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용강동과 동천동, 천북면의 경계에 해발 177m 높이의 역사적 유물이 많은 소금강산으로 불리는 바위산이 있다. 포항에서
울산으로 이어지는 7번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달리다 경주시청으로 들어가는 동천동 신호등에서 100여m만 더 지나면 왼쪽으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있고 그 길을 따라 나지막한 금강산이 이어진다.
삼국유사는 1권에 신라에 신령스러운 네곳의 땅이 있어 나라의 큰일을 의논하는 곳으로 동쪽의 청송산(靑松山), 남쪽의 우지산
(于知山), 서쪽의 피전(皮田), 북쪽의 금강산(金剛山)이라 기록하고 있다.
신라시대 나라에 어려움이 있으면 이 네 곳에서 회의를 하면 해결이 됐다는
고사가 지금까지 전해지면서 성지로 기록되고 있다.
삼국사기도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항복하려하자 마의태자가 이에 반대하며 왕에게 하직하고 곧바로 ‘개골산’으로 들어가
일생을 마쳤다는 내용을 소개하며 강원도 금강산을 개골산으로 기록하고 있다.
신라 법흥왕 14년에 불교를 공인하기 전에 북쪽의 바위산이라 해 북악 또는 북산이라 불렀던 산이 이차돈의 머리가 떨어진 곳이라
불교의 성역으로 되면서 금강령, 금강산으로 고쳐 불렀다. 불교에서 금강이라는 말은 금속처럼 빛나고 단단하다는 것으로 부처의
세계, 부처의 지혜로 상징되는 말이다.
또 한국지명유례집에 경주시의 북동쪽에 있는 용강동 동천동과 천북면의 경계에 있는 소금강산은 금산, 금강산 등으로 불리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소금강산이 아니라 금강산으로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의 지리지와 지도에는 금강산이 나오
는데 소금강산이라 기록된 것은 없다.
일제시대 이후 강원도에 있는 금강산이 알려지면서 소금강산이라 불리게 됐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경주의 금강산이 원조 금강산
인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또 화랑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강원도의 금강산을 개골산, 풍악산으로 기록하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경주의 소금강산을 ‘금강산’으로 부르고 강원도의 금강산을 ‘개골산’ 또는 ‘풍악산’으로 불렀다는 기록이 여러 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경주 금강산이 강원도 금강산보다 그 이름을 먼저 부여받은 사실을 명백하게 입증하고 있다.
경주의 금강산이 원조 금강산인 것이다. 산세의 위세나 경치에 밀려 이름 앞에 ‘소’자를 붙이게 되면서 체면을 구기게 된 경주의
금강산이다. 이제는 경주에 사는 경주시민에게조차 소금강산으로 불리지만 거의 잊혀지고 있다.
이름은 잃었지만 경주 금강산에는 보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백률사 대웅전, 이차돈순교비와 삼존불, 마애삼층석탑 등의 문화
유적과 유물들이 출토돼 성지로서의 체면을 보존하고 있다. 경주에 금강산이 있다는 말에 의아한 생각을 가지는 경주사람들도
많지만 여전히 경주 소금강산이 가진 신성한 힘을 기대하며 찾는 발걸음은 요즘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법흥왕의 업적과 고민
신라 법흥왕은 국론을 통일하고 불교를 공인하기 위해 아끼는 신하 이차돈과 협의하고 그의 목을 치게 된다. 백률사에 있는 불교 공인의 주인공 이차돈의 초상화.
법흥왕은 신라 23대 왕으로 지증왕의 아들이다. 법흥왕은 514년부터 540년까지 26년간 재위하면서 지금의 국방부에 해당하는
병부를 설치하고 율령 반포, 관리들의 복장 정리, 상대등 설치 등의 많은 업적을 남겼다. 특히 불교를 공인해 국력을 키우고 금관
가야를 정복해 영토를 넓혔으며 건원이라는 연호를 사용하기도 했다. 키가 일곱자나 되는 거인으로 성품이 너그럽고 백성들을
사랑해 훌륭한 왕으로 칭송받았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러나 법흥왕은 불교를 일으켜 국론을 통일하고자 했지만 신하들의 불평이 많아 심사가 편치 않았다.
법흥왕은 대부분의 대신들이 “스님들이 머리를 빡빡 깎고 이상한 옷을 입고 다니며 이상한 논리를 주장해 나라에서 아무리 무거운
형벌을 내린다고 해도 불교의 교리를 따를수 없다”고 주장하는 반면 이차돈은 일반 대신들과는 반대의 뜻을 펼쳤다. 왕이 아끼던
이차돈이 “소신의 목을 베시어 모든 신하들의 불평과 의심을 잠재우소서”라며 “내가 죽을 때 부처님의 신령스러운 힘으로 이상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 간청하자 법흥왕은 이차돈의 목을 치게했다.
