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9.8. 오전 9시 주일예배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3장)
신앙고백
찬송 14 주 예수를 아는 이들
기도 조용림 권사
성경 말씀 베드로전서 4:1~6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함께 비를 맞는 친구
찬송 864 겟세마네 동산에서
헌금 기도 농협 3010178504011 연세소망교회
광고 코로나 변이 유행 – 추석 보호자 방문 절제 부탁
전 직원 근무 시 마스크 착용, 식사 반입 시 마스크 착용
찬송 1099 기도할 수 있는데
축도 아프니까 그만하세요. 주님도 아프잖아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김소월
1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2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3절,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4절,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 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5절,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
6절, 이를 위하여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라
엊그제
20살 여대생이 갑자기 쓰러져 심장이 멈췄습니다.
100m 거리에 조선대병원 응급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지 마세요.
그래서 결국, 꽃다운 여대생이 의식불명 상태입니다.
누구 때문이겠습니까?
목사님도 지난 수요일
우리 이현우 집사 배에 구멍을 내고 식사를 제공하는데
튜브를 무의식 중에 빼버렸습니다.
그래서 원광대 응급실로 달려갔습니다.
오전 내
x-ray 2회, 피검사, 내시경 등 비급여로만 검사란 검사는 다 했습니다.
그리고 간호사가 PEG 하는데
10여 분 만에 중단하고 나오더니
전문의사가 없으니 불가피 타 병원으로 이송하라는 것입니다.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비싼 병원비는 다 지불하고
전북대병원, 예수병원, 대자인병원 수소문하고
전주 대자인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아이고~ 주차장이 엉망진창이라서 ~
겨우 응급실 문턱에 들어섰는데
받아 주겠다는 전화받은 사실 없습니다.
그러나 어쩌고 따질 여력도 없어
원광대병원 응급실 진료의뢰서를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한 분뿐인 전문의와 통화하더니 해 보겠다고 승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응급실 문턱에서 3시간가량을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아침이고 점심이고 먹을 겨를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후 4시경에 보호자 동의 서명하고
수면 내시경하고 PEG를 마쳤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 마음속으로
전생에 이현우 집사와 무슨 인연이었는지 모르겠다.
뇌경색으로 부여 산꼭대기에서 들쳐업고 내려와
우석병원에 입원시키고
글글 극심한 가래에, 원대병원 응급실로 가서 치료받다가
심정지 상태에 인공호흡기 장착하고 3개월여 만에 퇴원시키고
그리고 지난주, 동서남북으로 달리고 달렸으니 보통 인연이겠습니까?
1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고난의 상징, 인동초 김대중 대통령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20년 감옥 생활을 통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선생님도 독재 시대, 고난의 상징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에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욥, 예수, 베드로, 사도 바울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언제 읽어도 가슴이 저며옵니다.
이사야 53장 2, 7절입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주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저 눈물만 납니다.
예수님의 고통이 이럴진대.
우리는 아직까지도 험악한 죄를 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목사인들 죄로부터 자유하겠습니까?
옹졸한 목사로서 부끄럽습니다.
어제 오전 10시경부터
우리 최연희 권사께서 숨이 넘어가는 듯 위독했습니다.
목사님만 보면 등을 두드려 주면서 목사님 나도 많이 사랑해요.
엊그제도 웃으시면서 목사님을 안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급히 방을 격리하고
목사님이 곁을 지켜 드렸습니다.
아들 이름을 부르며 복만아 복만아 복만아 빨리 와라.
그리고 물 한 모금 마시고 평안히 눈을 감았습니다.
우리 인생이 이럴진대 아직까지도 인생도 모르는
철부지 장로 목사 권사 집사들을 봅니다.
2절입니다.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이것이 고난의 의미입니다.
목사는 목사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어디 장로가 벼슬이겠습니까?
이제, 이기적이지 말고 하루살이 정욕 따위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성도답게 거룩해지자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생화와 조화의 차이를 아십니까?
