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발길을 서둘렀음에도 다소 늦었을 것 같았는데,
본부 쪽으로 개울을 타고 걸어오면서 보니, 제 숙소에 이미 그 여인(L)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내가 없자, 마침 차를 타고 나오던 104호 젊은이에게 나에 대해 물어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가까워진 상태로,
"L!"하고 불렀는데 못 알아들었고,
더 가까워져서야 나를 본 그 여인에게,
"내가 얼마나 늦었나요?" 하고 묻자,
"20분요." 하더라구요.
그래서,
"보다시피, 걸어오느라 늦었네요. 그렇지만 한 5분만 더 기다리세요. 나, 샤워부터 한 다음에..." 하고 숙소에 들어와, 샤워부터 한 다음... 다시 나가 그 여인을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바로, 지난 월말에 서울에 갔다가 가져왔던 내 '자전거 아저씨' 책 두 권을 보여주면서,
"내가 이 책을 낸 사람입니다." 하고 알려주었는데,
그 여인도 책을 몇 장 떠들어 보더니,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내가 왜 자신을 초대하고 도와주려고 하는지를 알아챈 것입니다.(서로가 잘도 하지 못하는 제 3국어인 '영어'를 사용하다 보니, 자세한 설명 같은 걸 하거나 할 필요가 없었던 거지요.)
그렇게 일단 저는 점심부터 준비를 해야만 했습니다.
새롭게 밥을 할 수는 없었지만, 어제 손님이 있었던 관계로 했던 밥이 충분이 남아 있었기에,
그걸 이용해서 '비빔밥'을 해주기로 했던 것입니다.
어제 손님을 위해 본부에서 '열무김치'를 얻어왔었기에, 그 열무 김치에... 아직도 남아 있는 서울에서(누님네)의 김치, 그리고 여기 108호 0선생님 댁에서 먹으라고 가져온 '애열무(뿌리째 솎은)' 등이 있어서, 김을 구워 가루로 만들어... 대충 비빔밥의 형태를 만들었고, 어제 손님을 위해 만들어서 남아있었던 '미역국'도 데워서...
간단하나마 점심을 대접하기에 이릅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자신은 세 자식이 있다며... 그들에게 제가 준비했던 식사(그 과정)를 사진으로 찍어(제 허락을 구한 뒤) 즉석에서 '와삽'으로 보내는 등... 좋아하더라구요. 지금 프랑스와 7시간 차이라, 거기는 아침이라면서요......
그리고 맛있게 먹어주었구요.....
그렇게 점심을 대접은 했는데,
그 여인의 상황을 들어 보니,
이 점심 때문에 '안동'으로의 출발이(아침 일찍 하려고 했는데) 너무 늦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답니다.
자전거 여행을 하다 보면(다른 여행이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자신만의 시간(일정)이 있는 것인데,
오늘 갑작스런 제 초대에 자신의 여정에서는 이미 벗어나 있었던 것이고,
특히 그 여인은 여행을 하면서 어딘가에서 텐트를 치고 자야하는데, 그러려면 다음 행선지에 도착하는 상황이 매우 중요한데,
오늘 점심으로 잠시 쉰 것은 나쁘지 않았지만, 오후 1시가 넘어가는 상황에서 출발해서 '안동'으로 가는 건, 뭔가 애매한 상황이었다는 거지요. (저 역시 그런 상황을 어찌 헤아리지 못하겠습니까? 너무나도 잘 아는 일인데......)
그래서 저는,
"L, 당신이 원한다면... 내가 하룻밤 여기서 재워줄 수는 있는데요." 하는 제안을 하기에 이릅니다.
그러자 그 여인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글쎄요, 우리 한국사람들의 시각에서는... 저 혼자(남자) 사는 공간에, 외간 여자(그것도 외국인?)를 재워준다는 게 쌍방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어쩌면 그럴 수 없다(그래서는 안 된다?)고 보는 시각도 있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스페인의 '까미노'를 네 차례 이상을 했던 사람으로, 서양(스페인 뿐만이 아닌 유럽)에서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거든요? 까미노의 '알베르게(숙소)에서는, 바로 옆 침대에서도 남녀 따지지 않고 자야만 하는 시스템이라, 그렇기 때문에, 그 여인 쪽에서만 괜찮다고만 하면,(싫으면, 떠나면 되니까요.) 나야, 그렇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했던 거지요.)
"너무나 고맙다."면서요.
그래서 저는, 여기 본부에서 오후 2시에 교육이 있어서...
"그럼, 내가 두 시에 나가 교육을 받고 4시 넘어 돌아와야 할 상황이니, 이 숙소에서... 샤워도 하고, 밀린 빨래가 있으면... 빨래도 하고, 낮잠을 자고 싶으면 다락방(이미 보여주었음)에서 자도 되니, 본인 맘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있으세요." 했더니,
"그 사이에, 내가... 당신의 책을 봐도 되겠어요?" 하고 묻더군요.
