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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을 타고 그날일을 되짚어보다 박예진지음
1. 민지의 학창시절
민지는 97학번이다. 수능 역사상 가장 어려웠다는 수능은 97학년도 수능이었다. 97학번은 수능 4번째 세대로 78년생과 빠른 79년생들이 이에 해당한다.
첫 번째 수능은 94년도 수능으로 75년생부터 수능을 치른 세대로 볼 수 있다. 민지의 오빠는 77년 생으로 수능 세 번째 세대이고, 96학번으로 마지막 200점 만점세대이다. 97학번은 처음으로 400점대 수능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전기 대학을 4군데나 대학 원서를 넣을 수 있는 세대로 사실상 합격 가능성이 높아진 첫 세대였다. 그래서 1차 추가 합격자가 많이 나온 세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400점 만점인데, 전국 1등이 371점으로 만점이 나오지 않았던 해였다. 300점을 넘기면 서울대를 넣었다는 전설의 수능 세대다. 330점 맞으면 서울대 의대는 물론 법대 모두 무조건 합격할 수 있었다. 220점이면 무조건 서울로 대학을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수도권이라도 해도 미술대 진학은 그보다 점수대가 많이 낮아도 갈 수 있었다. 수능 자체가 너무 어려운 불 불 수능이었다. 완전 망하라고 낸 수능이었기 때문이었다.
1994년 어느 날 민지가 고등학생 1학년 때다.
“민지, 이번에는 2인 중창으로 실기평가를 본대.”
은서가 말했다.
“나는 애니로리를 부를 거야.” 민지가 말했다.
“여러분 음정박자가 두 명 중 한 명이라도 틀리면 다시 시험을 봐야 합니다.”
음악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민지는 윤서와 중창 연습을 했다. 민지는 알토를 불러야 했다. 그리고 윤서는 소프라노를 했다.
둘 다 열심히 연습했는데, 정말 잘 불렀다. 다들 애니로리 연습에 바빴다. 2인 중창이라서, 긴장감이 2배나 되었다.
민지는 엄마가 피아노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알토 부분을 엄마의 피아노 소리에 맞춰서 연습을 죽어라고 했다. 아예 알토 음을 외웠다. 암기력은 좋으나, 이때는 엄마의 잘못된 공부 방식 때문에 제대로 된 암기법을 알지 못했다. 민지가 암기 능력을 기르기 시작한 건 대학을 진학하고 나서부터였다. 잘못된 방식으로 공부를 하면 암기도 안 되는 법이다. 그러나 어쨌든 노래는 암기를 금방 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실기 시험 날이었다.
“잘 할 수 있지?” 김윤서가 말했다.
민지와 윤서는 멋지게 애니로리를 불렀다. 민지의 알토가 정확히 들렸고, 음정 박자를 안 틀리고 제대로 불렀다. 그래서 음악 선생님의 칭찬을 받았다.
“잘했어요. 70점 만점에 62점이에요.” 음악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실기점수는 웬만해서는 60점을 넘기기 어려울 거예요. 한 사람이라도 음정이나 박자가 틀리면 재시험을 봐야 하거든요.”
“윤○○와 김서현 재시험을 보도록 해.”
“김희○이와 김승현 재시험 보도록 해.”
재시험을 봐야 하는 학생들이 무더기로 나오는 상황에서 민지와 윤서의 중창은 잘 불렀다는 칭찬을 받아서 기분이 좋았다. 다른 학생들은 재시험을 봐야 하는 상황까지 오고 난리가 났다. 민지는 이날의 실기 시험이 추억이 되었다. 아마 민지가 성가대를 하게 된 이유가 이 때문인 것 같다. 민지는 그날 실기 성적이랑 이론 성적이 합쳐져서 음악은 우를 받게 되었다. 음대를 진학하지는 않지만, 음악도 좋은 성적이 나와서 기분이 좋았다.
1995년 어느 여름 ○○시 ○○○○고등학교.
“민지야. 너 이번에 미술실기 대회에서 입선했다며?” 양석진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선생님. 정말이에요?”
민지는 수채화를 제대로 배우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냥 미술대학교를 진학하려는 마음으로 미술부에 들어갔고, 미술부학생들은 매년 미술실기대회를 나가야했다. 소묘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상을 탄 것이다. 그리고 아직 전공은 선택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수채화를 배우지 않아서 상을 기대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상을 탈지 기대도 안 했는데, 상을 타게 돼서 기뻐요.” 민지가 말했다.
“불투명 수채화로 그린다고, 디자인 같다고 하셨지만, 그림이 좋으면 상을 기대해도 된다고 하셨어요.”
민지는 기분이 좋았다. 작년에는 미술 실기에서 수채화부분 그랑프리가 당선되어 A를 받아 갔던 것이다. 미술은 수를 받았다.
민지는 아직 전공을 정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상을 타니까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아, 미대를 진학할 수 있겠구나!’
‘상 타도 소용없어. 우리는 수능 정시로 가야 해. 수능을 잘 봐야 대학을 갈 수 있잖아.’ 민지는 수능을 잘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민지가 미술실기 대회 입선 한 기록은 생활기록부에 기록되지 않았다.
민지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에 상을 탄 일을 회상했다. 그 다음 해인 96년도가 되자 민지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97학년도 수능을 보게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아침 7시 40분까지 등교하여, 야간 자율학습을 하면 밤 10시 30분에 집에 갔지만, 막상 고등학교 3학년이 되니 아침 6시까지 등교하여 야간 자율학습을 밤 12시까지 하고 수능이 2주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는 새벽 1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심지어 일요일도 등교를 했었다. 일요일은 아침 9시에 등교해서 오후 6시에 끝났었다. 일요일은 한 달에 한 번 쉬는 정도였고, 방학 때도 보충수업으로 학교를 나가고, 일주일만 겨우 쉬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정말 쉬는 날이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여름방학 때 일주일 쉰 게 전부였으니까 인간답게 살기를 포기한 상태였던 거 같다. 학교에서 공부를 그렇게 시켰더니, 결국 공부를 못하는 애들조차 4년제 대학을 갔을 정도였고, 반 전체가 전원이 합격했다. 졸업 때 94%가 4년제 대학을 합격했다고, 광고를 써 붙여 놓았다. ○○시 인문계 고등학교는 거의 다 이런 식으로 공부를 했고, 웬만하면 다 4년제를 다 갔다. 오히려 전문대를 가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아, 이게 무슨 야간 자율학습이야 강제 학습이지?”
