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령문인협회 문학산행 ◈
⊙ 일시 : 2017.4.1(토) ⊙ 산행지 : 비슬산 혹은 비슷산
참가자 : 박현철, 김영곤, 신동환, 양창호, 이미순, 주향숙, 박진숙, 김인선 (8명)
참인지 거짓부렁인지 얼마간 꿈 같은 시간을 보내고서야 비슬산을 기억해냈다. 굳이 참꽃을 보기 위함도 아니었지만, 그 산은 이미 참꽃으로 유명한 산이었기에 참의 존재에 대한 거짓식 다녀옴에 대한 해명 정도는 있어야 할 것으로 보였다. 어찌 보면 참꽃 산행지를 굳이 거짓말이 법적으로 허락된 날을 택해 다녀온 것부터가, 문학이 거짓이라는 누군가의 말에 적합한 해명쯤 될까. 같은 사월임에도 참꽃이란 참으로 감감했고, 필락말락 간졸음 해대기 딱 좋은 '비슷산'을 보고 왔다고 하겠다. 당연히 이에 대해 할말이 많았지만, 그 무렵 몸 하나에 참과 거짓 두 개의 개체를 지닌 샴처럼 우왕좌왕 하다가, 끝내 시간을 내지 못하고 말았다.
참고로 비슬산 참꽃 축제는 4월 22일부터란다. 그러니까 우리 문인협회 비슬산 산행은 참꽃과 전혀 무관한 만우절 산행이었으며 세상은 하필 기가 막힐 정도로 찬란한 벚꽃들이 하늘아래 꽃숨구멍을 팔랑거릴 때였다. 어느 누가 그런 날 비슷산에 오르겠는가. 그럼에도 어디 대놓고 비슬산 다녀왔다 하려면 대견사를 호위하는 참꽃 군락이 평원으로 쏘다니는 풍경 정도는 읊어줘야 할 터인데, 면면을 잘 봐주려도 우중산행은 숫제 꿈도 못꿀 곤란한 처지들이다. 이때다 싶어 반딧불이 모양의 전기차를 전원 탑승하니 때마침 편안함이 좋다며 햇살까지 나와주신다. 그 순간의 비슬산은 날씨마저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시험을 하는 듯했다.
8부능선 대견사에서 정상까지의 2.8km거리까지도 동심세계에 최면 걸린듯 아장아장 걸었는데, 실로 느림의 미학이란 우리의 비슬산행이라 할 것이다. 이마저도 믿지 못하겠다면 만우절에 맡길밖에. 그러거나 말거나, 참꽃 없는 비슬산을 앙코 없는 찐빵이 당해낼까만, 비 그친 뒤의 깨끗함으로 호젓한 걷기만은 거짓없이 참이라 말하고 싶다.
사실 산행을 하기로 하고 집을 나섰지만 비슬산의 지나친 배려를 맛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를 태워 나른 반딧불이 전기차. 비 오는 날은 차도 비옷을 덮어 하우스를 만들 줄 알았다.
대견사를 뒤로 하고 우선 정상부터 밟고자 한다. 수묵화 한 폭 바라보는 사이로 빗방울은 은구슬을 매단다. 눈으로 또로로록 챙챙 감는 은구슬을 보았다.
거짓은 잘 드러나지 않는 듯 보이나 직관이라는 첫눈에 오기도 하고 지독한 거짓일수록 역사의 평가에서 늦게 드러나기도 한다. 설마 진실이 필요한 세월을 살아온 구력이 몇 년인데, 참과 거짓 하나 구분 못할까. 다가오는 참의 날, 우리는 진정 제대로 된 참을 가려 뽑을 수 있을까.
말 달리자. 말 달리자. 군데군데 소나무들이 기세 좋게 내닫는 고구려 장수들 같다. 뒤로 말발굽이 일으킨 평원의 기상이 흐르는 듯하다.
건너편의 강우량 측우소를 조망한다.
