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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사랑할 시간] 15
# 1. 성당 앞 - 낮
환자복에 외투 걸친 차림으로, 외투 주머니에 손 찔러
넣고 걸어오는 지석. 성당 안을 기웃 해본다. 예수도 있고 마리아
도 있고, 그저그런 풍경. 성당 안 의자 중간쯤에 14회의 대머리 꼬
마가 뻥튀기를 먹다가 지석을 발견한다. 지석이 윙크를 해보이자,
두 눈을 다 깜빡이는 윙크로 답을 하는 꼬마. 지석, 손짓으로 이리
오라고 하자, 꼬마, 한쪽에서 기도하는 제 엄마 몰래 살금살금 하
는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냅따 뛰어와 지석의 다리에 착, 안긴다.
지석 (맹글맹글한 대머리 한번 만지곤) 너 뻥튀기 너무 많
이 먹으면 안돼.
꼬마 (말똥말똥한 눈으로 빤히 올려다보는) ...
지석 먹어두 먹어두 배가 고파서 나중엔 되려 허기 져. (아
이에게 키 맞춰 앉으며) 뻥튀기 좋아하면 나중에 사랑할 때 무지무
지 배고프다, 너?
꼬마 (헤.. 웃고 뻥투기 먹으며 하나 집어 준다)
지석 (받아 먹고 아이 눈 바라보며) 눈이 이쁘네.
꼬마 (깜빡깜빡)
지석 (아작아작 뻥튀기를 뜯어먹으며) 아저씨가 사랑하는
어떤 여자하고 닮았다. 그 여자도... 아저씨 맨 처음 봤을 때.. 너처
럼 낯선 사람을 말똥말똥 뚫어져라 쳐다봤어.
<인서트 1회 교무실 - '뭐어.. 니가 내 이름 불렀잖아'
퉁박대는 지석을 말똥말똥 쳐다보며 귀 뒤로 머리카락을 넘기
는 미연.>
지석E 아무리 귀가 안들려도 그렇지... 낯선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거리낌 없이 쳐다볼 수 있는 지... 아저씨 맨날 이글이글 타
는 아저시 아버지 눈빛만 보다가... 그 순간... 아버지도 다 용서했
어.
꼬마,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기도가 끝나고 나온 제
엄마 손을 잡고 간다.
뻥튀기 먹으며 꼬마에게 잘가라고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는 지석.
큰 고목이 있는 낡은 성당, 그 속에 외롭게 선 지석 위
로,
지석E 미연이 때문에 살 수 있었어요. 아니면 나... 아버지하
고 똑같이 됐을 거에요.
...그 눈은... 봐도 봐도... 또 보고 싶은데... 먹어도 먹
어도 배가 차지 않는 뻥튀기 처럼... 여기 오니까 미치게 더 보고
싶은데... (피식 웃는) 더 이상은 안 되는 줄 나도 알아요...
주머니에 손 찔러 넣고 가는 지석. 다시 되돌아오더니
성당 문 앞에 서서
맨 안쪽에 있는 예수 상을 바라본다.
지석E 당신한테 마리아가 있듯이 나한텐 미연이가 있어요.
살아갈 수 있게 해줬고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준 ...여자에요.
# 2. 미연 거실 - 낮
미연, 초조함에 서성이며 전화를 하고 있다. 신호는 가
는데 받질 않는다. 고객님이 전화르 받을 수 없다는 안내음으로 넘
어가자, 미연, 끊고 다시 해본다. 울리는 신호음...
지석E 그 여자한테서..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죽을
것처럼 달려들었는데...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나 같은 놈을 안아
주고... (눈물 고이며) 죽지 말라고 말해주고...
<인서트-11회 미연, "죽지마, 사랑해, 죽지마...">
# 3. 요양원 공동 욕실 - 낮
물 속에 눈을 감고 잠수하여 숨을 참고 있는 지석.
지석E 결혼해서.. 너무너무 착한 남편을 두고.. 감히 할 수 없
는 말을 나한테 해줬어요. 이제.. 됐어요. (푸아..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일어나 거울을 본다.)
...충분...해요.... (눈물 후두두둑 떨어지는 물
기...)
# 4. 요양원 지석방 - 낮
지석의 핸드폰, 혼자 울고 있다. 수건으로 얼굴 물기
를 마저 닦으며 들어오는 지석. 울리는 핸드폰 액정의 '미연'을 확
인하더니 그대로 울도록 내버려둔다.
지석E ..............................
지석E 더 이상 욕심내면 안돼요. 그러면 안돼요... 난 죽으면
그만이지만... 미연인 살아야 하니까...
옆구리의 통증을 느끼는 지석. 소파에 앉아 상체를 구
부리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물러날 때를 기다린다. 계속 울리는 핸
드폰. 통증이 깊어져가는 지석. 온몸을 번데기처럼 최대한 구부려
말고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가.... 고개를 드는데, 너무 아파 눈물
이 다 나는 지석...!!
지석E 그래두... 딱 한번만 더... 보고 싶다...!
핸드폰 벨이 멈추며 부재중 통화 12통 뜬다.
# 5. 미연 거실 - 낮
전화를 끊고, 가슴이 조이는 미연. 방으로 가려다 돌아
서서 다시 나왔다가..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좁은 거실을 우왕좌왕하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놀라며 다급하게 받는 미연.
미연 여보세요!
지석모E ....!
# 6. 미연 집 앞 - 낮
앉았다 섰다 제정신이 아닌 지석모.
미연이 나오자 누가 볼새라 미연의 손목을 끌고 외진
곳으로 간다.
지석모, 죄를 지은 듯.. 연신 굽신 굽신.. 하며..
지석모 저기... 우리 지석이 지금... 요양원에 있어.
미연 ...!!
지석모 ..조기 경기도에 있는 건데.. 요기서 버스 타고 가면 1
시간밖에 안 걸리는데..저기...염치 없지만.. 우리 지석이 좀 만나
러 가 주면 안될까?
미연 ...!!
지석모 몸이 너무 많이 안좋아져서.. 도망은 못간대... 어디 아
무도 모르는 데로, 산 속이나 섬 같은데.. 세상 사람들 눈치 없는 데
로 딱 도망갔음 좋겠구만... 지난 번에 수술 한 게 애 기력을 콱 떨
어뜨려놔서.. 요양원으로 갔어. 거기 가서 우리 지석이 좀 만나줘.
미연 ...
지석모 (한 손으로 미연의 손을 잡고) 옛날 일은.. 옛날 일로
접어두고.. 응? (한 손으로 가슴을 치며) 우리 지석이가 이렇게 죽
을 때까지 너를 못 잊을 줄 알았으면 내 절대 안 그랬지. 그건 내
가 미안해. 내가 죽을 죄를 졌고... (미연의 두 손을 덥썩 잡으며) ..
늙은 어미가 이렇게 빌게.. 응? 제발 우리 지석이 좀 만나 줘? ...병
원에서도 아주 손을 놨댜아.. 불쌍한 놈 인제 얼마 못살아.. 응?
미연 ...!!
# 7. LP - 밤
앉아 있는 것도 중심을 못잡을 만큼 취한 태훈, 거의
다 비워진 양주를 또 술잔에 붓는다. 손이 흔들려 반은 흐리며 채
운다.
지석E (14회) 만나고 싶습니다... 만나게만 해주면 안됩니
까?
따른 잔을 고개 젖혀 입안으로 붓는 태훈.
미연E (12회) 이혼... 원하면 해줄께요.
잔을 탁! 내려놓는 태훈. 너무 많은 술이 들어가 순간
욱! 구토증이 올라온다.
안으로 눌러 견디고, 태훈, 또 잔을 채우려는데 술이
비었다.
태훈 아(저)씨.. 한 병 더(요)...
그 한켠, 홀 쪽에서 술을 마시고 있느느 덕구와 왈숙. 덕
구, 지석이를 요양원으로 보낸 설움에 연신 술을 퍼 붓고 있고, 왈
숙 또 잔을 채우려는 덕구의 술잔을 뺏는다.
왈숙 아니, 어제도 떡이 되게 마셔놓구.. 우리집 현관문을
또 얼마나 부셔놓을려구..
덕구 (설움에 겨워, 울먹) 그러지 마세요.. (병을 뺏어와 잔
을 채운다)
말이 좋아 요양원이지, 우리 어제.. 지석이 무덤에 묻
고 왔어요.
