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1896), ‘가을 잎(Autumn Leaves)’,
1856년, 캔버스에 유채물감, 104×74㎝, 영국, 맨체스터 시립 미술관.
문학은 오랫동안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의 원천이었다. 19세기 영국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1896)에게도 문학이 중요했다. 그는 특히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희곡(戱曲)이나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 1809-1892)의 시(詩)를 시각적으로 해석한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다.
‘가을 잎(Autumn Leaves)’(1856년·사진)은 그가 27세 때 그린 것으로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림은 해 질 무렵, 소녀들이 정원에서 낙엽을 모아 태우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왼쪽의 두 소녀는 불 앞에서 볼이 빨개진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노을빛을 뒤에서 받아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두 소녀는 화가의 처제 앨리스와 소피 그레이다. 중산층 복장을 한 이들과 달리, 오른쪽 두 소녀는 노동자 계층 옷을 입고 있다. 아마도 인근에 사는 소녀들일 테다. 황혼 무렵의 어두운 하늘과 황금빛의 낙엽 더미, 양쪽으로 나뉜 소녀들의 시선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가을의 서정과 함께 소녀들의 감정까지 느끼게 하는 매혹적인 그림이다.
이 그림은 완성된 바로 그해 왕립아카데미 전시에 출품돼 큰 인기를 끌었다. 유명 평론가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은 ‘황혼을 완벽하게 그린 첫 사례’라며 극찬했다. 밀레이가 참조했던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의 시는 ‘눈물이, 부질없는 눈물이(Tears, idle tears)’라는 서정시로, 복된 가을 들판을 바라보다가 가버린 날들을 추억하며 부질없는 눈물을 흘린다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가을의 서정을 아름답게 묘사한 것 같지만, 동시에 인생의 덧없음과 회한도 상징하는 그림인 것이다.
✺ 눈물이, 부질없는 눈물이/ 알프레드 테니슨
눈물, 부질없는 눈물이 왜 흐르는지 모르겠네,
신성한 절망의 심연에서 흐르는 눈물이
가슴으로 솟아올라 눈에 고이네,
행복한 가을 들녘을 둘러보며,
사라지고 없는 날들을 생각할 때.
지하세계에서 친구를 실어 오는
배의 돛에 반짝이는 첫 햇살처럼 새롭고,
사랑하는 이들을 싣고 수평선 아래 사라지는
돛배를 붉게 물들이는 마지막 햇살처럼 슬프네.
너무나 슬프고 새롭네, 사라지고 없는 날들이여.
아, 슬프고 낯설게 들리네, 죽어가는 귀에,
여름날 어두운 새벽, 잠에서 덜 깬 새들의
첫 지저귐 소리는, 임종하는 눈에 창문틀이
희미하게 빛나는 네모꼴로 천천히 변해갈 때.
너무나 슬프고 낯서네, 사라지고 없는 날들이여.
죽은 후에 기억나는 키스처럼 소중하고,
다른 사람에게만 허락된 입술에 헛되이 바라는
생각만의 키스처럼 감미로워라. 사랑만큼 깊고,
첫사랑처럼 깊고, 온갖 후회가 마음을 흔드는,
아, 삶 가운데 죽음이여, 사라지고 없는 날들이여.
✺ Tears, idle tears/ Alfred Tennyson(1809-1892)
Tears, idle tears, I know not what they mean,
Tears from the depth of some divine despair
Rise in the heart, and gather to the eyes,
In looking on the happy Autumn-fields,
And thinking of the days that are no more.
Fresh as the first beam glittering on a sail,
That brings our friends up from the underworld,
Sad as the last which reddens over one
That sinks with all we love below the verge;
So sad, so fresh, the days that are no more.
Ah, sad and strange as in dark summer dawns
The earliest pipe of half-awakened birds
To dying ears, when unto dying eyes
The casement slowly grows a glimmering square;
So sad, so strange, the days that are no more.
Dear as remembered kisses after death,
And sweet as those by hopeless fancy feigned
On lips that are for others; deep as love,
Deep as first love, and wild with all regret;
O Death in Life, the days that are no more.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 1809-1892)은 중부 잉글랜드 랭카셔의 서머스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로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았고 1828년 케임브리지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했다. 시 팀북투 Timbuctoo》(1829)로 총장상 메달을 받았다.
이미 형 찰스와 《두 형제 시집 Poems by Two Brothers》(1827)을 익명으로 내놓았는데, 실은 장형 프레드릭까지 포함한 3형제 시집이다. 이어 《서정시집 Poems, Chiefly Lyrical》(1830)을 발표, L.헌트에게 인정을 받았고, 1831년 아버지가 죽자 대학을 중퇴하였다. 1832년의 《시집》에는 고전을 제재로 한 《연(蓮)을 먹는 사람들 The Lotos-Eaters》《미녀들의 꿈 The Dreams of Fair Women》, 중세(中世)에서 제재를 얻은 《샬럿의 아가씨 The Lady of Shalott》, 그의 예술관을 보여 주는《예술의 궁전 The Palace of Art》등의 가작(佳作)이 들어 있다.
이 해 친구 아서 핼럼과 함께 유럽을 여행하였고, 이듬해 핼럼이 죽자 애도의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1842년의 2권본 《시집》에는 《아더왕의 죽음》《율리시스 Ulysses》《록슬리 홀 Locksley Hall》《두 목소리 Two Voices》《고다이바 Godiva》등의 명작 외에 《정원사의 딸》《도라》 등의 전원시(田園詩)가 실렸다. 이것은 T.칼라일, 에머슨, E.포 등에게도 애독되었으며, 다시 1847년의 《왕녀(王女) The Princess》로 명성을 떨쳤다.
1850년에는 걸작 《인 메모리엄 In Memoriam》이 출판되었으며, W.워즈워스의 후임으로 계관시인(桂冠詩人)이 되었다. 이 해에 그는 약혼녀 에밀리 셀우드와 결혼하였다. 《인 메모리엄》은 17년간을 생각하고 그리던, 죽은 친구 핼럼에게 바치는 애가(哀歌)로, 어두운 슬픔에서 신(神)에 의한 환희의 빛에 이르는, 시인의 ‘넋의 길’을 더듬은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 시이기도 하다.
그 후에도 《모드 Maud》(1855), 대작 《국왕목가(國王牧歌) Idylls of the King》(1859∼1885), 담시(譚詩) 《이녹 아든 Enoch Arden》(1864) 등을 써서 애송되었으며, 여왕으로부터 영작(榮爵)을 받고, 빅토리아 시대의 국보적 존재가 되었다.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1896) 자화상.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1896), ‘부모 집에 있는 그리스도
(Christ in the House of His Parents)'. 1849-50년, 캔버스에 유채, 139.7×86.4cm, 런던, 테이트 갤러리.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1896), ‘장님 소녀’,
1854-56년, 캔버스에 유채, 81×62㎝, 영국, 버밍엄 미술관.
[자료출처 및 참고문헌: 동아일보 2024년 10월 17일(목) 「이은화의 미술시간(이은화 미술평론가)」/ Daum∙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