말 탄 장수들은 마의 오르막 코스에도 주춤하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말갈퀴 휘날리며 전의를 불태우는 모습이다. 진달래 없는 빈사의 평원으로 이야기 고구려사가 흐르는 듯...
물푸레 나무일까? 나무 사이로 물이 흐르는 것 같기도 하고, 날아가던 흰꽃이 셔틀콕 같은 센 바람에 납작 터진 것 같기도 하고... 나무가 물을 올리는 건 확실해 보이는 나무 사이로...
오늘날 가장 흔한 정상의 풍경. 정상을 밟아본 지 몇몇 해이뇨, 감개무량한 사람 몇 몇을 숨겼다.
잠시 착각하지 마시라고 기록물처럼 정직하게 말하는 정상석. 흔히들 천왕봉 이름만 적고 말 것을 행여 우리더러 지리산 그분이라 하면 아니되옵니다, 손사래를 쳐가며 동명이봉 정직하게 아뢴다. 참말 잘하는 참꽃산 답게 천왕봉이는 1,084m다. 장하다 그 이름, 비슬산 천왕봉.
우리들의 식탁자리는 비빌 언덕은 좁은데 새끼만 친 옹기종기 제비집 같은 곳. 진정 제비집 답게 뒤로 돌리면 어지럼증이 싸하게 밀려오는 살짝 벼랑이다. 그 속에 밥들은 왜그리도 푸짐한지. 김밥 싸오지 말라고 전날 그렇게 언질을 줬건만, 아직도 파악 못한 염치란 자가 하나라도 챙겨야 한다며 계속 미끼를 던진 덕분. 다음엔 아마도 그때 너무 많았다며 너도 나도 안싸와서 이상하게 죽이 맞지 않을 수도 있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산행팀.
비슬산이란 이름 참 예쁘다. 정상 일대의 산이 마치 거문고를 타는 모습을 닮았다하여 비슬산이라 이름하였다는데, 참꽃시즌을 살짜기 피한 덕분에 등산객들로 붐비는 한국의 100대 명산을 온전히 우리 것으로 체험하였다.
비슷하지만 어딘지 다른가 하여, 달라진 장면 찾기에 혹시 쓰일까 하여....
유일하게 필락말락 봉오리로 뿅뿅 물을 긷던 녀석, 아무리 늦게 걸어도 감감 오지 않는 후미팀 기다리다 이렇게 건졌다.
축지법을 썼나? 우리가 방금 전에 저 산 정상에 있었단다. 1시간에 일어난 기적. 자꾸만 속는 것 같아 자꾸만 돌아보던 자리. 하지만 참말이라고 우직한 정상이 말을 한다.
참, 거문고를 타는 것 같은가? 거문고는 모르겠고 손가락 하나 톡, 튕긴듯 바위가 돌출한 것은 눈에 들어오는데...
우리는 대견사로 향한다. 명승 일연이 20대를 보낸 수행지였다는 사실은 이 산의 깊은 내력을 말해준다. 당시 일연스님은 비슬산 보당암에 머물면서 민담이나 신화, 향가를 채집하였는데, 훗날 삼국유사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삼국유사를 집필한 사찰로는 군위 인각사와 청도 운문사 등이 알려져 있는데, 비슬산은 그 사상적 뿌리를 다진 산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가하면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의 기를 꺾는다는 이유로 강제 폐사된 질곡을 간직한 산이기도 하였다. 이는 최근인 2014년에 대웅전과 종무소, 산신각 등을 새로이 준공하면서 대견사지에서 대견사라는 절 이름을 다시 부여받기에 이르렀다. 설악산 봉정암, 지리산 법계사와 함께 1,000미터 고지대에 자리 잡은 사찰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비슬이란 이름은 우선 아름다운 발음구조를 가졌다. 인도 범어의 발음을 그대로 표기한 것이라고 하는데, 신라시대에 인도의 스님들이 이 산을 구경한 후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당당히 한국의 100대 명산으로 이름을 올렸다. 신라시대 불교의 영향인지 대구 경북지역 산의 특색이 그렇듯, 산 속엔 수많은 사찰을 품은 것도 한 특징이다. 같은 4월이면서도 참꽃축제를 피했지만, 곧이어 철쭉도 피고, 우리가 옆구리에 끼고 거닐었던 평원에는 억새가 군락을 이루니 틀림없이 볼만할 것이다. 자연경관 외에도 성인 천 명이 난다는 전설까지 품어 그 영험함을 느끼는 것도 좋을 듯하다.
