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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과 나와 그의 아내
이 기 영
늦은 여름이었다.
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아침을 먹고 나자 바로 T잡지사 이층 사무실로 나가서 온종일 사무를 보고 있었다.
사무라고 해야 요즈음은 별로 바쁠 것이 없다. 이달도 벌써 중순이 되었으므로 이달 호 잡지는 이미 발간이 된 지가 십여 일이나 되었기 때문에 지방 독자의 개인 주문을 처리하고 몇 군데서 오는 통신을 회답하면 그만이었다.
하기는 내월 호의 원고를 다시 편집해야겠지만 그것도 벌써 ‘푸당’을 작정해서 집필자에게 원고를 부탁한 뒤이므로 앞으로 며칠 동안은 그것을 독촉만 하면 고만이었다.
그래서 함께 일 보는 동무―박군과 최군도 고향으로 이를테면 하기휴가를 얻어서 여행을 간 셈이고 소위 살림을 한다는 나만 애꿎이 붙들려서 집을 지키고 있는 판이었다.
날이 더워서 나다니기가 괴로워 그러는지 동리 사랑처럼 알고 날마다 놀러 오는 이군, 정군, 안군도 요새는 며칠 동안 오지 않았다.
나는 은근히 그들이 궁금하였다. 무슨 사고가 있어서 오지 않는지―? 그렇지 않으면 어디 서늘한 시외로 나가서 저희끼리만 잘 놀지 않는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도 끝으로 났다.
나는 이와 같은 갈피 없는 생각에 헤매고 졸음과 씨름을 하며 책장을 넘기는 동안에 오늘 해도 이럭저럭 저물고 말았다.
벽에 걸린 시계가 일곱 침을 친다. 서창으로 비치는 넘어가려는 해가 붉은 저녁놀에 싸여서 엷은 광선을 던지는데 어느덧 서늘한 저녁 바람이 창 안으로 불어온다. 이웃집 약방에서 라디오 소리가 들린다.
나는 인제는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책상 앞에 놓인 서류를 뒤적뒤적 치우기 시작하였다. 하기는 이즈음은 한산하고 별일이 없는 바에야 좀더 일찍 돌아가도 좋겠지만 내가 지금 우거(寓居)¹하고 있는 명색 살림집이라는 것은 문이 하나밖에 없는 단칸방이라 어떻게 답답하고 더운지 도무지 한낮에는 들어가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린애들까지 서넛이나 있고 보니 집이라고 들어가면 마치 불지옥에 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일이야 있든지 없든지 해가 어슬핏해야 집으로 돌아가는 터이었다.
나는 지금 막 돌아갈 차비를 차리려 하는데 별안간 탁상전화가 따르르 운다. 나는 전화를 받기 전에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이맘때에 전화를 걸 사람이 없을 터인데 누구일까?……
나는 전화통 앞으로 입을 갖다 대고 수화기를 들어서 귀에 대었다.
“네……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까 저쪽에서 이렇게 다시 묻는다.
“거기가 ○ ○ 잡지사지요……경구씨 계십니까?”
경구는 바로 나였다.
“네, 내가 그올시다. 누구십니까?”
나는 이렇게 대답할밖에…… 그랬더니 저편에서는 자기의 명을 통하기도 전에 무슨 까닭인지 한동안 웃음만 웃고 있다가
“허허…… 내가 누군지 알겠소?” 한다.
“내라니 누구야?”
나는 어리벙벙하니 따라 웃었다.
“허허…… 나를 몰라? 목소리를 들어도…… 허허.”
“몰라! 누구요?”
“허허…… 그렇게도 몰라?…… 대관절 혼저 있소? 여럿있소?”
“나 혼저 있어요. 누구?”
“그럼 말하리다. 백광이라면 알겠소?”
“누구? 백……누구?”
나는 안타깝게 채쳐 물었다.
“백광이…… 허허……”
“아니 백광이?”
나는 자기도 모르게 흥분된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래 백광이…… 허허…… 그동안 재미가 어떠시오?”
나는 비로소 그게 누구인 줄을 알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이게 웬일이오? 대관절!…….”
나는 한동안 말문이 콱 막히고 온몸이 찌르르하게 마치 감전이 된 것 같은 이상한 감촉을 느끼었다.
내가 이렇게 감격 해하는 것도 그리 무리는 아니었다.
왜 그러냐 하면 백광이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재작년 봄에 일어난 (中略) 의 ×모인 김 ○○ 이란 사람이요 그는 그 당시에 삼엄한 경계망을 돌파하고 멀리 해외로 탈출하였다는 것은 그때 신문 보도로도 있었고 나와 일반이 모두 그런 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돌연히 그가 이 땅에 나타나서 여기까지 전화를 건다는 것은 여간 이상하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기적이 아니면 안 되었다.