반 친구들이 모두 입을 모아 그렇게 말했다. 미술 실기 대회 나가서 입선한 그림들을 전시회도 했었지만, 야간 자율학습 때문에 당사자인 민지는 그림을 보러 가지 못했다. ○○도 ㅇㅇ 회관에서 미술실기대회에서 상 탄 학생들 전시회가 있었지만, 오후 6시까지 하는 까닭에 그림을 보러 가지도 못하고 그림을 찾으러 가지도 못했다. 그냥 상 탄 그림을 잃어버린 셈이 되었다. 민지는 마음속에 그 그림을 언젠가는 재현해 놓고 싶은 생각을 했지만, 시간이 없었다. 너무 바빴고, 수능을 치룬 이후에는 실기학원을 다니기에 바빴다. ○○대 판화과는 당시에 미달로 아무나 넣어도 붙을 것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민지는 바보 같이 경희대 미술교육과를 넣었고, 그 후 ○○대와 세종대 그리고 ○○대 입시를 치렀다. 결국은 ○○대에 최종 합격하였다.
“민지. 너 나랑 세 군데나 같은 학교를 입시 봤지?” 정희서가 말했다.
“나 너 세종대 입시 볼 때 너 봤거든. 경희대도 봤지?” 정희서가 ○○대학 입학 날 그렇게 말했다.
“어떻게 그걸 기억해?” 민지는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네 얼굴은 기억하기 좋잖아. 내가 입시 보러 간 학교마다 네가 있더라고. 그래서 나는 너랑 수능 성적이 비슷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어.” 정희서가 말했다.
네 군데 모두 보고 딱 한 군데 합격하여 대학을 다니게 된 것이다.
서울 친구들은 모두 민지가 받은 수능 성적으로 경희대와 세종대 그리고 ○○대 입시를 본 것이다. 민지는 우리 학교만 그 점수로 경희대 세종대 ○○○대 시험을 보러 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다들 세종대 입시를 보러 가는데, 유행처럼 경희대도 같이 보러 온 것이다. 미대 입시 요강을 보면 그 점수로는 어쩔 수 없었다. 다들 ○○○점수가 나와서 경희대를 보러 왔다고 그 다음에 세종대를 보러 갈 거라고 하는 이야기를 엿들은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민지는 본인이 받은 점수랑 너무나 똑같아서 깜짝 놀랐던 것이다. 일반 대학교가 아니라 미술대학은 실기를 보기 때문에, 실기를 50%나 본다는 경희대를 안 넣을 수가 없었다. 경쟁이 너무 치열하여 붙기가 어려울 것 같기는 했다. 다른 대학은 실기가 30% 수준인 경우도 흔했기 때문이다. 미대 입시요강에 따라서 학생들이 지원하는 대학이 거의 같았다.
‘와 이거 사실이면, 담임 선생님이 놀라실 거야. 내가 넣은 점수가 평균이라니, 내 점수가 서울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냥 경희대와 세종대 볼 수 있는 점수였다니,’
민지는 혼자만의 비밀로 두기 아까웠다. 그러고 생각해 보니, ○○대조차 같은 점수대 친구들이 시험 치러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히려 민지가 최종 합격한 대학교는 민지보다 수능 평균 점수대가 낮은 친구들이 지원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최종합격한 학교를 다녀야 했기에 그냥 다녔다. 마음속으로는 ○○대 판화과를 안 간 게 좀 후회가 밀려왔지만, 그런데 득이 있으면 실이 있다고 했던가?
○○학교는 미술○○과로 서양화 동양화 조소를 다 배울 수 있었고, 판화도 선택과목으로 추가로 배울 수 있었다. 그냥 ○○대 판화과를 갔더라면, 민지는 한국화. 서양화, 조소에 대해서 잘 모르고 지나갈 뻔 했다. 그냥 복수 전공 외에는 방법이 없었을 것 같았다.
민지는 여기까지 회상했다. 덕분에 미술교사 자격증을 따는 데에 더 많은 지식을 쌓지 않았나 싶었다.
민지는 올해도 임용고시에 떨어졌다. 미술교사가 되겠다고 다짐하고 공부를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다른 나라는 사범대를 졸업하고 교사자격증을 따고 나면 바로 발령이 나는데, 대한민국만 예외였다. 대한민국은 교사자격증을 땄음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또 쳐야만 하는 나라였다. 원래는 중등학교 교사자격증을 따면 바로 발령이 났었다. 민지도 중등학교 2급 정교사 자격증이 있다. 그런데 기간제 교사 한번 못 해 보았다. 시간강사와 방과 후 교사, 인턴교사 경험이 전부였다. 그것도 4개월이 가장 길었다. 6개월짜리는 구해지지 않았다. 6개월을 채우면 실업 급여를 받아갈 수 있는데, 6개월짜리는 구해지지 않았다.
시간강사도 마찬가지 일부러 2주짜리, 5일짜리, 1일짜리 시간강사를 뽑는다. 민지는 이렇게 짧은 시간강사일자리를 해 봤다.
