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왕국 <시기리아> 탐방
▶세계8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시기리야 바위요새 (WORLD HERITAGE)
'사자의 언덕'이라는 의미는 인도에서 전해진 합성어 '싱하'는 사자' 기리야'는 언덕을 뜻한다
▶프레스코 쳔녀화, 사자바위, 카샤파 궁전터 중세 불교유적지
아누라다푸라-폴론나루와-캔디 등 고도(古都)가 역삼각형을 그리는 '문화 삼각지' 첫 관문이 시기리야 (Sigiriya)
스리랑카 세계문화유산 지정
이곳 스리랑카의 시기리야 성채는 인도의 아잔타석굴사원(Ajanta Caves)과 거의 같은 시기에 조성되었다는데
고대 세계 8대 경이(驚異:8th Wonder of the Ancient World) 중 하나로 꼽히며
유럽 여행가들은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 보고 싶은 곳’ 중 첫 번째로 꼽는 곳이라고 한다
스리랑카에 있는 바위 요새인 시기리야는 권력과 배신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왕궁으로서의 기원과 복잡한 프레스코 벽화는 시기리야를 만든 문명과 성벽 안에서 펼쳐진 사건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카샤파 왕이 부왕을 죽이고 왕좌에 오른뒤. 형제들의 후환이 두려워 밀림속 산꼭대기에 요새를 지었다는 궁전터
이 바위산 꼭대기에 왕궁을 지은 것이 바로 시기리야 성채(城砦)이다.
수직의 바위벽을 쪼아 만든 계단과 좁은 바위벽 통로를 올라야만 하는 이 요새는 당시 어떻게 오르내렸는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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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75년 이복동생에게 왕위를 뺏길까 봐 아버지 다투세나 왕(455~473)을 죽이고 왕이 된
카사파 1세 (Kashyapa I, 477~495)가 동생의 보복을 피해 해발 고도 350m 위에 궁궐과 요새를 지어서 살았던 곳이다.
그런데 10여 년이 흐른 뒤 군대를 이끌고 온 동생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자(Sinha)'와 '목구멍(Giriya)'의 합성어로 ‘사자의 목구멍’이라는 뜻을 가진 천연 요새 시기리야는 그렇게 탄생했다.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천상의 성에서 11년간 은신했던 카사파 1세는
결국 인도에서 용병을 끌고 돌아온 동생 목갈라나에게 쫓기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의 사후, 시기리야는 불교 사원으로 운영되다가 폐허가 되어 전설로만 전해졌다.
발굴은 400여 년이나 흐른 19세기 후반 영국 식민지 시절에 발굴되어, 1982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 시기리야 성채에서 유명한 것은 바위벽을 다듬고 궁녀들을 그린 시기리야 미녀들(프레스코화)이다.
프레스코화는 안료(顔料)를 마른 석고 표면에 직접 칠하는 기법으로, 이집트 벽화들도 이 기법이다
근대에 만든 원통형 나선 계단을 7~80m쯤 오르면 바위벽을 파내어 만든 높이 2m, 길이 10m 정도의 작은 통로가 보이는데
벽면에 그 유명한 시기리야의 미녀들(Lady of Sigiriya)이 기다리고 있다.
풍만한 여인들을 그린 이 프레스코 채색화는 원래 500여 명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대부분 훼손되고
지금은 18명의 여인 그림이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되어 현란한 색채로 당시의 복식(服飾)과 장신구 등을 보여주고 있다.
가슴을 드러낸 반라(半裸)의 이 프레스코화는 지금도 그 아름다운 색채와 관능미로 보는 이들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카샤파 1세는 이곳에 다시 바위산을 오르는 돌계단을 파고 그 입구에 입을 벌린 어마어마하게 큰 사자를 설치해 놓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머리와 몸통은 없어지고 발(獅子足)만 남아 있다. 예전에는 사자의 두 발 사이를 지나 사자 몸통 속을 통과하여야
위로 오를 수 있었다고 하는데 사자는 불교를 수호하고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상징성이 있다고 하여
이곳에 사자를 세워 지키게 함으로써 암살의 두려움을 털어내고자 했던 모양이다.
사자발(獅足) 문 앞에서 바라보면 계단은 마치 사자 목줄기를 따라 머리 위로 오르는 형상이다..
오늘 하루는 요새도 호텔도 계단이 많아서 계단데이~~ㅋㅋ
이 시기리야 성채의 또 하나의 신비는 ‘물의 정원(Water Garden)’이다.
바위산 꼭대기 왕궁터의 조금 낮은 곳에 정교하게 조성된 이 물의 정원은 넓이가 대략 사방 10m 정도의 야외풀장 모양으로,
맑고 푸른 물이 그득하여 관광객들이 발을 담그고 있다.
이 물의 정원에서 왕궁으로 오르는 계단이 서너 군데 남아 있었는데 정교하고도 아름답게 설계된 계단이다
왕궁에서 계단을 내려와 이곳 물의 정원에서 물장구를 치며 깔깔거리던
시기리야의 미녀(궁녀)들이 저 계단을 오르내리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 원통형 바위산 맨 아래에는 당시에 조성을 하였다는 해자(垓子)가 빙 둘러있는데
당시 이곳 해자 물속에 악어를 길러 일반인들은 함부로 성채에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첫댓글 스리랑카 여행중에 제일 인상깊었던 곳이 시리기아이었는데,계단이 좀 힘들지만.
계단이 많아서 고생했지만 어느새 추억이 되었네요~~
@♡박영란♡ 그렇지요.
발품을 팔아야 절경을 볼수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