나는 그전부터 김군을 잘 알았다. 아니 그를 알기 전부터 나는 그가 다년간 해외에서 활동하였다는 이력을 들었더니만큼 그를 사귀게 된 뒤로는 나의 가장 경외하는 선배의 한 사람이었다.
그가 그러한 인물이더니만큼 그가 내게 전화한 것도 반드시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나는 직각적으로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런 생각은 나를 한편으로 우쭐한 마음을 나게 하면서도 다시 한편으로는 어쩐지 켕기는 생각이 들게도 하였다.
나는 우선 그가 지금 어디 있는가? 물어보았다. 그래도 나는 그가 시내에는 들어오지 않고 어느 시외에서 전화를 건 줄 알았는데 의외에도 그는 문안에 들어와 있음을 대담히 말하며 내가 용무를 묻기 전에 자기를 오늘 저녁에 꼭 찾아와달라고 지금 있는 번지를 알려 준다.
나는 그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우선 우정으로 반가워서도 만나볼 터인데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마는 그가 먼저 꼭 만나자는데야 못 한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부탁하는 대로 저녁에 만나기를 약속하였다,
“아홉 시까지…… 그럼 꼭 와야 해요. 안 오면 안 돼. 거기는…… ○○동 산기슭으로 올라오자면…… 알지?…… 그래……! 거기서 왼손 편으로 꺾여 들어가는…… 마루턱에…… 옳지 그래…… 거기에 서양 사람 회사의 ○○ 간판이 붙었소…… 알겠소?…… 옳지, 그 안으로 쑥 들어와요…… 그러면 왼손 편으로
정원을 들어서…… 외딴 채가 있지요. 거기 서양 개 한 마리를 사슬로 잡아맨…… 개가 짖을 테니 바로 그 앞으로 와서 나를 불어요…… 그러면 알겠지…… 하하.”
“어디 으슬으슬하고 무서워서 찾어가겠소…… 하하.”
“괜찮어, 개를 잡아매두었으니까!”
하고 나는 전화기를 놓았다. 나는 어쩐지 기분이 긴장되었다. 지금까지 나의 잔잔한 생활에 별안간 돌멩이를 던진 것처럼 파동을 일으켰다. 나는 그길로 바로 집을 향하였다. 여름밤의 아홉 시라면 저녁 먹기가 바쁘지 않은가. 그런데 시계는 벌써 일곱 시 반이 넘었다. 나는 집으로 줄달음질을 쳤다.
○○을 가자면 전차를 한 번 바꾸어 타야 되고 전차를 타러 가는 시간과 전차를 내려서 그 집까지 찾아가는 동안이 적어도 삼십 분은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저녁을 재촉해 먹고 숟갈을 놓기가 바쁘게 다시 뛰어나왔다.
나는 전차실까지 나오는 동안에 그를 만나보는 장면의 여러 갈래 감정을 미리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그가 무슨 일로 나를 만나자는지 만일 무슨 소중한 책임을 지운다면 어찌 하나 하는―은근히 겁이 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선 반가운 생각이 앞을 섰다.
한데 전차 속에서―전차가 그곳을 가는 종점까지 왔을 때·…… 또 전차를 내려서 다시 그곳을 찾아갈 때…… 그곳이 점점 가까워 올수록 나는 일종의 불안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나는 바른대로 말이지 무서운 생각이 났다. 심장이 높이 뛰었다. 만일 그를 만나러 갔다가 다 같이 붙들리면 어찌하나? 하는 못난 생각도 났다. 그래서 나는 서먹서먹하는 발길을 간신히 떼놓았다.
김군이 있는 집은 과연 어떤 서양 사람의 집이었다. 철망을 두르고 아카시아 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져서 녹음이 진 곳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집 서양 사람을 친한 것이 아니라 그 집 사무원 겸 통역으로 있는―김군이 상해에 있을 때부터 친한 친구이던 어떤 친구의 집에 잠시 몸을 피하고 있었다.
그 집이 바로 이 외딴 채라 한다.
나는 김군과 면대하자 우선 반가운 악수를 교환하고 의자에 마주 앉았다.
김군의 있는 방은 그리 크지 않은 다다미 육첩(六疊)짜리만 할까 말까 한데 방 안 세간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고 그의 소유물도 눈에 띄는 것이라고는 자색(紫色) 트렁크 한 개와 털담요뿐이었다. 그리고 테이블 한 개와 그 옆에 의자가 서너 개가 놓이고 테이블 위에는 탁상전화가 매여 있다. 석간신문이 한옆으로 놓였다.
