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미 (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누군가의 부끄러움을 가려주는 배려를 배우기 원합니다" 사무엘하 10장
요즘 시편 말씀을 계속 듣고 있다. 하루에 10장 이상은 듣는 것 같은데 요즘 듣는 시편 말씀에 계속 생각이 나는 어떤 사람이 있다. 내가 시편 24편 이후로 주욱 듣기를 하는데 아무런 죄 없이 원수(?)들의 공격에 힘들어하는 시편 기자의 고난 가운데의 고백이 나온다.
우와! 정말 힘든 상황이구나! 그런 생각이 성경 말씀 들으면서 지금 참으로 힘든 그 사람의 상황도 이렇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저절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었다. 그런데 기도하면서 어떻게 보면 좀 생뚱맞기도 한 생각인데 그 사람은 참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이렇게 힘들 때 이런 시편 말씀 읽으면 구구절절 다 자기한테 하나님이 해 주시는 말씀 처럼 들릴 테니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 말씀 처럼 이 구절 하나 하나가 다 이 사람의 소유가 되는 때가 바로 이때가 아닐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때 그것은 마치 보화를 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성경은 말씀해 주는데 이 사람은 도대체 얼마만큼 많은 보화를 캐고 있는 거야? 대박!
물론 상황이 힘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적 거장들 치고 혹독한 훈련 안 받는 장군들이 있는 감유? 일등병들하고는 다른 레벨의 훈련을 받을 수 밖에 없으니!! "영적 거장"의 몫을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위로해야 하는 차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은혜"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그 해석을 하는데 나는 요즘 "은혜"라는 것이 "생각의 변화"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한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 아닌가? 그러니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생각을 하는 것이 바로 "은혜"인 것이고 이 것은 우리가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생각의 변화에서 오는 것일테니 말이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인 것이다. 자기 인생 비참하다고 계속 그러고 있으면 맞다! 자기 인생 비참하지! 이 사람 보고 저 사람 보고 있으면 나 왜 살고 있나 그런 생각도 들때가 왜 없겠는가 말이다.
이럴 때 "은혜"가 무엇인가? 생각의 변화인 것이다!
자신이 비참하면 뭐 얼마만큼 비참하겠는가 말이다. 십자가에 벌거벗고 죽으신 예수님보다 더 비참하겠는가 말이다! 죄 없다고 억울하다고 말하지만 예수님처럼 죄없이 억울하게 죽은 사람 이 땅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 말이다!
생각하기 나름인데 하나님의 은혜 입고 가능한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서 긍정적이고 성경적인 생각을 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러려면 "지름길" 비결이 있다.
무조건 감사하는 거다. 어떤 일이든 어떤 사람이든 어떤 상황이든 하여튼 감사하고 보는 거다 ㅎㅎㅎ 마귀는 이럴 때 용 용 죽겠지! 이런 상황이 되 버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그니라!" 내 안에 예수님이 예수님 안에 내가!
뭐 그렇게 헝감 할 필요 없다! "내가 그니라!" 하고 마귀들 쪼까 내는 기회가 온 것 뿐!!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니까요!! 자기 비참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전쟁에서 이길 승산이 아주 희박해진다.
전쟁은 게임이 아니다! 게임은 양보도 있고 재미도 있지만 전쟁은 지면 죽음인 것이다! 정신 바짝 차려야 이기는 것이 전쟁! 지피지기 백전 백승!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전쟁은 100번 해도 다 이기게 되어 있는 것이다. 할렐루야!!
개역개정 사무엘하 10장
5. 사람들이 이 일을 다윗에게 알리니라 그 사람들이 크게 부끄러워하므로 왕이 그들을 맞으러 보내 이르기를 너희는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서 머물다가 돌아오라 하니라
When David was told about this, he sent messengers to meet the men, for they were greatly humiliated. The king said, “Stay at Jericho till your beards have grown, and then come back.”
다윗 왕의 신하들이 다른 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오해를 받고 아주 망신스러운 모습으로 다윗에게 돌아오는 상황이다.
성경 전체의 배경을 위해 사무엘하 10장을 다 읽으면 참 좋겠다. 나는 오늘 그냥 막바로 "삶의 적용"에 들어가도록 한다.
다윗이 망신스러운 모습으로 돌아온 신하들에게 막바로 궁으로 들어오지 말고 수염을 깎이는 상황으로 모욕을 받은 신하들이 그 잘린 수염이 기를 동안 여리고에 머물렀다가 오라고 한다.
누군가의 "부끄러운 모습"에 대한 배려의 마음을 배우게 되는 말씀이 아닌가 한다.
이 구절을 묵상하면서 저절로 예수님이 간음하다 잡혀 온 여인 앞에서 하신 모습이 생각난다. 간음하다 잡혀왔으니 그 여인의 옷 매무새를 상상한다면 참으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옷은 찢겨졌을지도 모르고 겉옷은 없고 속옷만 입고 있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여인 앞에서 예수님은 땅바닥에 무엇인가 글로 쓰고 있으셨다고 한다.
예수님이 땅에 무슨 글을 쓰셨을까 많은 주석의 글이 있지만 예수님은 그 시간 딱히 어떤 글을 쓰셨다기 보다는 너무나 부끄러워 할 여인을 보시지 않으려고 그분의 눈을 땅으로 내리셨다는 해석이 나는 가장 알맞은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그 여인을 똑바로 쳐다 보았다라면 그 여인은 얼마나 수치스러웠을까!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의 수치를 주님께서 가려 주셨음을 감사 드립니다. 주님을 감히 쳐다 볼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르는 그 상황에서도 우리 주님 저희들의 부끄러움을 똑바로 보시지 않고 우리를 배려 해 주심을 간음한 여인이 잡혀온 그 자리의 예수님을 보면서 깨닫게 되어 감사합니다.
우리는 죄인들입니다. 모두 다 돌에 맞아 죽어야만 마땅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 저희를 대신해서 돌을 맞아 주셨고 그리고 우리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가려 주셨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주님! 이러한 사랑을 받은 우리는 당연히 우리의 이웃의 부끄러움을 가려 주는 배려를 배워야만 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깊은 배려의 마음을 배우기 원합니다.
이웃의 잘못을 어떻게 하면 한 사람에게라도 더 옮겨 이야기 하기 보다는 죄는 미워해야 하지만 죄인은 사랑해야 하는 성숙의 방법을 주님께 여쭈어서 배울 수 있기를 기도 드립니다.
저는 오늘부터 케냐 사역이 시작됩니다. "닭 사육" 사역이 시작되고 SAM 사역의 올 한 해 평가와 내년의 계획 등 등 회의가 있는 날입니다.
모든 일에 지혜를 간구합니다! 하늘 나라가 이 땅에 확장되고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 받을 수 있는 계획들이 세워지고 지켜지도록 주님 도와 주옵소서!
어제는 집에서 잘 쉬면서 이 곳 저 곳 사역자들 중에도 사역비가 부족한 사람은 없는지 잘 돌아보고 도와 줄 수 있는 사람들은 도와 주고 칭찬할 사람 칭찬해 주고 음성 메시지로 기도해 줄 사람 기도해 주고 쉬면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에서 쉬는 시간인지라 기도 시간도 평소보다 많이 늘려서 할 수 있어서 역시 감사 드립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쁘시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