당나라 황제가 절을 지을 곳을 찾던 중, 세숫대야에 떠놓은 물에 아름다운 경관이 나타났으니, 이후 사람을 시켜 찾게 한 절이라 한다. 중국이라는 큰 나라(대국)에서 보인 절이라 하여 대견사라고 한단다.
비슬산의 암괴류들은 내달리기를 잘한다. 길게 짱짱하게 굴러 내려가는 암괴류는 중생대 백악기 뭐 그쯤의 거석들이란다. 이 암괴류는 우리나라에서 그 길이가 가장 길게 형성되었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바위는 이름을 가졌다. 그것도 짓기 나름, 바라보기 나름의 이름들. 대견사 주위를 호위한 바위군락이 어쩌면 진짜 참꽃이런가. 점점 눈에 은유의 헛꽃이 피기 시작한다. 서둘러 다시 와야 할 산이라는 초기증세일까. 물 속에서 물을 뿜는 물개 두 마리 보이실까. 앞의 한 마리는 몸을 똑바로 세운 채 음파~하며 하늘로 입을 오므렸고, 뒤의 어미 물개는 장난치면 못써, 하며 타이르듯 돌아보는 중이다. 믿거나 말거나, 참이거나 거짓이거나.
한낮의 오수를 즐기는 아기동자들이 턱 괴고 뒹구는 것 같기도 하고, 발로 뻥뻥 차는 것 같기고 하다. 땅바닥에 굴러 떨어진 것들은 탱자나무 가시에 걸린 공이라 할까. 아, 저 기왓장 조각들은 돌이 아니어서, 새라고 할까? 새가 광활한 창공을 내다보는 듯하다. 무릇, 모든 돌들은 행동을 하고 있다.
종무소를 위악스럽게 누른 바위군락은 그 위세가 지배인급이다.
대견보궁 앞으로 미리 걸린 축등 행렬은 참꽃축제를 맞이하기 위함일까.
바위굴로 들어가면 바위가 꽃잎처럼 나를 포개는 느낌이 든다. 깎아지른 벽면에 동전을 세워두는 것으로 소원을 비는 풍습이 생겨나 있었다.
바위굴 입구에 새겨진 대견사 마애불. 바위의 검은 이끼꽃에 가려져 찾으려는 자체가 만우절날 참꽃 찾기쯤 되겠다. 연꽃 좌대위에 든 부처는 선경을 의미한단다.
이는 참으로 편평하게 보이지만, 태평스런 눈속임이다. 대견사 삼층석탑은 깎아지른 절벽위에 세워져 발아래 암괴류들의 산하를 내려다보고 있다.
기묘하게 눈 주름, 손발 오그린 자태들을 그려내는 형상들.
헛것이어도 좋으니 분홍빛 심하게 일렁이는 참한 빛깔의 그 아가씨 보고 싶구나.
석탑은 영원한 민낯으로 바람을 탄다.
세월이 느껴지는 암괴류들의 달리기.
비슬산은 한 번 발을 들여 놓으면 그 장중한 산세와 맑은 공기에 반해 누구라도 다시 찾게 된다고 한다. 아마도 내년 문학산행은 참꽃축제 기간에 맞춰 다시 찾지 않을까, 조심스레 점괘를 쳐본다. 그날은 거짓날 말고 참날 맞아 참꽃 좀 담아보고싶다.
첫댓글 때론 보지않고도 믿는 자 복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