왈숙 뭘 또 그렇게까지.. (마음이 안좋다)
덕구 그 자식 거기 혼자 죽겠다고 간 거에요 우리... 그거
알고도 데려다주고 왔구요. (마시는)
왈숙 ... (짠해서 보는)
덕구 병찬이 그 재수 없는 놈이 어제 평생 처!음으로 나한
테 술을 다 샀어요..
돈에 깃발 꽂고 산다는 놈이 어제는 인간이 되갖구 나
를 잡고 울드라구요..(잔 또 채우려는데)
왈숙 (술을 조금 따라준다)
덕구 지석이 그 이쁜 놈이.. 마지막 정리를 어떻게 했는 줄
알아요? 옛날부터 내가 걸렸다며 나한테 폼 나는 신사복을 뽑아주
고, 병찬이 그 새끼한테도 따뜻한 겨울 코트 장만해주고.. 아무 것
도 해준 게 없는데.. 정란씨한테 시체 치우게 만들면 안 된다면
서... 그리고 미연이... 미연이도 이제 그만 놔줘야 된다면서...
태훈 (미연이란 말에 뒤를 돌아본다. 왈숙이 보이고, 그 앞
에 앉아있는 덕구가 보이고...)
덕구 자긴 충분하다고... 미연이는 가슴에 묻고 간다구... 으
흐 씨(울컥! 눈물이 솟구친다!)
태훈 (비틀비틀 일어나 덕구 쪽으로 걸어간다)
덕구 까놓고 말해서요! 미연이 결혼만 했다 뿐이지 처음부
터 지석이 여자였어요!
왈숙 (태훈을 보고 놀라) 태.. 태훈..! (얼른 덕구 입을 막는
데)
덕구 (왈숙 손을 탁! 쳐내고) 그건 내가 알고 하늘이 알고 땅
이 알아요!
왈숙 (기겁을 하는데)
태훈 (덕구 잔을 채워준다)
왈숙 (채워지는 잔에)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누구시냐는
듯 보는데)
태훈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히죽.. 웃는) 왈숙씨 친구에요.
(왈숙이 잔 가져와 잔 채우고) ...건배.
덕구 (어정쩡하니 건배를 하고 마시고)
태훈 (고개 뒤로 젖혀 마시는데, 그대로 의자 넘어져 꽈당!
뒤로 넘어간다)
왈숙 태훈씨!
태훈 (비칠비칠 일어나며) 괜찮아요, 괜찮아...
덕구 (그러거나 말거나 딸꾹질 하면서 잔을 또 채우는데)
태훈 (테이블 잡고 일어나더니 덕구 멱살을 잡는다)
왈숙 (기겁하며) 태훈씨!
태훈 (분노가 치밀어) 만나라고까지 했는데... 도대체.. 나보
고 더 어쩌라는 거냐, 응?
순간, 태훈, 덕구를 주먹으로 후려치는데, 술에 취해
빗나가고 휘청거리며 덕구와 함께 와그랑탕탕 무너진다. 아수라
장...!
# 8. 미연 거실 - 밤
덕구가 태훈을 업고 들어오고 있다. 왈숙이 태훈 가방
을 들고 따라들어오고 있고. 미연, 놀라며 두 사람을 침실로 이끌
고.
미연 ..어떻게 된거야?
왈숙 어떻게 된 건지는 니가 알지, 내가 아니, 이것아? 아니
너는 뭘 어떻게 했기래 태훈씨를 저 지경으로까지 만들어놓니,
응?
# 9. 미연 침실 - 밤
태훈과 함께 침대로 무너지느 덕구. 두 사람, 같이 널
브러지고,
미연이 태훈의 외투를 벗겨내고, 왈숙, 덕구를 일으키
는데, 덕구, 제정신이 아니다.
왈숙 덕구씨! 일어나요! 집에 온 거 아니에요! 여기 남의 집
이에요! 덕구씨!
미연 (태훈 외투 벗기며) 놔 둬.
왈숙 놔두기는 얜.. 남의 부부가 쓰는 침대에서..
미연 (O.L.) 괜찮아. 여기서 자게 놔둬.
왈숙 ...
# 10. 미연 거실 - 밤
미연과 왈숙, 침심에서 나오며,
왈숙 무슨 일 있었니?
미연 ...
왈숙 태훈씨하고 술 몇 번 먹었지만 이런 적 없었다.
내가 아는 니 남편 태훈씨는 적어도 이런 사람 아니
야.
미연 차 한 잔 줄까? 언니도 여기서 자고 갈래?
왈숙 내가 집이 없니? 왜 남의 집에서 자?
미연 ...
왈숙 (미연 잡아세우며) 말 좀 해봐 이것아? 헤어지자고 했
어?
미연 ...
왈숙 그랬어? 그랬어, 이 기집애야?
미연 ...
왈숙 미쳤어미쳤어.. (버럭) 곧 죽을 놈 때문에 멀쩡한 사람
하고 이혼을 해?
미연 사람들 깨 언니..
왈숙 미치고 팔짝 뛰겠다. 내가 태훈씨라도 그러고도 남겠
다!
미연 ...
왈숙 너 진짜 미쳤니?
미연 그 사람... 혼자 죽겠다고 요양원엘 갔대.
왈숙 그래서?
미연 (단호한) 나... 그 요양원으로 갈 거야.
왈숙 !
미연 ....
# 11. 지석 서재 - 밤
어두운 서재. 정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불을 켜는 정
란. 아직 지석의 채취가 남아있는 책상.. 정란, 다가와 손으로 쓸어
본다.
병찬E 지석이... 이제 얼마 안남았어요.
# 12. 병찬 진료실 - 낮 (회상)
병찬도 어제의 숙취로 얼굴이 엉망이다.
지석을 요양원에 묻고 온 뒤 끝이라 정란을 대하는 태
도가 좋지 않다.
정란 (울 듯 한 얼굴로) 그럼 더더욱 병원에서.. 집에서 있어
야죠. 아무도 없는 데 가서 뭘 어쩔려구..
병찬 (마치 화라도 난 양) 어디서... 어떻게 죽을 건진 지석
이가 정해요.
정란 ...!
병찬 지석이가 정하고... 정란씬 따라줘야 돼요..
정란 (기막힘!)
병찬 그리고 지금은.. 지석이 혼자 있을 시간이 절대 필요해
요.
그 동안 너무 정신없이 살아서... 정작 자기 죽음을 받
아들일 시간이 없었어요.
정란 ...
병찬 아내도 가족도... 자기 자신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요.
정란 ...
# 13. 지석 침실 - 밤
정란, 들어온다.
병찬E 나중에... 지석이가 부를 때가 있을 거에요. 정란씬 그
때 가고...
지금은... 지석이.. 혼자 있게 좀 놔두세요.
덩그라니 놓여져 있는 침대. 정란, 파고든다. 늘 지석
이 누웠던 자리로 손을 뻗는 정란. 그러나 빈 자리. 정란, 혼자 눕
기엔 너무 큰 침대에 혼자 옹송그리고 누워 어깨가 흐느낀다.
# 14. 요양원 지석방 - 밤
체중계 위로 올라오는 발. 지석이다.
거울 속의 지석의 얼굴이 체중계를 보고 있다.
지석 몸무게 육십... 좀 있으면... 제로. ...(거울을 보며)
그럼 넌... 어디로 가니?
그렇게 거울을 보고 있는 지석의 모습에서,
# 15. 미연 주방 - 아침
아침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는 식탁에 앉아 따뜻한 김
이 나는 말간 콩나물 국을 내려다 보고 있는 태훈. 부엌 싱크에서
조용히 설거지를 하고 있는 미연.
자그맣게 달가닥거리는 설거지 소리 외에 절대 침묵!
태훈 맞은 편 자리에도 국과 밥이 차려져 있고 덕구는
보이지 않는데,
덕구가 욕실에서 나온다.
덕구 (쭈뼛쭈뼛하며) 저.. 그만 가볼께요.
미연 아침 드시고 가세요.
덕구 아니에요...
미연 드시고 가세요, 덕구씨..
덕구 (우울해지며 그냥 가려는데)
태훈 같이 드시죠!
덕구 ... (식탁으로 와 앉는다)
미연 ...
