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
- 김완수
자주 주소를 두고 올 때가 있다
삶의 번지수를 우산처럼 잊고 나와
생각 없이 비를 흠뻑 맞을 때가 있다
주소를 허물 벗듯 살다 보면
초록草綠도 그늘도 없는 나무가 된다
소속 없이 걷는 일은
이념 없이 사는 것과 같다
무연고의 계절을 나던 날들
어느 열대 바닷가에 있어도
냉담冷淡의 해풍에 녹슬어 갔다
내 삶의 궤적은 뜬풀이 떠다닌 길
때론 집을 두고 온 것 같아
골목으로 급히 들어서 보지만
고장 난 초인종을 누르듯 헛헛했다
주머니에서 허겁지겁 집을 찾은 적 있었다
주소가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내게 열정熱情의 우체부가 다녀간 것 같은 날
가슴 한편의 우편함을 뒤적이다가
열없이 빈손으로 돌아서는 일처럼
내 기척만 확인하는 일은 슬펐다
사냥감을 놓친 짐승처럼
어두운 집에 터벅터벅 돌아온 날 많아도
허허 웃으면 불을 켠 날이 있다
어쩌면 산다는 건 나를 도드라지게 하는 일
가끔은 내가 주소라는 게 행복할 때가 있다
ㅡ계간 《문예바다》(2024, 봄호), 공모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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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고 있는 곳을 주소로 삼으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본적을 이야기합니다
태어난 곳이 '고향'이라하니 어린아이들이 '산부인과'를 고향으로 알더라는 우스개도 있습니다
이젠 그런 산부인과도 사라지는 시골살이이기도 합니다
엊그제 카페 운영자로부터 무례한 카페회원에 대한 비난과 대처를 상담받고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문학카페이니 회원들의 자유로운 생각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 생각에 대한 서로의 생각 차이를 통해 개인적 창작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호간의 토론도 없이 일방적인 비판으로 거부감이 생기면 카페개설 이유가 사라집니다
여럿이 어눌리는 공간이면 그게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상호존중과 이해가 필요합니다
평소에는 기척도 없이 지내다가 우편함에 쌓인 자취를 두고 왈가왈부할 순 없습니다
열정의 우체부도 있어야 하고, 침묵의 경비원도 필요하며 푸근한 웃음의 주인장도 있어야지요
어쩌면 내가 오늘 산다는 것도 마음 편히 드나들 곳이 있어서 마음 편한 게 아닐까요?
우리의 주소지에서 존재의 궤적을 살펴보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