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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과 러시아의 선교적 긴밀성
연경남 선교사(GMS 몽골지부)
서론
현대 몽골 역사는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에 있다. 몽골이 청나라에게 276년간 통치를 받다가 1921년 인민 혁명을 일으켜 독립국가로의 자주권을 찾은 것은 러시아의 도움이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몽골과 러시아는 혈맹국으로 참전하여 승전국이 되었다. 정치적으로 몽골은 러시아의 위성국가로서 약70년간 공산주의 체제하에 있었고 러시아의 개혁 및 개방화 물결에 영향을 받고 1990년 민주화 혁명이 이루어져 마침내 오늘에 이르렀다.
몽골의 현대 역사에서 러시아와의 깊은 연관성은 몽골의 근대 기독교 선교 역사에도 유사한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몽골의 근대 기독교 선교는 러시아를 근거지로 몽골에 전해졌다. 당시 외국 선교사들이 몽골에 직접 들어오기 어려웠던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환경에서 러시아에 있는 범몽골족들은 몽골 선교의 대안적 전략이 되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필자는 몽골 근대 선교사 가운데 러시아에 거주하며 사역했던 4명의 몽골 선교사들의 행적을 간략히 정리해보고자 한다.
본론
1) 이삭 야콥 슈미트 선교사
(Isaac Jacob Schmidt 1779년 10월 4일~1847년 8월 27일)
근대 몽골 선교는 러시아를 경유해서 이루어졌다. 가장 먼저 모라비안 교도들이 몽골계인 칼묵(Kalmucks)족을 대상으로 접근했다. 모라비안(Moravian)이었던 이삭 야콥 슈미트가 1812년에 모스크바에 파송되었다. 그는 러시아 왕립학술원의 회원으로 칼묵인과 몽골인을 대상으로 러시아에서 성경 번역을 했다. 후에 슈미트는 런던선교회에서 파송 받은 개신교 몽골어 성경 번역 선교사들과 공조하기도 했다.
슈미트는 1779년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모라비안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6세 때 모라비안이 운영하고 있는 학교에 들어갔다. 그의 가족은 나폴레옹의 네덜란드 점령 이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무역 견습생 일을 시작하면서 여러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자극을 받게 되었다.
슈미트는 1798년, 19살 때 자신이 다니는 교회로부터 러시아 볼가강 유역 사렙타(Sarepta) 지역에서 사역을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 사렙타(Sarepta) 지역은 모라비안의 선교 기지가 있던 곳이다. 사렙타 지역은 1767년에 러시아 대제 캐서린(Catherine II) 2세로부터 토지 사용권과 칼묵인을 대상으로 선교를 할 수 있는 모라비안의 러시아 정착촌이었다.
‘슈미트’는 1807년에서 1812년까지 볼가강 유역에 있는 사라토프지 역의 교회에서 일했다. 1812년에 그는 헬레나(Helena Wigand)와 결혼했고 1812년에 교회는 그를 모스크바로 파송했다. 1824년에 “몽골과 티베트인의 역사”에 관한 저작을 발표한 후에 그는 유명해졌다. 그는 몽골어 문법책과 사전, 그리고 티벳어 문법책과 사전을 출판했다. 그의 작품은 몽골과 티베트 연구를 위한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는 또한 몽골
역사책을 독일어로, 부리아트 게세르의 여러 서사시를 러시아어와 독일어로 번역했다. 그는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고 여러 다른 유럽 학회 회원이 되기도 했다.
선교와 관련된 그의 번역물은 매우 많다. 1818년에 부리아트 몽골족(Buryats)의 개종을 위한 기독교 전도지, 1819년에는 몽골어로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을 번역했다. 1820년에는 칼묵어로 마태, 요한, 사도행전을 번역했고 또한 몽골어로 사도행전을 번역했다. 1827년에 칼묵어로 신약성경 전체를 번역했다. 그는 선교 분야뿐 아니라 일반 몽골학계에서도 몽골
연구학의 태두로 인정받고 받고 있다.
2) 에드워드 스탤리브라스 선교사
(Edward Stallybrass 1794년 6월 8일~1884년 7월 25일)
에드워드 스탤리브라스는 영국 선교사이다. 그는 러시아 시베리아 내 부리아트 몽골인들의 성경을 번역하도록 파송 받았다. 그는 런던 호머튼(Homerton)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다. 1816년에 목사에 임직되었고, 같은 해 사라(Sarah Robinson 1789-1833)와 약혼하였다. 1817년에 그들은 런던선교회(London Missionary Society)의 후원으로 결혼했고 함께 러시아로
떠났다. 1817년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에 도착했을 때, 그는 스웨덴의 예테보리(Gothenburg)시에서 온 선교사 코르넬리우스 램(Cornelius Rahmn)과 합류했다. 두 사람은 1818년 1월 선교 사역을 시작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고 이르쿠츠크를 향해 4000마일을 썰매로 가는 여행을 시작했다. 도중에 그들은 모스크바에 들러서 러시아 알렉산더 1세에게 승인서를 받았다.