정규 대학에서 멀쩡하게 받아간 교사자격증을 임용합격 못한 죄로 사회에서 오해도 많이 받았다. 임용고시제도는 교사자격증 시험이 아닌데, 자격증 시험으로 오해하신 분들이 수두룩하다. 자격증 시험이 아니라 교사자격증을 딴 예비교사들을 발령 내기 위한 시험이라고요. 예비교사들 발령시험으로 이름을 바꾸든가? 이름변경이 시급하다. 학생들은 인턴교사도 시간강사도 정교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인 줄조차 몰랐다. 그저 시간강사 보조교사라 불렀던 것뿐이다. 무시 받는 말을 수없이 들은 민지는 속이 상했지만 참아야 했다.
민지는 하염없이 울었다. 그러다가 잠들었다. 집에서는 엄마의 잔소리가 들려서 잠든 지 30분도 되지 않아 잠에서 깨었다.
“이제는 기간제라도 알아보렴.”
엄마가 말했다.
“저 교사 안 할래요.” 박민지가 말했다.
“뭐여? 너 교사 말고 할 게 뭐 있다고?”
엄마는 무조건 교사나 하란다. 민지는 아무래도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고민하고 있었다. 민지는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ㅇㅇ교육청에 구인구직란에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 ㅇㅇ지역에서 거리가 좀 있는 타 지역 교육청에도 이력서를 넣었다.
이력서를 넣고 자기소개서를 넣어 보아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기껏 연락 온 곳이 있었다. 그런데 타 지역에서 근무해야 한다. 그리고 4개월 인턴교사로 수업 보조교사였다. ‘아 진짜 4개월이 뭐지.’ 어쩌다가 4개월짜리를 하게 된 건지 모르겠다. 이거라도 해야 될 거 같아서 서럽지만 그 일을 하기로 했다.
“엄마 또 인턴교사 일을 하게 됐어요.”
“어쩔 수 없지” 엄마가 말했다.
2. 민지의 첫 번째 타임머신
민지는 갑자기 타임머신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였다.
‘띵동’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민지가 문을 열어보니, 인공지능 로봇이 있었다. 인공지능 로봇은 마치 40센티밖에 안 되는 작은 인형 같으나, 가슴에 아이패드가 장착돼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패드는 사실상 컴퓨터이고, 타임머신기능이 있는 것인데, 이것은 분리가 가능했다. 그 아이패드 같이 생긴 것은 전화도 가능하고, 한글 문서 작성도 가능하며, 이것은 말도 잘하고, 소리도 듣고 사람을 인식하는 능력을 지닌 존재였다. 인공지능 로봇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마론 인형보다 조금 무거웠다. 로봇 머리에도 컴퓨터칩이 작게 들어 있고, 스스로 충전도 가능했다. 굳이 주인이 전기 충전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충전도 하는 존재다. 그런데, 얼굴이 마네킹 같았다. 그냥 미소년 같은 외모 같다. 대머리여서 머리카락 따위는 없다.
“어제 주문하신 인공지능 로봇입니다.”
“주인님, 이름을 지어 주십시오.”
“이제 인공지능 로봇 엘리스라고 하지!” 민지가 말했다.
“네, 엘리스예요.”
인공지능 로봇 엘리스는 민지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다고 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싶어”
“타임머신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까?”
“응.” 민지가 말했다.
인공지능 로봇 엘리스는 민지를 타임머신을 탈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다.
“사용법을 알려드릴까요?” 인공지능 로봇이 말했다.
“제 몸에 장착돼 있는 아이패드 전체가 그냥 큰 화면 이예요. 그 큰 화면을 터치해보세요. 그러면 타임머신 버튼이 나옵니다. 작동법도 쉽고, 가상현실도 경험할 수 있고, 타임머신을 탈 수 있어요. 타임머신 기능이 있는 아이패드를 미니 자동차에 장착하면 타임머신을 탈 수가 있어요.”
인공지능 로봇 엘리스가 말했다.
“과거를 여행할 때는 가만히 앉아서 과거를 여행할 수가 있어요. 실제로는 현실 공간에 있지만, 화면은 옛날 현실로 돌아가고 등장인물도 전부 당시 사람들 그대로 돌아갈 수 있어요.”
민지는 눈을 감고 생각해 봤다. 1985년도 초등학교 1학년 때 산수 시험을 보던 그때가 생각났다. 실제로는 다른 시험은 시험지를 제대로 받아서 시험문제도 제대로 풀었지만, 산수만은 시험지를 못 받았던 과거가 떠올랐다. 그래서 중간고사 산수는 0점을 받아 가 나왔던 일이 가슴 아프게 생각됐다. 민지는 반에서 번호가 71번이었다. ‘그래서 70명이 넘는 학생들이 교실에서 공부하나보다’라고 생각했다.
어쩐지 비좁은 교실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아마도 63명쯤 됐을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그것은 민지가 나중에 성인이 된 이후에 정말 우리 반이 몇 명이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71명까지는 아니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사실상 정확한 학생 수는 잘 알지 못한 상태인 것 같다. 그래도 번호가 71번이면 정말 너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시험 당일 교실이동을 하는 등의 소동이 일어났나 보다 생각했고 도덕이랑 국어, 사회는 시험지를 제대로 받아서 문제를 잘 풀었지만, 그건 중간 자리에 앉아 있었고, 시험지도 부족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산수는 재수가 없어서 하필이면 담임 선생님이 감독 선생님으로 오시면서, 시험지를 부족하게 가져오시고, 중간 자리에서 시험을 보던 민지가 갑자기 번호 순서대로 자리를 배정하면서, 맨 뒷자리가 되는 바람에 시험지를 못 받아가는 상황이 오고 말았던 것이다. 시험지 못 받았다는 의미로 손을 들고 있었지만, 오히려 웃음거리가 돼 손을 내리고 말았던 일이 생각이 났다. 쑥스러움을 잘 타서 말이 없었던 민지. 교실 밖을 나가 다른 반 교실에 가서 시험지를 받아왔더라면 문제를 풀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던 일이었다.