“대관절 웬 일이오?”
나는 다시금 놀라운 인사를 하고 김군을 쳐다보았다. 김군은 흰 양복 리넨 바지에 셔츠 바람으로 있는데 그는 객고가 많아서 그런지 얼굴이 몹시 초췌해 보였다. 그러나 그리 크지 않은 몸집에 야무지게 생긴 얼굴 더구나 남의 심장까지 뚫고 보는 것 같은 날카로운 두 눈은 여전하였다. 어디 볕으로 돌아다녔는지 얼굴이 노동자처럼 시꺼멓게 걸었다.
“그래 언제 들어왔소?”
나의 다시 묻는 말에
“한 일주일 되지요.”
하고 그는 담배 한 개를 피워 문다. 그는 그의 귀인성 있는 입으로 빙그레 웃으며 연신 나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 마치 오래 그렸던 친구의 얼굴이 그동안에 얼마나 변했는가 엇보려는 것처럼.
나는 그에게 여러 가지 말을 묻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하는 일에 환계가 없는 사람이니만큼 그런 자세한 말을 묻기가 거북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저 어리빙빙하게 그동안 그의 지난 경과를 들어보았을 뿐이었다.
“네 무슨 부탁인가요?”
김군은 별안간 침착한 태도로 정중하게 말을 꺼낸다.
“동무도 아시다시피 내가 이렇게 파묻혀 있고 보니 어디 나다닐 자유가 있소? 그렇다고 볼일을 안 볼 수는 없는데 외부와 연락을 지어줄 이가 없어서…… 그래 동무가 좀 수고해주실 수 없는가 해서.”
“네……”
나는 뭐라고 거절할 수가 없어서 다만 듣기만 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그의 청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다만 친구의 정리라도 그가 위험한 처지에 있다면 구해야 할 터인데 그가 동지로 믿고 말하는 터에 이만한 소청에 수고를 아끼고 몸을 사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쾌히 승낙하고 말았다.
김군은 내가 이렇게 쾌락을 하니까 은근히 반가운 표정으로 웃음을 머금고
“그럼 자, 지금부터는 지나간 이야기나 할까요. 그러나 나보다도 우리 집에서 지난 소경력을 먼저 들어보시랴오. 참으로 훌륭한 소설 재료가 되지 않나.”
“어디 내가 소설을 쓸 줄 알어야지요. 하여간 들어봅시다.”
“잡지 장사가 소설도 써야 될걸 하하……”
하고 김군은 비로소 이야기를 꺼내었다.
“동무도 아시다시피 내가 그때 일조에 없어지고 보니 (中略) × ×˙ 를 놓고 아주 물샐틈없이 뒤는 판인데…… 지나간 일이지만 참으로 어마어마한 광경 이었소.”
“참 그때 신문지상으로 보도된 것만 보더라도 한참 소란하였지요…… 그게 바로 재작년 이월 중순이었는가?”
하고 나는 흥미있게 그의 말을 채쳤다.
“그렇지 아마…… 그러니 소위 우리 집안이 어떻게 되었겠소?”
나도 물론 비상한 일이 있을 줄만은 예측하였으나 그런 자세한 사정은 이번에 들어와서 비로소 들었지만.”
하고 그는 오히려 놀라운 듯이 눈을 크게 흡뜬다.
나는 김군의 집안 사정을 자세히는 몰라도 그가 몇 해 전에 지금 나 있는 잡지사에 간접으로 관계가 있었더니만큼 대강만은 짐작할 수가 있다.
사십이 불원한 그의 부인은 그때도 어린 아들과 딸 하나를 데리고 사글셋방에서 가난한 살림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 부인은 남편과 만난 지가 햇수로는 이십 년이 넘는다 해도 김군이 십여 년 전부터 운동자로 나선 뒤로는 그는 해외가 아니면 감옥이요 감옥이 아니면 다시 망명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그가 살림살이를 돌보지 않은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내외간 따뜻한 정이란 것도 사실상 사귈 기회가 없었다 한다. 몇 해 전에 김군이 출옥한 후 폐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을 때 그의 병을 구호하느라고 한 일 년 동거한 것이 아마 그 부인에게 있어서는 근년의 최근 기록이리라는 것을 나는 김군의 어떤 친구에게 들은 일이 과거에 있었다.
그런데 그는 재작년 봄에도 어디서 들어왔는지 모르게 들어와 가지고 그런 일을 하다가 발각이 되자 그는 다시 해외로 망명한 것이었다.
