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가 깃든 삶] 눈의 달
누구하고도 동의하지 않는 낮달.
더러는 아이들에게 손목 붙잡혀
숲길이고 벌길이고 따라 헤매다가도
제물에 차다 이울다
차고 일어나 빛 뿌리고 부서지는
바다 속의 달.
반추의 눈 달.
―이수복(1924∼1986)
*반추(反芻) : 지나간 일을 되풀이하여 기억하고 음미함.
1973년에 발표된 시다. 여러분께서 이 시를, 늦은 오후에 낮달을 발견하신 듯 보아주시길 바란다.
낮달은 조금 이상하고 서럽다. 달의 원래 자리는 어둠 속이고, 달의 순서는 해가 진 다음이다. 그런데 낮달은 익숙한 순서를 지키지 않고 등장한다. 좀 서둘렀구나 싶은 달. 그래서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싶은 달. 저도 환한 낮을 그리워했는가 생각되는 달. 초대받지 못한 자리에서 수줍어 보이던 달. 그런 낮달을 찾으면 우리는 신기한 듯 바라보게 된다.
50년 전, 이수복 시인이 그 달을 읊었다. 그건 누구하고도 동의하지 않고 등장했다고, 조금 서럽다고, 그리고 신비롭고 아름답다고. 시를 읽고 생각하니 이 세상에는 낮달 같은 사람들이 조금씩 있다. 조용히, 남들이 예상하지 않았던 곳에, 신비롭고 아름답게 존재하는 낮달 같은 사람들을 헤아려본다. 귀하고 귀하다.
부연하기로는, 여기서 ‘벌길’이란 들길을 의미한다. 숲길 뒤에 놓여 있으니 추측이 쉽다. ‘제물에 차다 이울다’는 말은 스스로 보름달처럼 찼다가 다시 초승달로 이지러진다는 말이다. 눈의 달이라니, 낮달에 대한 표현이 참신하기도 하다. 낮달에 대해 이리 곱게 이야기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수복(1924∼1986) 시인은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났다. 목포 문태중학교를 졸업하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전신전화국을 다니면서 독학으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예과부를 수료하고, 국문학과에 들어갔으나 3학년에 낙향하였다. 전 김영삼 대통령과는 문리과대학 동기인 셈이다. 그 후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하였다.
1954년 <문예>에 ‘동백꽃’, 1955년 <현대문학>에 ‘실솔(蟋蟀:뚜라미)’과 ‘봄비’를 미당 서정주 시인 추천으로 등단하였다.
조선대학교에 시간강사, 광주 수피아여고, 광주제일고, 순천고, 전남고, 순천 주암고(현재 한국바둑고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 순직하였다.
생전에 단 한 권의 시집인 <봄비>(현대문학, 1969)를 발간, 여러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였으나 시집으로 묶지는 못했다. 그의 사후(死後), <이수복 시전집>(현대문학, 장이지, 2009)과 미발표 유고시(遺稿詩)와 소설, 산문, 평론, 첫 시집 <봄비> 영인본 등이 <이수복 전집 - 봄비와 낮달>(광주문인협회, 2010)이 출간되었다.
광주광역시 사직공원에 ‘봄비’ 시비,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천 수변 공원에 [봄 비 - 한국의 ‘情緖’ ‘비애’ 詩 속에 溶解] 시비가 건립되었다. 현재, 그의 대표시 ‘봄비’는 중학교 3학년 국어 및 한문 교과서,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실려 있다. 전라남도 문화상(문학상), 현대문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 봄비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랭이 타오르것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 《동아일보 2024년 10월 19일(토), 〈詩가 깃든 삶, 나민애(문학평론가)〉》, 《Daum, Naver 지식백과》/ 사진: 이영일 ∙ 고앵자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