시험지도 본인이 걷었고, 무조건 맨 뒷좌석에 앉은 아이에게 시험지를 걷어가라 했다. 시험이 끝난 후 며칠 후 담임 선생님이 시험지를 나눠 주셨고, 산수를 제외한 다른 과목 시험지는 문제를 풀어 이름도 쓰고 반 번호도 쓰여 있지만, 그러나 산수시험지만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이름조차 없는 빈 시험지를 담임 선생님은 민지 것이라고 건네주었다. 친구에게조차 시험지 못 받았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그 사실을 알면 선생님께 혼날까 봐 두려워서 말하지 못했다.
민지는 바보였다. 엄마에게 혼날까 봐, 선생님께 혼날까 봐 민지는 두려웠다. 그리고 그 일은 아픔이 되었다. 상처가 되었다. 그 후 민지는 4학년이 되었을 때 다시 시험지 부족한 일이 생겨 하마터면 또 시험지를 못 받을 뻔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1학년 때 못 받은 시험지 때문에 가를 맞았던 산수성적의 아픔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다시는 시험지를 못 받아서 0점을 받는 일은 없어야 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민지는 시험이 시작된 지 20분쯤 지난 후에라도 일어나서 교실 밖을 나와 다른 반 교실에 가서 다른 반 감독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선생님, 시험지 못 받았어요. 시험지 주세요.”
“어머나, 왜 이제야 말했니?”
“어서 시험지 받아가거라.”
민지는 얼른 사회시험지를 받아가지고 교실로 들어갔다. 사회시험지를 그때서야 받은 민지는 급히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사회는 문제를 풀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점수를 얻었다.
다른 학생들보다 20분이나 늦게 풀었지만 사회문제를 대충이라도 풀고 0점을 면했던 것이다.
민지가 초등 4학년 때 사회 시험을 보던 날은 운이 정말 없었다. 사실 원래 민지는 그날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다른 반 학생들이 민지네 반에 들어와서 시험을 치러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민지는 앉을 자리가 없어서 땅바닥에 앉아서 시험을 치루는 바람에 그래서 그날 사회시험지를 못 받았다가 나중에 용기를 내서 옆 반 가서 시험지를 받아가지고 와서 겨우 20분 만에 시험지를 받은 것이다. 민지는 살다보니 시험 보던 날 땅바닥에서 시험을 치른 건 처음 보았고, 다른 반 아이들과 같이 시험을 치른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민지는 첫 번째 타임머신을 1985년 초등학교 1학년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타임머신은 순식간에 1985년도로 돌아가 있었다.
민지는 서울의 어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민지야, 올해는 7살이 되었으니, 초등학교에 입학을 해야지?”
“엄마, 드디어 초등학생이 되는 거야?”
“민지가 배치고사에서 산수 95점 받아서 엄마는 기쁜 걸.”
“다른 애들도 그 정도는 점수가 나왔어. 나 별로 대단하지 않은데, 교복 입는 학교 가려면 공부 좀 하고 가야 한다고 엄마가 그랬잖아.” 민지가 말했다.
민지는 교복을 입는 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유난스럽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다들 추천해서 제비뽑기해서 당첨된 학교라고 좋아했고, 교복을 입는 초등학교라고 공부 좀 하는 학교라고 정말 기뻐했다. 어쩌다가 몇 명을 빼면 거의 다 한글을 알고 입학했다.
어느 날 민지는 엄마가 사 준 연필 한 다스를 가지고 학교를 갔다. 민지의 머릿속 생각에는 엄마가 사다 주신 연필 한 다스가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물건인 줄 알았다. 따라서 연필을 잃어버렸는데 같은 물건을 가진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가 도둑인 줄 알았던 것이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연필 12자루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공장에서 수많은 물건들이 나오고 똑같은 물건들이 몇 백개 몇 천개 이상 나올 수 있어서 같은 제품을 친구가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 연필은 내 것 같은데?” 민지가 말했다.
“아니야. 이 연필은 엄마가 사주셨어. 난 훔치지 않았어.”
민지는 친구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하나밖에 없는 12자루 연필인데, 어째서 훔친 게 아니라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틀림없이 친구가 거짓말을 한 거라고 오해했다.
수업시간에 떠드는 소리가 들려 선생님이 무슨 일이냐고 물으시니, 민지는 친구가 자신의 연필을 가져 간 거라고 주장했다. 이유는 민지 것이랑 너무 똑같아서였다. 공장을 몰라서 친구를 의심한 것인데, 선생님은 친구가 도둑일 리 없다고 하시면서 민지를 몽둥이 40대를 때리셨다.
“영희는 엄마가 사다 준 연필이라고 하지 않니?”
“어서 종아리 걷어, 40대를 맞을 때까지 소리를 질려선 안 된다.”
한 대 한 대가 너무 세게 때리셨다. 걸어서 집에 갈 수가 없을 정도로 아니 걸어서 집에 가는 것이 기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무 심하게 아프게 때리셨다. 울고 싶고 소리 지르면 더 많이 때리실 것 같아서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몽둥이 40대를 맞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엄마는 놀라서 민지에게 달려오셨다.
“민지야, 너 쩔뚝거리면서 집에 왔네. 누가 이렇게 했니?”
“선생님한테 몽둥이 40대를 맞았어요.” 제대로 걸을 수가 없어 쩔뚝거리면서 힘겹게 집에 온 것이다.
엄마는 선생님을 교육청에 신고했다.
민지는 그날을 절대 못 잊었다. 몽둥이 40대가 어찌나 아프던지,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 매를 맞아야만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민지는 그날 다리의 인대가 늘어나서 제대로 걷는 것도 힘겨워서 쩔뚝거리면서 집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집에 가는 것이 아슬아슬해 보였고, 선생님은 걱정하는 눈빛 하나 보이지 않으셨다.
