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에 문제가 많다고들 말한다. 대체로 이렇게 말할 때 '정치'란 대통령, 국회의원을 포함한 제도권 정치를 의미한다. 좀 더 넓게 생각한다고 해도 시민단체와 언론, 학계, 재벌 등 제도권 정치판에 영향을 주는 주변 요인들을 포함하는 것에 그친다. 올인하는 대통령, 편 갈라 싸우는 국회의원, 낮과 밤이 다른 시민단체, 스나이퍼 언론, 검은 돈의 출처 재벌, 정치 지망생 학자들 등이 문제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정치'는 이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민주주의 시대에 더 중요한 변수는 '국민'이다. 올인하는 대통령과 편 갈라 싸우는 국회의원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국민이 직접 뽑아준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민의 미시적 여론에 울고 웃는다. 때로는 그 여론으로 대선후보를 정하기도 하지 않는가.
정작 문제는 '국민'에게 있을 수도 있다. 국민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오로지 제도권 정치인들과 그들 주변만이 문제라고 말하는 것이 도리어 어색하지 않은가?
'국민이 문제'라는 두 가지 시각
용감하게 '국민이 문제'라며 나선 사람은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다. 그녀는 대통령에 비해 한 시대 뒤진 사람들로 국민을 표현했다. 권력의 한 복판에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봉급을 주는 국민을 상대로 할 수 있는 말도 아니었을 뿐더러, 그녀의 주장은 '대통령 경호' 차원의 당파적 발언이었을 뿐, 어떤 실체적 근거도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국민은 실제로 문제가 있다. 국가의 미래를 국민이 직접 결정해야 한다며 투쟁했던 1987년의 그 위대한 국민이, 2005년에는 그 위대한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와 권력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 동원되고, 언론의 장단에 춤추며, 10대 소녀들처럼 정치인 팬클럽에서 패싸움을 즐기는 문제 많은 존재가 되버렸기 때문이다.
'참여'와 '동원'의 차이
현 정부는 '참여정부'를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그 실체는 '동원정부'다. 먼저 정치지망생 학자들과 시민단체가 어떤 사안에 관하여 각종 궤변으로 '정당화'를 하면, 공중파 방송을 중심으로 언론이 이를 증폭해 '젊고, 배우고, 개혁적이며, 열린 사람들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생각'처럼 포장한다. 정당화와 포장 단계를 거친 주장들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싸우는 일은 사회적 갈등이나 국론분열이 절대 아니라 '정의'를 실천하는 과정 혹은 인적청산이나 역사청산이라고 믿게 만든다.
국민이 스스로의 의지로 제도권 정치를 바꾸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참여'라면, 권력의 필요에 의해 국민이 움직여주는 것은 '동원'이다. 2002년 각종 반미집회와, 2004년 탄핵 반대집회가 대표적인 사례다. 굳이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이지 않더라도 사이버 공간에서는 이런 동원이 매일 계속 되고 있다.
국가는 없고 당파만 남는다
왜국(倭國)의 전쟁 준비 상태는 어떠한가에 대해서, 당파적 관점에 압도당한 이들이 어땠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무려 500여년 전의 역사적 상황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보다도, 그것이 무능한 관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전체를 향해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개혁을 표방한 언론은 국무총리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 침묵하고, 샥스핀 파티를 벌인 정파를 지지하는 이들은 70년대에 박정희가 마신 시바스 리갈이 나라를 망쳤다고 아직도 화를 낸다. 정동영의 한국 외교가 거둔 '하루짜리 위대한 승리'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면 자기 정파를 미워하는 정적의 음모로 받아들인다. 이런 식으로는 국정과 관련한 정상적인 담론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모든 것이 정적 제거만을 위해 존재하는 극한의 투쟁만 남게 된다. 아직 조직력이 미미할 뿐 이런 편향성은 여당쪽만의 문제도 아니다.
정치인 팬클럽 해체를 시민운동으로
노사모를 필두로 한 정치인 팬클럽 활동은 우리 사회에 포퓰리즘의 저변을 넓히고, 정상적인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든 문제점이 있음에도, 정치인들에게는 매우 유혹적인 조직이라서 누구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포기하고 이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다. 지지자들의 조직 하나가 아쉬운 정치인들이 자발적이고 맹렬하게 자신을 지지해주는 이들을 어떻게 거부할 수 있겠는가.
소위 '빠'라 불리우는 열성 팬들은 전성기가 지나고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는 연예인을 오직 한때 좋았던 추억만으로 계속 기억해주고 아껴줄 수도 있지만, 정치인의 팬을 자처하는 '빠'가 정치적 실수나 국정실패를 앞장 서서 변호하고 문제를 호도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우겠다고 팔을 걷어붙히는 것은 자신들의 소아적 즐거움을 위해 국가 전체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으로서 결코 방치해서는 안될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특정 '정치인'보다는 그들이 표방하는 정책이나 이슈에 동조 혹은 반대해야 건전한 정치문화가 형성된다. 정치인이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인의 팬클럽 안에서 정치인을 위해 존재하고 활동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심각한 전도가 아닐 수 없다. 주인인 국민에게 문제가 있으니 정치 전반이 문제 투성이인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