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수매가 이뤄진 4일 제주 대정농협유통센터에 마늘을 가득 실은 경운기와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다.
지난 4일 마늘 수매가 한창인 제주 서귀포 안덕농협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 이곳을 찾은 농업인들과 농협 직원들은 걱정 어린 시선으로 마늘 수매현장을 지켜봤다. 산지거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수매물량은 곧장 경남 창녕의 보관창고로 옮겨졌다.
이한열 안덕농협 조합장은 “예년엔 수매물량의 50%를 현장에서 팔았는데 올해는 현장 거래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같은 현상은 마늘 주산지인 인근 대정농협이나 고산농협도 마찬가지다.
올해 농협의 마늘 수매가격은 1㎏에 2700원(5㎝ 이상 상품기준). 하지만 시장가격은 농협 수매가를 한참 밑돌고 있다. 제주 마늘값 하락의 주된 요인은 재배면적 확대와 작황호조다. 제주의 올해 마늘 재배면적은 3023㏊로 지난해(2753㏊)보다 10% 정도 늘어났다. 여기에 작황까지 좋아 올해 예상 생산량은 지난해(3만6589t)보다 18%나 증가한 4만3141t으로 예측되고 있다.
더 큰 악재는 중국의 마늘 작황호조다. 중국 역시 재배면적이 10% 늘어난 상황에서 작황도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중국 마늘 산지가격은 예년의 절반수준인 1㎏당 3위안(약 550원) 선에서 형성되고 있다.
이 때문에 물량 과잉공급을 우려하는 상인들의 발걸음이 뚝 끊겼다. 그나마 산지를 찾은 상인들도 관망만 할 뿐 가격협상에 나서지도 않고 있다. 국내 작황이 좋은 상황에서 가격이 크게 떨어진 중국산 마늘이 언제 국내에 유입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고동일 고산농협 조합장은 “지난해 (마늘유통으로) 손해를 본 상인들이 올해는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다”며 “예전엔 상인들이 물건을 달라고 달려들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고 조합장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작황호조를 감안할 때 이 같은 현상은 전국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실제 현장에서 만난 상인은 1㎏에 2500원 이상은 힘들다고 잘라 말했다. 상인들은 농협과 계약재배를 하지 않은 일부 농가들에게는 1㎏에 2200원 선까지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마늘의 시름을 더욱 깊게 하는 것은 소비 위축이다. 도시 젊은이들이 맵고 톡 쏘는 맛을 지닌 <남도>마늘 대신 달달한 스페인산 <대서>마늘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지역은 전량 <남도>마늘을 재배하고 있다.
이창철 안덕농협 상무는 “서울로 가는 <대서>마늘 물량이 늘면서 상인들의 <대서>마늘 취급도 늘고 있다”며 “<대서>마늘은 건조하는 데 한달 이상 걸려 섬지역인 제주에서 재배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답답해했다.
이처럼 ‘사면초가’에 직면한 제주마늘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판매창구 일원화’ 방안이 조심스레 거론되고 있다. 오상현 제주농협지역본부 부본부장은 “현재 ‘콩’의 판매창구를 일원화해서 시장교섭력을 높여가고 있다”며 “마늘도 판매창구 일원화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마늘 가격안정을 위해 정부의 비축수매물량을 조속히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강정준 대정농협 조합장은 “농협이 안정적으로 계약재배를 확대해 나가기 위해선 정부가 비축수매물량을 늘려야 하고 시기도 최대한 앞당겨야 한다”고 주문했다.
허창옥 제주도의회 의원 역시 “정부가 비축물량을 확대하고 산지농협에 유통비용을 지원하는 적극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서귀포=오영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