‘친구를 의심한 죄에 대한 대가가 이렇게나 컸던가?’
고작민지는 만 6세로 7살에 불과했다. 다른 친구들은 8살이지만 민지는 7살이지 않은가? 다른 애들보다 어려서 아직 공장에 대해 몰라서 다양한 물건들이 많이 나오고 똑같은 물건이 많이 나와서 민지와 같은 물건을 다른 친구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같은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무조건 의심했던 실수를 범한 것뿐이었는데, 선생님은 민지의 생각을 알지 못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선생님의 몽둥이는 7살 아이가 받아들이기엔 너무 심한 매였다.
이는 아동 학대였던 것이다. 당시에는 학대를 당해도 선생님은 신고당하지 않았고 아무도 처벌하지 않던 시절인지라 이 일로 민지는 피해를 보고 마음에 깊은 상처만 남았다.
세월이 흘러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민지는 타임머신을 타고 사건을 고쳐 놓고 싶었다.
“주인님, 여기 몽둥이 40대 맞은 사건이 있습니다. 이 사건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갑자기 엘리스가 이 사건을 고쳐 놓을 수 있게 조절하라고 했다. 화면이 크게 보이면서 사건 고치기가 떴다.
사건 고치기를 누르자. 화면이 바뀌면서 글자가 떴다.
년도를 적으시오. 몇 년도로 돌아가고 싶은지를 적으시오.
민지는 2000년도로 돌아가고 싶다고 적었다.
1) 재판한다.
2)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라고 말한다.
이중 골라야 했다.
민지는 재판한다. 골랐다. 이는 아동학대 사건으로 민지는 선생님이 용서가 되지 않았다. 몽둥이 40대를 맞고 인대가 늘어나 집으로 돌아갔던 민지는 마음에 상처를 깊게 받았다.
“주인님이 원하는 재판 결과까지 적어서 보내주세요.”
인공지능 로봇이 말했다.
민지는 원하는 재판 결과를 적어서 인공지능 로봇에게 주었다. 인공지능 로봇 엘리스는 사건이 접수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인님. 그런데, 주인님의 당시 1학년 담임선생님이 2000년도에는 프랑스에서 제과점을 운영하고 있으신데, 만날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 로봇이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58세가 되던 해에 교직을 그만두시고, 사실상 명예퇴직을 하셨거든요. 그리고 프랑스로 가셔서 제빵 기술 익혀서 제과점을 차리신 분인데요. 그분은 교직에 있던 일들은 그저 그런 추억으로 생각하고 계시고, 2000년도는 65세이신데요. 만나주실지 모르겠습니다.” 인공지능 로봇이 말했다.
“오신답니다. 선생님은 시험지 못 받은 사건만 기억이 나시고 나머지는 기억이 나질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인공지능 로봇이 말했다.
민지는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했다. 선생님은 피고인이 되어 있었다. 민지가 자신의 얼굴을 보니, 현재 민지는 원래 30살인데, 거울 속 민지는 22살로 보였다. 달력을 보니 2000년도가 되어 있었다. 대학교 4학년이었던 그 시절로 돌아갔다.
타임머신을 탄 모든 사람들은 모두가 과거의 나이로 돌아간다. 즉 현실 속 나이가 아니고, 모두 과거의 사건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외모, 나이, 신분 모두 마찬가지이고, 과거로 돌아가면 과거에서는 돌아가신 분도 만나 볼 수가 있다. 진짜 과거 여행을 한 셈이다. 모의재판도 사실상 과거의 재판이라고 볼 수 있다.
모의재판도 과거의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검사 변호사 모두 과거의 사건을 쉽게 찾아낸다.
“이번에 과거 재판을 하라니, 처음 하는 건데, 떨린다. 모의재판이라 각본은 잘 썼어?”
검사역을 맡은 최동후가 말했다.
“그냥 즉흥적으로 해.” 변호사역을 맡은 이동규가 말했다.
“자 이제 들어가자. 민지 양이 기다리겠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저는 프랑스에서 제과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교사였지만, 저는 58세까지 교직에 있다가 방학 때 해외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제과점을 방문하여, 그때부터 제과점을 운영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빵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하다가 58세까지 교사로 근무하고, 명예퇴직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연락을 받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타임머신을 타니까 빨리 왔습니다.”
피고인은 65세로 보였고, 할아버지 선생님이셨다. 점장을 입고 오셨는데,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사람같이 보였다. 재판에 진실을 이야기해 달라는 부탁
을 받고 오셨다.
“피고는 아동이 불과 7살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동이 걸어가기 힘겨울 수준으로 종아리를 때려 인대가 늘어나게 만들었죠?” 검사가 말했다.
“네, 그런데 15년 전 사건이라 공소시효가 지났습니다만.”
“지금 무슨 공소시효 따위 주장이요. 여기에서는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왔지 않나요?
“증인, 당시 상황을 설명할 수 있나요?”
“네, 저는 엄마가 12자루의 연필을 사 주셨습니다.
나는 틀림없이 12자루 연필은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줄로만 그렇게만 알고 있었기에, 저랑 같은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제가 연필을 잃어버렸으니까, 친구가 훔친 게 분명하다고만 생각한 것이에요.
7살이었던 나는 공장을 몰라서 같은 물건이 몇 백개 몇 천개 나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웬만한 것은 엄마가 다 사다 주셨거든요. 그래서 연필을 잃어버렸을 때, 저랑 같은 물건을 갖고 있어서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같은 물건을 갖고 있다고 해서 증거가 되진 않는다고만 하셨습니다.” 민지가 말했다.
“그러니까, 증인님은 12자루 연필이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물건으로만 알았던 건가요?”
최동후 검사가 말했다.
“네, 엄마가 사다 주신 것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줄로만 안 것입니다. 그래서 친구가 훔쳤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선생님은 저의 생각을 묻지도 않고 친구를 의심한 죄로 몽둥이 40대를 때리신 거구요.”