“물론 그러시겠지! 그래 어떻게 되었던가요!”
나는 김군의 말허두를 듣고 나자 이렇게 맞장구를 쳤다.
김군은 한 번 무슨 의미인지 씽끗! 웃고 나더니 말을 이어서
“이렇게 말하면 동무도 혹시 오해를 할는지 모르오마는 나는 아내 되는 사람이 비록 구식일망정 그 이야기를 듣고 감복하였소. 사실 신여성이라도 모다 그렇지는 못할 줄 아는데요…… 이것은 결코 내 여편 네 자랑이 아니라……”
“천만에·…… 나는 그전부터 부인께서 현철하시다는 말씀을 벌써 듣고 있는데요.”
나는 이렇게 그의 말에 동의는 하였으나 내심으로는 저 사람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굉장한 전제를 하는가 해서 다소 어색한 생각이 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내가 그때 그렇게 되자 집에는 날마다 밤마다 그들이 대들어서 종주먹을 대고 나의 거처를 염탐을 하는데 그렇게 하기를 장근 석 달 동안을 하였다는구려.”
“아니 저, 거기서?”
김군은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하며 두 눈을 휘둥그러니 뜬다.
“그런데 제일 질색할 노롯은 낮에 오는 것보다도 밤중에 별안간 대드는 거래(此間 九行略) 마치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정신이 아주 혼몽해져서 몹쓸 악몽을 꾼 것같이 늘어졌었대…….”
“아니 그럼 다른 데로 왜 못 가시고 있었던가요?”
나는 김군의 말을 듣고 나서 언뜻 나는 생각으로 이런 의문을 던졌다.
“어디로 가나요 갈 데라고는 친정밖에 없는데. 그러지 않어도 그리로 가면 괜찮을 줄 알고 갔더라오마는 거기도…….”
“아니 거기까지 와요?”
나는 그의 말이 떨어지기 전에 이렇게 물어보았다.
“허허 그러니까 말이지요. 그들이 우리 집 계통을 왜 모르겠소. 어디를 가든지 속일 수가 있어야지.”
“참 그렇겠군요. 하, 그건 참말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요.”
하고 나는 비로소 감격한 충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김군도 말을 할 적에는 흥분이 되어서 주먹을 쥐고 말소리에 힘을 주었다.
김군은 담배를 두어 모금 빨고 나서 마지막으로 재떨이에 썩 비벼 끄고 나서
“한데 또 한 가지 우스운 희비극(喜悲劇)이 있지요.”
하고 다시 빙그레 웃으며 나를 쳐다본다.
“네……무슨?”
“여편네가 그 후에 점점 살 수가 없어서 무슨 직업을 구하랴고 저 황금정에 있는 인사상담소(人事相談所)를 찾어갔더라나.”
“아! 그래서?”
“그래서 다행히 한 곳을 지시해주는데 진고개 어떤 일본 집에 어머니로 가라더래. 그리로 가면 먹고서 한 달에 칠팔 원 수입이 된다고 하니까 멍텅이가 조선 집보다 돈을 많이 준다는 바람에 아니 그리로 갔더라지 하하.”
“아? 멍텅이가 아니라도 그게야!”
“그게야가 아니라 들어봐요!”
김군은 별안간 내 무릎을 탁 치고 여전히 웃는다.
“그 집이 다른 사람의 집이 아니라 바로 그자의 집이더라니 우습지가 않소?”
“그자의 집이라니?”
나는 잠깐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 덩둘하다가
“아니 밤마다 왔다는 그자들 말이야?” 하였다.
“하하…… 옳지 그래. 하긴 처음에는 그런 줄 저런 줄 모르고서 가는 길로 바로 쓰레질을 하고 저녁을 짓노라니까 다 저녁때나 되어서 주인이 들어오는데 그때까지도 누구인지 몰랐다나. 그래 그날 밤은 무심코 그대로 자고 그 이튿날 아침에도 주인이 밥을 먹고 일찍이 나가는 바람에 잘 모르고 있었대. 그런데 그날은 주인이 전날보다 좀더 일찍이 들어오는데 자세히 보니까 어디서 똑 보던 사람 같더라지. 그래서 곰곰 생각해보고 생각해보다가 가만가만 그들 내외가 있는 문틈으로 자세히 본즉 언뜻 생각이 나는데 바로 그 사람이더라지.”
“하 ―— .”