태훈 (한 수저 떠 먹는..) 시원하다..
덕구 (눈치 보며 떠 먹는..) ...예에.
태훈 (눈 마주치지 않고) 경기도에 하늘 쉼터라고 요양원이
있어.
덕구 ...! (태훈을 보고)
미연 ...! (역시 보는)
태훈 우리 회사에서 자원봉사하는 모임이 있는데, 말기 암
환자들 호스피스 하는 거야. 원래는 간부들 안사람들 모임인데, 올
해는 내가 담당을 하게 돼서...
미연 (떨리며 태훈 보는) ...!
태훈 (국 뜨며) 남편 출세시키려면 당신도 참가 해줘야 돼.
꼭 그게 아니더라도.. 좋은 일은 좋은 일이니까..
미연 ...
태훈 힘들겠지만... 좀 해줘. 당신 그 동안 나를 위해 별로
해 준 거 없잖아.
밥도 내가 더 많이 하고, 빨래하고 청소는 아예 내가
하고... (슬쩍) 바람도 피고..
미연 ...!
덕구 ...!!
태훈 일주일에 이틀 뿐이니까... 대신 내가 매번 마중 나갈
게.
미연 (고개 숙여 눈물이 차오라 입술을 문다)
태훈 (국 후루륵 마시고)
미연 ....
태훈 ...시원하네.
덕구 ...! (태훈 보고, 미연 보며) .......
# 16. 미연집 앞 - 다른 날 아침
미연집이 내려다 보이는 옹벽 위 경비실에 숨어서
주차장 쪽을 내려다
보는 지석모.
지석모 (애가 타서) 오늘 간대더니 뭐하느라 여적 안나와
아?
아주 애간장이 타서 죽겠구만...
지석모 참다 못해 전화를 할려는데, 집에서 나오는 태훈
과 미연, 함께 차에 오른다.
지석모 (안절부절) ...우리 지석이 몰래 만나러 가는데... 지
남편 차는 왜 타는건데?
# 17. 태훈 차안 - 아침
태훈, 밤을 샜는지 눈이 벌겋게 충혈 되어있고 미연,
막막한 얼굴이다.
서로 앞만 보고 있는 두 사람.
미연 ...
태훈 ...
미연 ...이렇게 까지 해서라도.. 나, 붙잡고 싶어요?
태훈 ...
미연 ... 꼭 그래야 돼요?
태훈 ...(단호하게) 일 주일에 두 번 뿐이야.
미연 ...
태훈 ...(미연에게 확인시키듯) 말기암이라 곧 죽을거고..
# 18. 요양원 지석방 - 낮-환타지
창을 투과한 날카로운 겨울 광선이 닿은 가습기에서
선명하게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침대 발치엔 <이름 현지석. 나이 32세. 성별, 남. 입실
일자 2006년 12월 28일> 표찰이 붙어있고, 책상위에 놓인 이병률
의 시집과 성경책, 펼쳐진 다이어리와 만년필을 훑어가는 시선이
마침내 침대로 향하면 지상에서의 마지막 공간에 잠들어있는 지석
이 보인다. 그 시선의 주인공인 미연, 맥을 놓고 잠들어 있는 지석
을 애잔하게 바라보다 지석이 차낸 이불을 목에까지 덮어준다.
지쳐 다크 서클이 선명한 지석의 하얀 얼굴... 그 이마
에 미연, 가만 입을 맞춘다. 눈꺼풀이 찌르르.. 움직이는
지석. 자는 중에도 그 입맞춤이 감미롭기만 한지..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가 내쉰다.
미연, 이불 밖으로 나와 있는 지석의 손을 안으로 넣어
주려는데,
지석의 손, 미연의 손을 꼭 붙든다.
미연 ...?
지석 (희미하게 눈을 뜬다. 말간 미연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
이고)
미연 (눈을 뜨나 싶어 기다리는데)
지석 (입을 움직이며 뭐라 말을 한다)
미연 (귀 뒤로 머리카락을 넘기며 눈을 깜빡이며, 작게) 뭐
라구? (하는데)
지석 (그 모습에 희미한 미소를 짓더니) 보고... 싶었어.
미연 (웃고... 손을 이불 속으로 넣어주려는데)
지석 (놓지 않는다 그러면... 안되는데..
미연 (미소로 지석을 보는데) ...
지석 (눈을 뜬다)
자기 외엔 아무도 없는 빈방. 가습기는 꺼져있고 지
석, 여전히 이불을 차내고 누워있다.
# 19. 요양원 마당-낮
몸을 옹송거리며 걸어나와 고목나무 아래 벤치에 앉
는 지석.
시계를 보는 지석. 오전 10시가 가까워오고 있다.
지석, 꿈이라지만 너무도 선명한 미연의 기억에 허망
한 시선을 멀리 두고 있는데, 그 지석의 시선이 닿은 곳에 버스 한
대가 달려온다. 그리고 요양원 앞 정류장에 선다. 멀거니 바라보
는 지석의 시선 끝에 선 버스에서 내려서는 서너 사람. 그 중에 미
연. 미연 이 쪽을 보고 미소를 띠고 마구 달려온다.
지석, 또 다시 꿈인가 싶어 눈을 깜짝거리는데 달려오
던 미연 아이처럼 쿵.. 넘어지고 만다. 미연 쑥스럽게 웃으며 일어
나 지석을 보는데 지석 등을 돌리고 만다.
#미연이 돌아선 지석의 시선 앞으로 들어선다.
미연 나 오는 줄 어떻게 알고 나와 기다렸어?
지석 ...??? (동그래진 눈으로 보는데)
미연 (밉게 보며) 비겁하게 도망가기나 하고...
지석 (앉아서 미연의 깨진 무릎을 본다)
미연 ...여기 숨으면 내가 못찾을 줄 알았어?
지석 ...꿈이 아니었네?
미연 ...꿈?
지석 (못 믿겠다는 미연의 무릎의 상처를 만져본다)
미연 아얏! 아파 죽겠는데.. 약 발라야 되는데.. 나, 여기 세워
둘거야?
지석 (다시 일어나) ..미연아...!
미연 (그렁그렁 웃는) ...응
지석 (눈물이 차 올라, 겨우) ..니가.. 여길... 어떻게..?
(F.O.)
# 20. 태훈의 차 안+ 여의도 환승 정류장 - 낮
마포대교를 지나 드넓은 여의도 광장 길로 태훈의 차
가 달려가고 있다.
굳은 얼굴로 운전하는 태훈, 말이 없는 미연, 긴장하
여 차분하다.
여의도 광장 중간 환승 정류장 도로가에 차를 세우는
태훈.
태훈, 기어를 잡고, 미연, 시선을 조금 내린다.
태훈 (미연을 본다) ...
미연 (태훈을 본다) ...
태훈 ... (조금 편하려 애쓰며) 요양원에서 8시 차 타면.. 여
기 9시 정각에 도착이야. 저번 처럼 정확히! 저녁 9시에 이리로 마
중 나올게.
미연 ('고마워요.' 하는 미소 작게 보이며 끄덕... 한다.)
태훈 ...다녀 와...
미연 ... (문을 여는데)
태훈 (미연의 팔을 잡는다! ...불안한!)
미연 (돌아보면)
태훈 ...9시까진.. 꼭.. 와?
미연 (아까보다 밝게 웃으며 끄덕끄덕)
미연, 내린다. 횡단 보도를 지나 정류소로 가는 미연.
태훈, 고개 돌려 시선으로 미연을 끝까지 따라간다. 버스가 오고
오르는 미연. 태훈, 그 순간 어떤 불안감에 차에서 내려 정류장으
로 뛰어간다. 출발하는 버스가 달려오는 태훈을 지나쳐가고, 창가
에 앉은 미연이 태훈을 돌아본다.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서 미연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태훈, 멀어져가는 버스를 하염없이 바라본
다.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보내놓고 가슴이 에여오는 태훈. 눈물
을 맺히지만 차마 흐르지를 못하고 그렁그렁한 눈으로 버스가 사
라진 드넓은 도로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 21. 요양원 지석방 - 낮
벌컥 방문을 열고 들어와 굳은 얼굴로 책상에 앉는 지
석.
잠시 후 문을 열고 숨을 몰아쉬며 들어오는 미연.
지석 ...! (순간 움찔.. 하지만!)