“몽둥이 40대는 지나친 체벌로 저는 그날 울고 싶었지만, 울면 더 세게 때린다고 하셔서, 울고 싶은 것도 참았습니다. 너무 아팠습니다. 다 맞고 나서 걸어가기도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민지가 말했다.
“하지만, 교복 입는 학교라서 같은 옷 입는 친구들을 만났을 텐데도?” 이동규 변호인이 궁금해서 물었다.
“교복은 단체복이잖아요. 우리 학교만 입는 옷이거든요. 그것도 다른 학교 학생은 못 입는 옷이에요. 딱 그 학교 학생만 입으니까, 전국에 하나밖에 없는 교복이고, 연필 한 다스도 12자루만 묶여 있어서, 저는 그 12자루만 만들어서 판 줄 알았던 것입니다. 엄마는 용돈을 잘 주시지 않으셨어요. 혼자 물건을 사기보다는 늘 엄마나 오빠랑 같이 가서 물건을 샀고, 주로 엄마가 대신 사 주셨어요. 특별한 날만 용돈을 주셨기 때문에 물건을 혼자 스스로 사 본 게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200원짜리 종이인형을 산 게 처음이었던 거 같아요. 공장에서 다양한 물건이 나오고 같은 물건이 수천 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나서 6개월이나 지나서였어요.” 민지가 말했다.
“훔칠 수는 없어서 하굣길에는 그냥 가게 안 쳐다보고 집으로 뛰어가기 바빴어요. 문방구를 거의 방문하지 않아서, 단골이 따로 있지 않았고, 필요한 물건은 주로 엄마가 다 사다 주셨거든요. 준비물은 엄마랑 같이 가서 산 기억만 나요.” 민지가 말했다.
“그 흔한 군것질을 가끔 하는 식이었어요. 엄마가 생각이 나는 날만 용돈을 주셨으니깐요.” 민지가 말했다.
“저는 용돈을 달라고 하지도 못하고, 가끔 아빠 졸라서 돈을 받아 낸 적은 있어요. 그마저 실제로 필요한 돈만 달라고 하고, 10원이라도 더 받아 내지 못했어요. 저도 용돈을 많이 받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그래도 훔친 적은 없습니다. 언제나 정직하게 살려고 했을 뿐입니다.” 민지가 말했다.
이동규 변호인은 아무 말도 못했다. 용돈을 너무 받고 싶어 했을 민지 양의 모습이 그려졌다. 변호인도 어린 시절 엄마가 용돈을 풍성하게 주셔서, 과자를 자주 사먹었었다. 심지어 용돈을 실제 필요한 돈보다 더 받아 내기도 했는데, 민지는 용돈을 더 받으려고 하지도 않고 심지어 용돈을 제대로 받은 일은 거의 없었다는 말에 갑자기 딱한 생각이 들었다.
최동후 검사는 그냥 민지의 이야길 들었으나 재판에 이길 생각만 하였다.
“존경하는 판사님, 이 사건은 아동이 한 행동을 실수로 보이고, 그렇다 하더라도 몽둥이 40대를 때려 걸어가기 힘들 정도로 때린 행위가 학대가 틀림없는 것으로 학생을 때린 교사는 징역 3년을 받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최동후 검사가 말했다.
“당시 아동의 종아리는 인대가 늘어났었고, 집으로 돌아가기도 힘들었을 텐데도, 선생님은 전혀 걱정하지도 않으셨고, 미안해하지도 않으셨으니, 이는 학대가 분명합니다.” 검사가 말했다.
“게다가 피고는 전혀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고 이 사건으로 인해 아동은 원래 그림솜씨가 좋아 그림을 잘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학부모가 당시 교육청에 항의를 했다는 이유로 복수를 하려는 마음에 미술실기점수를 최하점수를 주는 등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했습니다.”
검사는 민지의 초등학생 시절 그림을 보여 주면서 말했다.
“이 그림이 당시 저 학생의 그림입니다. 7살 아동이 그린 그림으로 보기엔 정말 잘 그렸지 않습니까? 어찌 이 그림이 실기점수가 최하가 돼야 합니까? 이는 공정한 채점이 아닌 복수를 하려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보기에도 정말 잘 그렸네요.” 판사가 말했다.
“저 정도 그림이면 7살 아동 그림으로 잘 그린 편에 속해서 최고점수를 줘도 무방해 보이는데, 이 교사는 그림점수를 최하점수를 준 후 학생이 미술 양을 받아가게 한 범죄를 저지른 교사입니다. 그림에 대해 잘 모르지만, 객관적으로 보기에 미술 양은 말도 안 되는 점수였으며, 공정하지 않은 점수였던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피고는 학생이 미대진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소질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네, 소질 있다고 교사수첩에 적혀 있어 이제 와서 아니라고 부인하긴 힘드시지 않나요?” 검사가 말했다. 검사는 교사의 수첩을 찾아내 이를 증거로 보여 주었다.
“1985년 어느 날
민지는 그림을 잘 그렸다. 그런데 그 애가 너무 밉다. 그 아이가 나한테 몽둥이 40대를 맞은 후 그 애 엄마가 나를 아동학대로 신고를 한 게 원인 되어서 나는 갑자기 교육청에서 조사를 받게 되었다. 덕분에 경위서를 쓰게 되었는데, 승진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애가 너무 미웠다. 그래서 미술이랑 음악을 잘하는 편이라는 것을 알지만 일부러 최하 점수를 줬다. 감히 나를 교육청에 항의해, 나를, 나를”
“오늘은 1학년 학생들이 처음으로 치르는 시험 보는 날이다. 이날은 사회, 도덕, 국어, 산수를 보는 날이었다. 그런데, 산수 시험이 마지막 시험이었다. 내가 산수 시험지를 교무실에서 받아오는데, 시험지가 부족했다. 7장정도 모자랐다.
