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관(觀)자를 창작한 서각작품 / 맹물/ 성담법사 /柳海天)
우리가 눈으로 사물을 보고 듣는 것이 중요한 것인데,
보는 것은 눈(眼) 뿐이 아니라, 귀(耳)와, 코(鼻)와, 혀(舌)와,
몸(身)과, 의식(意)으로도 본다.
눈으로는 형상과 색상을 보고, 귀로는 소리를 들어 보고,
코로는 냄새를 맡아 보고, 혀로는 맛을 보고, 몸으로는 느껴보고
의식으로는 전체의 의도를 알아본다.
이렇게 인체의 여러 기관을 동원해서 보는 것 외에
마음으로 보는 것이 있는데 이를 관(觀)한다고 한다,
관하는 것은 육체로 보는 육안(肉眼)과, 마음으로 보는 심안(心眼)과,
지혜의 눈으로 보는 혜안(慧眼)과. 하늘의 뜻으로 보는 천안(天眼)과,
부처님의 눈으로 보는 불안(佛眼)이 있다.
어떤 마음의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긍정(肯定)과 부정(不定)으로 나눠지기도 한다.
중국 송나라 때 소동파는 22세때 과거에 급제하여 고위직에 있다가 정부를 비방하는
詩를 써서 좌천되어 황주 현감으로 가게 되었다.
그는 유명한 시인이며 선사(禪師)를 찾아다니며 법거량으로 많은 일화를 남겼다.
소동파가 요원스님과 함께 좌선을 하며 스님께 물었다.
"스님, 내가 좌선하는 모습이 어떻습니까?"
"부처님 같습니다. 소승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스님의 모습은 꼭 소 똥 무더기 같습니다."라고 하였다.
집에 돌아온 소동파는 즐거운 마음으로 자매에게 스님과의 대화를 자랑했다.
다 듣고난 동생은 "오라버니는 오늘 처참하게 패하셨군요.
스님은 부처의 마음으로 오라버니를 보았는데, 오라버니는
자만과 오만과 시기심으로 스님을 보셨으니 얼마나 창피한 일입니까?"
태조대왕과 무학대사의 농담중에도 이와 유사한 일화가 있다.
태조 이성계 대왕이 무학대사를 보고 오늘은 터놓고 농담을 하자고 하며,
대사의 얼굴이 돼지 같다고 하며 나의 모습은 어떻냐고 물었다.
무학대사는 대왕님의 얼굴은 부처님 같다고 하였다.
대왕은, 대사에게 지금은 농담을 하여도 되니 다시 말해 보라고 했다.
무학 대사는 "본래 부처의 눈으로 보면 부처가 보이고,
돼지의 눈으로 보면 돼지만 보입니다."라고 했다.
이에 이성계 왕은 껄껄 웃으며 역시 대사를 이기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