미연 오늘은 왜 마중 안나왔어. (헉...헉...) 멀리서 오는 사람
도 있는데 잠깐 마중도 못나와?
지석 (굳은 채...)
미연 (목도리하고 장갑하고를 벗어 옷걸이에 걸며) 날씨가
점점 더 추워져.
요 앞에 땅 언 줄도 모르고 마구 뛰어오다가 또 넘어
질 뻔 했어.
신부님하고 수녀님이 막 웃었는데.. 못 들었어?
지석 (냉정한 얼굴로 미연을 본다)
미연 아침은? 뭐 먹었어? 많이 먹었어?
지석 다신 오지 말라고 했잖아.
미연 난 또 온다고 했어.
지석 (독하게 노려본다)
미연 (뭐.. 하는 눈으로 보는)
지석 너 여기 와서 뭐 할건데?
미연 ... (뚱.. 하게 보는)
지석 너 할 일 없어. 나 기운 없어서 너하고 놀지도 못해. 하
루 종일 밥 먹고 약 먹고 자고, 밥 먹고 약 먹고 자고, 또 밥 먹고
약 먹고 자고!! (버럭) 나 밥 먹고 약 먹고 자는 거 쳐다보고 있을
래?!!
미연 (아이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그럼 어때서...
지석 (버럭) 겨우 그 딴 거 할려고 이 먼델 와? 누가 너한테
그딴 거 봐달래?
미연 ..! (놀라 보는)
지석 니 남편도 진짜 웃긴다. 야. 어떻게 자기 여잘 다른 남
자한테 보내냐?
다 죽어가는 놈은 남자도 아니래? 이 담에 나 죽고 널
얼마나 괴롭힐려고? 보낸다고 오는 넌? 니가 무슨 탁구공이야? 내
가 버리면 그 남자한테 가고 그 남자가 또 이리로 가랬다고 냉큼
와? 자존심도 없어?
미연 ...
지석 나, 혼자 죽을거야.
미연 ...
지석 그만 가. 사람 피곤하게 하지 말고.
미연 (지석의 마음에 눈물이 그렁그렁) ..
지석 (버럭) 안가!
미연 (책상 위에 놓았던 장갑 가져와 손엣 만지작... 옷걸
이에 걸어두었던 목도리 빼들어 목에 두르고...)
지석 다신 오지 마. (냉정하게 돌아서고)
미연 ...(나가고)
지석 ...(소파에 앉는 지석. 두통에, 자괴감과 괴로움에 울어
버리 것 같다!)
# 22. 태훈 사무실 - 낮
미연에게로 온통 신경이 곤두 서 있는 태훈. 컴퓨터 모
니터에는 각종 그래프가 어지럽게 그려져 있고 책상 위엔 서류가
산더미같이 쌓여있는데, 일이 잡힐 리 없다. 본부장이 '김팀장' 부
르는 소리가 나는데, 태훈, 듣지 못한다.
본부장E (화난 목소리 다시 한 번) 김팀장!
태훈 (못 듣고)
본부장E 김태훈!
태훈 ...
동료 (태훈 옆으로 와 태훈 어깨를 흔들며 속삭인다) 팀장
님..!
태훈 (그제야 돌아보며) ...어?
동료 눈 뜨고 주무세요? 본부장님이 부르세요.
태훈 (돌아보고 일어난다)
본부장 (회의에서 돌아온 듯 서류 들고 본부장실 앞에서 눈을
부릅뜨고 보고 있다.)
이번 주 주간 펀드 리포트 왜 아직까지 안 넘어와?
태훈 아.. 죄송합니다. 지금 하고 있습니다.
본부장 뭐야?!! 언제 넘길려고 아직까지 해?
태훈 금방 올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본부장 (마뜩찮은 태훈을 부륵부륵 보더니 문을 쾅! 닫고 들어
가고)
태훈 (얼른 앉아서 서류 보며 컴퓨터에 입력하다가... 머리
채 흔들며 잊어버리려 애쓰고 일한다)
# 23. 요양원 욕실 - 낮
미연, 중녀의 수녀와 함께 대야에 환자복과 침대시트
거품 풀어놓고 발로 밟아대고 있다.
수녀 아까 싸우는 소리 나더니...
미연 괜찮아요. 저한테 뿔이 나서 그래요.
수녀 왜?
미연 제가 너무 늦게 왔거든요. 아프고 무섭다고 같이 있어
달라는 걸..
전 옛날에 저한테 못되게 한 것만 생각하고.. 자꾸 싫
다 그랬거든요..
수녀 (알 듯 모를 듯 미소)
미연 이것만 하면 돼요? 밥하고 청소하는 것도 도와 드릴께
요.
그 사람 방에는 못들어오게 해서 할 일도 없어요.
# 24. 갤러리 - 낮
정란, 그림들과 직원들을 모아놓고 정리를 하고 있다.
정란 새로 큐레이터가 올 때까지는 아아서 하고 있어야 돼.
심승섭 화백 작품은 내일 다 회수해간다고 했으니까 옮길 때 상하
지 않게 잘 포장해두고, 이난영 화백은 내년 연초가지 계약했으니
까 새 큐레이터가 오면 그 분 꺼 빠지면 안된다고 잘 설명해주고.
직원들 맡은 그림들을 들고 가는데,
입구에서 연희, 놀란 얼굴로 다급하게 다가온다.
연희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박실장! 갑자기 이렇게 예고
도 없이 이렇게 그만두는 게 어딨어? 최소한 사람 구할 때까진 있
어야지.
정란 이력서 뽑아놨어요. (서류철 내미는) 모두 저 못지 않
은 분들이에요. 면접 모시고 그 중에서 선택하시면 될거에요.
연희 (보지도 않고 넘겨주며) 나 바뻐서 이런 거 할 시간 없
어. 연말연시라 회사 간부 사모님들 호스피스 봉사활동하며.. 아
니 갑자기 왜 그만두는건데?
정란 (모르시냐는 듯 보는..)
연희 ...아예 안할 건 아니지?
우환은 우환이고... 나중에.. 일 다 정리되면.. 다시 올
거지?
정란 (남편의 죽은 뒤를 생각하는 그녀다!) ... (울컥해지며)
생각해볼게요.
정란, 감정을 누르며 핸드폰을 한다. 연희 혀를 차며
나가고, 신호는 가는데 받질 않는다. 정란, 끊고 다른 번호 누른다.
정란 어머니, 전데요. 지석씨한테 전화 없었어요?
# 25. 경동시장 - 낮
온갖 종류의 약재상들이 밀집한 거리에 약이 든 비닐
봉지를 주렁주렁 든 지석모가 전화를 받고 있다.
지석모 (전화) 안 왔어, 아, 안 왔지만서도 뭐 그래 걱정을
해? (미연과 지서에게서 정란 차단!) 거기서는 무소식이 곧 희소식
이여. 아유, 니가 해서 안받는 전화 내가 한다고 받겄냐? 냅 둬. 마
음 정리하게. 거기가지 들어간 그 놈 마음이 오죽하겄냐. 글쎄 지
가 할 때 되면 하겠지. 그래. 끊어! (탁! 끊고, 수첩 보고 제주도 번
호 누르며) 내 새끼 오락가락 하는 판에 며느리도 남인거여. 미안
하다 에미야. 니도 니 새끼 키워보면 내 맘을 알 것이다. (연결됐는
지) 어, 부씨! 나요, 나! 지석이 에미! 잘도 오랜만이다게. .. 요즘
어떻게.. 건강하다게? <제주도 사투리 분위기 살짝!>
# 26. 요양원 지석방 - 밤
소파에 기대 앉아 가무룩하게 잠이 든 지석. 몰래 문
을 여는 미연. 새 환자복과 뽀얗게 빤 베갯잇을 들고 있다. 살금살
금 옷을 옷장에 넣고, 베게잇도 새것으로 갈아 소파의 지석이를 조
심스럽게 옆으로 뉘여 베개를 베어주는 미연. 침대에 가 이불도 펼
쳐 덮어준다. 이마로 넘어와 있는 머리카락 넘겨주는 미연.