민지는 71번이라 마지막 번호인데, 나는 그 애를 가장 뒷자리에 앉히고 싶었다. 그러나 처음에 자리 배정을 할 때는 박민지가 앞자리였고, 두 번째로 자리를 옮기라고 했지만, 여전히 민지는 중간 자리로 시험지를 제대로 받을 거 같았다. 나는 마지막 방법이 번호 순서대로 앉히면, 그 애가 시험지를 못 받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일부러 맨 뒷자리로 배정되게 번호순서로 앉으라고 지시했다. 7장이 모자라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민지가 시험지를 못 받게끔 한 내 행동이 의도적인 사실조차 모를 것이고, 민지는 숫기가 없어서 활발하지가 않아, 시험지를 제대로 받아 갈지 못 받아 가는지 한 번 지켜보고 싶었다. 나는 그날 맨 뒷자리에 앉은 7명 중에 딱 한 명의 학생에게 시험지를 대리로 받아오라고 지시했는데, 당연히 그 아이가 7장을 다 받아왔다고 생각했고, 시험지 나눠 주는 것도 그 애에게만 모두 맡겼다.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수를 잘못 세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만 믿었다.
박민지는 20분 넘게 손을 들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냥 무안을 주고 넘어갔다. 그리고 시험지도 뒷자리 학생에게 시험지를 걷으라고 했다. 각 각 맨 뒷자리 학생에게 시험지를 걷으라고 했고, 나는 가만히 앉아서 교실 안을 돌아다니지도 않고, 그냥 맨 앞자리 귀퉁이 자리에 앉아만 있었다. 솔직히 귀찮은데, 학생들 시켜도 되지 않나 싶어서 시험지 걷는 것도 그냥 학생들 시켰다. 그래서 그날 맨 뒷자리에 앉은 박민지가 결국 시험지를 걷었다.
그런데, 박민지가 걷어 온 시험지는 장수가 한 장 모자랐다. 내가 시험이 끝난 후 시험지를 다시 5번도 더 세어 보았지만, 장수 한 장이 모자랐다. 아차 싶었다. 그날 시험지를 못 받았다는 의미로 박민지가 시험지를 달라는 의미로 손을 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 실수라는 것을 감추고 싶었다. 그래서 그 빈 시험지를 찾아야 했다. 어쩌지 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빈 시험지 세 장이 내 교무실 책상에 있었고,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시험지 세 장 중 두 장은 다른 반 선생님 반에서 남은 두 장이었고, 그리고 남은 한 장이 박민지 시험지로 둔갑했다.
나는 민지가 시험지 못 받은 것을 직감으로 알았지만, 그 애가 너무 미워서, 정말 증오하고 있어서 일부러 말해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교무실로 그 애를 부르지 않았다. 매 40대 사건으로 인해 내가 경위서까지 쓰느라고 고생해서 정말 싫은 아이다. 그 빈 시험지를 마치 민지가 받았는데 이름 번호 안 적은 것처럼 해두려고 일부러 하나 맞은 것처럼 채점해 버리고 그 애에게 시험지를 나눠 줬다.”
최동후 검사가 교사의 일기를 읽었다. 여기까지 읽은 검사는 민지가 좀 딱했다.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학생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직무유기에 해당하는 행동을 한 일에 대해서 화가 났다.
“박민지 양이 음악이랑 미술을 꽤 잘하는데, 일부러 최하 점수를 줬다?” 검사가 말했다.
“음악은 박민지양의 초등학생 시절 성적을 보면, 우 미를 번갈아 가면서 받은 것으로 돼 있고, 특히나 고등학생 시절에는 우를 받아 간 것으로 돼 있는데, 초등학생 시절 1학년 때만 유일하게 양. 이거 이상한 거 아닌가요?” 검사가 의심의 눈초리로 교사를 쳐다봤다.
“음악 양은 보통 음치인 학생들이 받아가는 거 아닌가요? 지나치게 이론 중심으로 평가를 하신건가요?”
최동후 검사가 말했다.
“음악을 초등학생 3학년 때는 분명히 우를 받아갔는데, 그 이후에도 우를 많이 받았거든요. 우만 해도 4번 이상 받은 것으로 돼 있고, 심지어 성가대도 했으며, 음치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알토 솔로를 했다고 하는데?” 검사가 말했다.
“알토 솔로 아무나 하나요?” 검사가 말했다.
선생님은 아무 말도 없었다.
“증인이 음치가 아니라는 증인을 부르겠습니다. ”
검사가 말했다. 갑자기 젊은 여성이 증인 자리에 앉았다.
“증인은 박민지 양이 알토 솔로를 한 일을 기억합니까?” 검사가 말했다.
“네 기억합니다. 대학생 때 일입니다. 박민지는 대학 축제 때에도 대표로 노래를 불러 선물을 받아간 일이 있거든요. 알토 솔로 했습니다. 한 번뿐이지만, 어차피 우리는 전공자가 아니고, 비전공자들 위주로 있었기 때문에, 알토 솔로는 그냥 민지 양이 하겠다고 했습니다. 조금 걱정을 했으나, 실수 없이 잘해냈습니다.” 김지윤 양이 말했다.
“그렇다면, 음악조차 사실과 다르게 평가했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드는 부분이군요. 시험지 못 받은 사건이랑 미술실기성적이랑 준법성 다 준 사건까지 다뤄봐야 해서 이쯤 해 두겠습니다.” 검사가 말했다.
“이제 시험지 못 받은 일에 대해 더 상세히 다뤄봅시다.” 검사가 말했다.
“이게 진짜 선생님 맞습니까? 학생이 시험지를 못 받았다고 손을 20분 넘게 들고 있었는데, 그 애 자리에 가 보지도 않았다고 하지요. 그냥 학생과 정반대 자리의 앞자리에 그냥 앉아만 있었다 하지요. 학생이 손을 들고 있었으면 학생 자리에 가 봐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닙니까?” 검사가 말했다.
