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곡성 고(高)씨 이야기
전남 곡성지방은 임란 이후 많은 인재를 배출한 高씨들의 터가 되어 본관이 장흥이면서도 ‘창평 고씨’라는 별칭을 얻었던 곳이기도 하다.
창평에 처음 뿌리 내린 장흥 고씨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고경명의 둘째 아들 인후 因厚 (1561∼592)의 자질들이다.
고경명의 장남인 종후는 진주성 싸움에서 전사했고 인후는 의병에 참가했다가 금산전투에서 아버지인 고경명과 함께 순절하였기에 그곳에 순절비가 세워져 있다.
규장각 직각을 지낸 고정주 (1863∼1933)는 창평에 ‘창흥의숙’이란 서당을 세운다. 여기서 영어 수학에 능통한 이표라는 선생으로부터 가인 街人 김병로 金炳魯 (1891∼1955), 고하 古下 송진우 宋鎭禹 (1889∼1945), 인촌 仁村 김성수 金性洙 (1891∼1955) 등 3걸이 배웠으니 이곳 창평을 한국인재의 산실이라고 말할 만하다.
이들이 공부한 곳은 창평 상월정 上月亭 이다. 이곳에는 대자암 大慈庵 이란 절이 있었으나 조선조에 폐사가 되었다. 1457 년 강원도 감사를 지내다 창평에 와서 살게 된 김응교 金應敎가 상월정을 지었는데 1500 년대 손자사위인 이경에게 넘어갔다가 손이 끊기면서 외손인 고씨들이 관리해 왔다.
이곳이 창흥 의숙으로 쓰인 연대는 고정주가 직각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한 1905년부터 1908년 사이로 여겨진다. 이곳에서 영어를 가르쳤기에 ‘창평 영 의숙 ’이라고도 한다.
이는 서울의 양정 휘문의숙과 같은 시기이며, 광주 서석의 전신인 광주보통학교가 사구동에 문을 연 것이 1906년이고, 중학 과정 영어를 가르친 숭일학교가 1907년에 개교한 것을 감안 할 때 창평 의숙은 전남교육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창평에는 고씨들이 많이 산다. 창평의 고씨들은 호남 4대 명문 집안 중 하나이다. 호남의 원로들이 꼽는 4대 명문집안이라면 하서 河西 김인후 金麟厚 (1510~60)를 배출한 울산 김씨, 고봉 高峯 기대승 奇大升 (1527~72)을 배출한 행주 기씨, 제봉 霽峰 고경명 高敬命 (1533~92)을 배출한 장흥 고씨, 송강 정철 松江 鄭澈 (1536~93)을 배출한 연일 (지실) 정씨 등이다.
호남에서 인물들이 배출된 지역을 거명한다면 4군데인데 ‘광·나·장·창’지역이다. 광주 나주 장성 창평을 지칭한다. 창평이 이 4군데에 포함되는 배경에는 창평 고씨들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래에도 창평 고씨들 가운데 저명인사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고재욱 高在旭 전 동아일보 사장 고재필 高在珌, 전 보사부 장관 고재청 高在淸, 전 국회부의장 고재호 高在鎬, 전 대법관 고재량 高在亮, 전 광주고법 부장판사 고중석 高重錫, 헌법재판관 고윤석 高允錫, 서울대 부총장 고문석 高文錫, 전 한양대 법대학장 고명승 高明昇, 전 육군 대장 등 율곡 高敬錫이다.
이 가운데 고재청 고재호 고재량은 친형제 간이다. 헌법재판관을 지낸 고윤석은 고재호의 조카다. 전 대법원장인 최종영이 고재호의 사위다. 그 뿐만 아니다. 인촌 仁村 김성수 金性洙(1891~1955), 고하 古下 송진우 宋鎭禹, (1890~1945), 가인 街人 김병로 金炳魯(1887~1964), 근촌 芹村 백관수 白寬洙(1889~납북 )와 같은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창평 고씨들과 깊은 관계에 있다.
일제 말부터 195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민족주의 우파 진영을 이끌었던 인물들의 출발은 창평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고 씨 집안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고 연기설을 주장 할 수도 있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창평 고씨 집안의 역사와 인맥은 일개 집안이라는 울타리를 뛰어넘어 호남의 인물사, 더 나아가 한국의 근세정치사를 연구하는 데 매우 흥미로운 자료가 되는 것이다.
암울했던 왜정 시절, 서울에는 유명한 사랑채가 하나 있었다. 서울 계동에 있던 인촌 김성수의 사랑방이었다.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던 우국지사들이 계동 사랑방에 많이 모였다. 아무나 사랑방을 운영하는 것은 아니었다. 유명한 사랑방을 운영하기 위한 조건은 재력 식견 덕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인사들이 모여든다. 돈만 있고 식견이 없으면 밤새워 이야기 할 거리가 없으니 범속 凡俗 에 빠진다. 돈만 있고 덕성이 없으면 인색해서 베풀 줄 모른다. 그래서 이 모두를 겸비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곡성 장미축제 펼쳐지는 화려한 봄의 페스티벌!
수천만송이의 장미향기가 가득한 기차마을 장미공원에서 향기, 사랑 그리고 꿈을 주제로 매년5월 하순 ~ 6월 초순경 개최된다.
봄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에 곡성 섬진강 기차마을 장미공원에서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일제히 꽃 문을 여는 무려 1,004종이나 되는 장미꽃 퍼레이드와 함게 무려 열흘 동안 진행된다.
축제 참가자가 곡성군 인구의 열 배에 달하는 30만 명에 육박하며, 해를 거듭 할수록 보고 즐기는 축제에서 관광객과 곡성 군민이 함께 어울려 신나게 즐기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펼쳐지면서 축제의 품격을 더해가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장미가 심어져 있는 장미공원에서 진행되는 만큼 아름다운 장미를 마음껏 즐길 수가 있는데 1004종의 수억만 송이 장미꽃들이 넓은 공간의 장미공원 곳곳에서 고혹의 향을 뿜어내며 장관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