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조각품을 보노라면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아서 섬뜩한 느낌이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다비드 상”(Statue of David)의 눈동자와 근육은 마치 살아있는 사람의 것처럼 강렬한 포스가 느껴집니다. 미켈란젤로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재능을 갖게 된 것일까요? 그냥 “르네상스 시대의 걸출한 천재”라는 말 한 마디로 넘어가기에는 우리의 태도가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켈란젤로는 분명히 천재적인 능력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작품 활동을 했던 노력파라고 합니다. 며칠 동안 먹지도 않고, 잠도 자지 않고 일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고 합니다. 심지어 어떤 때는 오랜 만에 간신히 잠자리에 들었다가도 잠시 후 다시 일어나서 작업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는 87세의 나이가 되었을 때, 자신의 스케치 북에 이탈리아어로 “앙코라 임파로”(Ancora Imparo)라고 적어 넣고 늘 그대로 살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I’m still learning)는 뜻입니다.
미켈란제로가 실제로 이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쉬지 않고 시체 해부와 인체의 근육을 연구하면서 사람의 몸을 좀 더 생동감 있게 표현 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목표를 너무 높게 설정해서 이루지 못하는 것보다, 목표를 낮게 정하고 쉽게 이룬 다음에 거기에 안주하면서 사는 것을 경멸했다고 합니다. 그는 89세의 나이로 로마에서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제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저의 윤리 과목 선생님이 이 미켈란젤로에게 심취되어 계셨습니다. 선생님은 수업이 시작되면 항상 칠판에 “앙코라 임파로”라고 쓰신 후에 귀에 못이 박힐 만큼 미켈란젤로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당시에는 그 뜻이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몰랐지만, 이 문구와 쉽게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심술맞은 “불독 선생님”이 이 구절을 사랑하신 이유는 우리 학생들을 합법적으로 구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나이 먹은 저 대단한 어른도 죽도록 배우는데, 왜 무식하고 싸가지 없는 너희들은 배우려고 하지를 않아!”
사실 이 말은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당당한 인생철학을 소개하려고 기록했던 글이 아닙니다. 그 어디에서도 이 말이 미켈란젤로의 것이었다는 흔적은 찾아 볼 길이 없습니다. 그 보다는 오히려 “지로라모 파귀오리”(Girolamo Fagiuoli)라는 화가의 그림에 등장하는 경구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그의 그림 속에서 보면, 한 무기력한 노인이 보행기를 끌고 간신히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바로 옆에는 이제 걸음마를 배우는 벌거벗은 아이가 역시 보행기를 이끌고 열심히 걸음마를 연습하고 있습니다. 노인의 보행기 테이블 위에는 그에게 이제 남겨진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모래시계(Hourly Glass)가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벽에는 굵은 글씨로 “앙코라 임파로”라는 구절이 적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구절은 “배움에 대한 끊임없는 열망이나 노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 때부터 배웠는데도 죽음을 바로 앞에 둔 순간까지 여전히 배우고 있는 “인간의 무능함”을 풍자하는 글입니다. 어찌보면, “학문의 세계에는 결코 왕도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더 부지런히 배워야 한다는 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요즘에는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예전에는 어른들이 비록 세월을 피하지 못해서 쭈글쭈글 늙기는 했지만, 그래도 세상을 풀어가는 대단한 지혜와 경험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젊은 세대의 사람들은 결코 어른들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어른들은 지나 온 세월 만으로도 충분한 지혜와 경륜의 보고(寶庫)였기 때문에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른들도 모르는 것 투성이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너무도 중요했던 가치와 정보들이 이제는 소용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세상이 빠른 속력으로 날아가고, 예전에는 없었던새로운 것들이 마구 쏟아져 나옵니다. 자고 일어나면모든 것이 다 새로운 것들 뿐입니다. 예전에는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들이 이제는 너무도 당연하고보편적인 것들이 되었습니다.
스마트 폰이나 컴퓨터화된 처음 보는 전자 기기들이곳곳에 널부러져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의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도 상상을 초월합니다.중고등학교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걸어가면서 담배를피웁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바로 눈 앞에서 십대초반의 젊은 아이들이 상당히 농도 깊은 키스를나눕니다. 그러나 아무도 제재를 가하는 사람이없습니다. 그들이 무섭기 때문입니다. 이민의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은 한층 더 안스럽습니다. 언어와 문화가 익숙하지 않다보니 자기 생각을 마음대로 표현할 줄 아는 젊은이들이 오히려 더 어른들입니다. 예전과는 달리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가르쳐 줄 것이 별로 없다보니 세대 간의 단절이 일어나고, 젊은이들이 오히려 어른들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행동들을 서슴지 않습니다. 화가 나지만,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오직 하나 “이 놈들아, 너희들도 이 다음에 늙어봐라” 뿐 입니다.
한국에서는 하루 평균 스무 건 이상 어른들이 젊은 아이들에게 구타를 당하는 불미스러운 일들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아직 이민 사회는 그정도는 아니지만, 무시당하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자주하는 말 중에 “억울하면 출세하고, 더러우면 성공하라”는 말이 있는데, 세상이 이렇게 된 것을 어쩌겠습니까?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시 배워야 합니다. 스마트 폰 사용하는 법도 배우고, 컴퓨터와 복잡한 기기를 쓰는 법도 배우고, 짜증나는 꼬부랑 영어도 할 수 있는데까지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더러워서라도 배워야 합니다. 중년의 부모들도 노년이 되어 자녀들에게 무시 당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당당하게 사는 법을 공부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습니다. 한번은 한인 식당에서 연세드신 어른과 젊은 청년이 설전을 벌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청년이 잔뜩 술에 취해, “늙은게 자랑이냐?” 쏴붙이며 대들자, 연세드신 어른이 “If you say that one more, I’m gonna call the police”하자, 막되먹은 젊은이가 입을 다물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멋진 어른을 보면서 다시 깨달았습니다. “배워야 해. 그래야 살아!” “앙코라 임파로”(Ancora Imparo), 깊이 되새겨 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