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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장(第三十章). 용(龍)과 봉황(鳳凰).
홍의미녀가 문득 의미심장(意味深長)하게 웃으며 다시 끼어 들어
말했다.
"나는 이미 그 발해왕국의 잔당(殘黨)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뿐
만 아니라 확실한 증거도 가지고 있어요. 그는 처음에 곤륜산 부근
에서 발견(發見)되었는데 성이 금씨(金氏)이고, 과대망상(誇大妄
想)에 빠져서 자칭 곤륜삼성(崑崙三聖)이라고 한다지, 아마? 호호
호......! 여러분은 모르고 있었나요?"
청삼청년이 마주 보고 웃으며 말을 받았다.
"아, 그런 얘기라면 요즘 유명하니 나도 어느 정도는 들었소. 그
멍청한 자는 소문에 의하면 정말 터무니없다고들 하는데,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했으니 혹시 벌써 이 난주성(蘭州城)안으로 들어왔을
지도 모르는 일이오. 게다가 으흐흐흐, 만일 운이 좋다면 우연히도
이 부근에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
말과 함께 청삼청년은 짐짓 신중한 동작(動作)으로 주위를 둘러
보기도 했는데, 금몽추는 그것이 비록 장난섞인 행동(行動)이라고
는 하나 속으로 내심 크게 뜨끔하여 급히 고개를 숙여 음식을 먹는
척했으며, 제발 청삼청년이 우스개라도 자신을 주시하지 않게 되기
를 바랬다.
기실 이 다섯 명의 남녀(男女)들은 바로 무림오대세가(武林五大
世家)의 젊은이들로, 금몽추는 그들이 여기에 있을 것이라는 정보
(情報)를 듣고 일부러 이 곳으로 찾아온 것이다.
남삼청년은 제갈세가(諸葛世家) 출신으로 무림소제갈(武林少諸
葛) 제갈강(諸葛江)이라는 사람이었고, 청삼미녀는 남궁세가(南宮
世家) 출신으로 옥관음(玉觀音) 남궁가기(南宮家琪)라고 했으며,
청삼청년은 남궁가기의 친오빠인 섬전룡(閃電龍) 남궁장천(南宮長
天)이었고, 흑의청년은 하북팽가(河北彭家) 출신으로 철혈신풍(鐵
血神風) 팽무위(彭武威)였으며, 마지막으로 홍의미녀는 사천당문
(四川唐門) 출신으로 추혼연미갈(追魂燕尾蝎) 당화(唐花)라고 했
다.
그들 중에서 무림소제갈(武林少諸葛) 제갈강(諸葛江)과 옥관음
(玉觀音) 남궁가기(南宮家琪)는 바로 각기 사대용봉(四大龍鳳)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이 사대용봉이라고 하는 것은 소위 당
금무림에서 젊은 나이에 그야말로 사상(史上) 유래가 없을 정도로
놀라운 능력(能力)들을 가지고 있는 네 명의 절대기재(絶代奇才)들
을 말한다는 것이다.
금몽추가 오늘 특별히 이 곳으로 와서 그 두 사람을 보고자 하는
것은 실상 그 사대용봉(四大龍鳳)의 나머지 두 사람은 그도 이미
알고 있는 봉황화(鳳凰花) 남서오(藍棲梧)와 소림소신승(少林少神
僧) 공심(空心)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화가 교소(嬌笑)를 터뜨리며 자못 흥미로운 듯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호호, 비록 소문은 믿을 것이 못되지만, 그 자칭 곤륜삼성(崑崙
三聖)이라는 자는 다소 바보스럽기는 해도 또한 나름대로 대단한
능력(能力)이 있다고도 하니 혹시 우습게 볼 상대는 아닐 지도 몰
라요. 하긴 아직도 그 자에 대한 의견이 분분(紛紛)한 상태이고,
게다가 듣자니 그 자는 무슨 수를 썼는지 여기 난주성의 부자(富
者)인 왕노야(王老爺)의 딸을 치료해 주고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하
더군요. 호호호! 만일 그 자가 무림공적(武林公敵)만 아니라면 내
가 한 번 시도해 보았을 텐데...... 기매(琪妹), 그렇게 가만히 있
지만 말고 기매도 한마디 해 봐. 그 곤륜삼성이라는 자는 어딘가
아주 이상한 능력이 있다고도 하던데 기매의 생각은 어떻지?"
남궁가기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거의 무표정한 기색(氣色)으로
대꾸했다.
"그는 발해왕국(渤海王國)의 정통후예(正統後裔)라는 말이 있던
데, 하지만 그것은 거의 믿기 어려운 얘기지요."
남궁장천이 짐짓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가볍게 냉소(冷笑)한
뒤에 다시 말했다.
