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생각
- 채수옥
모르는 사이 너는 바닥을 옮긴다
테두리를 그려 넣는 순간
땅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한다
캄캄한 바닥일지라도 증식하고 있다고 믿으며
가장 길어지는 생의 순간을 떠올리며
창궐하는 나뭇잎을 펴고 앉아 오후가 되기를 기다린다
두근거리는 심장 위에 손을 얹고
작아지거나 사라져야 하는 것들에 대해
밟고 가는 몰인정한 발자국들에 대해
끝없이 깊어지고 어두워지는 인생들에 대해 생각한다
밤을 격동시키던 천박한 불빛들이
기둥 뒤로
벽 속으로 스며들지 않았더라면
달빛이 흐려지고
가로등이 꺼지지 않았더라면
베끼는 것이 좀 더 빠르고 탁월했더라면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폐허의 땅을 일으킬 수 있다는 신념으로
내부가 생략된 밤을 그려 넣으며
뒤에서만 어른거리다 사라지는 것에 익숙해진 너는
아침이 오면
검은 둘레를 그리는 것부터
다시 시작한다
ㅡ반연간 《서정과현실》(2024, 상반기호)
******************************************************************************************************
'우물 안 개구리'는 제 영역이 우주인 줄로 압니다
욕심이 많은 이가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도록 땅에 줄을 쳐서 영토를 표시합니다만
기껏해야 한 생애 뿐입니다
불사의 꿈을 좇던 진시황도 지천명에조차 닿지 못했다잖아요?
세계가 우러르는 성인들도 그림자된 생각만 남겼을 뿐, 영생은 사후세계일 뿐입니다
뒤에서만 어른거리다가 사라지는 생홟장식에 익숙해진 우리는 지금 무얼 찾으며 사나요?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어야 할 아침이 밝아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