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기억될 이름 제67회
이헌 조미경
형제라고는 바로 위에 누나 한 명 밖에 없는 연우에게, 누나의 해외 이민 결심은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린 때는 친구 같고 때로는 부모님을 대신해서 챙겨 주고 살뜰히 보살펴 주지는 않았지만 의지가 되었다.
그런 누나가 매형을 만나 부모와 형제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떠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몇 달 살고
다시 돌아와, 예전처럼 같은 집안에서 차 한잔을 나누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것만 같은 누나였다.
특히 고향인 북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심을 아주 컸다. 그동안 금이야 옥이야 키워서 남의 집에 시집보낼 때만 해도
같은 하늘아래 살고 있으니, 명절이나 생일 이 아니어도 같은 서울에 살면 자주 만날 것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그러나 결혼 한지 10년 만에, 자신이 나고 자란 조국을 버리고 머나먼 이국 땅으로 아주 이사를 간다고 한다.
희주는 한국의 입시 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했다. 자신도 어린 시절부터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죽도록 공부만 하고 살아온 게 너무나 불행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연우의 생각은 누나 희주의 생각과 달랐다. 비록 한국의 입시제도가 한창 놀면서 자라야 할 자신의 아이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것이라 말했다. 연우는 결혼해서 이제 올해 5살 인 사내아이와 계집아이가 있지만., 자신도 어린 시절 부모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을 오직 자연과 함께 하면서 자라기를 희망했다.
그래서 휴일이면 아이들 손잡고 어린이 대공원이나 산으로 들로 데리고 다니면서, 마음껏 뛰어놀게 키웠다.
희주 부부가 캐나다로 떠나기 전, 연우 부부와 부모님 그리고 희주 부부와 조카들과 함께 제주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언제 온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낼지 알 수가 없어, 그동안 추억을 쌓기 위해 모였다.
늘 말씀이 없으시던 연우 아버지도 말을 안 하지만, 쓸쓸함이 묻어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
이제 아버지도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구나하고 느꼈다. 마음으로 누나에게 의지 하며 보내던 연우는
희주와 함께 해변가를 걷고 있다.
"누나 우리가 이렇게 대화를 나누며 걸어 본 게 언제였지?"
"맞아 너랑 나랑 바다를 보면서 대화해 본 게 거의 없었던 것 같아."
희주가 쓸쓸하게 웃고 있는 연우에게 말했다.
"누나 한국 떠나면 영영 안 올 거지?"
"무슨,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씩은 나올 거니까 염려 놓으셔."
"너 말이야. 부탁인데, 이젠 직장을 다닐 거면 앞으로는 한 곳에서 오래 다녀라."
"알아 나도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돼."
"나는 아무래도 방랑자 기질이 있는 것 같아."
"뭐야?"
"행여라도 그런 말 네 처에게는 하지 마라."
제주의 날씨는 화창 했다.
며칠 동안 함께 지내면서 오랜 이별 연습을 하듯이 연우의 가족들은 희주가 한국을 떠나기 앞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서울로 돌아온 연우는 직장에 매여 바쁜 하루를 보냈다.
특별할 것도 없는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매일 아침이면 지각하지 않기 위해 서둘러 출근을 하고 출근해서는
자신 앞에 놓인 일을 하고 점심시간에는 동료들과 식사를 하고 잡담을 즐겼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친구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승승 장구 하면서 나이를 먹어 갔다.
희주가 캐나다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떠나고 나자 집안은 갑자기 고요함에 휩쌓여 있었다.
연우 아버지의 생일날에도 예전처럼 북적거리 분주함이 사라졌다.
단지 연우의 말썽꾸러기 아들 둘이 장난치면서 어른들에게 걱정과 염려의 시선을 주었을 뿐이다.
성공한 친구들이 어쩌다 술자리에서 자랑을 늘어놓으면 귀가 얇은 연우는 솔깃해져서
자신도 그 길을 따라가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연우는 아직도 바람처럼 살고 싶었다.
어느 한 곳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ㄴ
구속이나 속박에서 벗어나 바람처럼 바람이 부는 데로 살고 싶은데
현실은 가장이라는 굴레에 쌓여, 매달 일정액의 돈을 집에 가져다주어야 했다.
그런 생활이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이젠 새로운 일을 하는 데 있어 도전이라는 글자가 슬슬 버거웠지만
가끔은 지금 하고 있는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아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취미 생활을 하면서, 또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다음에 계속 이어집니다
첫댓글 싸우기도 하고 함께 뛰어놀던 작은 누님이
시집가더날,
무척 울면서 매형이 누님을 훔쳐가는 도둑놈
으로 생각 했는데,
지금은 같이 늙어가 가끔 전화만하는 남매가
되었지요.
소설이 재미 있네요
앞으로 이어질 연우의 앞날
기대가 큽니다
여러모로 수고 하신 조미경 방장님
오늘도 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