"아직 무림맹(武林盟)에서 그 자의 처리문제에 대한 결정(決定)
이 내려오지 않은 상황이지만, 만일 그 자가 이 곳에 나타나기만
하면 설사 하늘로 달아나는 재주를 가졌다고 해도 내 보란 듯이 본
가(本家)의 섬전십삼검뢰(閃電十三劍雷)로 즉시 지옥(地獄)으로 보
내주도록 하겠소. 후후, 그런 자는 아직 상대를 제대로 만나지 못
했기 때문에 살아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오."
그 때 갑자기 이 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쪽에서 한바탕 요란한 기
척들이 들려오더니, 이내 서너 명의 험상궂은 모습들을 한 사내들
이 나타나 바로 그들의 앞으로 다가오며 소리쳤다.
"자리를 비켜라! 너희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가서 밥을 먹도록
해라. 만일 서두르지 않으면 이 나리들의 손속이 잔혹(殘酷)하다고
원망해도 소용이 없게 될 것이다!"
느닷없이 어이없는 일을 당하여 모두들 그 쪽을 바라보았지만 제
갈강 등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고, 다만 남궁장천과 당화의 안색(顔
色)이 조금 싸늘해졌다.
솔직히 사대용봉(四大龍鳳)중의 두 사람이나 있는 일행에게 누군
가가 다가와 자리를 비우라고 할 줄이야, 그들이 미처 상상도 하지
못하던 일이었다.
사내들은 손에 들고 있는 병장기(兵仗器)들도 서로 달랐을 뿐만
아니라 그 생긴 모습들도 각기 달랐는데, 눈앞의 젊은 남녀들이 그
저 자신들을 주시할 뿐 전혀 움직일 기색들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
고 그 중의 발풍대환도(潑風大環刀)들 들고 있는 대머리 사내가 앞
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며 노한 기색으로 호통을 내질렀다.
"모두들 귀가 먹었느냐? 어서 자리를 비우라는 이 나리들의 말이
들리지도 않느냐? 지금 당장 일어나지 않는다면 너희들의 대갈통을
모두 박살내 버릴 것이다!"
발풍대환도는 장병기(長兵器)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대머리
사내가 위협조로 큰 칼을 들어 한 번 휘젓자, 그 칼날이 거의 팽무
위 등의 몸에 닿을 듯했다.
남궁장천이 드디어 참을 수가 없는 듯 우수(右手)를 검의 손잡이
로 가져가더니 몸을 벌떡 일으키며 마주 나서서 말했다.
"네놈들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와서 행패를 부리느냐? 다들 죽
고 싶어 환장을 했단 말이냐?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저 밖으로
나가서 순순히 목숨을 끊으면 될 일이지 어째서 이렇게 이 곳에 와
서 우리를 귀찮게 하느냐?"
삽시간에 주루의 내부에는 팽팽한 살기(殺氣)가 감돌고 피의 폭
풍우(暴風雨)가 휘몰아칠 듯하여, 장내의 손님들 중에는 두려움을
느껴서 음식을 먹다말고 서둘러 밖으로 나가 버리는 사람들도 있었
다.
사내들 중에서 앞쪽에 서 있는 두 사람은 체구가 보통이라고 할
수 있었으나, 나머지 두 사람은 하나는 몹시 크고 하나는 반대로
몹시 작았는데, 거구의 사내는 키가 구척(九尺)이나 되었고 반면에
왜소한 사내는 키가 불과 오척(五尺)도 안되는 것 같았다.
발풍대환도를 든 대머리 사내가 남궁장천의 그 서슬 푸른 기세
(氣勢)를 대하고 다소 어리둥절해 할 때, 느닷없이 맨 뒤에 서있어
서 눈에 잘 보이지도 않던 난장이 사내가 번쩍 신형(身形)을 날리
더니 남궁장천에게 다가와 다짜고짜 두 자루의 단검(短劍)을 휘둘
러 대기 시작했다.
얼핏 보기에도 그 두 자루의 단검(短劍)에는 검고 칙칙한 기운이
실려 있어서 극독(劇毒)이 발라진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는
데, 난장이 사내가 체구가 왜소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짧은 병기
(兵器)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그만큼 경신술(輕身術) 분야
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어이가 없을 정도로 무모하게 날뛰는 악당들 치고는 뜻
밖에도 이들 사내들의 무공(武功)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으며, 보아
하니 거의 절정고수(絶頂高手)의 대열에 있는 것 같았다.
두 자루의 독검(毒劍)들을 번갈아 휘둘러 대고 거기에다 신속한
보법(步法)의 잇점을 활용하고 있으니 이 난장이 사내의 검법(劍
法)은 상궤를 벗어난 것으로 괴이음험하고 신랄(辛辣)할 뿐만 아니
라 변화무쌍하기까지하여, 남궁장천은 일순 크게 놀라 검을 뽑아
들었지만 제대로 반격(反擊)도 하지 못하고 신형(身形)을 좌우로
번갈아 서너 번이나 뒤집어서 간신히 그 예봉(銳鋒)을 피해냈다.
