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 박수현
지금은 냉동실에 칸칸이 쟁여진
검정 비닐봉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넣어놓은 사실조차 잊었다가
아차, 유통기한 넘겼나 싶어 밀봉된 봉지들을 꺼내지만
그게 먹다 남은 생선 토막일지
오래전 넣어둔 가래떡일지는 뒤집어봐야 안다
새로 장봐 온 양지머리를 집어넣어도
빠르게 색과 향을 잃고 마는 그것
때론 할 말 많지만
뽀얀 얼음을 둘러쓴 채 죽은 듯 침묵하는 그것
검정 비닐봉지 속을 헤쳐
유예된 지금을 전골냄비에 들이붓고 끓인다
그러고 보니 지금은 도처에 있다
지금은 해진 가죽 소파 위 베개처럼 얹혀 있고
장롱 속 남편의 넥타이에 물끄러미 달려있고
베란다 화분들 사이에서 슬며시 고개를 내밀기도 한다
바글바글 김이 오르는 지금이란 잡탕찌개를
국자로 떠 담는 지금,
저만치서 투덜거리던 어제의 지금과
곧 다운로드 될 명랑한 내일의 지금이
오늘의 마감 뉴스 같은 임박한 지금의 지금이
스크럼을 짜듯 나를
에워싸다 사방으로 내쳐 달아난다
ㅡ계간 《문예바다》(2024, 봄호)
********************************************************************************************************
오늘 비소식이 있어서 어제 하루를 조금 바쁘게 보냈습니다
식전에 텃밭으로 나가서 사잇골에 수북하게 돋아난 잡초를 제거하고 늦은 아침을 먹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에 절집 세 곳을 찾기 어려울테니 앞당겨 지림사와 축서사 부처님을 찾아뵀습니다
부석에서 단양과 영월로 향하는 마구령 터널이 개통됐다기에
김삿갓 문학관 앞까지 드라이브했고 곤드레비빔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곳에서 산행에 나선 안면이 있는 옛 교직동료들 일행과 마주쳐서 인사를 나누었고요
고희가 넘은 나잇대의 사람들에게 '지금'은 희로애락이 마구 섞인 상태로 존재할 뿐입니다
이름이 확실하게 기억나는 두 사람과만 악수를 나누었네요^*^
기억회로를 돌려봐도 다운호드되지 않는 과거지사는 잊어가면서 '지금'을 맞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