“그때 어떻게 무색하고 분한 생각이 나던지 별안간 눈물이 핑 돌더래. 도모지 잠시를 있기가 싫더래. 그래 떨리는 몸을 간신히 진정해가지고 그 즉시로 안채집을 불러서 내가 지금 별안간 속앓이가 일어나서 몹시 아픈데 이 병은 속히 낫지 않는 고질이라고 꾀병을 했더니만 그럼 제˙바리라고 가랴가든 가라고 하더래. 그래서 바로 가려고 나서니까 밖주인이 기어코 돈 삼십 원을 주더라지…… 하하하……”
“하하하…….”
김군은 한참 동안을 웃고 나서
“그래 그것도 받고 싶지가 않은 것을 혹시 눈치나 채일까 봐 겁이 나서 고만 고개를 푹 수그리고 받어가지고 나와서는 그 집 대문 밖에서부터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똥줄이 빠지게 달어났다지 허허허.”
“허허…… 그거 원…… 그러니 얼마나 애달픈 생각이 나셨을까요!”
나는 웃음을 웃는 중에도 부지중 강개한 생각이 떠올라서 목구멍이 그득하였다.
“그만하면 한 편의 단편소설 재료가 되지 않겠소 허허.”
“글쎄요. 정말로 소설적인걸. 그럼 그 뒤에는 어떻게 지나셨던가요?”
나는 김군의 부인에게 흥미가 끌려서 그의 그 뒤 생활을 마저 듣고 싶었다.
“그 뒤에?…… 그 뒤에는 물론 생활에 쫓겨서 별별 짓을 다 한 모양이지요.”
김군은 별안간 처창한 빛을 지으며 말을 잇대어서
“동무도 아시다시피 내라는 사람이야 어디 집안 살림을 돌볼 여가가 있소. 그래 이녁 혼자 어린것들을 데리고 남의 집 셋방 구석으로 쪼들려 다니는 생활을 하자니 일정한 수입이 없는 이상에 안에서 벌이한다는 것이 오죽하겠소. 한껏 해야 바느질품을 팔든지 그렇지 않으면 안잠자기나 침모 생활인데 쿠런 데는 또 자식새끼들 때문에 들어갈 수가 없지. 그래서 일시는 행랑어멈으로 남의 집 더부살이를 살기도 하였다던가요.”
“하, 저런 비참한 일 보아…… 흐응!”
“그런데 그건 죽어도 오래 못 있겠더데. 신역이 고된 것보다도 되잖은 것들이 돈푼이나 있다고 수하 사람을 하대하는 것이 제일 치사스러워서…….”
“그렇겠지! 그런 것들이야 어디 사람을 제대로 볼 줄 아나. 봉건사상으로 그저 행랑어멈 이라면 의례히 종과 같이 부려먹는 동시에 반말지거리에 욕지거리에 여간 창피하지 않겠지요.”
“그래! 그래!”
김군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래서 그것도 고만두고 그 뒤로는 무엇을 했다던가?…… 옳지 과일 장수를 시작해보았드라나.”
“참 별별 고생을 다 하셨군요.”
나는 허구픈⁴ 웃음을 웃으며 부채질하던 손을 잠시 쉬이는 동시에 김군을 말끄러미 쳐다보았다.
“참 우습고도 기막힌 일이야. 사실 나도 동무가 아니면 창피해서도 이런 이야기를 못 하겠소만 우리끼리니까 흉허물이 없이 하는 말이오.”
“아, 그게야 그 다 이를 말인가요.”
“그래서―밑천 몇 푼을 장만해가지고 저 남대문 장안으로 가서 과실을 한 광주리를 받어 가지고 나와서는 길거리에 앉어 팔기도 하고 여염집으로 돌아다니며 팔기도 해봤는데 그것도 워낙 장사가 많으니까 도모지 잘 팔리지가 않더래…….”
“그렇겠지 그런 장사가 요새 좀 많어야지.”
“그래서 과일 장사는 떠엎고 다시 아니 화장품 장사를 시작했다던가요!”
김군은 별안간 무슨 생각이 났는지 하하 웃더니만
“동무 그렇다니 말이지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으니 들어보랴오.”
하고 나의 무릎을 아까와 같이 탁 친다.
“화장품 장사를 하는데 그것도 위약 수효가 많을 뿐 아니라 젊은 계집이 모양을 내고 다녀야 잘 팔린다는구려. 그런데 우리 여편네는 늙었을뿐더러 여관집이나 번화한 곳에는 혹시 나를 아는 사람을 만날까 봐서 여염집으로만 골러서 다녔다니 그 역시 무슨 벌이가 될 리가 있겠어요.”
“그렇지 그럼.”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어떻게 골수를 알어가지고 저 제사공장 같은 데로, 기숙사에 들어 있는 여직공들에게 화장품을 팔러 갔더라지!”