미연 (속삭이는) 속으론 아닌 말 다 퍼붓고 나니까 이제 후
련해? ...오늘 가면... 다음 주 월요일에나 와. 남편하고 그렇게 약
속 했어...일 주일에 두 번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 까지. 마음 같아
선 자주 더 있고 싶지만.. 그 사람 자기 손으로 너 한테 나 보내놓
고 회사에서 하는 봉사활동 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그 사람
이 정한 9시에서 1분 1초라도 늦으면 이번엔 그 사람이 못살아. (달
력 가져와 31일에 빨갛게 동그라미를 쳐서 옆에 놓는다) 일요일에
는 우리 같이 밖에 나가 데이트 하자? (눈물이 그렁그렁) 고등학
교 때 우리 할머니 땜에 못 한 거... 대학교 때 니 아빠 땜에 못한
거...나 다 해줄거야!...전부 다!!...우리 헤어지고 나 너 원망하는
사는 동안 넌 속으로 암덩이를 키워왔는데...그것마저 못하게 하
면...이번엔 내가 못살아!!
지석의 이마에 입을 맞추는 미연. 조용히 이불을 여며
주고 불을 끄고 나간다.
# 27. 여의도 환승 정류소 - 밤
태훈, 무거운 얼굴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시계를
본다. 8시 반. 아직 오지 않았을 것이다. 무거운 걸음으 느릿느릿
걸어가는데, 벤치에 앉아 미연이 추워 오도도도 떨고 있다.
태훈 ...! (작게 놀라며) ... (이내 덤덤하고 굳은 표정으로
다가가는데)
미연 (태훈 보며) 마중 나온다는 사람이 이제 오면 어떡해.
추워서.. 말도 제대로 안나오잖아.
태훈 ....
미연 (종종거리며 태훈 옆으로 걸어가고) 차 어디 세워뒀
어?
태훈 (대답 없이 걸어가다가 머풀러 풀어 미연 어깨에 툭..
걸쳐준다)
# 28. 미연 거실 - 밤
들어오는 미연과 태훈. 미연, 아직 추워 손을 호 불며
부엌으로 가 주전자에 물을 올리는데, 방으로 들어간 태훈, 안에
서 담요를 갖고 나오더니 거실 소파에 외투만 벗고 눕는다.
미연 (뭐라 말 못하고 찻물 끓기 기다리며 싱크대 모서리를
만지작한다) ...
찻잔 두 잔에 뜨거운 물을 붓는 미연. 소파에 누워 미
동도 않는 태훈에게 갖다 주지도 못하고, 자기 것도 마시지 못하
고... 멀리 있는 태훈에게 말한다.
미연 ... 당신... 많이 쓸쓸해요?
태훈 ... (대답이 없다)
미연 ... (눈물이 차오른다. 혼잣말로) 그럴 걸 날 왜 보
내? 차라리 헤어져 주지...
#카메라 태훈 얼굴로 넘어가면
태훈 ...(뚝뚝 울며 혼자 말로) 그 자식 빨리 죽었으면 좋
겠다.
# 29. 요양원 지석방 -밤
눈을 뜨는 지석, 머리에 받혀진 베개와 덮혀진 이불이
의아한데, 테이블 위의 달력의 빨간 동그라미를 보는 지석. 어린
애 같이 갑자기 눈물이 차오르며,
지석 ...고맙다..미연아...잘못했다...
이불과 베개를 가지고 침대로 가 눕는 지석.
이불을 뒤집어쓰고 꼼틀거리며 <잘못했다..잘못했다..
용서해줘..>를 끝없이 반복한다.
# 30. 요양원 밖 - 낮
지석모 보따리를 잔뜩 든채 뭐라 중얼중얼하며 걸어온
다.
지석모 우리 지석이랑 미연이 갈라놓을라고 달려오는 차에 뛰
어든 것도 모잘라... 이젠 지새끼 목숨마저 끊어가겠다? 호랭이가
씹어먹을 노옴.. 염병 땀을 뜰 노옴.. 내 목숨 끊어가기 전엔 안된
다 이놈아...우리 지석... 지 에비한테..처가살이에.. 미연이 땜에..
한이 맺혀.. 볕도 한 번 못보고...
# 31. 요양원 지석방 - 낮
한약 종이에 싼 이상한 가루, 정체를 알 수 없는 뿌리
들... 지석모, 갖은 민약들을 늘어놓고 있고, 지석, 황당해서 보고
있다.
지석모 (밝게밝게) 요리조리 따져보니까 엄마 주위에 암 고친
사람들이 부지기수잖아. 아, 알고 보니까 우리 동네선 암은 병도
아니드라고. 너 그 똥돼지 키우던 똥돼지 부씨 알지? 그 사람이 옛
날에 위암 걸려서 오늘 낼 하는 걸 그 어미가 아 8년이나 한라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뿌리란 뿌리는 죄다 캐 멕여갖고, 뭔 뿌리에
서 효능이 났는 진 몰라도 암튼 싹 났어. (칡뿌리 비슷한 뿌리 주
며) 그 부씨 어미가 보내온 뿌리여.
지석 (황당!)
지석모 그리고 너 옛날에 우리 옆집 살던 영숙이 있지? 걔가
왜 시집가자마자 자궁암 걸려갖고 남편한테 소박맞고 친정에 쫒겨
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짜리몽땅한 어미가 뱃길로 강
원도 충청도 경상도 소문난 한의사들한테 다 찾아가서 약 해다 멕
였잖어. 걔 그때 살아나가지고 영숙이 딸이 지금 그때 영숙이 만
해.
지석 ...엄마...
지석모 그리고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니 아버지 다리 뿌러진
적 있어. 의사도 못 고쳐서 절름발이 된대는 걸 그 뼈 누가 붙여냈
는 지 알어? 내가 붙였어! 엄마가 아기 똥하고 말 뼈 태워 가루낸
걸 쏘주에 타 멕이고 니 아버지 석 달 만에 일어서 공사장 다시 나
가서 사흘만에 도로 뿌러지긴 했지만은 암튼 내가 붙였어!
지석 나보고.. 그래서 이걸 지금 다 먹으라고?
지석모 니 병은 내가 고쳐. 걱정 말어. 에미가 있으니께.
지석 (차라리 웃는)
지석모, 웃는 지석의 얼굴을 빤히 본다.
지석 그러다 내 얼굴 뚫어져.
지석모 (눈물 안 흘리려, 애써 퉁명스럽게) 내 배 아파 난
내 아들, 내가 본다는데 뭐 불만 있냐? (손으로 지석의 얼굴을
잡고 이리저리 휙휙 둘러보며) 눈도 잘 생기고, 코도 잘 생기
고, 입도 잘 생기고, 어디 하나 빠지는 데가 없네. 이런 인물
이 어떻게 내 뱃속에서 나왔을까?
지석 ...
지석모, 지석의 얼굴을 쓱쓱 쓰다듬다가 멈춰 잡는
다.
지석의 얼굴을 눈에 담아두려는 듯 짠하게 가만히
본다.
모자가 가만히 마주 보고 있다.
지석모 지낼만 혀, 여기?
지석 음.
지석은 엷은 미소를 보이며 본다.
두 사람의 볼에 소리 없이 눈물이 주루룩 흐른다.
지석모 미연이는 또 언제 온대든?
지석 ..미연이???
지석모 한이 맺혀 생긴 병은... 한부터 먼첨 풀려야 약발도 받
는겨.
지석 ...
지석모 걱정마..이놈아..혜진 에미..미연이 남편은 이 에미가
다 막아줄테니까.
(비명처럼) 돌도 씹어 삼킬...젊어나 젊은 놈이 대체 이
게 무슨 일이냐, 응?
# 32. 요양원 앞 - 낮
지석모, 가고 있다. 그 뒷모습을 보다 핸드폰을 드는
지석.
지석 (지석모에게 핸드폰을 대고) 엄마... 여기 봐봐.
지석모 (??) 뭔데?
지석 엄마 사진 찍어두구 심심할 때 볼라구. 좀 웃어봐.
지석모 ..별 에으... (계속 가는)
지석 웃어봐.
지석모 (팩) 웃어지냐?
지석 쫌 웃어주라.
지석모 (췌. 지석이 쪽 보며) 직어 그냥. (뿌한 얼굴로 보기
만)
지석 얼르은 웃어. 나 힘들다...
지석모 아 그냥 찍어어!
지석 에이 웃지 좀.
지석모, 그렁그렁해서 억지로 웃어준다. 그 모습에
서 사진이 찍히고.
