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린 볼프만을 만나기 며칠 전에 이미 이 사람에 대해서 약간의 정보를 얻었었다.
한국을 무척 좋아하고, 한국인 친구도 많으며, 한국 음식도 좋아한다는 자신의 소개 말고도, 예전에 이 집을 거쳐 간 한국인 자전거여행자의 블로그에서 볼프만의 사진과 그의 성향에 대한 제 3자의 소감을 미리 보았던 것이다.
나보다 열 살쯤 많은 나이에 독신이고, 채식주의자이며, 직업은 자전거 개발 자영업자이다.
그리고...요리 발명가이다.
그것도 한식을 주로 연구한단다.
이 광경만으로도 이 사람의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저 김치찌개에 들어간 김치는 볼프만이 직접 담근 김치이며, 그 숙성된 정도가 한국 김치와 다를바 없었다.
버섯과 야채로만 맛을 냈는데 찌개 맛이 제대로다.
꽤 매웠는데도 역시 볼프만은 잘 먹는다.
자전거로 이동할 때에는 이동막걸리를 먹어줘야 한다는 것까지 알고 있다.
(저 막걸리병은 어디서 구했을까..?)
이 정도로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긴장의 끈을 놓아도 괜찮을듯싶다.
외국말을 하는 사촌형 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함도 있었지만, 전날 하루 종일 라이딩을 한 탓에 단잠을 잤다.
이 공간은 주방과 거실을 겸하면서 볼프만이 자전거를 만지는 작업장이기도 하다.
유럽에서는 손님을 이렇게 재우는 것이 별로 이상한게 아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한번 설명을 할 예정이지만, 유럽의 위생관념은 한국과 좀 다르다.
어제 먹다 남은 김치찌개와 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본격적인 '볼프만리즘' 강의를 듣는다.
사진은 양배추로 만든 발효 장아찌 같은 건데 시큼하고 아삭아삭한 맛이다.
최근에 연구 중인 밑반찬이란다.
자신이 연구한 자전거 기어비를 분석해 놓았다.
볼프만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기어 조합은, 상단 도표의 좌측에 표기된 7단 스프라켓에 42T-38T-20T의 크랭크 체인링을 썼을 때인 것 같다.
나도 그 밑의 그래프를 보니 좋은 조합이란 생각이 든다.
볼프만은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데 말이 상당히 빠르다.
거기다가 나에게 자전거 정비 지식이 있다는걸 알고부터는 강의의 분량까지 점점 많아졌다.
그러나 내 영어 실력으론 이 사람의 강의를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럴 땐 초능력을 쓸 수밖에 없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서로의 언어를 거의 모르는 상황에서도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이 초능력에 대해선 나중에 기회가 되면 따로 강의를 해드리겠다.
볼프만 식으로..
오랜만에 쓴 초능력으로 볼프만의 강의를 모두 수강한 후 이제 그의 하루를 염탐하기로 했다.
볼프만은 웜샤워 게스트가 오면 항상 게스트의 자전거를 정비해주는 것 같다.
이전에 다녀간 한국인 자전거도 수리해 주었다는걸 그들의 블로그에서도 확인했었다.
박대리의 자전거는 별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풀리 분해 소지로 끝났는데, 박대리보다 짐을 10kg 이상 더 싣고 달린 내 자전거는 간단치가 않았다.
기초적인 문제는 내가 정비하며 다녔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었지만, 여행중 자가 수리가 불가능한 허브에서 약간의 소음이 나는 상황이었다.
우리 자전거의 휠셋은 아세라급이다.
다른 장거리 여행자의 자전거에 비하면 낮은 등급이지만, 내 생각으로 아세라급이면 여행하기에 충분한 내구성을 갖고 있다고 판단한다.
부품의 정밀도에서는 등급이 높을수록 예리한 구조인 것은 맞다.
그러나 실제 그 차이로 인한 불편은 별로 없고, 그나마도 기본 정비법을 익히면 메꿔진다.
