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을 지우는 일 / 배 현 공
아주버님과 영원한 이별을 했다. 남편이 막내이고 큰 조카와 두 살 밖에 차이가 나질 않아 우리에겐 부모님 같은 분이셨다. 얼떨결에 장례식은 마쳤다. 40여 년의 긴 인연을 단 며칠에 정리하기란 쉽지는 않았다. 마음 한 자락이 훅 떼어나간 듯 공허하고 허전하다.
이별의 아픔에 몸과 마음을 추스를 여유도 주지 않았다. 장례식을 치르고 곧바로 유품 정리를 해야 했고 아무 일도 없는 듯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80평생 존재했던 한 사람의 흔적을 세상에서 지우는 일이 순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주버님께서 마지막까지 지친 몸을 뉘었던 그곳은 며칠 후면 또 다른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될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짐을 치워 달라는 주인의 성화는 당연한 일이다.
장례식을 마친 다음 날 아주버님이 생전에 기거했던 그곳으로 큰 조카와 함께 향했다. 내비게이션을 찍었지만 같은 길을 몇 번을 헤매다 산동네 허름한 한옥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주버님께서 십여 년을 홀로 살던 집이었다.
20대 초반 결혼을 앞두고 양갓집 상견례 때에 시골 읍내 다방에서 이분을 처음 만났다. 부산에서 기차와 몇 번의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먼 길을 오셨다. 잘 생긴 얼굴 세련된 옷차림 도회지의 성공한 중년의 여유로움이 물씬 풍겼다. 남편과 사귈 때 꼭 우리 제수씨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며 구두 티켓을 선물로 보내주곤 하셨다.
아주버님께서는 그 연세에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셨고 4개 국어를 능통하게 하시는 대기업의 간부로 성공한 분이셨다. 큰집에 가면 늘 풍요로웠다. 넓은 집에 잘 가꾼 화초들, 창고 속에는 특별한 과일 등 선물 보따리가 즐비했다. 집은 언제나 잘 정리 정돈이 되어 있었고 모든 것을 두루 갖춘 우리에게는 꿈의 공간이었다.
둘째아이를 낳고 몸조리를 하고 있는데 아주버님께서 돈 부탁을 하셨다. 급한 일이 있어 며칠만 쓰고 돌려주겠다고 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적금을 깨서 원하는 금액을 부쳐드렸다. 몇 달이 지난 뒤 큰집의 부도 소식이 전해져 왔다. 무슨 사정이 있었든지 가정은 깨어졌고 산더미 같은 빚만 남아 있었다.
그 이후로 명절이나 집안행사 어디에도 아주버님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집안 행사에 불현듯 나타나셨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젊은이 못지않은 건강함과 단정한 옷매무새 잘 살아온 노년의 넉넉함이 배여 있었다. 연락이 단절된 후 철학 공부를 하여 사주풀이로 소일을 하시면서 나름 잘 살고 계셨다. 그날 이후 아주버님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타게 연락을 하지 않았고 가끔씩 전화만 주고받았다.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는다. 예닐곱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은 자질구레한 물건들과 쓰레기로 가득 차 발 디딜 틈도 없었다. 방안부터 차근차근 살폈다. 여기저기서 뒹구는 가방들을 열었다. 뜯지 않은 치약, 비누, 마스크, 양발 등이 가득 들어 있었다. 자선단체나 관공서에서 명절이나 특별한 날 나누어 주는 물건들이다. 전단지를 모아 이면지에 자질구레한 일상들을 적어놓았다.
반듯한 새 옷 새 제품은 어디에도 없었다. 모두가 다 고장 나고 낡은 것들 밖에 없었다. 유품이라고 특별히 챙길 것이 없었다. 일상생활을 기록한 가계부 비슷한 몇 가지만 챙겼다. 혹시나 하여 옷 주머니를 비롯하여 책갈피 사이사이를 꼼꼼하게 살펴도 돈은 한 푼도 나오지 않았다.
조카와 나는 유품정리를 대강 마치고 사설 청소업체를 불렀다. 터무니없이 많은 값을 요구했다. 조금만 깎아 달라고 해도 어림도 없었다. 시세보다 많은 돈을 요구해도 우리가 아무런 대안이 없다는 것을 그분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나의 오기가 발동을 했다. 조카의 만류에도 내가 우겨서 도우미 한사람을 불러서 우리가 정리하기로 하고 청소업체는 취소를 했다.
아주버님께서 생전에 조금이라도 돈을 남겼으면 방 안에 있을 것 같았다. 아들인 조카가 방안을 정리하도록 하고 나는 부엌으로 나왔다.
부엌은 난장판이었다. 빈병과 쓰레기가 대부분이었다. 음식이 들어 있는 것은 뚜껑을 여는 순간 심한 악취에 깜짝 놀라곤 했다. 청소업체에 맡기지 않은 것에 대해 잠깐 후회가 되었다.
대부분이 쓰레기봉투 속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있는 물건을 거의 다 치우고 싱크대 서랍을 열었다. 깨끗한 플라스틱 통이 몇 개가 들어 있었다. 바로 쓰레기봉투에 넣으려고 하다가 우리 집에 필요하여 내가 가질까 하며 땅에 내려놓은 순간 놀랐다.
“돈이다.” 하며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 속에 오만 원건 지폐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독거노인이 모으기는 천문학적인 돈이었다. 이런 많은 돈을 두고 병원에도 가지 않고 혼자 곡기도 끊고 임종 직전까지 연락조차 하지 않았던 말인가,
아주버님께서 기거했던 곳은 말끔하게 치워 졌지만 우리의 가슴속에는 아직도 그 흔적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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