“시험지를 맨 뒷자리에 앉은 학생 보고 걷으라고 명령을 했다면서요?”
“네. 그렇습니다. 그런 일은 흔해요.” 김 선생님이 말했다.
김 선생님은 할아버지의 모습이었고, 빵 모자 쓰고, 수염을 기르고, 65세쯤 보이셨는데, 민지를 보고도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당시 민지 양 바로 앞좌석에 앉은 학생을 증인으로 불렀습니다.”
갑자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어느 아가씨 한 분이 증인으로 앉아 있었다. 아마 시험 당일 바로 민지 양 바로 앞자리에 앉은 학생이었던 거 같다.
“그날 시험지가 학생 자리에서 떨어졌었나요?” 검사가 말했다.
“네. 제 자리에서 시험지가 떨어지고, 바로 뒷자리에 앉은 민지는 못 받았어요. 그리고 선생님이 민지가 여태 손을 들고 있다고 하셨고, 저는 선생님이 심부름 시킨 학생이 단체로 시험지 받아서 시험지를 받아 가라고 했으니까, 받아 갔을 거 같았는데, 나중에 연락해 보니, 그날 친구가 민지의 시험지만 안 받아왔다고, 한 장 모자라게 받아온 거라고 하더라고요. 오랜만에 만나서 그날 일을 물어봤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그날 한 장 모자라게 받아와서 나는 시험지 못 받았다는 의미로 손을 20분 넘게 들고 있었던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날 시험지를 선생님께서 걷지 않으시고, 맨 뒷자리에 앉은 학생 보고 시험지를 걷으라고 했어요. 선생님은 평소에 심부름을 자주 시켜서 숙제검사도 학생이 다 하고 보고만 듣고 이에 맞춰 매를 때리셨습니다. 하도 엄해서 저 역시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잊지 않고 있었거든요.” ○○양이 말했다.
“그러면, 사실상 시험지를 민지 양이 못 받은 게 확실한 거 군요?” 검사가 말했다.
“네. 저라도 말했어야 하는 건데, 친하지 않아. 아니 민지가 말이 너무 없는 친구였어요. 매우 내성적이었고요. 착한 친구였어요.” ○○양이 말했다.
“시험지를 못 받았다는 증거는 이밖에 또 있습니다. 1학년 산수는 가이지만, 2학년 산수 성적은 우를 받아 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민지 양 주장에 따르면 합산된 점수만 생활기록부에 기록돼, 우, 미, 우, 미를 번갈아가면서 받아간 거라고 합니다. 그런데, 2학년부터는 구구단을 외우고, 곱셉을 처음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덧셈도 1학년 때와는 달리 세 자리 수 덧셈, 세 자리 수 뺄셈을 배우고 그 당시 교과서를 보니까 이미 분수의 기초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를 받은 것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서 1학년 산수 ‘가’는 시험지를 못 받아 그런 거라고 시험을 치르지 못했기 때문에 원래 성적에 맞게 점수를 받은 게 아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맞다고 합니다. 게다가 실제로 시험지가 부족했다는 증인과 증인 뒷자리 학생이 시험지가 없었다는 증인의 주장이 나옴에 따라서 시험지를 못 받은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입니다.” 검사가 말했다.
이에 이동규 변호인이 말했다.
“시험지 못 받았다는 주장은 일단 선생님도 인정하시고 있고, 이미 앞에 학생이 증인으로 나와서 당일 박민지 양보다 바로 앞자리 친구가 자기 자리에서 시험지가 바로 떨어져서 뒷자리 친구가 시험지를 못 받은 일을 증인으로 서서 그것이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산수성적이 가에서 우로 바뀐 게 증거라고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중학생이라면 몰라도 초등학생은 1학년 산수성적을 가에서 우로 올리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물론 2학년 산수는 곱셉이고 두 자리 수 계산이 아닌 세 자리 수 계산이라서 더 난이도가 높고, 분수마저 배운 기억이 납니다. 분수까지 배운 상황에서 나온 점수가 우이면 잘 한 거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시 학생들 속셈학원이랑 주산학원이 대 유행이라 학원 좀 다니고 과외지도 받으면 저학년 산수는 그다지 어렵지 않아서 충분히 가에서 우로 올릴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성적이 오른 게 당연한 결과로 볼 수도 있는 것이고요. 그리고 학생이 시험지 못 받은 것이면 손만 들고 있지 말고 교실 밖을 나가서 옆 반 가서 시험지를 받아 갔어야 하지 않느냐. 좀 바보 같지 않았느냐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이에요. 물론 이게 사실로 알게 된 이상 성적 정정을 해야 하는 것이 맞긴 합니다만, 이는 검토를 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아, 민지가 시험지 못 받은 것은 기억이 나고, 매를 맞은 사건은 다른 학생들도 흔히 겪는 일이라 내 제자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는데, 일단 불러줬으니까, 답변은 해야지.” 김 교사가 말했다.
검사는 급 당황한다.
사실 변호사와 검사 판사는 과거로 돌아가 보니, 갑자기 당시 나이로 돌아갔기 때문에 대학생 신분에서 이 재판을 맡은 것이 되었다. 현실에서는 대학생이 아니라 전부 사회인이었다.
당시 그들은 대학교를 다닐 때 모의재판을 한 일이 있는데, 비슷한 재판이었고, 사건은 달랐는데, 막상 다시 과거로 돌아가 보니, 갑자기 박민지 양의 사건을 맡고 있었던 것이다.
첫댓글 잘보고갑니다
좋은글 감사 합니다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소설을 보니 저도 학교 다닐 적에는 매도 맞은 적은 있었지요
좋은 소설을 보니 참 재미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