“아니 그런 공장에서 장사를 들일라구. 직공 심방도 사절을 한다던 데요.”
“그렇지만 휴업일 같은 때는 직공들이 놀지 않나요. 그러나 공장에서는 할 수 있는 대로 기숙생들은 노는 날이라도 안 내보내기를 위주하려니까 화장품 같은 것을 살 필요가 있다면 그런 장사를 들여보내서 사게 하는 것이겠지. 다른 나라의 대규모의 공장 같으면 물론 공장 안에도 각종 물건의 판매소가 있어서 그들의 삯전으로 번 돈을 다시 장삿속으로 뺏어 들이는 터이지만 조선과 같은 조고마한 공장에는 아즉 그런 설비가 없으니까 불가불 그들을 외출시키지 않으랴면 이런 수단을 쓰는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한두 번 드나들어서 문지기와 공장 감독에게 외교를 하게 되면 노는 날이 아니라도 점심참이라든가 일손을 뗄 참을 이용해 가지고서 그들에게 물건을 팔 수가 있다거든.¨
“그건 참 그렇겠구먼요! 옳아 그렇다!”
“그렇겠지요? 그래 우리 여편네도 그렇게 천을 텄다는데.”
“네? 어느 제사공장인 데요.”
나는 다시 이야기의 중심에 흥미를 끌리었다.
“응? 저 ×문밖 ○○제사에 장이라지 허허…… 한데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것이 별것이 아니라 그녀 직공들 공개 화장품을 파는 동시에 우연히 × × 터가 됐다는 게야 허허.”
“누구요?”
“마누라가…… 허허.”
나는 또다시 김군의 말 두미를 못 차려서 허둥지둥하며 그의 입을 쳐다보았다.
“내가 이번에 들어와서 여편네를 꼭 한 번 만나보았는데 그는 내가 먼저 이야기를 한 것과 같은―기간 지나간 이야기를 일일이 다 한 뒤에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나도 그동안에는 당신이 하는 일과 같은 일을 해보았소’ 하고 웃음의 말을 합디다. 그래서 무슨 일을 했느냐고 물으니까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화장품 장사를 했다 하며 그리는 중에 (晷)과 (晷)을 취해주었다는데 그것은 우리 여편네란 사람이 본래 거짓말을 않는 줄은 내가 잘 알 뿐 아니라 사실은 들어보니까 믿음직 하더군요.”
하고 김군은 또 한 번 씩 웃는다.
“그래?”
“원래 내 아내란 사람이 구식 생장이라 무식은 하지마는 나하고 지내는 동안에 소위 들은 풍월이 없지 않어서 다소간 상식이 있다고 볼 수는 있겠지. 그래서 무슨 철저한 이데올로기는 가지지 못했어도 내가 하는 일이라면 그른 일이라고는 보지 않을 만큼은 됐거든. 그런데 그 공장에를 드나드는 동안에 어떤 아는 집 딸의 눈에 들켜서…… 그것도 자기가 먼저 본 것이 아니라 그가 먼저 보았다는데, 그 애는 나도 대강 짐작하는 집 딸이지만 그 애가 좀 의식이 있던 모양이야.”
“옳지 그렇겠군!”
“그래서 그 애가 뒷구녕으로 무슨 계획을 꾸몄는지 몇 애들이 제 방으로 불러 앉히고 차차 심중을 떠보고 친절히 굴어 나중에는 그런 부탁을 하더라나 그래서…….”
“하하…… (略) 이 그럴듯한데.”
하고 나는 은근히 감심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와서 보니까 아내가 말하는 것이나 기성을 갖는 것이 전보다 좀 씩씩해 보이는 것 같데·…… 그전에는 어쩐지 절망적인 도모지 실심하니 생기가 없던데 허허…….” (中客)
나는 김군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부지중 고개가 숙여짐을 깨닫지 못하였다.
“시답잖은 이야기를 너무 지지하게 했군! 벌써 열 시를 치나.”
하고 김군은 이웃 방에서 치는 시계 소리를 듣고 나서 이렇게 중얼거린다.
“아니 천만에…… 그런 이야기거든 얼마든지 하구려.”
“밤이 늦었는데 고만 가실까?”
“무얼 한 삼십 분 더 이야기를 해도 좋겠지요. 동무가 고단하시지만 않다면!”
“아니 나는 관계없어.”
“그럼 동무의 그동안 지난 이야기를 다시 들어봅시다. 대관절 어디 가 계셨나요?”
“나요 이 안에 있었지요.”
하고 김군은 의미있는 웃음을 다시 웃는다.