장내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그것을 보고 이 도적들의 실력이 상
상외로 높기 때문에 혹시 남궁장천의 능력(能力)으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일반적으로 이와 같이 무공(武功)이 높은 도적들은 함부로 날뛰
지 않는 법이고, 또한 함부로 날뛰는 녀석들일수록 대개는 그 실력
이 형편없기 마련인데, 이런 절정고수(絶頂高手)급의 도적들이 다
짜고짜 오대세가(五大世家)의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어와서 싸움을
벌이다니, 이는 혹시 이런 것을 핑계로 이전의 은원(恩怨)을 해결
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되기도 했다.
비록 그 난장이 사내의 공격이 몹시 흉험(凶險)하고 신랄하기는
해도 이 무림의 오대세가(五大世家)라는 이름은 결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며, 남궁장천 역시 남궁세가(南宮世家)의 출신으로 그리
녹녹하지 않은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보기와는 달리 사실은
그리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다.
상대의 행동이 신속하기는 하지만 남궁장천은 이미 가전(家傳)의
정통보법인 무한보(無限步)를 밟아가고 있었고, 본래 그가 연마(練
磨)한 검법(劍法) 섬전십삼검뢰(閃電十三劍雷)는 그 우뢰같은 위력
과 더불어 쾌속(快速)함을 생명으로 삼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상
대의 괴이음험한 공격에도 밀리지 않았다.
어쨌든 한차례 크게 놀란 남궁장천이 정신을 모아서 반격의 기회
를 마련하고 자신이 자랑하는 섬전십삼검뢰를 펼쳐 날벼락처럼 주
위를 강력(强力)한 수십개의 뇌검기(雷劍氣)로 뒤덮어 버리자, 그
난장이 사내도 다소 뜻밖인 듯 이번에는 더욱 맹렬하면서도 신중한
공격(攻擊)을 퍼붓기 시작했으므로, 장내에는 그야말로 갑자기 치
열한 접전이 전개되어 검광(劍光)이 난무(亂舞)하고 살기(殺氣)가
충천하기 시작했다.
팽무위와 당화 등은 비록 아직 나서지는 않고 지켜보고 있었지만
정말 의외로 이 도적들의 무공이 높은 것을 보고, 혹시 이자들이
과거의 원한을 풀기 위해 고의적으로 이러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
각되어 여러 가지로 기억(記憶)을 더듬어 보며 은근히 눈살을 찌푸
리고 있었다.
비록 남궁장천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상
대가 휘두르고 있는 독검들은 필시 그저 살갗에 가볍게 스치기만
해도 중독(中毒)되는 치명적(致命的)인 극독이 발라져 있을 것이기
에, 그들은 은근히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아무래도 나서서 도
와줘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강호(江湖)라고 하는 곳은 평상시에는 그저 아무런 일도 없는 듯
이 조용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마치 폭풍전야(暴風前夜)의 고요함
과도 같이 살기(殺氣)가 팽팽하게 안으로 갈무리되어 있는 것과도
같은 것으로, 일단 싸움이 벌어지게 되면 이와 같이 서로가 목숨을
내걸고 벌이는 생사박투(生死搏鬪)가 되기 일쑤인 것이다.
주위에서 관전하고 있는 사람들은 잘 몰랐지만 기실 난장이 사내
의 독검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독기운(毒氣運)이 진하게 번져나와
시야를 가리고 의식을 흐리게 하고 있었는데, 남궁장천은 무공이
이미 절정(絶頂)의 경지(境地)에 올라 있고 공력이 삼갑자(三甲子)
에 이르고 있는 데다가 가전의 정통검법(正統劍法)은 이미 그 위력
이 유명하게 알려져 있는 것이므로, 정신을 모아 하나씩 초식(招
式)을 펼쳐 나가자 점차로 기선을 제압해 가기 시작했다.
조금전에 큰소리를 쳤던 남궁장천으로서는 이렇게 무한정 시간을
끌게 되는 것도 다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으므로, 그는 상황이
다소 유리하게 되자 약간 무리를 해서라도 좌수(左手)에 은근히 삼
합지(參合指)의 공력(功力)을 일으켜서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의 요
혈(要穴)들을 제압하고 빨리 승세를 굳히려고 했다.
