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이 걸린 미용실 (외 1편)
이승예
액자에 갇힌 채 벽에 걸린 수련은 몇 해째 꽃망울만 맺혔는데
벽지에선 날마다 모란이 피어나네
미용실의 풍경에는 관심 없이
바람은 밖으로만 불어서 꽃이 지지 않네
수련은 수련 색으로 창백한데
낮게 깔린 구름을 새 한 마리 지나와
속절없이 붉은 모란에 앉네
후드득 비가 오네
손님이 없어 미용실 여자는 졸다가 빗소리에 깜짝 졸음을 쫓네
그녀의 겨드랑이 아래로 브래지어가 보이네
그 모습에 움직이는 저 수련의 마음을
모란은 감정의 편향이라고 쑥덕이는가?
거울 속에 갇힌 미용실에 밤이 깊으면
그녀가 훌훌 브래지어를 벗고 잠에 드네
그 사이 액자에서 빠져나온 수련은
벽지 속으로 들어가 실컷 모란으로 피네
그러다 날 밝으면 다시 액자 속으로 돌아가는가?
겨울 속 액자에서 꽃잎 한 장이 벌어지고 있네
연꽃인가요? 수련인가요? 그게 그건가요?
손님이 물으니 미용실 여자의 대답이 누리끼리하네
활짝 피어 봐야 알아요
모란일 수도 있겠죠?
하루의 내부
뒤집어진 채 세탁이 된 양말을 널다가
시커먼 양말의 내부를 보았다
엉켜서 풀릴 수 없었던 마무리 부위가
감정의 음모 같은 뾰족한 발가락 끝에서
오래 견디다 구멍이 났다
생각해 보면
양말처럼 속 뒤집히던 일 수없이 많았다
십팔 년을 당겨 누런 웃음이나 흘리는 팽팽한 그녀 앞에서
주차된 그의 차 위로 벽돌 우박이
떨어졌어야 했다
오래 살던 집에 둔 채 팔아버린 감정이
불쑥 생각나는 것도 추억인가요?
양말의 내부는 차마 꺼내기 힘든 시
밖에서는 순두부 장수가 봄을 팔고 있다
양말을 버린다
바람이 분 후의 일인 듯
가로수 벚에서 겨우 꽃 한 송이 벙그는 소리에
가스 불 위 기름이 튀어 햇살과 만나더니
무지개 슨다
프라이 두 개가 식탁에 오르자 하루가 빽빽하다
물보다 빠르게 컵을 관통한 무지개를 마신다
양말에 난 구멍 같은 구내염이 일찍 죽은 오라버니처럼 아프다
양말의 내부를 알 리 없는 햇살이
버려진 양말에서 반짝이는 아침
아파트 화단에서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꽃이 야생야생 피어나고 있다
아,
한 송이가 아니었구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침묵이 십자가 아래에서 빛나는데
허락도 없이 꽃을 야생으로 피워, 버린
햇살에 대한 용서까지 그곳에 두고 왔다
하루가 버려진 양말의 내부를 지나간다
—시집『나이스 데이』(2017. 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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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예 / 1963년 전남 순천 출생. 2015년 《발견》신인상으로 등단. 시집『나이스 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