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작료
손 원
남의 땅을 경작하면서 내는 댓가를 소작료라 한다. 농경사회에서 농민들은 소작인인 경우가 많았다. 산업사회에서는 자본이 밑천이지만 농경사회에서는 토지가 밑천이었다. 많은 토지를 소유한 지주는 땅을 내주고 소작인으로 부터 수확물의 일부를 지대로 받았다. 경작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기에 지주로서는 그럴 수 밖에 없었고, 반면에 소작인은 생계를 위하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대부분 지주는 높은 벼슬을 지낸 권력자들이거나 그들의 후들 이었다. 몇 대에 걸쳐 부와 권력을 대물림하여 떵떵거리며 살았다. 농경사회의 지주와 소작인은 사실상 주종관계인 샘이었다.
요즘은 어떠한가? 지주와 소작인의 기본틀은 유지되고 있지만 예전과는 사뭇 다름을 알 수가 있다.
첫째는 지주와 소작인은 대등한 관계로 자유계약에 의하고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농촌인구의 고령화로 농사지을 사람이 급속히 줄어드는 반면 농경지는 남아돌게 됨에 따라, 토지 임대인과 임차인의 균형이 깨진 상태다. 지역에 따라서는 버려진 땅을 공짜로 경작해도 되는 곳도 있다.
셋째는 농업기술의 발달로 생산량이 증가 함에 따라 소수의 농업인만이라도 충분한 식량생산이 가능하다. 또한 농업이 국민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낮고, 국제 농산물도 과잉생산 되어 농사는 수익이낮은 편이다. 그래서 농사지을 사람도 급격히 감소했다. 농사인구가 급격히 줄어도 당장은 타격을 받지 않을지라도 식량안보 차원에서 농업을 등한히 할 수가 없다. 국가에서는 영농후계인을 양성하여 지속가능한 농업환경을 조성해 나가고 있다.
농업이 기계화 되어 농업인의 수가 어느 정도는 줄어 들어도 괜찮으나 문제는 농촌인구의 고령화로 휴경지가 늘어나고 주식인 쌀생산마저 줄어드는데 있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다보면 농촌은 피폐해지고 농산물 가격은 폭등할 수 있다. 정부에서는 귀농을 장려하는 등 많은 정책적 지원을 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농지가 넘쳐나고 정부에서 영농에 많은 혜택을 부여 하기에 부농을 일구기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농업이 인기 직업이 아니고 고된 직업이기에 농촌 인구 유입은 쉽지 않은 현실이다.
우리의 부모님 세대만 해도 농업은 생계를 위해 절대적이었다. 농민 대다수가 적은 농지를 소유하였고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부족한 양식마저 아껴 한 뼘의 땅이라도 늘려나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버님은 20대 초반에 결혼하여 논 서마지기를 타고 분가하셨다. 봉답 논 서마지기로 흉년이 들면 식구들 양식마저 걱정해야 했다. 식량을 아껴 땅을 늘리기는 불가능할 정도여서 소, 돼지 등 가축 몇 마리를 길러 자금을 조금씩 모으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렇게 몇 년을 모으다 보면 논 한 마지기를 살 수 있었다. 그렇게 30년을 악착같이 늘려 논 10마지기를 마련하셨다. 농사로 늘린 7마지기는 아버님이 평생모은 재산이랄 수가 있다.
10마지기 농사는 아버님이 70대 까지는 자경을 하셨다. 생산한 곡물을 팔아 얼마간 수익도 있었다. 농업수입은 빈약하였지만 유일한 수입원으로 자식들 공부도 시켰다. 농민에게 땅은 생명줄이나 다름없었다. 구순의 아버님은 지금도 땅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신다. 아직도 예전의 땅을 그대로 가지고 계신다. 물론 세 아들에게 물려 주었으나 모두 도시 생활을 하기에 시골 계시는 아버님이 관리하고 계신다. 칠순이 넘고부터 임대를 주고 있다. 요즘은 임대관리를 내가 맡아서 해 오고 있다.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까지만이라도 현재대로 임대를 주어야 할 것 같다. 우리 형제들은 농사지을 생각이 없기에 아버님이 돌아가시면 토지를 처분해야 할 것 같다.
임대 주고 있는 논 10마지기는 아버님의 피땀이 서린 소중한 재산이다. 우량농지 열마지기의 가격은 서민아파트 한 채값도 안 된다. 연간 임대료로 쌀 40포대를 받아 형제들 양식으로 소비한다. 아버님의 소중한 선물로 여기고 있다. 소위 소작료인 샘이다. 일년치 임대료가 2백만원 정도로 한달치 최저임금 수준이다. 아버님은 말씀하신다. 먹을 것 못먹고 허리띠 졸라매고 평생 모은 재산이 너무 보잘 것 없다고 하신다. 수 십년 피땀흘려 사 모은 땅이 자식들에게 별 도움을 못 주고 송두리째 임대를 줬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럴때면 우리 형제들은 입을 모은다. "아부지, 보릿고개 시절 우리들 배골치 않게 하셨고, 우리를 이만큼 키운 것만 해도 대단합니다."
당시로서는 논 열마지기를 5남매께 나눠줘도 남부럽지 않을 정도였는데, 시절이 변했으니 어쩔 수 없지만 웬지 씁쓸하다. 항간에 조상이 지게 작대기를 잘 놓아 후손들이 떼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많다. 평생 땅을 일구며 큰 욕심없이 살아온 아버님을 닮아 우리 형제들도 순수하다. 보릿고개를 잘 넘기신 아버님의 노고를 잊지 않고, 심은 만큼거두고 자신의 능력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은 아버님의 가르침이고, 아울러 소중한 자산이기도하다.(2022.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