이 삼합지(參合指)라고 하는 것은 남궁세가에서 가장 오래도록
전해져 내려온 무공들 중의 하나로, 비록 위력은 그다지 강한 편이
아니지만 변화무쌍(變化無雙)하다는 잇점이 있어서 지력(指力)이
곳곳에서 하나인가 하면 여럿이고, 여럿인가 하면 다시 하나로 합
쳐져서 마치 상대의 전신요혈(全身要穴)들을 그물망처럼 에워싸고
포박해 버리는 기이한 절기(絶技)였다.
검법을 펼치는 도중에 다른 곳에 신경을 쓰고 있으면 그 위력이
줄어들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가 절초(絶招)인 제구초
(第九招) 섬전추혼삭(閃電追魂索)을 펼쳐 구름같은 위세로 상대를
이리저리 몰아붙였을 때 난장이 사내가 이윽고 오히려 그 흐름을
타고 역류(逆流)하여 신랄하게 반격(反擊)해 오는 것을 보자, 남궁
장천은 드디어 예상보다 자신이 노리던 그 기회가 빨리 왔다고 생
각했다.
하지만 그가 마악 계획했던 대로 제십초(第十招) 섬전탈혼망(閃
電奪魂芒)을 펼쳐 수십개의 뇌검기(雷劍氣)로 상대의 치명요해(致
命要骸)들을 휘감아 버리는 듯 일제히 두들기다가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미끄러지며 반대편으로 돌아가 회심의 삼합지(參合指)를 펼
치려고 할 때, 느닷없이 좌측의 머리부분에 서늘한 느낌이 전해오
면서 마치 쇠망치와도 같은 둔중한 물체가 갑자기 거의 기척도 없
이 날아들었다.
그것은 바로 뒤쪽에 서있던 구척장신의 거대한 사내가 상황을 주
시하고 있다가 쇠사슬에 연결된 철곤(鐵棍)과도 같은 것을 날린 것
이었는데, 그 철곤은 좌우로 예리한 칼날이 하나씩 박혀 있을 뿐만
아니라 옆에는 흡사 솜털과도 같은 작은 가시가 무수히 돌출되어
있어서 필시 평범(平凡)하지 않은 위력의 기형병기(奇形兵器)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일반적으로 체구가 큰 사람은 둔하다고 생각하기가 쉽지만 그 거
대한 사내는 전혀 그렇지 않은 듯 결정적인 순간에 정확(正確)하고
도 소리없이 그것을 날렸을 뿐만 아니라, 조금전에는 그는 미리 그
것을 소매속에 감춰두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라도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리라고는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 거대한 사내가 철곤을 날리기가 무섭게, 마치 그것이 신호라
도 되는 듯 나머지 발풍대환도를 든 사내와 귀두도(鬼頭刀)를 든
사내가 거의 동시에 양쪽에서 남궁장천을 향해 덮쳐들었다.
팽무위와 당화는 미리부터 내공(內功)을 끌어올린 상태에서 이제
마악 나서서 남궁장천을 도와주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지만, 막
상 그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그들은 약간 당혹스러워졌다.
설사 그들이 양쪽에서 남궁장천을 향해 달려드는 두 사내의 공격
(攻擊)을 막아줄 수 있을 지라도, 그토록 빠르고 갑작스럽게 뒤에
서 날아온 철곤과 그밖의 다른 상황변화들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
었던 것이다.
남궁장천은 지극히 짧은 순간이지만 그 와중에서도 문득 난장이
사내의 입가에 떠오른 음산(陰散)하고도 득의한 미소(微笑)를 보았
으며, 비로소 자신이 지나치게 서둘러서 오히려 상대의 함정(陷穽)
에 걸려들고 말았다는 것을 알았다.
난장이 사내는 기실 남궁장천의 행동(行動)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벌써 눈치채고 오히려 그것을 역(逆)으로 이용할 생각을 하고
있었으며, 남궁장천이 초식(招式)을 흘리며 미끄러져 삼합지를 펼
치려고 할 때 그 허초(虛招)에 속아주는 척하면서 실상은 슬쩍 아
까의 자리로 되돌아가 좌측의 단검을 내던져 버리고 남궁장천의 코
앞으로 바싹 파고들었던 것이다.
단검이 사라져 버린 난장이 사내의 왼손에는 어느덧 붉은 빛깔의
작은 침통(針筒)같은 것이 들려져 있었는데, 그것은 이를테면 무형
정(無形釘)이나 사천당문(四川唐門)의 폭우이화침(暴雨梨花針)과
같은 위력적인 암기(暗器)일 것이며, 게다가 설령 남궁장천이 난장
이 사내의 왼손의 암기와 오른손의 독검을 모두 막아낼 수가 있다
고 해도 이기어검술(以氣馭劍術)의 수법으로 날린 또다른 독검이
그의 배후를 노리고 선회하여 돌아 오는 것은 도저히 막아낼 수가
없을 것이니, 실로 이는 그 난장이 사내의 가장 자랑하는 회심의
수법인 셈이었다.
