 서로 연락하자!
현재 연락이 가능한 서라벌 고등학교 4회 동문들 그 때 그 시절 얼굴이다. 사진이 없는 친구들은 졸업앨범에서 누락되어 모습이 보이지 않아 섭섭하게도 얼굴을 볼수가 없지만 있는 친구들은 찾아 올렸다. 양해하길 바란다. 모두의 건투를 빌며, 늘 승승장구하고, 건강하게 老年(노년)을 보람차고 뜻있게 보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소식 전한다.
①권 종만=010-8310-2976
②손 형배=011-9921-5599,
③조 영철=010-8995-1061,
④손 행래=010-4027-7889,
⑤김 종일=010-3608-7447,
⑥박 영작=011-9703-1628,
⑦장 우의=010-6422-6617,
⑧문 대원=010-3194-3621
⑨이 명웅=010-389-8966,
⑩김 경수=010-4033-4140,
⑪ 김 철호=1-714-234-3505 - 1-714-526-2399
⑫양 방수 1-714-725-9837,
현재 연락이 가능한 서라벌 고등학교 4회 동문들 그 때 그 시절 얼굴이다. 사진이 없는 친구들은 졸업앨범에서 누락되어 모습이 보이지 않아 섭섭하게도 얼굴을 볼수가 없지만 있는 친구들은 찾아 올렸다. 양해하길 바란다. 모두의 건투를 빌며, 늘 승승장구하고, 건강하게 老年(노년)을 보람차고 뜻있게 보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소식 전한다.
⑬이 동웅=010-7769-8959,
⑭김 병두=010=011-9771-1146,
⑮서 정욱=010-6279-6791,
(16) 최 태랑=010-3708-9995,
이상 16명.
2014. 11. 29. 경기도 수원시에서 권종만.
1961년 서라벌 졸업생 모임
1961년2월 25일 서라벌고교를 졸업한 동창들이, 2014년 12월 27일 13시 서울 종로 5가에서 만나, 추억을 안주와 반찬으로 술잔을 나누고 식사하면서 송년회를 맛있게 요리할 예정일세. 방수야! 미주에서 더 좋고 즐거운 새해를 맞이하겠지? 어쨌든 우리 나이엔 건강 챙기고, 마음만은 지난 번에 보내준 글처럼, '팔을 구부려 베개로 삼아 누워 있을지라도,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다.'(曲肱而枕之(곡굉이침지)라도 樂亦在其中(낙역재기중)이라.는 생각으로 여생의 세월을 엮어가는 것도 괜찮지 않겠나?
2014. 12. 19. 권종만.
보낸 사람: |
아운(negurum1@hanmail.net) 이 보낸 사람이 대화 상대 목록에있습니다. |
보낸 날짜: | 2015년 6월 29일 월요일 오후 8:36:28 |
받는 사람: | YangBang (bangyang@hotmail.com) |
권 종만 오후 8:36 받는 사람: YangBang
우리 이 나이에 갑자기 무슨 타령이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난 벌써 인생의 덧없음을 새삼느낄 수밖에 없는 稀壽(희수)가 되어버렸으니 그럴만도 하다고 여기렴.
서라벌 4회 동창회를 활성화하려고 내딴에는 얼마 동안 노력을 해봤다. 그러나 내게 오는 것은 우정 한 방울도 오지 않고, 에고이스트들의 개인주의가 판을 치니, 내 능력으로는 모임 활성화는 불가능하다는 覺省을 하고, 다시는 앞장서지 않겠다는 판단을 했다.
우정이란 상호간에 신뢰가 쌓이고 연쇄되어, 마음을 주고 받는 사이에서 푸른 싹이 돋아나게 하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모두 70대 중반이니 그만한 정도의 기반과 소통이 당연하다고 난 생각했었다. 그러나 싹이 나면 같이 키우려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모두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상황이 연거푸 연출되니, 내가 두 손을 들어 항복하고 만 것이다.
회원들이 개인적 구실을 마련해 회피하는 모임은 절대로 성사되지 않는다는 걸 절실하게 느껴 단절하겠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렇다고 개별적인 상호관계를 단절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도 난 알고 있으니, 끼리끼리 어울려 살다 가는 것이 인생 아니겠나?
2015. 6. 30. 권종만.
1960년 4회 졸업생들의 가을 수학여행 통지문입니다.