혹시 내 여행기를 보고 자전거 선택에 대한 고민을 하는 예비여행자가 있다면, 고가의 자전거가 굳이 필요 없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넉넉잡고 알리비오급(50~80만원)이면 세계여행하는데 있어서 내구성이나 편의성에 별문제가 없다.
단, 동호회 활동 용이나 레저생활용은 그 용도와 만족도의 척도가 다르니, 여행의 경우와는 다른 관점으로 봐야 한다.
볼프만이 앞 휠을 돌려보더니 허브를 바꿔야겠다고 한다.
그리고 이론과 경험이 겸비되어야 가능한 '휠 빌딩'을 거침없이 시작했다.
새로 교체할 허브는 볼프만이 갖고 있던 중고 허브다.
기계를 전공한 볼프만은 별도의 작업실에 선반 설비도 갖추고 있었다.
저 휠 빌딩기도 셀프메이드인 것 같다.
내 휠셋에서 나온 허브이다.
아마 내부 베어링이 많이 마모됐을 것이다.
난 휠 빌딩을 하는걸 실제로는 처음 봤지만, 느낌상 볼프만의 실력은 프로급이었다.
일단 허브 교체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고, 이후로 터키까지 가는 동안 짐 무게가 더 늘어났음에도 휠 트러블이 전혀 없었다.
볼프만이 개발한 아이템 중 몇 가지는 특허출원 중이거나 예정이라서 사진은 못 찍었고 내 기억 속에만 담아 왔다.
이 프레임도 주문 제작한 거라고 하니 세상에 한 대밖에 없는 자전거이다.
볼프만의 하루는 거의 이런 걸 상상하고 만드는 일로 채워지는 것 같았다.
유럽의 자전거,특히 독일의 자전거들은 다이나모(자가 발전기) 허브를 많이 사용한다.
정밀 발전 기술의 종주국이라 일단 다이나모의 가격이 한국보다 싸고, 내부 저항이 상당히 적기 때문에 그 효율이 높다.
이건...내가 한국에서도 혼자 상상했었던 아이템인데...볼프만이 거의 그대로 만들어 놓아서 좀 놀랬다.
라이딩시 앞바퀴에서 튄 흙으로 인해 체인이 오염되는 걸 막아준다.
우리가 이 집에 머물렀던 2박 3일 동안 두 번의 택배가 도착했다.
볼프만은 부품도 자주 구입하는 것 같았다.
자전거 마니아들은 잘 알겠지만, 아무리 독일이 한국보다 부품 가격이 싸다 해도 큰 차이가 나진 않을 것이고 이렇게 구입하는 물품에 대한 지출은 만만찮을 것이다.
볼프만은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자전거 만지는 걸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내가 봤을 땐 중독 수준인데 약간 우려가 되긴 했다.
이 분야에 올인하고 있는 볼프만이 꼭 그 노력의 결실을 맺기를 바래본다.
난 이 시스템을 처음 봤다.
유압으로 구동되는 림브레이크인데 한국에도 이런게 있을까..?
웜샤워에서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낮에는 게스트가 외출을 해주는게 예의다.
점심때가 가까워져 우린 시내 관광을 하겠다고하고 밖으로 나왔다.
한 시간을 걸어서 프랑크푸르트 중심부에 도착했다.
우린 물론 자전거를 타는 것도 좋아하지만 사실 걷는 걸 더 좋아한다.
동두천으로 이사 오기전 이문동에 살 때 마포까지 걸어가서 점심 먹고 다시 걸어오기도 했다.
그래도 이 날은 좀 후회를 했다.
프랑크푸르트 시내의 자전거 도로가 이렇게 잘 되어 있는 줄 알았다면 자전거를 타고 왔을 것이다.
어제 물에 잠긴 자전거 도로를 만날 때마다 우회하느라고 평탄치 못한 코스를 140km나 달렸기 때문에 허벅지가 뻐근해서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앉을 곳을 찾아 들어가기 바빴다.
볼프만이 챙겨준 자료로 아시아 푸드마켓을 찾아가서 식재료도 좀 샀다.
서유럽의 대도시엔 무료로 편하게 앉아 있을 곳이 별로 없다.
