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카네기의 묘비명에서
●여기, 나보다 현명한 사람을 주위에 모으는 기술을 알고 있던 한 사람이 잠들다.●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1835~1919
나보다 현명한 사람들
카네기는 어렸을 때 우연히 새끼를 밴 어미 토끼 한 마리를 갖게 되었다. 어미 토끼는 곧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았고, 동네 아이들은 귀여운 토끼 새끼를 무척 갖고 싶어 했다. 그리고 카네기는 혼자서 많은 토끼의 먹이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궁리 끝에 한 가지 꾀를 내었다. 귀여운 토끼를 갖고 싫어하는 동네 친구들을 불러 모아 이렇게 말했다.
“클로버나 질경이를 뜯어오는 사람한테는 토끼 새끼에게 그 사람의 이름을 붙여 주겠다.”
이 전략은 적중했다. 아이들은 귀여운 토끼 새끼에게 자기의 이름을 붙여진다는 기대감으로 다투어 클로버와 질경이를 뜯어 왔던 것이다.
훗날 철강왕으로 불리게 되는 앤드루 카네기는 스코틀랜드에서 내어나 13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 펜실베이니아로 건너가 방적공, 전기기사 등 여러 가지 일을 전전했다. 그러던 그가 실업가로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은 아주 조그마한 일이 계기가 되어서이다.
피츠버그에서 전기기사 일을 하고 있던 그는 어느 날, 기차 안에서 한 발명가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발명가는 ‘이것이 내가 최근에 발명한 신식 침대차입니다’라고 하면서 카네기에게 그 모형을 자랑했다. 당시의 침대차는 화차의 양쪽에 선반을 매단 어설픈 것이었지만, 그 발명가가 보여준 새 모형은 현대의 침대차와 꽤 비슷한 것이었다. 선견지명이 있던 카네기는 ’이 발명품은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다‘라고 판단하고 빚까지 내어 신식 침대차 제조 회사의 주식을 샀다. 아니나 다를까 높은 배당이 붙었다.
카네기는 불과 25세 때에 침대차 제조 회사와 석유회사의 투자 배당으로 연 5천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리고 1865년에 철강 수요의 증대를 예견하고 철강업을 시작한 것이 크게 발전하여 1870년대부터는 선박과 철도에 이르는 대단위 철강 트러스트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8개 회사를 합병하여 만든 ’카네기 철강회사‘는 철도 경기의 붐은 타고 철광석에서부터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를 취급하는 대형회사로 성장했고, 그는 마침내 세계적 대재벌이 되는 한편 철강왕으로까지 불리게 되었다.
사실 철강왕이라고는 하지만 카네기의 철강 지식은 매우 빈약한 것이었다.
그는 철강 전문가들을 몇백 명씩 고용하여 그들을 부리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그가 대부호가 된 비결이다.
애초부터 사업가의 기질을 타고났던 카네기에게는 다음과 같은 일화도 있다.
어느 날 어떤 사회주의자가 카네기를 찾아왔다. 그는 오랫동안 한 사람이 수만 명 몫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카네기는 비서를 불러 물었다.
“내 재산의 총액을 세계 인구수로 나누면 얼마나 되는가?” 잠시 후 계산을 마친 비서는 1인당 16센트라고 말했다. 그러자 카네기는 비서에게 지시했다. “내 재산에서 이 손님 몫인 16센트를 봉투에 넣어 드리게!” 또 어떤 사람이 카네기에게 물었다. “노동과 자본, 그리고 지식 중에서 무엇이 사업을 해 나가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카네기는 오히려 다음과 같은 반문으로 대답했다. “세 발 의자의 세 다리 중에서 어느 다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신앙심이 깊었던 카네기는 교육사업이나 사회사업에도 열심이어서 많은 돈을 사회에 환원했다. 기꺼이 공익단체나 교육단체의 후원자로 나서는 한편 직접 카네기 공업대학, 카네기 재단, 카네기 홀들을 건립하여 부를 환원했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에 2천8백 개의 도서관을 세워 기증한 것도 그의 특기할 만한 업적이다.
카네기는 노령에 접어들자 자신이 죽은 묘비명을 이렇게 새기게 했다. “여기, 나보다 현명한 사람을 주위에 모으는 기술을 알고 있던 한 사람이 잠들다.”
비교적 장수한 카네기는 1919년8월 11일 평안한 가운데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탁월한 수완으로 부를 축적한 다음 그 돈을 가치 있게 씀으로써 후회 없는 인생을 보내고 편안히 잠든 것이다.
<중간 생략> 카네기에 있어 이 세상은 충분히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그의 소신, 인생철학, 종교관 등에 기인한 바가 큰 것으로 보여진다. 카네기의 성공적인 삶과 겸손한 묘비명은 우리에게 ’숲속의 옹달샘이 고인 물을 적당히 흘려보냄으로써 새로운 물을 샘솟게 하듯 부(富)와 지혜는 적당히 흘려보낼 때 다시 생기고 그 가치를 발휘하다‘는 사실도 일깨워주고 있다. -209~ 출처>묘비명으로 본 삶의 의미 [인생 열전] 박영만 지음
≪후기≫ 유성 박한곤
아주 빠르게 세상 소식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살아가며 그보다 더 빠른 변화의 물결에 몸을 의지해 날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의 망설임 때문에 곧잘 마음이 몸살을 앓기도 하죠!.
그래도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존재하고 나쁜 것은 나쁜 것대로 존재하는 것을 두둔하거나 시기하지 않는 절기는 입춘을 지나고 있습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강철왕이었던 카네기의 삶을 잠시 엿보며 삶이 갖는 귀천-貴賤은 마지막 귀착점에 있음을 알게 합니다.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은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시기하지 않고 동행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대의 마음을 얻는 데 있습니다. 어떻게 얻을 것인가?의 해답은 비교적 간단하니,
’마음속 친절을 줄 때 더 귀한 것이 돌아오는 법칙‘
그대는 세상을 향에 무얼 줄 것인가? 가 아닌 주었는가?에 대한 해답에 자신이 있는 사람을 우리는 좋아하기에 필요로 합니다.
개인 삶에서나 기업에서나 선거판의 주인공이나 양심의 기준으로 해답할 수 있다면 결과보다 현실에서 이미 이룬(성취한) 사람인 것입니다. |
첫댓글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