예수를 믿어
기도 할 수 있는 자와
믿을 수 없어
기도 하지 못하는 자와의 차이를 아십니까?
감사하는 자와
감사하지 못하는 자와의 차이를 아십니까?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의 차이를 아십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어
기도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그래서 우리 요양원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요양원 이전부터 일찍이 하나님께서 붙여준 이름입니다.
그래서 우리 요양원 정면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My Father’s House.
나의 아버지의 집
기도하는 집입니다.
그렇다면 기도의 능력을 아십니까?
그렇다면 감사의 힘을 아십니까?
그렇다면 사랑의 기적을 체험해 보았습니까?
베드로전서 4장 8절입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바로 이것입니다.
기도는
감사는
사랑은
우리의 허다한 허물을 덮어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제 소천하신 우리 최연희 권사님의 허물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사나웠습니까?
그렇지만 목사님이 임종을 지켜보면서 똑바로 확인했습니다.
마치, 들의 꽃과 같이 순간적으로
그냥 시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믿으면
기도하면
감사하면
사랑하면
허다한 허물이 덮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도 목사인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과거의 못된 죄와 허물까지도 깨끗하게 용서가 되고 씻기어집니다.
그러니 우리의 못된 죄와 허물은
이제 지나간 때로 족해야겠습니다.
그러니 과거의 못된 관성에 더 이상 끌려다니지 말고
과감하게 과거를 청산하라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이 말씀의 주인공이 누구겠습니까?
베드로입니다.
베드로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예수님의 맨 앞의 호위무사였습니다.
큰소리 떵떵 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라도 되면
국무총리라도 되려는 오해 아니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께서 세상의 죄인으로
십자가를 질질 끌고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갈 때에
가장 비겁했던 사람이 베드로였습니다.
요한복음 18장 25절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26절,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27절,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이랬던 베드로가
통곡하고
다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인정받았겠습니까?
오히려 이상히 여기고 비방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서
천지개벽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이 도대체 믿어주지를 않았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마찬가지 경우를 당했을 것입니다.
어제의 내가 아닌데.
개과천선 改過遷善 했는데도,
도대체 세상이 나를 믿어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베드로처럼 바울처럼 우직하게 사는 겁니다.
1093 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역시 세상 사람 부럽지 않네
하나님의 크신 은혜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2. 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이 세상의 권세자들 날 부러워해
성령 충만 받은 것을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3. 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역시 세상 사람 부럽지 않네
예수님의 신부 될 것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4. 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하늘나라 천군 천사 날 부러워해
영원토록 누릴 영화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5절입니다.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 하리라
6절, 이를 위하여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라
감사합니다.
묵상, 인애하신 주님, 세상이 사람 죽이는 일에 혈안입니다.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입니다.
정말 짐승만도 못한 세상입니다.
러시아 푸틴이 어디 인간이겠습니까?
영혼도 없는 짐승입니다.
인애하신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어제 우리 최연희 권사께서 하나님 품에 안기었습니다.
우리 인생 정말 들의 꽃처럼 금방 시들어 버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돈이 제일인 세상이지 않습니까?
은혜도 모르고
장로 목사라고 기도만 웅변이지 않습니까?
인애하신 주님, 누가 성도이고 누가 목사이고 누가 장로인지
구별도 없습니다.
구별된 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이런 심정으로 기도하며 예배를 드립니다.
주님 홀로 영광 받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도, 주님, 고난이 유익입니까?
고난을 통하여 사람이게 하옵소서,
고난을 통하여 성도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헌금, 주님, 들녘이 누렇게 익어 갑니다.
그러면 가라지와 곡식이 구별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로 구별된 성도의 생활 따라 예배를 드리고
구별하여 헌금을 드립니다.
주일, 주정, 감사, 십일조를 드립니다.
드린 손길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축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교통 하심이
예수를 믿어 고난이 유익이라 믿으며
예수님을 닮기를 원하는 우리 성도님들 머리 위에 그 가정 위에
그리고 고, 최연희 권사님 유가족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