"당연하지요. 뭐든 당신이 알아서 맘대로 해도 돼요." 하고, 저는 그 여인을 남겨두고... 본부로 갔답니다.
(물론 그 사이에 그 여인은 샤워, 세탁 등... 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제가 교육을 받고 돌아왔는데,
그 여인은 제 '자전거 아저씨' 책을 보고(읽을 수는 없었겠지만), 그 중 그림 몇 점을 보고는... 눈물까지 흘렸다고 하더라구요.
(글쎄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가질 수밖에 없는 '회환' 같은 게 느껴졌던 모양으로, 감동을 했던 것이겠지요.)
그렇게 그 여인은, 이 숙소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던 건데요,
각자 못하는 영어로 몇 마디씩 중요한 대화를 나누다 보니, 더 이상 할 말도 없었는데...
영어가 안 되면 저는 스페인어가 조금 됐고, 그 여자는 불어를 사용하기도 하면서(스페인어나 불어는 '라틴어'라, 서로가 조금은 통한답니다.)... 띄엄띄엄 통화를 이어갈 수는 있었답니다.
그런데 점심을 준비해서 먹이느라, 가방에 넣어왔던 고추를 바닥에 펼쳐놓기라도 해야만 했는데,
내가 그러면서,
"이걸, 선별작업을 해야만 안 썩는데..." 하면서 고추를 펼쳐놓고, 추리기 시작하자,
그 여인도 나이가 있어선지,
"내가 옆에서 좀 거들어줘도 될까요?" 하고 묻고 달라붙기에,
"할 수 있으면, 해 보세요." 하자,
우리 같은 자세로 앉을 수는 없는지(퍽 불편해 했습니다.), 양발을 확 펴고 앉아서... 저를 돕기 시작했답니다.(아래)
그 상황이 좀 웃기지 않습니까?
저야 그저 일상이었을 수 있지만, 그 여인의 입장에서는...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는데, 웬 외간 남자 집에 앉아... '고추 다듬기'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그런 얘기를 했더니,
"이런 일이 있을 줄, 어디 상상이나 했겠어요?" 하면서, 자기도 웃어 죽는다고 하드라구요.
그러면서 이런 재밌는(?) 경험에,
이 여인(L), 자기의 상황을 자식들에게 '와삽'을 통해 보내곤 하기에,
저 역시 거부감없이 사진을 찍으면서 '동영상'까지 찍기도 했는데,
그 중 약간 편집을 해서 하나 만들어 보았습니다. (아래, 서로가 띄엄띄엄 말을 해가며... 커뮤니케이션은 할 수 있었답니다.)
근데요, 또 생긴 새로운 문제는...
저녁 거리가 애매했습니다.
저는 점심만 대접할 걸로 생각하고 그 여인을 초대했던 건데, 막상 저녁이 되니... 마땅한 먹거리가 없었던 거지요. 걱정이었습니다.(속으로)
그렇지만, 토마토가 있었기에... 그걸로 샐러드를 하고,
'치즈'도 있어서, 어느 정도 상차림을 할 수는 있겠드라구요.
그렇지만 그 상황에서 가장 필요했던 빵이 없어서, 생각 끝에... 여기 108호 0 선생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 부부도 제가 외국인 여인을 초대한 사실을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혹시, 빵 좀... 있습니까? 그 여인에게 저녁을 해줘야 하는데..." 하고 말을 했더니,
"빵은 없는데... 냉동실에 조금 얼린 건 있거든요? 그거라도 드릴까요?" 하기에,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고 빵을 받아다가,
기본적인 상은 차릴 수 있었답니다.
(사실은 저에겐 와인도 한 병 있었는데(이전의 제 지인이 사왔던 게 남아서))
L은 술은 입에도 안 댄다기에, 그리고 점심을 너무 배불리 먹어서 많이 먹을 수 없다기에...
그럭저럭 간단한 저녁상을 차릴 수 있었답니다. (아래)
그 여인,
"아니, 이렇게 금방... 저녁 상을 마련하네요?" 하면서 맛있다며 잘 먹어주기에,
"내가 어디... 한두 해 외국생활을 했던 사람이 아니랍니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곧잘 하곤 한답니다."
"식당차리면 돈 벌겠네요."
"하 하 하... 그래서 나를 아는 사람들(외국인 포함)은, 날더러 식당을 차려보라고도 많이 했답니다." 하는 즐거운 식사였답니다.
그런 다음엔,
L의 앞으로의 일정 등... 한국에서 보낼 여행에 대한 지도 검색 등으로,
제가 도울 게 있으면 돕기로 했고,
혹시 여행 중에 뭔가 어려움이 생기면, 저에게 연락을 하기로 서로가 '와삽'에서 계정을 만들어 주고받았으며,
(어설픈 '통역가'가 돼주기로 했는데, 여태까지 여행한 걸로 보면... 혼자서도 충분히 여행을 할 수 있겠드라구요.)
그 여인은 내일 아침 일찍 떠나야 할 사람이었기에,
약간 서둘러...
'분천 알베르게'에서(그 여인에겐) 하룻밤을 잤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