이르쿠츠크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이 지역이 곧 부적절하다는 것을 알았다. 코르넬리우스 램의 아내 베티(Betty)는 시베리아 기후에 적응할 수 없었고 램의 가족은 다시 칼묵에 있는 사렙타(Sarepta)로 이사했다.
스탤리브라스는 2명의 스코틀랜드 사람, 윌리엄 스완(Wiliiam Swan)선교사와 로버트 유일(Robert Yuille) 선교사와 동역하였다. 그의 선교 사역은 설교, 소책자 배포, 학교 근무 및 부리아트어 성경 번역 등의 일이었다. 1846년에 스탤리브라스와 스완 선교사가 번역한 몽골어 신약성경이 시베리아에서 출판되었다.
3) 윌리엄 스완 선교사
(William Swan 1791년 6월 21일~1866년 1월 18일)
윌리엄 스완은 시베리아의 스코틀랜드 선교사였으며 성경을 몽골어로 번역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시베리아 울란우데 부근 셀렝긴스크(Selenginsk)에서 사역했다. 시베리아에서 있던 기간에 스탤리브라스(Edward Stallybrass)와 코르넬리우스 램(Cornelius Rahmn)과 함께 몽골어 성경 번역을 준비하였다. 1830년에는 ‘Letters on Missions’(선교 편지)를 출판했다. 1831년에 스완은 몽골 신약성경 인쇄를 위해 영국을 잠시 방문했고 그 기간에 영국에서 한나(Hannah Cullen)와 결혼했다. 그러나 그 부부가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경유하여 시베리아로 다시 돌아올 때 스완은 러시아 경찰에 체포되어 1833년 말까지 구금되었다. 러시아 정부는 개신교시베리아 선교를 금지하고 1840년에 스완과 다른 사람들을 추방했다.
4) 코르넬리우스 램 선교사
(Cornelius Rahmn 1785년 7월 16일~1853년 8월 21일)
코르넬리우스 램은 1785년 스웨덴의 ‘예테보리’ 시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법률가 대신에 목사가 되었다. 코르넬리우스 램은 1807년에 스웨덴에서 살았던 런던선교회 소속인 존 패터슨 선교사와 친해졌고 그 친분으로 1817년에 램은 런던선교회 파송으로 스탤리브라스(Edward Stallybrass)와 동행하여 시베리아 이르쿠츠크로 향했다. 이르쿠츠크로 가는 길에 그들은 먼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머물다가 1817년 12월에 모스크바로 떠났다. 모스크바에서는 1월 19일에 눈썰매를 타고 2달의 여정 끝에 1818년 3월 16일,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두선교사의 아내는 모두 임신한 상태였고 램에게는 2살 된 딸 한나(hanna)도 있었다. 램의 아내 베티(Betty Rahmn)의 건강이 많이 나빠져서 램의 가
족은 이르쿠츠크를 떠나야 했다.
1819년 5월, 램 가족은 칼묵인 사이에서 일하기 위해 사렙타(Sarepta)로 이사했다. 사렙타(Sarepta)는 모라비안(Moravian)에 의해 기독교 정착지가 된 곳이다. 램은 거의 4년 동안 그곳에 머물렀으며 런던 선교회(London Missionary Society) 선교사로서 모라비아
형제들 속에서 살았다. 1823년 6월 그는 러시아 당국에 의해 그의 선교활동을 중단하도록 강요당해서 1826년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머무르며 런던선교회 일을 했다. 그 후 1832년에는 런던에 있는 스웨덴 사람들의 교회 목사가 되었다. 1841년에 그는 스웨덴으로 돌아와 1853년 소천 때까지 시골 작은 교회의 목사로 있었다. 그는 칼묵에 있을 때 이삭 야콥 스미트의 성경을 만족스러워하지 않아서 다시 번역하는 일을 했었지만, 그 결과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칼묵에 있을 때 칼묵어 사전과 문법책을 번역 출간했었다.
3. 결론
몽골은 중세에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하며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긴밀히 연결시킨 첫 나라였다. 러시아는 현재 유럽과 아시아 대륙에 걸쳐 영토를 점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이다.
실로 몽골과 러시아는 "유라시아'라는 용어의 주인공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전기한 대로 역사 속에서 몽골과 러시아는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상호간 도움을 주고받았던 혈맹이었으며 모든 분야에서 지금도 여전히 우호적인 관계에 있다.
유럽에서 몽골에 복음을 전하려는 수차례의 시도가 있었을 때마다 러시아는 몽골 선교의 중간 거주지가 되었다. 그 이유는 몽골에 외국 선교사가 직접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러시아 내에도 범몽골족이었던 칼묵족이나, 부리야트족이 실제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4명의 몽골 선교사 - 이삭 야콥 슈미트 선교사, 에드워드 스탤리브라스 선교사, 윌리엄 스완 선교사, 코르넬리우스 램 선교사 - 이들은 근대 몽골의 기독교 선교를 위해 러시아의 모스코바와 칼묵, 시베리아에서 몽골인을 위한 성경번역을 하였고 이는 몽골 근대 선교의 출발선이 되었다.
이들 4명의 몽골 선교사가 보여주었던 러시아 내에서의 선교 사역은 오늘날도 몽골과 러시아가 서로 사역을 공유하고 긴밀히 협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재차 확인시켜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