이러한 한순간의 긴박한 상황의 전개는 실로 순식간에 명암(明
暗)이 반전(反轉)되고 벌어지는 것이기에 그 모든 변화(變化)를 다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 네 명의 사내들의 합격술(合擊術)은 비단 상상을 뛰어넘을 뿐
만 아니라, 미리부터 오래도록 익숙해지도록 연마해온 듯 거의 빈
틈이 없이 잘 짜여져 있었으며 또한 위력이 가공(可恐)스러웠다.
갑자기 어찌된 일인지 혼란(混亂)스러운 장내에 한 줄기 푸른 선
(線)이 이어지듯 청영(靑影)이 어른거리더니, 백색(白色)의 무지개
가 펼쳐지듯 일진(一陣)의 검세(劍勢)가 눈부시게 일어나며 맑은
금속성과 함께 거대한 사내가 날렸던 철곤이 박살이 나고 난장이
사내의 양손에 들린 작은 암기와 독검이 날아갔으며, 또 하나의 허
공에서 돌아오던 독검이 방향(方向)을 바꾸었다.
팽무위와 당화는 이미 하나씩 상대를 골라 격전장(激戰場)에 뛰
어 들었으며, 남궁장천이 다소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에 으악! 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난장이 사내가 오히려 자신이 날린 독검에 가슴을
관통당하고 뒤로 벌렁 나가떨어졌다.
남궁장천은 물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그와 같은 놀라운 신법
(身法)과 검세(劍勢)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은 제갈강과 남궁가기,
두 사람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순식간에 격전장으로 스며들어와 그처럼 신묘(神妙)한 검법(劍
法)을 펼쳐 보인 사람은 다름아닌 그의 누이동생인 남궁가기(南宮
家琪)였으며, 그녀의 놀라운 무공(武功)에 대해서는 이미 수십차례
나 놀라고 적응이 되었으니 이제 새삼스럽게 더 놀라울 것은 없었
다.
다만 지금 남궁가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장검을 거두고 그 자
리에 조용히 서 있었는데, 그 뒤로 철곤을 날렸던 그 거대한 사내
가 어느새 대붕(大鵬)처럼 몸을 날리며 그녀의 가녀린 몸을 덮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거대한 사내는 비단 감각(感覺)이나 철곤을 날리는 솜씨도 뛰
어날 뿐만 아니라,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경신술(輕身術)도 놀라워
서 그 엄청난 몸집으로 이내 그대로 남궁가기의 전신을 짓누르려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남궁가기의 능력(能力)으로 그런 공격에 당할 리도 없겠
지만, 거대한 사내는 미처 그녀의 몸 위에 이르기도 전에 허공(虛
空)에서 마치 급살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경련을 일으키며 신형(身
形)이 갑자기 그 자리에 멈춰졌고, 뒤늦게 당도한 남궁장천의 검날
아래 가슴이 관통되었으며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쿵, 하고 바닥으
로 떨어져 내리고 말았다.
남궁세가(南宮世家)의 섬전십삼검뢰는 다소 특이한 검류(劍流)를
따르고 있어서 황화예(黃化 )의 경지에서는 뇌검기(雷劍氣)라는
것이 발출되는데, 일단 거기에 관통된 물체는 마치 벼락을 맞아 터
진 것처럼 구멍이 뻥 뚫리게 되는 것이므로 이제 마악 시체가 되어
버린 거대한 사내의 가슴에도 그러한 구멍이 나 있었고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전에 그 거대한 사내는 대체 어째서 도중에 공격(攻
擊)을 멈추고 마치 갑자기 심장발작이라도 일으킨 사람처럼 허공
(虛空)에 그대로 정지(停止)한 채로 무방비의 상태가 되어 버렸던
것일까?
아직도 크게 벌리고 있는 사내의 입속을 보면 어느 사이엔가 작
은 비수(匕首) 하나가 박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상 그것이야말로 거대한 사내가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며 정지
(停止)하게 된 이유이며, 알고보면 그것으로 인해 거대한 사내는
이미 비명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황천(黃泉)길로 가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 가공(可恐)스러운 비도술(飛刀術)은 그야말로 흔적(痕迹)도
없고 기척도 없이 날아가 목표물에 정확하게 격중되었으며, 장내에
서 남궁가기가 무공(武功)을 펼치는 것을 알아본 사람들은 그래도
제법 있었지만, 그 비도가 날아가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거의 없
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 비도는 아직도 의자에 앉아 있는 제갈강(諸
葛江)의 손끝에서 날아간 것이었으며, 그것은 제갈세가(諸葛世家)
의 비전절기(秘傳絶技)의 하나인 비도파천황(飛刀破天荒)으로, 정
확한 명칭은 소리비도(小莉飛刀)이다.