그의 목에서 흰 피가 솟구치고 하늘이 시커멓게 변하면서 땅이 진동을 하며 꽃비가 내렸다. 이를 본 사람들이 부처님의 신령스런
힘이라 생각하고 법흥왕은 함부로 생명을 해치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리며 불교를 정식 공인하고 국교로 삼았다.
순교를 기념해 세워진 이차돈 순교비. 비석에는 머리가 땅에 떨어지고 목에서 피분수가 솟구치는 그림과 순교에 이르게 된 경위가 새겨져 있다.
법흥왕은 당시 귀족들의 만장일치로 의견을 통일해 정책을 결정하게 했던 화백제도로 왕권이 견제를 받게되자 귀족의 세력을
꺾고 그들의 마음을 모으고 싶었다. 부처를 믿는 일은 왕을 믿는 일이라 생각하고 법흥왕은 불교를 공인하기 위해 이차돈과
협의해 일을 추진하고 결국 왕권을 강화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경주 금강산의 문화재
경주 소금강산을 오르는 등산로 초입에 집채만한 바위의 동서남북 사면에 부처가 새겨져 보물 제121호로 지정된 굴불사지 사면석불. 초파일에 앞서 주변에 연등이 걸려있다.
경주 금강산으로 오르는 길은 용강동과 동천동, 천북 등등 여러 곳으로 이어져 있지만 동천동 금강산의 서편에 마련된
주차장에서
시작되는 입산길이 가장 붐빈다.
주차장에서 다소 가파르게 이어지는 산길을 오르다보면 아무리 등산을 못하는 약골이라도 숨이 가빠지기도 전에 왼쪽편 펑퍼짐한
대지에 집채만한 바위에 사방으로 새겨진 부처를 만나게 된다. 보물 제121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굴불사지 사면석불상이다.
큰 바위 사면 동서남북 돌아가면서 크고 작은 불상들이 입체불로 조각되거나 부조로 새겨져 있다.
굴불사 사면석불상을 뒤로 하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잰걸음으로 10여분 오르면 금강산 7부능선쯤에 암자 같은 사찰이 나온다.
암벽을 좌측에 두고 남향의 작은 절 입구에 백률사라는 나무간판이 가난한 절의 벽기둥에 세로로 붙어있어 역사적으로 유명한
백률사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대웅전으로 들어서면 여느 불사와 마찬가지로 금동불이 앉아있고 불당 왼편으로 돌아가면 서편 벽면에 젊은 학도병 같은 맑은
모습의 이차돈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대웅전 맞은편 계단을 내려서면 범종각 안에 이차돈의 목이 떨어져 있고 목에서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모습을 새긴 종이 울음을 준비하고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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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소금강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5분 거리에 있는 큰 바위 비탈면에 새겨진 동천동 마애삼존불좌상. 부처의 모습이 많이 훼손돼 있다.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94호.
백률사에서 정상으로 다시 10여분 올라 경주 시가지를 내려다보면
가슴 가득 밀려오는 공기를 들이마시기도 전에 사방으로
트인 서라벌이 아득하게 펼쳐지며 시야를 넓혀준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5분만 걸어가면 동편 비탈면 큰바위에 삼존불이 선각된
모습을 만나게 된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등록된 불상이지만 많이 훼손돼 정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부처의 형상은 분명하게
읽을 수가 있다. 동천동 선각마애삼존불로 불리지만 행정구역은 경주시 용강동 산으로 기록돼 있다.
◆금강산의 또 다른 이야기
경주 소금강산은 금산, 금강산 등으로 불리었다. 삼국유사에 신라 6촌 중의 하나인 금산 가리촌(金山 加里村)에서의 금산이
“지금의 금강산으로 백률사 북쪽에 있는 산이다”라는 기록과 “6촌 중의 하나인 명활산 고야촌장인 호진(虎珍)이 처음에 금강산
으로 내려왔다”라는 기록이 있다.
경주 금강산은 ‘삼국유사’ 권1 기이1편에 신라시조 혁거세왕조편과 같이 신라 6촌 중 하나인 금산 가리촌(金山 加利村)이 위치한
산으로 기록하고 있다. 같은 기록에서 금강산은 명활산 고야촌(明活山 高耶村)의 촌장 호진(虎珍)이 처음 내려온 곳으로 기록하고
있다.
금강산은 신라 수도의 중심지에서 아주 가깝기 때문에 삼국사기 이외에도 많은 기록이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소금강산이
아니라 금강산으로 기록돼 있다. 세주에는 경주 중심지의 북쪽 7리에 있는 산을 신라에서는 북악(北嶽)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신라 수도의 중심지에서 북쪽에 있는 돌산이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조선시대의 지리지와 지도에는 경주의 금강산이 나오지만 소금강산이라 기록된 것은 보이지 않는다. 일제시대 이후 강원도에 있는
금강산이 알려지면서 소금강산이라 불리게 됐다는 설이 있다.
경주의 많은 사람들은 “경주 금강산이 원조 금강산”이라 주장한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