“아니 이 안에라니요? 해외로 안 나가셨던가요?”
“일시는 나갔다가 작년에 다시 들어왔지요.”
“예?”
나는 다시금 놀랐다.
“나도 이 안에서 그동안 지난 이야기를 하자면 내 아내만 못지않게 갖은 고생도 했고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경우도 많이 당했지요. 그것을 장황해서 지금 다 말할 수가 없지만은.”
“대관절 무엇을 하……”
김군은 좀 말하기가 거북한 눈치로 대강 운만 떼서 말하는 모양이었다.
“일시는 구제(救濟) 공사 같은 데서 인부들과 섞여서 모군도 맡어보고 큰 공사장에서 노동자로 뽑혀보기도 하고 또 광산 속으로 들어가서 곡괭이를 둘러메어보기도 하고 닥치는 노동도 해보고·…… 내 말이 거짓말인가 자 이 손을 보구려.”
하더니 그는 별안간 내 앞으로 두 손을 내미는데 과연 그의 손바닥에는 단단하게 못이 박혀 있다.
그러나 나는 김군이 다만 먹기 위하여서 그런 노동을 한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이태 동안이나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돌아다녔는지 그것도 나에게 대해서는 그믐밤과 같은 깜깜절벽 이었다. 그러니만큼 나는 그에게 더 미주알고주알 캐기를 사양하고 말았다.
김군도 나의 눈치를 채었던지 이야기를 고만 끊었다.
나는 김군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한동안 침울한 기분이 떠돌았다. 그것은 나의 비겁하고 용렬한 자기비판을 속침으로 한 까닭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한동안 침묵이 계속되었다. 그동안에 김군은 담배를 피우며 오늘 석간신문을 들여다보고 있고 나는 멀거니 건넌 측 바람벽을 넋 놓고 쳐다보고 있었다.
“자, 그럼 오늘 저녁은 고만 가겠소. 무슨 부탁할 것이 없소?”
나는 주춤주춤하다가 모자를 집어들고 일어서려 하였다.
“왜 없어요 그럼 잠깐만…….”
김군은 얼른 일어나서 트렁크를 열더니만 편지지를 꺼내서 무엇을 한참 쓰고 있었다.
그는 쓰기를 다 하자 봉투 한 장과 지형을 그린 노정기를 내보이며 몇 마디의 주의를 주었다.
나는 그의 부탁을 자세히 듣고 나서 그 봉투를 집어서 조끼 주머니 속에 간수한 후에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모처럼 만났는데 너무 섭섭한걸. 원, 여기서는 무엇을 사 오기가 곤란해서…….”
김군은 나하고 얼음 한 그릇도 나누지 못한 것을 서운해하는 모양으로 인사를 한다. 사실 나도 그냥 헤지기가 좀 섭섭하였지만 그를 데리고 나올 수가 없는 바에야 어찌할 수가 없었다.
“아니 단야⁵에 먹긴 무엇을 먹나요. 자 그럼.”
하고 나는 김군의 악수한 손을 놓자 그길로 발길을 돌리었다.
나는 그 집 울타리를 다 나오기까지 공연히 머리끝이 쭈삣쭈삣하였다.
뒤에서 누가 나를 붙잡지나 않는가? 하는 생각이 나서 몇 번이나 돌아다보았는지 모른다. 그렇더니만 그 집 울 밖에까지 무사하게 나와서 큰길 거리 위로 발을 떼자 나는 별안간 딴생각이 나서 기운이 솟았다.
‘나도 이런 일을 하고 있다. 자, 내 품안에 무엇이 들었는가? 보아라……’
이러한 자만한 생각이 별안간 내솟았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자 속으로 자기의 용렬한 생각을 꾸짖었다. 밤거리에는 전등불이 희미하고 하늘은 구름이 덮여서 나직이 떴다. 틉틉하고⁶ 무거운 공기는 마치 진흙 바닥 속처럼 흐늘흐늘하게 얼굴에 부딪힌다.
소나기 한줄금을 했으면 사람들의 정신이 바짝 날 것 같다.
나는 그길로 전차를 타고 오던 길을 제대로 집으로 직행하였다.
“여보 어제 저녁에는 어디를 갔다가 늦게 돌아왔소?”
그 이튿날 아침이었다. 아내는 내가 채 잠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이런 말을 던진다.
“왜 그래?”
나는 아내가 입을 뾰족하게 해가지고 퉁망스럽게 묻는 말에 나 역시 퉁망스럽게 대답하였다.
“당신 나간 뒤에 집세를 받으러 왔습디다. 사람이 창피해서 어디 살겠소. 그까지로 살림을 할려면 차라리 고만두든지 할 일이지 이건 하루 한 날 아니고 그 성화를 누가 받는담!”