과거 제갈세가의 선조(先祖)들 중에 소리선생(小莉先生)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별로 강호(江湖)의 일에 나서지 않는 편이
었지만 유독 이 비도술(飛刀術) 하나만은 가공스러울 정도의 위력
을 가지고 있어서, 소위 파천황(破天荒)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
던 것이다.
본래 이 소리비도는 대홍락(大紅落)의 경지에서 발출하는 것으로
자연 그와 같은 위력이 있었던 것인데, 그 후손들은 명맥을 잇지
못하다가 당금에 이르러 비로소 제갈강이라는 귀재(鬼才)가 나타나
다시 그 신비(神秘)한 절기를 재현시킨 것이다.
그 거대한 사내가 시체로 변하여 바닥에 떨어져 내리자, 그와 거
의 때를 같이하여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의 입구(入口)에 홀연
사람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더니 십여 명의 사람들이 다시 나타났
다.
이 곳의 상황이 갈수록 흉험(凶險)해져서 비교적 대담한 사람들
도 이제는 그만 나가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마당에 그들은 한
꺼번에 물밀 듯이 나타났으며, 게다가 저마다 기색(氣色)들이 좋지
못한 것을 보니 아마도 좋은 마음을 품고 나타난 사람들은 아닐 것
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 중의 일부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거
대한 사내의 시신(屍身) 등을 발견하고는 두 눈에서 각기 흉악(凶
惡)한 살기(殺氣)를 떠올리며 남궁장천 등을 노려보는 것을 보니
십중 팔 구는 그 사내들과 한 패일 것 같았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새로 나타난 사람들의 맨 앞에 서 있던 대
머리 노인(老人)이 문득 크게 분노(憤怒)한 기색(氣色)으로 날벼락
처럼 호통을 내질렀다.
"멈춰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노릇이냐?"
이 무렵 자신이 던진 독검(毒劍)에 얻어 맞은 난장이 사내의 육
신(肉身)은 시커멓게 변하다 못해 이제 점차로 흐물흐물 녹아들어
가고 있었다.
본래 그 독검에 발라져 있던 극독(劇毒)이 제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그토록 빠른 위력을 나타낼 수는 없는 일인데, 난장이 사내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남궁가기에게 당하여 이미 치명적인 내상(內
傷)을 입은 상태였고, 그렇게 공력(功力)이 흩어진 상태에서 독검
을 얻어 맞게 되자 그만 절명(絶命)함과 동시에 그 극독이 빠르게
그의 육신을 잠식해 갔던 것이다.
당화(唐花)는 발풍대환도(潑風大環刀)를 든 사내를 맞이하여 허
리춤에 감아 두었던 채찍으로 격렬하게 일전(一戰)을 벌이고 있었
는데, 비단 그녀의 무공수위가 그 대머리 사내보다 우월할 뿐만 아
니라 간간이 그녀의 좌수(左手)에서 펼쳐져 나오는 암기(暗器)들은
위력적이어서 머지 않아 결말이 날 것 같았다.
사천당문(四川唐門)에는 실제로 추혼연미표(追魂燕尾 )라는 암
기수법(暗器手法)이 있고 그것을 또한 당화, 그녀가 주무기로 쓰기
는 하지만, 기실 그녀에게 추혼연미갈(追魂燕尾蝎)이라는 별호가
붙은 것은 그것보다는 차라리 그녀의 용모(容貌)가 아름다운 반면
에 성격이 집요하고도 악랄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발풍대환도를 든 사내는 비록 가장 먼저 나서기는 했지만 무공
(武功)이 비교적 다른 사내들보다 낮은 편이어서, 지금 구독갈미
(九毒蝎尾)와 자모표(子母 )라는 암기수법(暗器手法)들에 의해 몇
개의 강표(鋼 )들을 얻어맞고, 사천당문(四川唐門)의 회타연편십
삼식(廻打軟鞭十三式)이라는 편법(鞭法)의 현란(絢爛)한 채찍공세
에 이리저리 휘감기며 제대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있
는 상황이었다.
팽무위(彭武威)의 무공은 당화나 남궁장천보다도 우월하여 이미
백연탄(白筵 )의 최상승경지(最上乘境地)에 올라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아직 상대를 제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뜻밖에도
귀두도(鬼頭刀)를 사용하는 그 사내가 예상외로 무공이 높은 자여
서, 그도 역시 기실 백연탄의 경지에 거의 근접해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실로 진실한 무공의 수준으로 볼 때는 처음에 나타난 네 사내들
중에서 그 귀두도를 사용하는 사내의 무공이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는데, 어쨌든 팽무위는 비록 사대용봉(四大龍鳳)에는
미칠 수가 없겠지만 그래도 무공의 자질(資質)이 뛰어나고 침착하
고 사려깊어서 하북팽가(河北彭家)의 소문난 인재(人才)로 통하는
사람이었다.
