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오락(五刑五樂)
- 노인의 다섯 가지 형벌과 다섯 가지
즐거움 -
안골은빛수필문학회
수필창작반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오창록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부모님께서 태어나게 해주신 모습대로 이
세상을 살며 건강하게 일생을 마치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그러나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 그것은 마음뿐이고,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겨난다. 오래
전에 읽었던 어느 신문에 아래와 같은 글이 소개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젊었을 때이니 내가 언제 그런 모습이 될 것인가 싶어 조금도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았다.
조선 정조 때
심노숭(沈魯崇·1762~1837) 의 자저실기(自著實紀)에 노인의 다섯 가지 형벌(五刑)과 다섯 가지 즐거움(五樂)에 대해 논한 대목이 나온다.
노인들이 겪고 있는 다섯 가지의 고통이 꼭 요즈음의 내 이야기 같다.
“사람이 늙으면 어쩔 수 없이
다섯 가지 형벌을 받게 된다. 보이는 것이 뚜렷하지 않으니 목형(目刑)이요, 단단한 것을 씹을 힘이 없으니 치형(齒刑)이며, 다리에 걸어갈 힘이
없으니 각형(脚刑)이요, 들어도 정확하지 않으니 이형(耳刑)이요, 그리고 궁형(宮刑)이다.”
눈은 흐려져 책을 못 읽고, 이는
빠져서 잇몸으로 오물오물한다. 걸을 힘이 없어 집에만 앉아 있고, 소리를 들어도 자꾸 딴소리만 한다. 여자(남자)를 보고도 마음속에 일렁임이
없다. 승지 여선덕(呂善德)의 이 말을 듣고 심노숭이 반격을 하고 나선다. 이른바 노인의 다섯 가지 즐거움이다.
“보이는 것이 또렷하지 않으니
눈을 감고 정신을 수양할 수 있고, 단단한 것을 씹을 힘이 없으니 연한 것을 씹어 위를 편안하게 할 수 있고, 다리에 걸어갈 힘이 없으니 편안히
앉아 힘을 아낄 수 있고, 나쁜 소문을 듣지 않아 마음이 절로 고요하고, 망신을 당할 행동에서 멀어지니 목숨을 오래 이어갈 수 있다. 이것을
다섯 가지 즐거움이라고 하리라.”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많던 내
몸의 불행과 좌절이 더없는 행운과 기쁨으로 변하게 된다. 눈을 감아 정신을 맑게 하고, 가벼운 식사로 위장을 편안하게 한다. 힘을 아껴 고요히
앉아 있고, 귀에 허튼 소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정욕을 잊으니 오래 살 수가 있다. 이 모두가 편안하고 기쁜 삶을 이어갈 수가
있다.
요즈음 병원을 가거나 한의원에
가면 젊은 사람들보다 나이가 든 사람들이 훨씬 많다. 병원에는 휠체어를 탄 노인들이나, 링거주사를 꽂은 채 한쪽 손은 약물을 매단 폴대를 끌고
지나간다. 얼굴에는 지난 세월의 고단한 삶의 흔적들과 병색이 가득하다. 한의원에 가면 물리치료나 침을 맞고자 아침 일찍부터 찾아온 노인들이
차례를 기다린다. 어느 사이에 나도 모르게 그들과 같은 처지가 되었다.
3년 전 절친했던 친구를
하늘나라로 보낸 뒤부터, 여기저기 몇 군데 건강의 이상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멀쩡하던 친구를 심장마비로 밤사이에 저세상으로 보냈다.
마음의 충격이 너무 큰 탓이었는지, 한동안 기억력을 잃어 신경정신과를 다니기도 했다. 또 아무렇지 않던 귀가 하루아침에 ‘돌발성 난청’이라는
진단을 받아 예수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하고, 퇴원한 뒤에도 2년 동안 계속해서 약을 복용했다. 처음보다는 나아졌지만 이젠 어쩔 수없이 보청기를
쓰는 수밖에 없다.
10여 년 전에 백내장수술을
했지만, 눈이야 어린이들이나 젊은 사람들도 안경을 쓰고 있으니 큰 장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齒)도 몇 년 전에 치과에서 한 개의 임플란트를
했다. 또 허리가 좋지 않아 한의원에서 침과 물리치료도 받고 있다. 이리저리 생각해보니 오형(五刑) 가운데 네 개쯤은 나에게 해당이
되는듯하다.
내가 다니는 안골 수필반은 정원이
36명인데, 그 가운데 80세를 넘은 분들이 10명이나 된다. 그분들께서 좋은 글을 많이 발표하면서 분위기를 이끌어 가신다. 80중반을 넘기신
분이 일주일에 한 편씩의 수필을 발표하는 분들도 있다. 나는 과연 그 선배님들 앞에서 무엇을 하는지 스스로 반성을 해본다. 나도 80이 넘을
때까지 그분들처럼 건강이 유지되어 글을 열심히 쓸 수 있을 것인지 마음속으로 염려가 된다.
생로병사(生老病死)는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나이가 들면 누구인들 한두 군데 아프지 않은 곳이 있으랴. 그러나 이러한 인생의 고통들을 다섯 가지 즐거움(五樂)으로 알고
즐겼으면 한다. 나이가 들면 병을 친구삼아 살아가라는 말이 있다. 병도 친구는 해치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2017. 3.
12.)
** 궁형(宮刑) : 고대
중국에서 실행하던 5가지 형벌 중의 하나. 생식기를
거세하는 사형에 버금가는
극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