수학여행은 2박 3일의 일정으로 진행되며, 4월에서 6월 사이에 간다. 하지만 이것이 절대적인 규정은 아니어서 어떤 학교는 3박 4일 또는 그 이상의 기간 동안 진행되거나, 가을이나 겨울에 수학여행을 가기도 한다. 그리고 수학여행 대상이 되는 학년 또한 학교마다 다르다. 일반적으로 한 학년이 1년에 한 번 가게 되어 있으나 소규모 학교에서는 3년에 한 번 모든 학년이 한꺼번에 가기도 한다.
수학여행지는 학교별로 매우 다양하나, 대한민국에서 수학여행지로 인기가 높은 지역은 대체로 경주나 제주도 등이다. 농사체험을 하는 수학여행도 있다. 강원도 정선군 남면 낙동2리 "개미들" 마을은 밭에 조와 수수를 심는 등의 농사체험을 하는 수학여행으로 일년에 7천명의 학생들이 다녀간다.
최근에는 생활수준 향상으로 일부 학교에서 많은 경비를 들여 외국으로 수학여행을 보내는 경우가 있어 수학여행의 본래 취지가 퇴색되었다는 비판이 있다. 또, 국외 수학여행에 참여할 형편이 되지 못하는 학생을 위한 배려로 국내의 관광지를 대신 답사할 수 있게 한다고는 하나 이마저도 학생들의 위화감을 조장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
2014년 3월 27일에 촬영된 세월호
제주도를 수학여행가던 안산시 단원고교생들의 이야기다. 세월호 침몰 사고(영어: Sinking of MV Sewol)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경 대한민국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전복되어 침몰한 사고이다. 세월호는 안산시의 단원고등학교 학생이 주요 구성원을 이루는 탑승인원 476명을 수용한 청해진해운 소속의 인천발 제주행 연안 여객선으로 4월 16일 오전 8시 58분에 병풍도 북쪽 20km 인근에서 조난 신호를 보냈다. 2014년 4월 18일 세월호는 완전히 침몰하였으며, 이 사고로 시신 미수습자 9명을 포함한 304명이 사망하였다. 침몰 사고 생존자 172명 중 절반 이상은 해양경찰보다 약 40분 늦게 도착한 어선 등 민간 선박에 의해 구조되었다.
위치: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인근 해상
좌표 : 34.2181。 - 동경 : 125.95。
1960년 서라벌 고등학교 연극반 학우들에게 돌리던 안내 통지서
요즈음 학생들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을 통지문이다. 이것은 학생회 학생들이 글을 작성하고 하나 하나 등사를 해서 돌리때는 손에 등사 잉크가 묻어 애를 태우던 참으로 낙후되었던 추억어린 시절 이야기 이다. 후배들에게 이런 가난하고 어렵던 시절을 보여주는 뜻은 자원이 풍부하고 문화 시설이 풍부한 요즈음 학생들의 주위 환경에 비하면 참으로 열악한 조건속에서 공부하던 선배들의 어려웠던 시절에 비하면 정말 시대를 잘 타고난 긍지를 가지고 조국과 부모를 위해 무언가 꿈을 실현하는 후배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나 교내 분위기는 살벌했다.
1960년 4월 19일 혁명이 일어나던 때는 4회 졸업생들이 고 3때로 수업을 제대로 할수가 없을 정도로 분위기는 살벌했다. 고3 동기가 3대 독자라는 귀한 자손인데 시위도중 총탄에 쓸어지던 사건이 일어나 교내는 어수선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통지문을 돌리고 잠시 휴학을 했던 추억이 떠 오른다.
4·19 혁명(四一九革命)은 1960년 4월 대한민국에서 제1공화국 자유당 정권이 이승만을 대통령에 당선시키고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개표조작을 하자, 이에 반발하여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에서 비롯된 혁명이다.
3·15 부정 선거의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던 시위는 시위대 중의 한 사람으로서 3월 18일경에 실종되었다가 시신에 최루탄이 박힌 채 경상남도 마산 앞바다에서 떠오른 김주열의 시신이 4월 11일 부산일보 허종 기자가 작성한 기사를 통해 공개되면서 더욱 격화되었다. 4월 19일 경찰은 경무대에 몰려든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고, 발포 이후 시위대는 무장을 하여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며 맞서기도 했다.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은 책임을 지고 하야했으며 부통령 당선자였던 이기붕의 일가족은 사퇴 후 동반 자살했다.
보낸 사람:C반 박 찬구 : 캥거루(ckpark1092@hanmail.net)
보낸 날짜:2015년 8월 2일 일요일 오전 7:12:11
받는 사람:bangyang@hotmail.com(bangyang@hotmail.com)
서라벌4회 박찬구입니다. 라는 메일 이 왔다. 반갑다. 보내온 사진을 다시 만들어 올린다. 컴(Computer)의 발달로 SNS[So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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