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 23일
번쩍! 번쩍! 번개가 치고 우르르쾅! 쾅! 천둥소리가 울렸다. 폭죽놀이처럼 번갯불이 번쩍거리고 천둥소리가 고막을 찢으니 그때마다 깜짝 깜짝 놀랐다. 그렇게 요란하게 천둥번개가 치는 것은 난생 처음이다.
옆 집에 또 앞 집에 벼락이 마구 떨어졌다. 벼락을 맞아서 집들이 무너지고 부셔지며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우박이 내리듯 번갯불이 천지 사방에서 번쩍거리고 벼락이 떨어지면서 지진이 난 것처럼 우리집도 마구 흔들렸다.
우르릉거리며 온 대지가 파도처럼 진동했다. 두려움과 공포의 극치였는데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건 꿈이였다. 어젯밤의 꿈이였으나 나는 꿈속에서 현실과 조금도 다름없이 느꼈다.
언제 벼락이 우리집을 내리쳐서 내 머리 위에 떨어질지 알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벼락에 맞아서 죽을지 모르는 절박하고 긴박한 상황에서 방안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번쩍! 번쩍! 우르릉~ 꽝! 꽝! 쉴 사이 없이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졌는데 금방이라도 벼락에 맞아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황하여 이곳 저곳으로 도망다니며 숨거나 이불을 뒤집어 쓰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꿈에서 깨어 나를 돌아본다.
나의 몸이란 음식을 먹으므로 유지되는 것으로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인연이 모여 잠시 이루어졌을 뿐 실체가 없다. 환상인 <나>와 <나의 몸>에 대한 애착의 덧에서 그만큼 벗어난 듯하다.
젊은 날 나는 늙어서 죽는 꿈을 꾸었다. 죽음을 맞이하는 공포와 두려움과 슬픔과 애통함으로 울다가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깨어난 후에도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매우 슬프고 두려웠다. 죽음을 초월하는 법은 없는지 비밀과 같은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기 위해 목숨을 걸어놓고 정진하던 어느 날이었다.
경향신문에 연재되는 최인호씨의 길 없는 길이 우연히 눈에 들어와 읽게 되었다. 경허스님이 어릴 적 스승이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마지막 배웅을 위해 성큼성큼 걸음을 재촉하던 중이었다.
날이 저물어 요기도 하고 하룻밤 묵고 갈 양으로 마을을 찾아갔다. 그런데 낮선 손님을 맞는 요란한 개 짖는 소리도 아이들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 정적을 괴이 생각하며 빈 집을 기웃거리다 물어보니 무서운 역병이 온 동네를 휩쓸고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지 오래라 했다.
산 사람은 모두 떠나고 병든 자와 시체와 돌림병이 점령한 마을의 한가운데 서서 태어나 처음으로 죽음과 단둘이 대면하는데 정신은 아뜩하고 발걸음은 천근만근 떼어지지 않았다.
두려움과 공포!! 전국에서 찾아온 학인들 앞에서 병이 없고 두려움이 없으며 죽음도 없다고 쩌렁쩌렁 울리던 기상과 기개는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삶과 죽음을 초월한 도인처럼 말할 땐 막힘이 없었는데 막상 죽음을 만나고 보니 깜깜 절벽이었다. 전염병으로 죽은 시체 곁에서 두려움에 떨며 밤을 하얗게 지새우면서 깨달았다고 생각하던 것이 한낮 문자이고 이해일 뿐 생사(生死)의 관문을 진실로 통과하지 못했음을 절감했다.
그는 옛 스승을 찾아가던 일을 취소하고 동학사로 되돌아서 방문을 꽉 걸어 잠그고 일천 칠백 공안 가운데 유독 찜찜하던 <노새의 일이 가기 전에 나귀의 일이 왔네> 라는 화두를 들고 죽음을 각오하고 밤과 낮을 꼼짝도 않으니 태산과 같았다.
턱밑엔 날카로운 송곳을 받쳐들고 수행하니 잠깐이라도 졸면 송곳은 사정없이 얼굴을 푹푹 찔러 선혈은 낭자하게 흘렀고 머리카락은 자라서 긴데 온통 상처에 피투성이라 나찰귀신도 놀라서 도망갈 지경이었다.
가부좌를 하고 태산처럼 앉아 치열하게 공부하니 수마(잠)도 항복하여 더 이상 졸리지 않고 화두는 여일하며 의식은 또렷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명스님이 탁발을 나가 이거사댁에 들렸다.
이거사는 학명에게 시주를 하면서 물었다.
"스님이 되어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죽어서 소가 된다지요?"
"시주물을 받은 지중한 업으로 소가 된다고 합니다."
"사문이 그렇게 말하면 됩니까?"
"그럼 어떻게 말해야 하는 지요?"
"죽어서 소가 되어도 코뚜레를 뚫을 곳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셔야지요."
그는 죽어서 소가 되어도 코뚜레를 뚫을 곳이 없어야 한다는 뜻을 곰곰이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절로 돌아와 대중에게 물었으나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경허스님은 알거라 생각하며 굳게 잠겨있는 방문 앞에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물었다.