가문(家門) 전래의 건곤미허신공(乾坤彌虛神功)은 이미 수준급에
올라 있었으며 도강(刀 )으로 펼쳐지는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의
위력적인 공세(攻勢) 아래 상대방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었고, 이제
마악 혼원보(混元步)를 밟아 가 결정적인 공격을 퍼부으려고 하고
있었다.
하북팽가(河北彭家)는 예로부터 도법(刀法)의 명가(名家)로, 오
호단문도법(五虎斷門刀法)으로 시작하였으며 철혈적성도(鐵血摘星
刀),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등의 많은 도법들을 창출해 냈고, 지
금은 건곤연환탈백도(乾坤連環奪魄刀)를 가문 최고(最高)의 도법으
로 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마악 상대의 드러난 헛점을 파고들며 혼원도겁(混元
渡劫)이라는 일초(一招)를 펼쳐 사내의 목과 가슴, 허리의 세 부분
을 노리고 동시에 삼엄한 도강(刀 )으로 뒤덮었을 때, 느닷없이
어디선가 소리없는 일장(一掌)이 밀려들었다.
그 일장의 기세(氣勢)는 실로 기이하여 팽무위는 그것이 가까이
다가오도록 느끼지 못했으며, 빠르고 또한 위력(威力)이 가공스러
워서 일단 그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가슴앞까지 엄습하였는데, 팽
무위가 일순 뭔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다급히 그 흐름을 거스
르지 않고 그 자세 그대로 주르르 뒤로 물러나며 혼원보로 그 기운
(氣運)을 이리저리 분산(分散)시키려 하였으나, 오히려 그 장력(掌
力)은 물귀신처럼 고스란히 따라 붙으면서 더욱 강력해 져서 마치
질식할 것 같이 숨이 막히게 만드는 것이었다.
팽무위는 그만 안색(顔色)이 변하여 다급히 호신강기(護身 氣)
를 일으켜 가슴을 보호하는 동시에 보법(步法)을 최대한으로 일으
켜서 마치 허공(虛空)에서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落葉)처럼 신형
(身形)을 이리저리 십여 번이나 빠르게 뒤집고 나서야 비로소 그
막대한 위력을 줄일 수가 있었다.
"사천당문의 비서장(飛絮掌)에 하북팽가의 미허신보(彌虛神步)
라...... 흥, 정말로 오대세가(五大世家)의 신진(新進)들이로군!
무림(武林)의 오대세가가 언제부터 이렇게 사람을 무시하고 함부로
날뛰었단 말인가?"
고개를 들어 보니, 당금 나타난 사람들 가운데 앞에 서 있는 그
대머리 노인(老人)이 천천히 우수(右手)를 내리며 냉소(冷笑)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필시 조금전의 그 무시무시한 일장은 그 노
인이 발출한 것 같았다.
당화 역시 일장을 받은 듯 발풍대환도를 든 사내를 처치하지 못
하고 안색(顔色)이 창백해진 채로 뒤로 물러서 있었는데, 어느새
그녀의 옆에는 언제 다가왔는지 제갈강이 다소 싸늘한 기색을 하고
서서 대머리 노인을 주시하고 있었다.
발풍대환도를 들고 있는 사내는 겨우 목숨을 부지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저 자신의 일행이 있는 쪽으로 달아나기에 바빴고, 귀두
도를 든 사내는 비록 한순간 위기(危機)에 처하기는 했으나 다행히
부상(負傷)은 별로 입지 않았으므로, 즉시 그 쪽으로 다가가서 전
음입밀(傳音入密)로 그간의 사정을 대머리 노인에게 보고하는 것
같았다.
대머리 노인은 귀두도의 사내에게 간단히 모든 사정을 다 듣고
나자 입가에 다시 음산(陰散)한 표정을 떠올리더니, 문득 죽은 거
구의 사내의 입속에 박혀 있는 비수(匕首)를 힐끗 주시한 다음에
제갈강을 향해 음침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소리비도(小莉飛刀)...... 소리비도라? 으흐흐! 과연 그대는 요
즘 유명하다는 무림소제갈(武林少諸葛)이로군. 그대는 나이도 아직
젊은데 잘도 내 수하들을 해쳤군?"
그 말은 상대방을 추겨세우는 것이 아니라 교묘(巧妙)하게 반쯤
올려주는 듯하면서 상대방의 행위를 추궁하는 것이었다.
제갈강(諸葛江)은 문득 입가에 기이한 미소를 떠올리더니 담담한
어조로 대꾸했다.
"과찬의 말씀이오. 귀하들은 혹시 백사당(百邪堂)의 대막삼선(大
漠三仙)이 아니시오? 대막(大漠)에만 있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 이
렇게 중원(中原)으로 나오다니 뜻밖의 일이오."
