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식목일을 그저 봄에 나무심는 날로 무의미하게 넘겨 왔으나 식목일은 신라가 당나라를 물리치고 삼국통일의 성업을 이룩한날 [문무왕 17년 2월 25일 (양력 4월 5일)이며, 조선 성종대왕이 세자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동대문밖 선농단에 친사하고 적전을 친경한날[성종 24년 3월 10일(양력 4월 5일)]로서 청명과 한식날이 이날과 겹치거나 전후하여 있으므로 조상에게 성묘하고, 주변의 산이나 들에 나무를 심었던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와같이 식목일은 민족사적으로는 통일 성업을 완수하고 임금이 몸소 친경의 성전을 거행한 날로서 농림사적으로도 매우 뜻있는 날일 뿐만 아니라 계절적으로도 나무심기에 좋은 계절이기에 식목일로 정하게 된 것입니다.
- 식목일을 연표로 살펴보면
1910년 : 조선 순종께서 친경제 거행시 친식한 것이 유래
1911년 : 일제치하에서는 4월 3일을 식목일로 정함
1946년 : 광복이후 4월5일 식목일로 제정하고 기념행사는 서울시에서 주관함
1970년 : 식목일 기념행사를 산림청에서 주관함
1974년 : 산림청 주관하에 각 중앙부처 단위로 식목행사를 실시함
2008년 ; 4월 5일 제 63회 식목일
4월 5일 식목일 유래
[어떻게 생겨났나]
산림청은 1975년 제30회 식목일부터 시행한 3월 21일부터 4월 20일까지 한 달 동안의 ‘국민 나무 심기 기간’ 을 올해부터 3월 1일부터 4월 말까지 두 달 동안으로 늘리는 것과 함께 전국 각 지역별로 세분화했다. 그러나 식목일은 상징성과 역사성을 고려해 종전대로 4월 5일이다.
산림청이 정한 지역별 식목 기간은 △남부 지역(제주•광주•부산•울산•전남•경남) 3월 1일부터 4월 10일 △중부 지역(대전•충남•충북•전북•경북•대구) 3월 10일부터 4월 20일 △북부 지역(서울•인천•경기•강원•북한) 3월 20일부터 4월 말까지. 산림청은 “기후 온난화의 영향으로 2∼3월 평균 기온이 예년보다 2∼3도 높아 나무 심는 시기를 앞당기게 됐다.”고 말했다.
[4월 5일 식목일은 어떻게 정해졌을까?]
일본 식민지로로부터 광복된 다음 해인 1946년 정부는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룬 날(문무왕 17년 2월 25일)과 조선의 성종이 선농단(선농단)에서 직접 논을 경작한 날(양력 4월 5일)을 기원으로 해서 식목일을 정했다. 따라서 식목일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농림 사상이 깃든 매우 뜻깊은 날이다. 또 계절적으로도 나무를 심는 기간이어서 이날을 식목일로 정하게 됐다.
제1회 식목일 행사는 서울 사직공원에서 있었다(1946. 4. 5). 신라는 태종 무열왕 7년에 3국을 통일했다. 분열된 우리 민족을 처음으로 통일한 해였다. 그러나 신라는 독자적인 힘으로 3국을 통일하지 못하고 당나라의 힘을 빌려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그래서 당나라는 백제의 옛 땅에 웅진도독부를, 고구려 옛 땅에는 안동도호부와 9도독정을 설치하여 고구려와 백제의 옛 땅을 통치했다. 뿐만 아니라 신라를 계림대도독부라 이름 짓고 지배하려 했다.
이에 신라 국민은 문무왕 10년부터 8년간 당나라와 싸웠다. 그리하여 문무왕 17년(서기 677년) 2월 25일 당나라 세력을 완전히 밀어내고, 3국 통일을 이룩했다. 문무왕 17년 2월 25일이었다.
그런데 이날을 양력으로 치면 4월 5일이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이날은 조선의 성종 대왕이 서울 동대문 밖 선농단에 제사를 올리고 뽕나무밭을 직접 가꾸기도 한 날로, 우리 나라의 농업과 임업 사상 매우 중요한 날이다. 이후 1910년 조선 말 순종은 친경제 때 손수 나무를 심은 것이 직접적인 유래가 됐다. 일본 제국 식민지 시대엔 4월 3일이 식목일이었다.
옛날에도 나무를 심었나요??
신라시대에 최치원선생이 경남 향양군수로 재직할 때 바람피해와 재해방지를 위해 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우리나라 조림역사의 최초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 고려시대에는 풍수사상(風水思想)의 영향 아래 수도가 있는 개성 송악산의 땅기운(地氣)을 보호하기 위해 소나무를 심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조선시대 이전까지는 주로 바람 피해를 예방하거나 땅기운이 약한 곳에 나무를 심어 보호해 주려는 비보(裨補)조림을 통해 숲을 만들었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서는 경국대전이라는 법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조항을 넣어 백성들의 나무가꾸기를 강조하고 산림관리를 강화하였습니다. 이렇게 나무심기를 강조한 이유는 바다쪽에서 침입하는 외적을 물리칠 병선(兵船)과 당시 국가경영에 필요한 세금이었던 쌀 등 공물(貢物)의 운반에 필요한 선박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조선왕조는 가구도료로서의 옻나무, 종이를 만드는데 쓰이는 닥나무, 누에를 치는 데 쓰이는 뽕나무 및 유실수 등 생활에 필요한 유용수종을 심고 관리하는데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이밖에도 흉년의 식량부족을 대비하기 위해 상수리나무와 밤나무 등을 심고 가꾸웠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죠.
이렇게 우리 선조들의 나무심기는 선박, 건축재, 연료재, 도구재료, 구황작물 등 경제적으로 유용한 목재 및 산림부산물의 지속적인 확보라는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았습니다. 즉, 나무를 심어 자연력을 복원함으로써 인간생활에 유익하고 윤택한 환경을 조성하려 하였던 것입니다.
첫댓글 유용한 정보입니다....
옛날 5공때 나무심기를 가장 많이 했는데 줄기는 목제로 잎은 땔감으로 나무를 심었지요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이제야 알았네요..잘 보구 가요..
감사합니다 . 남무 심기도 중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너무많은 나무를 산불로 없애는것같아 안탑갑습니다. 보호하는것이 더중요한것 같아요. 아름다운 휴일되세요...
좋은 정보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아이들과 함께 화분에 꽃한송이 심어보면 어떨까요? 즐겁고 행복한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