"죽어서 소가 되어도 코뚜레를 뚫을 곳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벼락이 치듯 번쩍! 했다. 코뚜레를 뚫을 곳이 없는 소를 보고 화두를 타파하고 굳게 잠겨있던 문을 박차고 나오는데 그런데 경허가 깨닫고 생사를 해탈하는 장면을 읽으며 나도 똑같이 <코뚜레를 꿸 곳이 없는 소>를 문득 보았다.
일체가 텅 비어 깨끗한 세계!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수수께끼의 비밀을 깨달으니 비로소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는데 그래서 천둥과 번개가 쏟아지는 한가운데서도 담담할 수 있었나 보다.
2007년 1월 24일
어제는 장인어른 제삿날이라 친척들이 모여서 제사를 지내고 이런저런 이야기로 어울려 술을 거나하게 나누고 자정이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제사를 지내면 죽은 망인이 와서 차려논 음식을 먹느냐고 하던 언젠가 누군가의 얘기가 떠오른다. 추석이면 민족의 대이동이 이루어지는데 자신의 뿌리인 조상 산소를 찾아가서 성묘하고 음식을 차려 놓는다. 그런데 정성스럽게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면 정말 망인이 와서 먹는 것일까?
어떤 사람은 조상묘를 잘못 써서 재앙이 발생했다며 산소를 이장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무덤을 파보니 물이 찼다든가 나무뿌리가 관을 칭칭 감고 있었다 던가 하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죽은 후에 자손이 만들어 준 어두운 땅속 무덤 안에서 살지라도 난 죽은 후에 땅속에서 썪는 시체와 동거하여 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살이 썩는 악취가 진동하고 캄캄한 밀폐된 공간에서 답답하게 지내다가 이따금씩 차려주는 음식을 먹으며 산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그렇게 구차하게 살기는 싫다.
썪어가는 몸뚱이를 나라고 생각해서 집(관)에 물이 들어온다구 후손을 찾아가서 생떼를 쓰고 그래도 모른 척하면 화풀이를 하여 재앙을 주면서 관속의 죽은 몸에 집착을 한다면 참 어리석은 삶이다.
죽으면 바람 기운이 떠나가므로 몸은 움직이지 않고, 따스한 불 기운도 꺼져서 싸늘하며, 피와 고름은 흘러 물이 되고, 살과 뼈는 흙으로 돌아가는데 제각각 흩어지면 무엇을 나라고 하겠는가.,,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인연으로 이루어졌을 뿐 참다운 '나'란 팔, 다리, 머리, 가슴, 뱃속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런데 부질없이 죽은 몸뚱이에 애착하여 한탄하며 괴로워하는데 자성(自性)을 안다면 결코 땅속에 갖혀서 슬퍼하며 신음하지 않을 것이다.
죽으면 업식(카르마)만 남는데 그것을 영가, 영혼, 혼령, 또는 귀신이라 부르며 좋고 나쁜 업(카르마)을 따라 천상, 아수라, 인간, 축생, 아귀, 지옥에 태어난다.
형상은 없으나 없는 것이 아니며 유(有)와 무(無)에도 속하지 않는 신령한 것으로 망치로 깰 수 없고 불에 타지도 않으므로 도무지 없앨 수가 없는 각자의 몸을 끌고 다니는 주인공이며, 일체 만물의 평등한 성품인 그것은 제사에 올 수도 있고 이미 다른 세계로 가서 못 올 수도 있다.
혼령이 오던 안 오던 나를 낳아서 길러준 은혜를 생각하며 명복을 빌고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올린다면 갸륵하고 훌륭한 것이다. 만약 혼령이 와서 음식을 받고 기뻐하면 더욱 좋은 일이며 음식이야 어차피 산 사람의 몫이니 집안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화합과 친목을 다진다면 여기에 무슨 잘못이 있고 허물이 있겠는가.
그런데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제사는 귀신을 섬기는 것이라는 이유로 거부하며 집안에 불화를 일으키는데 그것은 옳지 않다. 부모는 나를 낳아서 먹여주고, 춥지 않도록 옷을 입혀주고, 현명해지라고 어려운 형편에도 공부시키며,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노심초사 애쓰며 길러주셨던 최고의 수호신이다.
이 세상 누구보다 간절하게 지켜주고 보살펴주던 수호신인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그 고마운 뜻을 기리기 위하여 정성으로 음식을 차려놓고 절하는 것을 우상숭배라 하는 것은 참으로 해괘한 논리다.
남의 나라 신(여호와)을 숭배하며 제 부모의 넋을 배척하고 배신하는 그러한 태도야말로 은혜를 저버린 배은망덕한 행위다.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의 산물이 아닐까!
난 때로 제사를 지내는 분들 중에 이미 사람으로 환생해서 그 제사에 참석하여 절을 올리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전생의 그분이 환생해서 제사에 참석했다고 해도 전생의 몸이 아니기에 같지만 다르므로 이렇쿵 저렇쿵 말하지 않고 그냥 모른척 한다.
글 / 윤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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