#인서트
지석 데려다 주러 온 날 병찬의 얼굴에서
지석 (E) 꼰대냄세 너무 난다. 얼굴 좀 풀어라 마.
그 모습에서 찰칵 찍히고.
#덕구의 얼굴에서, 웃지 않다가
지석 (E) 너 안 웃어서 두 번 찍게 하믄 죽-어. 하나, 두
울, 셋!
셋! 할 때 활짝 웃는 덕구의 모습에서 찰칵 찍히고.
#미연의 아름다운 미소를 담은 얼굴을 찍은 사진, 사
진들 위로,
미연E 또 올 건데 사진은 뭐하러 찍어?
지석E 오지 마! 이거만 있으면 돼. 영영 내 곁에 있을거니까,
충분해.
(F.O.)
# 33. 읍내 거리 - 낮
요양원이 있는 시골 소읍의 거리에 도착하는 버스에
서 내리는 지석과 미연.
싫다고 뻣팅기는 지석을 끌고 가는 미연. 뻐팅기다 미
연의 말에 점차 힘을 빼고 결국엔 제 발로 미연을 따라 걷는 지석
의 컷컷컷! 위로,
미연E (지석을 잡아끌며) 고등학교 때 우리 할머니 땜에 못
한 거... 대학교 때 니 아빠 땜에 못한 거... 나, 다 해줄거야!
지석 (안간다고 버팅기고!)
미연E (두 손으로 잡아끌며) 맨날 숨어다니느라고 못했던
거.. 전부 다 할 거야!
지석 (조금 끌려가다가 다시 버팅기며 버스에 타려하고)
미연E 우리 같이 행복한 적 한 번도 없잖아.
지석 (놀라며 미연 보면)
미연E (이끌고 가며) 사랑하는 여자들이 느끼는 행복.. 나도
느껴보고 싶단 말야..
지석 ...!! (미연에게 손이 잡혀 이끌리는 데로 끌려가는)
# 34. 왈숙 원룸 - 낮
양은 냄비에 라면 끓여 각기 뚜껑 하나씩 들고 사이 좋
게 먹고 있는
덕구와 왈숙.
왈숙 (후루룩 먹다가 켁! 목에 걸리며) 태훈씨가요? 미연이
를요? 그 사람한테?!!
덕구 예. 회사에서 하는 자원봉사라고 핑계대면서... 결국엔
허락을 하는데..
왈숙 (헉...!)
덕구 그런 사람을 뭐라고 욕했으니... 아휴.. 증말.. (후루
룩.. 라면 먹고)
왈숙 (기막혀 라면도 안넘어가고) ...
덕구 얼만큼 사랑하면 지석이처럼 그럴 수 있는지.. 또 얼만
큼 사랑하면.. 미연이 남편처럼 그럴 수 있는지.. 나도 한 번 해보
고 싶은데..
왈숙 (정신 차려 라면 먹으려는데..)
덕구 (진지하게) 제 사랑 한 번 받아보실래요?
왈숙 (켁! 케겍!!!) 뭐라구요?
덕구 다른 남자한테 보내줄 만큼은 자신 없지만, 지석이 처
럼 죽을 때까지 아껴줄 자신은 있어요.
왈숙 ...!!! (뭔소린가 싶어 보는)
덕구 첫키스를 잊을 수가 없거든요.
고소한 삼겹살 기름에 미끄러졌던 왈숙씨 입술을..
왈숙 (정신 번쩍 들며) 잠깐잠깐잠깐..!! 지금 이거 프로포
즈 하는 거죠
덕구 (또 라면 한 젓가락) 가까우니까 살림도 합치기 수월하
잖아요. 내가 내려오든가, 아님 왈숙씨가 올라오시든가..
왈숙 (순간 버럭) 야!
덕구 (화들짝 놀라)
왈숙 (덕구의 냄비 뚜껑을 뺏으며) 이게 오냐오냐 놀아줬더
니, 나가! 당장 나가!!
덕구 (황소 눈을 꿈벅꿈벅하며) 왜.. 왜 그러세요?
왈숙 니 눈에 내가 여자로 보였다면 최소한 이딴 식의 프로
포즈는 못해.
사랑받는 여자가 당연히 누려야할 행복을 이렇게 진흙
발로 짓밟을 수가 없어.
뭐 살림을 합쳐? 내가 과부고 니가 홀애비냐?
쫓아 낼려하는 왈숙과 필사적으로 뻣튕기는 덕구의 소
동 위에 띵동 메시지 도착음과 함께 뜨는 메시지.
자막 <사랑에 빠진 남자가 여자한테 바라는 게 뭐예요? -미
연>
# 35. 읍내 분식점 - 낮
창밖에서 잡힌 고등학생 커플과 주로 여고생들로 가
득 찬 작고 허름한 분식 집 안. 지석과 미연은 고등학교 시절 첫 데
이트를 하는 듯하다.
지석 (우렁차게) 아줌마 여기 떡볶이랑 만두랑 1인분 씩이
요?
아줌마 (주방을 향해 목청 높여) 여보오! 3번에 떡만이 하나아
~!
지석 (약간 비음을 섞어) 여보오! 저 아줌마가 하는 여보란
말 진짜 자연스럽게 들린다. 참 여보란 말의 어원이 될까? 여보세
요?의 준말?
미연 더 이상 사랑한단 말로 자기 감정을 표현할 수 없을
때 쓰는 말이래. 여보!
띵동 미연의 핸드폰에 도착음과 함께 뜨는 메세지.
자막 <병찬이 포섭했음. 라면 먹고 출발함. 떡볶이 먹고 이
동하시요!-떡구>
떡볶이와 만두 나오고,
지석 (감개무량하여) 탐라축제 가던 날 너랑 단 둘이 먹고
싶은 거였는데. 경기도 시골에서 소원을 이루네...(그렁그렁) 하기
사... 우리 못 해본 게 뭐 한 두 갠가... 둘이 같이 한 거라곤 자전거
탄 것 밖에 없는데...
미연 (웃는) 지금부터 다 하면 되잖아.
지석 미연아.
미연 응?
지석 ..약속한.. 8시까지만 있는 거다? 8시엔 무슨 일이 있
어도 집에 가는 거다?
미연 (웃으며) 몇 번을 말해.
지석, 환희에 차 떡볶이를 하나 집어 수줍은 미연의 입
에 넣어주고,
미연도 떡볶이를 물에 헹궈 지석의 입에 넣어주고,
지석 (수줍은 고삐리 처럼 받아먹고)
미연 매운 건 해로우니까...이렇게 먹어도 떡에 양념이 배
서 맛있지?
지석 (끄덕끄덕) ...응
미연 (여고생 처럼 오물오물 먹는다)
한 구석의 깻잎머리 여고생들, 떡복이를 잘근잘근 씹
으며 이쪽을 '꼬나' 보고 있다.
# 36. 지석 주방 - 낮
과일하고 죽, 찻물.. 지석에게 갖다 줄 음식들을 싸고
있는 정란. 한 손으로 핸드폰을 하고 있는데 '고객의 전화가 꺼져
있다'는 안내음만 들린다. 정란, 그냥 끊고 마저 짐을 챙긴다.
# 37. 읍내 거리 -낮
분식점에서 나오는 지석. 미연, 뒤따라 나와 지석의 새
끼 손가락을 잡고, 지석, 흠칫 놀라며 미연을 보면, 미연, 새침하
게 웃고, 지석, 짐짓 딴 데 보며 수줍어한다.
미연 고등학교 땐 분식점에 같이 가고 싶었고, 대학교 땐 뭐
하고 싶었어?
지석 뭐.. 그냥.. (뭔가 말 하고 싶어 입을 옴쪽달싹)
미연 (그 표정에) 오느 못하면 다음 주에나 와. 다음 주까지
기다릴래?
지석 (그제서야) 대학교 때 너 과외 끝나기 기다리면서 덕구
랑 맨날 당구치러 갔었거든? 근데 당구장에 가보면 꼭 지 여자 친
구 델구 오는 놈들이 있는거야.
당구는 치지도 못하는 여자 친굴 델구 와갔구 나 애인
있어! 자랑하는 거지.
미연 우리 당구장 갈까?
지석 당구 칠 줄 알어?
미연 아니.
지석 나 혼자서 어떻게 쳐?
미연 (이끌며) 가르쳐주면 되잖아..