편하게 앉으려면 테이블 차지(Table Charge)가 포함된 뭔가를 구입해야 한다.
한국이 그리울 때가 바로 이런 때이다.
유럽은 길에서 화장실을 가려고 하면 돈을 내야 하고, 식당에 가도 물을 공짜로 주는 곳이 없다.
살기 편한 건 한국이 최고다.
맥도날드에서 한참 시간을 보낸 후 다시 볼프만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지하철역 입구를 재밌게 만들어 놨다.
오늘 저녁은 우리가 사 온 식재료로 식사를 준비하기로 했다.
우린 호박죽과 파전을 만들었고 볼프만은 맥주를 준비했다.
저 맥주의 가격이 한 병에 39센트(6백원)란다.
독인에선 정말로 물보다 맥주가 싼 가보다.
사실 여행자가 육류를 피해서 한정된 재료로 만든 요리로 요리 연구가를 만족시킬 순 없을 것이다.
볼프만의 표정을 보니 호박죽과 파전을 초능력으로 먹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볼프만이 본격적인 '2차 요리 강의'에 돌입했다.
육식 동물인 우리 생각엔 채식주의자들이 과연 먹을 수 있는 종류가 얼마나 될까 걱정이 됐지만, 볼프만이 공개한 곡식 창고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어제 먹은 호박죽과 파전에 충격을 받았는지 오전부터 볼프만이 복잡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채식주의자의 식단이 포식자들의 '그것'보다 결코 뒤지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각오를 단단히 한 것 같았다.
맛있었다.
볼프만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소감을 말했다.
유 윈...
며칠 전 볼프만에게 처음 메일을
보냈을 때 볼프만은 답장에 덧붙여서 이런 말을 했었다.
PS: I will order bicycle spare parts next week. If you need something, tell me. You will have to pay only the price of a bike dealer ^^
(나는 다음 주에 자전거 부품을 주문합니다. 당신이 뭔가를 필요로 하는 경우에, 나에게 말하십시오. 당신은 자전거 판매점 가격만 지불하면 됩니다^^)
난 체인이라고 말했었고, 이 날 볼프만이 주문했었던 부품 택배에 우리 부품까지 도착했다.
볼프만에게 체인 교체 정도는 박대리가 머리끈 교체하는 것보다 쉬운 일이다.
후딱 체인을 교체하고 또 자신의 자전거에 몰두하고 있다.
적당한 타이밍에 체인도 교체하고... 이래저래 웜샤워를 통해 우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볼프만은 우리가 며칠 더 있어주기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우린 다음 호스트와의 약속 때문에 인사를 하고 나왔다.
볼프만에 대해 못다 한 얘기가 참 많은데, 그 재밌는 얘기들을 지면 관계상 생략할 수밖에 없는 점이 무척 아쉽다.
피터팬의 순수함과 에디슨의 열정을 갖고 있는 볼프만도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볼프만의 집을 나와 다음 호스트의 집으로 향한다.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
★배낭길잡이★유럽 배낭여행
(http://cafe.daum.net/bpguide)
첫댓글 잘참조할게요 감사합니다
볼프만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요. 들은 얘긴데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철은 중국철이 많아서 견고성이 조금 떨어진다네요. 같은 체인이라도 독일산은 철이 강해서 몇년을 써도 끄떡 없다네요. 독일이라는 나라 묘한 매력이 있는 나라네요. 볼프만 때문에 더더욱요. 아무튼 한가롭게 그 도시에서 머물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는 게 너무너무 부럽습니다.
멋져요
오잉 중여동에서 뵜는데 여기도 ㅋㅋ
어디에 올려도 상관없이 즐겁게 봤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여행기 잘보고 있습니다...^^
브레이크는 국산은 모르겠고 저것과 같은방식의 마구라 유압브레이크가 있습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
볼프만이 잘 되기를 빌어봅니다
꽤 인기가 있으신가봐요 예서제서 오라하시니..ㅋㅋ 부러워요
부아가 슬슬 치밀기 시작~ 부러우면 지는건데,,에지녁에 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