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망상, 스마트팜.
2020년 브뤼셀에서는 '팜'이라는 제목의 설치예술이 전시됐다. 스마트팜과 수직농법이 주제였다. 1제곱미터에서 밀을 키우는 실험. 물, 빛, 열 등의 외부 투입물을 정확히 정량화하고 감상자들을 위해 실시간 영상으로 전송했다. 폐쇄된 인공 환경에서 영양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물질과 에너지 흐름의 규모를 엄격한 기준에서 살펴보자는 것이다.
실험 결과 1제곱미터의 공간에서 한 사람이 하루 먹을 밀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4개월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정됐다. 그리고 밀 1kg를 생산하는데 약 200유로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비의 감가상각비, 전기료, 물 투입비로만 계산한 거였다.
그런데 2020년 밀 1kg의 시장 가격은 얼마였을까? 15센트였다.
그러니까 15센트면 구입할 밀 1kg을 스마트팜에선 200유로 들여서 생산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실험에서 배제된 투입물과 에너지가 존재한다. 건물을 구성하는 시멘트의 에너지 비용은 어떨까? 통상 시멘트 1kg당 0.5kg 이상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식물을 배양하는 플라스틱 용기의 에너지 사용량도 제외됐다. 만약 열 에너지를 태양광으로 충당한다면, 접지판을 위해 두 배 이상의 토지가 사용된다. 곡물 생산에 있어서 수직농법은 공간을 줄이지도, 에너지를 절약하지도 못한다. 오히려 더 투입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설치예술 실험은 스마트팜의 모순을 정확히 적시해주고 있다. 디지털과 그린 전환 시대의 첨병인 양 추앙되는 스마트팜은 실상 곡물을 생산할 수 없다. 우리의 영양에서 가장 중요한 탄수화물과 단백질 등을 수확하자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역설이 발생한다.
스마트팜과 수직농법이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된 기점은 LED 가격의 하락이었다. 물 사용을 줄이고, 병충해와 오염으로부터 안전하고, 식품 유통 거리를 줄일 수 있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후위기와 식량위기의 대안으로 모색되고 있다. 유럽, 미국, 아시아, 중동 지역 등 주로 잘 사는 북반구 국가에서 활발하게 개진된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신기술이 집약되면 모든 공정이 자동화되는, 오염 없는 식량기지가 될 거라는 낙관이 만발했다.
하지만 실상 에너지 투입량 대비 칼로리 생산량이 현저히 적다. 곡물을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21년 글로벌 CEA 인구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온실 재배는 평균적으로 노지재배에 비해 15~20배 많은 에너지를 사용했고, 수직농장은 100배가 넘는 에너지를 사용한다.
스마트팜과 수직농법이 주로 생산하는 것들은 상추나 딸기 같은 채소들. "부자들의 상추 농장"이라는 비아냥이 쏟아지는 이유다. 깨끗하고 매끄러운 부자들의 상추를 생산하기 위해 화석연료를 더 태우거나, 아니면 태양광을 깔고 풍력 터빈을 돌려야 한다.
우리의 정황근 농식품장관은 엊그제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양곡법 개정에 드는 연 1조원이면 스마트팜 300개 만든다"
곡물과 채소의 차이에 대한 이해, 말하자면 농사와 영양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멍청미의 작렬이다. 하긴 스마트팜을 이렇게 신주단지 모시는 건 문재인 전 정부나 윤석열 정부나 마찬가지다.
자연과 농촌을 저렴하게 착취하면서 생태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그걸 대체하기 위해 스마트팜과 수직농법을 내세운다. 기술만이 생태적 조건과 위기를 돌파해낼 수 있을 거라 믿는 저 찬연한 자본주의적 망상이 바로 스마트팜이다. 자연을 인공지능 공장에서 철저히 통제하고 추출해낼 수 있다고 여기는, 농촌을 그저 '식량공장'으로만 대상화하는 집요한 이데올로기의 결과물이다.
더 중요하게는 스마트팜이 대두나 팜유를 위해 열대우림을 파괴하고, 밀과 쌀을 생산하는 단작 시스템으로 지속적으로 토양을 황폐화하는 과정을 계속 '외부화'하며 은폐한다는 점이다. 때깔 좋은 상추를 먹으면서, 한편으로 불탄 열대우림과 점점 부서지는 농촌의 토양을 한 입 베어무는 디지털 자본주의의 맛.
스마트팜을 없애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게 결코 대안이 아니라고 말하는 거다. 입만 열면 디지털과 그린 전환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사실상 많은 걸 은폐하고 있다는 것, 사회적-생태적 비용을 끊임없이 약자들과 자연에 전가하고 있다는 것. 그걸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