제갈강의 입에서 그와 같은 말이 흘러나오자, 순간 장내(場內)에
아직 남아있던 사람들의 얼굴에는 경악과 두려움의 빛이 일제히 떠
올랐다.
이 지역 사람들은 흔히들 신강(新疆)에는 흑사방(黑沙幇)이 있지
만, 대막(大漠)에는 백사당(百邪堂)이 있다고들 한다.
흑사방(黑沙幇)이 녹림맹(綠林盟)의 녹림오패(綠林五覇)의 하나
이며 그 방도(幇徒)들이 수천 명에 달하는 반면에, 백사당(百邪堂)
은 녹림맹의 소속도 아니고 그 인원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다
른 지역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실상 백사당을 알고 있는 사
람들은 그래도 오히려 흑사방보다는 백사당을 훨씬 더 두려워 한
다.
그것은 백사당의 그 얼마 되지 않은 인원들이 하나같이 악귀(惡
鬼)와도 같은 무시무시한 흉적(凶賊)들로 이루어져 있을 뿐만 아니
라, 그들의 위에는 악귀들의 우두머리라고 할 수가 있는 대막삼흉
(大漠三兇)이 있기 때문이다.
대막삼흉은 자신들을 자칭 대막삼선(大漠三仙)이라고 하는데, 그
들은 백사당을 이끌며 이제까지 온갖 흉악(凶惡)한 짓들만 골라서
저질러 왔을 뿐만 아니라, 하나같이 무공(武功)들도 대단하여 대막
(大漠)에서는 가히 공포(恐怖)의 상징으로 통하며 누구도 감히 제
지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물론 그들은 중원에서도 다소나마 그 정통성(正統性)을 인정받고
있는 문파(門派)인 대막백타궁(大漠白駝宮)과는 별개의 세력인 것
이며, 본래 대막백타궁은 그 성향이 정사중간(正邪中間)이라 주위
의 상황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었다.
기실은 이 대막삼흉은 그동안 거의 대막의 패자(覇者)로 군림(君
臨)해 오다가 이번에 복우산(伏牛山) 천왕봉(天王峰)에서 개최되는
영웅비무대회(英雄比武大會)에 참가하여 자신들의 일종의 야심(野
心)을 펼쳐 보려고 믿을 만한 수하들인 대막십이혈(大漠十二血)을
대동하고 강호(江湖)에 나섰던 것이었으며, 그 첫 걸음으로 난주성
에 들어섰는데 그들의 앞서서 자리를 만들러 간 수하(手下)들이 제
버릇 개 못준다고 대막에서처럼 흉폭(凶暴)하고 거칠게 날뛰다가
그야말로 임자를 제대로 만나서 일이 그만 이렇게 확대되고 만 것
이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혹시 이전에 무슨 은원(恩怨)관계가 있어서 그
러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으나, 실제로는 원인이 너무나도
단순하여 보이는 바 그대로 사내들이 마구잡이로 자리를 만들려고
함부로 날뛰다가 벌어진 일이었으며, 그러한 점은 조금전에 서로의
신분을 확인함으로써 자연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었다.
대머리 노인은 바로 대막삼흉의 우두머리인 일흉(一兇) 두천당
(杜千當)이었는데, 아까 팽무위는 그래도 혼자서 그의 일장을 어렵
게나마 감당할 수가 있었지만 당화는 무공이 낮아서 그럴 수가 없
었으므로 제갈강이 나서서 대신 그 장세(掌勢)를 해소시켜 주었는
데, 그러는 과정에서 제갈강과 두천당은 은연중에 서로 간접적으로
겨루게 된 셈이라 상대방의 무공(武功)을 다소 파악하게 되었고 신
분을 분명히 알게 된 것이었다.
두천당의 약간 뒤쪽 좌우에는 역시 무공이 상당해 보이는 듯한
두 노인(老人)들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필시 대막삼흉 중의 나머
지 두 명일 것이며, 좌측의 마른 체구에 음침(陰沈)하고 싸늘한 인
상의 노인이 이흉(二兇)인 학정홍( 正鴻)일 것이고 우측의 왜소한
체구에 눈빛이 음흉(陰凶)하고 악랄해 보이는 노인이 삼흉(三兇)인
주태(周泰)일 것이다.
두천당은 잠시 뭔가 생각을 굴리는 듯 제갈강을 묵묵히 노려보다
가, 일순 음산(陰散)하게 웃으며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어쨌든 흐흐, 이 일은 서로간의 작은 오해(誤解)에서 비롯된 일
이고 또한 그대들은 내 수하(手下)들을 두 사람이나 죽였으니 유감
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오."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즐감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