지석 (끌려가며) 아, 어느 세월에..!
# 38. 읍내 당구장 - 낮
한갓진 시골 당구장에 주인이 공을 놓고 가면, 쓰윽 등
장하는 덕구와 병찬.
덕/병 한 게임 하실가요, 현지석씨?
지석 (기겁해서) 니네들이.. 여..여긴 어떻게? (웃고 있는 미
연을 노려 보는데)
미연 내가 부른 거 아닌데?
지석 (다시 덕구와 병찬을 노려보면)
병찬 (덕구에게) 오늘 내기는 뭘로 할까 물다마 300?
덕구 (큐대 하나 골라 지석에게 주며) 당근 짜장 꼽배기지.
안 그래, 현 지석 프로 500?
지석 (흥분해서 병찬에게) 300점 이하 맛세이 금지!
너 오늘도 맛세이 찍으면 죽는다아, 왕소금 200?
미연 ...? (뭔 소리들인지 못 알아 듣고 그저 미소를 짓는데)
지석 (주인이 쟁반에 가져오는 요구르트를 하나 집어 빨대
꽂아 미연게 속닥) 점수판 놓을 줄 알아? 원래 여자 친구가 점수
판 놔주는 거야.
미연 (요구르트 쪼르륵 빨아먹으며 끄덕끄덕)
지석 자아 부변태! 하수부터 먼저 시작하시고...
추억의 <샌프란시스코> 음악과 함께 시작되는 세 사
람, 아니 네 사람의 당구. 여전히 녹 슬지 않은 병찬의 왕소금 실
력. 큐대를 조준하고 있는 병찬의 뒤로 가 큐대를 슬쩍 건드리는
덕구. 빗나가는 공에, 앗싸! 환호하며 공을 치는 지석. 그런 지석
의 얼굴, 행복한 미소. 이번엔 지석을 대신해 미연이가 큐대를 잡
고 지석이 자세를 잡아주고, 지석이 잡아준 그 자세에서 땅! 공을
때리는 미연. 쓰리 쿠션을 완벽히 맞추는 미연의 공. 세 사람, 오
오...!! 미연도 놀라고... 10 년 전으로 훌쩍 돌아간 사랑과 우정...!!
# 39. 요양원 지석방 앞 - 낮
쇼핑백에 담긴 음식물을 든 정란이 걸어온다. 지석방
앞에서 노크를 하는데, 대답 없고, 문고리를 돌려보는데 걸려 있
다. '지석시!' 불러 보지만 역시 대답 없고, 핸드폰을 꺼내다가 빨
래 걷은 걸 들고 지나가는 수녀에게,
정란 저기, 이 방에 현지석씨.. 어디 갔나요?
수녀 계속 방에만 계시다가 오랜만에 외출하셨는데... 늦으
시네.. (가고)
정란 ...
# 40. 읍내 재래시장 -낮
시장터 몽따쥬. 미연, 지석의 새끼 손가락을 잡고 생필
품들을 사고 있다.
가난한 신혼 부부 처럼 손거울, 머리빗, 스킨과 로션,
칫솔 치약, 시장표 양말과 메리야스를 고르는 미연.
지석 뭘 이렇게 많이 사.
미연 아줌마, 손톱깎기 어딨어요? (하나사서 봉지에 넣고,
놓쳤던 지석이의 새끼 손가락 잡고 걸으며, 툭) 나랑 샌프란시스
코 갔으면 결혼식은 어디서 해주고 싶었어?
지석 음..카톨은 아니지만, 오래된 성당, 늙으신 신부님 앞
에서...
참 도망가서 몰래 하는 결혼식이라 하객은 한 사람도
없었겠다.
연락했으면 덕구랑 병찬이 새끼는 와 줬을래나?
# 41. 읍내 다방 - 낮
심란한 얼굴의 다방레지가 쫙쫙 껌을 씹으며 다방커피
를 갖고온다.
덕구는 성냥개비로 탑을 쌓고 있고, 병찬은 전화하느
라고 바쁘다.
병찬 오늘 못 들어가. 들어가도 늦어... 과장님 열 받았어? 아
씨.. 알았어, 임마.
니가 좀 떼워. 나중에 니 놈 데이트 할 때 내가 품앗이
해줄께. (끊고)
덕구 (탑 쌓으며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지 히죽 웃으며) 지
금쯤 면도하고 있겠지?
병찬 뭐가 그렇게 좋냐, 넌?
덕구 그럼 안좋냐? 지석이 소원풀이 하는데?
병찬 (화낸다) 다 죽을 때 되서 하는 소원풀이가 뭐가 좋아?
덕구 이 자식은 꼭 말을 해도..
병찬 죽을 땐 그냥 조용히 죽는 게 제일 좋아. 자꾸 이렇게
애틋해지면 더 외롭고 힘들어져. 당장 오늘밤에 우리도 가고, 미
연씨도 가고, 요양원에서 지석이 혼자 있어야 되는데..
덕구 (문자가 도착을 하고, 확인하면)
미연 <10분 있다가 사진관으로 오세요-미연>
# 42. 읍내 이발관 -낮
지석의 입에 뜨거운 물수건이 덮여져 있고, 아저씨 이
발사가 쓱싹쓱싹 가죽 숫돌에 면도칼을 갈고 있다. 이윽고 아저씨
의 부인인 아줌마 면도사가 지석의 면도를 시작한다. 얼굴 위로 닿
는 날 선 카날의 흐름이 보기만 해도 찌릿찌릿.. 지석, 오랜만에 받
아보는 면도에 기분이 야릿하고, 미연, 베이지 않을까 얼굴을 찡긋
거리며 본다.
지석 (움직이는 칼날을 피해 조심스럽게, 미연에게) 근데...
나 면도는 왜 하는데?
# 43. 읍내 사진관 -낮
촌스런 배경의 나무 의자에 앉은 두 사람. 늙은 할아버
지 사진사가 검은 천을 뒤집어 스고 포커스를 맞춘다. 프레임 안
에 들어와 나란히 꼿꼿하게 앉아 어색한 표정으로 있는 두 사람.
할아버지 팔짱을 한번 껴보지요.
미연 (지석 팔짱을 낀다)
할아버지 신부님, 신랑님 어깨에 머리를 까딱 기대보지요.
지석 (신랑이란 말에 움찔..! 하는데)
미연 (새침하게 웃으며 머리를 조금 기댄다)
할아버지 신랑님도 좀 웃어보지요.
지석 (입만 벌어지는 미스코리아 미소를 짓는다)
할아버지 (아니다고 손사레를 치며) 평생 가는 결혼 사진을 이렇
게 망칠 건가요?
신부님, 신랑님을 좀 웃겨 보지요.
미연 (손가락으로 지석의 옆구리를 쿡! 찌른다)
지석, 움찔하며 웃음이 터지는 순간에, 강한 플래시가
터지며 찰칵!!!
황급히 들어서는 덕구와 병찬.
지석 뭐야? 안 갔어?
할아버지 (다시 장막 쓰고) 자.. 우인 대표 여러분들.. 신랑님 신
부님 뒤에 나란히 서보지요..
지석 (아무래도 신경 쓰여) 아니.. 저기.. 우린 그런 게 아니
라..
할아버지 어허.. 뒤에 친구님들 신랑님 좀 고정시키지요..
덕구 (지석의 어깨를 땡겨와 의자에 바짝 앉히고)
미연 (속삭이는) 그냥 있어. 오해 좀 하면 어때.
지석 (미연 보며) ...
할아버지 자.. 다 같이 활짝 웃어 보지요!
미연, 덕구, 병찬, 활짝 웃는데,
지석, 뒤늦게.. 서글픈 웃음을 조금씩 환하게 웃으며,
플래시와 함께 찰칵!!
사진 아래 박히는 글자. <2006년 12월 31일. 초원 사진
관.>
# 44. 요양원 지석방 - 밤
하루종일 돌아다니느라 죽은 듯 잠이 든 지석. 미연,
고단한 숨을 쉬는 지석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다. 눈썹 하나.. 코
끝.. 회색의 입술.. 이렇게 혼자 두고 미연의 발길이 차마 떨어지
지 않는다.
미연 (그렁그렁) ..........
# 45. 요양원 마당 -석양 (회상)
고목나무 아래에서 미연에게 기대 석양을 바라보며 앉
아있는 지석.
지석 (눈물이 주루룩 흐른다)
미연 (닦아주며) ...왜 울어?
지석 ...오늘 하루가 너무 행복해서..
미연 ...
지석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미연 ...
지석 ...딱 이런 날 이런 시간에...
미연 ...
지석 ...니 품에 안겨... 눈 감을 수 있으면... 좋겠다..
미연 (미소...이내 눈물이 흐른다)
지석 ...니품에 안겨 니가 보는 하늘만큼만 보면 얼마든지
죽을 수 있겠다, 미연아!
미연 ...
지석 ...
(F.O)
# 46. 여의도 환승역 - 밤
태훈, 벤치에 앉아 바지 주머니에 손 넣고 다리 길게
뻗어 발끝을 노려보며 기다리고 있다.
태훈, 꼿꼿하게 서서 기다리고 있다.
태훈, 벤치에 앉아 상체 숙여 무릎에 팔꿈치를 맞대고
한 손은 두통이 오는 이마를 누르고 있다.
그런 태훈 앞으로 서고 가는 버스들이 점점 드물어진
다.
태훈, 노숙자처럼 아예 벤치에 드러누워 있다...!
이윽고 도착하는 마지막 버스에서 미연이 내린다.
미연, 버스 속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부어있다.
미연, 태훈 앞으로 다가 간다.
미연 (울어서 빨간 눈) 많이 기다렸어요?
태훈 (누운 채 차갑게 보다가 일어나 간다) ...
미연 (그런 태훈 보며 무겁게 뒤따라가는...)
# 47. 달리는 태훈 차 - 밤
얼음장 같은 분위기로 달려가는 태훈과 미연.
태훈 ...
미연 ...죄송해요.
태훈 ...(부부 사이에 죄송하다는 말까지 들었다. 이를 앙물고)
미연 ...오..오랜 만에 그 사람 친구들이 와서...
태훈 (OL) 누가 뭐래? (폭발하듯) 누가 뭐래?
# 48. 미연집 주차방 - 밤
화가 치민 태훈, 미연을 내버려 두고 먼저 들어가 버린
다.
미연 ...(힘이 들어 기절할 지경이다)
# 49. 미연집 거실 - 밤
미연이 들어오면 태훈,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거실에
무섭게 서있다.
미연, 비칠비치한 걸음을 안방 쪽으로 향하는데,
태훈 그 자식 언제 죽니?
미연 ...!
태훈 (절규한다) 그 자식 대체 언제 죽는 대니?
미연 ...!! (대답 않고 안방으로 간다)
# 50. 미연집 안방 - 밤
미연, 침대에 쓰러지듯 앉는데, 벌컥 문이 열리고 태훈
이 들어온다.
태훈 대답 안 할거야?
미연 ...(질끈 눈을 감는데)
태훈 (어쩔 줄 몰라 제 가슴을 주먹으로 쾅쾅 치며) 대답 안
할거야?
미연 (감은 채) ...곧이요..곧..(감은 눈에서 눈물이)..
태훈 ...
미연 (눈을 뜨고) 당신, 이렇게까지 해서.. 나를 가져야 해
요?
태훈 ...!
미연 그 사람이 죽고 나면... 내가 당신한테 갈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태훈 ...!! (경악!!)
미연 사랑을 어떻게 나눠 가져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
요?
태훈 ...안그러면 너를 다 놓치니까!
미연 차라리 그 편이 낫지 않아요?
태훈 ...! (두려움에 눈가 파르르!)
미연 (이건 아니라는 듯 고개 설레설레 흔들며 눈물 고이며)
당신이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냐.
태훈 ...!!! (숨이 탁 막히며 미연을 뚫어질 듯 응시!)
미연 연민이고.. 동정심이야.. 나를 잃으면.. 당신 자신이 불
쌍하니까.
태훈 ...
미연 (냉정하게) 나 그만 놔줘요.
자기 여자를 다른 남자랑 나눠가질 만큼... 당신.. 부족
하지 않아요.
태훈 (눈물 차오르며) 니가...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가 있니? (울음에 목소리 떨리며)
미연 그 사람이 죽지 않으면 당신이 못살고, 그 사람이 죽으
면 내가 못살아요.
당신한테 미안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아파요.. (눈물
흐르는)
태훈 ...나... 사랑한다고 했잖아.
미연 (말 못하는)
태훈 ...아니야?
미연 ...
태훈 아니니?
미연 (시선 내리고) ...
태훈 (미연 어깨 붙잡고) 나도 사랑한다고 했잖아! (버럭)
그 자식이 먼저이긴 했지만 날 사랑한다고 했잖아!!
미연 (대답 대신 눈물이 흐르는...)
# 51. 갤러리 앞 - 낮
정란, 짐으 챙긴 박스를 들고 나와 차 트렁크에 싣는
다.
작업실로 출근하여 가던 왈숙, 그런 정란을 보고,
왈숙 안녕하세요!
정란 (돌아보고, 누구시냐는 듯) ?
왈숙 아, 저 요 위층에.. 미연이 선배에요. (악의 없이 다정
하다)
정란 아, 예...
왈숙 전 오며 가며 가끔 뵜느느데... 갤러리 정리하시나봐요..
정란 (트렁크 쪽으로 돌아서서) 예...
왈숙 예 그럼...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정란 (트렁크 문 닫는데)
왈숙 (다시 와서) 저기요..
정란 (보는)
왈숙 제가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정말 고맙
습니다..
정란 (황당) ...네?
왈숙 미연이 대신해서... 고마워요, 두 사람... 같이 있게 해
줘서...
정란 (얼른 납득이 안되어) ...네?
왈숙 태훈씨도 태훈씨지만.. 같은 여자로서.. 정말.. (눈시
울 적시며 보는)
고맙습니다. 이 말 밖엔 뭐라.. 할 수 있는 말이 없네
요.
# 52. 태훈 회사 앞 - 낮
멀리 환승 정류장이 보이는 그 곳.
정란, 차에서 내려 자괴감에 빠져 정류장을 보고 있는
태훈에게 다가간다.
정란 만나게는 해줘야 된다더니.. 그 말이 이런 뜻이었어
요?
태훈 ...
정란 요양원을 두 사람의 밀회 장소로 제공해요?
태훈 그렇게 하면 될 줄 알았어요.
정란 ...?
태훈 그렇게 보내주면 돌아올 줄 알았어요.
정란 ...
태훈 이젠 끝났습니다, 다!
정란 ...
태훈 아내가, 내가 허락되지 않은 날인데도, 오늘 당신 남편
한테 가버렸다구요.
# 53. 동/ 정란 차 쪽 - 낮
태훈에게서 걸어와 차에 타 시동을 거는 정란.
다시 내려 태훈에게 소리친다.
정란 나 지금 내 남편 데리러 가요. 당신 아내 내 눈에 띄면
무슨 일 날지 모르니까 당신 아낸 당신이 알아서 처리 해요! (차에
타 급출발한다)
# 54. 동/ 태훈 쪽 - 낮
넋을 놓고 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 태훈!
정란의 차가 손살 같이 사라졌다.
자기 차로 달리는 태훈.
# 55. 동/ 주차장 - 낮
태훈의 차, 급회전으로 끼익-- 샛소리를 내며 빠져 나
가고!
# 56. 요양원 지석방 - 낮
며칠 사이에 표가 나게 나빠진 지석. 미연, 지석의 약
을 종류벼로 하나씩 네 개 정도를 꺼내 손바닥에 앉아 지석을 안
아 일으킨다.
미연에게 안겨, 미연의 손바닥을 마뜩찮게 내려다보
며 한숨 쉬는 지석.
미연 왜?
지석 이거 먹으면 또 졸린데...
미연 아픈 것보다 낫잖아. 얼른 먹자, 아?
지석 (아! 약을 받아먹고 기운 없는 목소리로) 오늘은 못나
가게 놀겠다. 기운이 없어. (미연이 건네는 물컵 받아 마신다)
미연 별 걸 다 걱정 해. 먹고 자. 난 자는 얼굴만 구경해도
되니까...
지석 (웃으며, 미연에게 기대는데...)
그 순간! 쾅! 문을 열고 정란이 들어온다.
정란!!
미연!!
지석!!
곧 이어 나타난 태훈에서,
<15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