하고 아내는 바가지를 긁기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저것이 또 앙짜⁷를 부리는구나!’ 나는 속침으로 생각하면서
“집 세를 받으러 왔어? 그래 뭐라고 했소?”
“뭘 뭐라고 해. 주인이 없다고 했지!”
아내는 여전히 뾰로통해가지고 톡 쏘는 말이었다.
“왜 이달 그믐 때까지 참어달라고 하지 않고…… 돈이 그믐 때라야 생길 것 같은데…….”
나는 이렇게 말하면서 집안사람에 미안한 생각이 나서 머리를 긁적긁적 하고 있었다.
“그믐에는 무슨 수가 생기나? 밤낮 밀기는 잘하지.”
“밀기는 누가 일부러 미는 게요? 사정이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
나도 자연 어성이 높아지며 아내를 흘겨보았다.
“난 몰라. 그런 대답은 당신이 하구려. 왜 그런 창피한 대답은 똑 여편네만 내세우려 들어 당신이 좀 하지 못하고…… 그러지 않아도 헐벗고 못 먹으며 웬수의 자식들에게까지 짓뜯기는데!”
“아니 누구는 잘 먹고 이녁 혼자만 못 먹이던가? 왜 또 식전 아침부터 이 모양이야?”
나도 부지중 역증이 나서 부르짖었다.
“뭬 이 모양이야. 그래도 당신은 나가서 잘 돌아다니고 잘 얻어 먹나 봅디다. 그러면서 무엇을 잘했다고 기성이오? 서울 장안에 이놈의 집같이 가난한 집이 어디 있거디! 어이구 허구한 날 아니고 이가 탁탁 갈리고 진저리가 나서 못살겠지…… 둘째가라면 설워할 만한 가난뱅이 생활이 그래 우리 집밖에 또 어디 있을까……”
아내는 체머리를 흔들며 입에서는 게거품을 북적북적하였다. 또 지랄이 나왔다.
“아니 가난은 우리 집뿐이야? 그리고 지금 세상에서 가난한 것을 당신은 무슨 죄로 아오?”
나는 언제나 내외 싸움이 날 때마다 내세우는 이런 말을 또 하였다.
“그럼 죄가 아니고 무엇이야. 서울 장안에서 행랑살이를 하는 사람도 우리보다는 모다 잘살고 있습디다. 그래도 조석은 굶을망정 제철을 찾어서 나들이옷은 다 해 입고 저 할 노릇은 다 하고 있습디다…… 그런데 당신은 하는 것이 무엇이오? 계집자식 잘 멕이고 잘 입히요 이건 그렇지 않으면 오막살이라도 제 집 한 칸을 장만하였소. 이건 이건…… 자식새끼를 남의 집 셋방으로 끌고 다니며 그것도 일 년에 열두 번씩 이사를 시키는 주제에 그래도 무엇을 잘했다고 큰소리를 어디로 하오? 당신도 염치가 있소? 없소?…….”
“아니 무엇이 어째?…… 에에라 네가 수다하기도 하다.”
나는 부지중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쥐었다.
“무엇이 수다해. 그러면 밤낮 하는 일이 무에야? 제 집안 식구 깜냥도 못 하면서도 되지않게 일은 무슨 일이야 개방구같이…….”
“예끼, 망할 년 같으니! 무엇이 어째?”
나는 더 참을 수가 없어서 주먹 쥔 주먹으로 아내의 뿌루퉁 볼퉁이를 쥐어박으며 대들었다.
그러니까 아내의 앙살⁹하는 소리 어린애들의 덩달아 우는 소리에 온 집 안은 별안간 악머구리 끓듯¹⁰ 하였다.
나는 남새¹¹가 부끄러워서 고만 그길로 밖으로 뛰어나왔다. 벌써 이웃집에서는 싸움 구경을 하러 온 집안 식구들이 있는 대로 모여들었다. 더구나 하절이므로 그들은 참으로 우스운 구경이 단 것처럼 머리를 싸고 대들며 끼리끼리 수군거리고 있었다.
나는 아내가 미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무식하다 할지라도 나하고 결혼 생활을 한 지가 벌써 근 십 년이나 되고 보니 그는 웬만치 나를 이해해야 될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는 여전히 나를 모욕하고 우습게 알고 있었다.
나는 분한 생각으로 하면 그를 당장에 이혼하고 나의 생활을 자유롭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린 자식들이 서넛이나 있고 보니 나로 하여금 좀처럼 그런 용단을 내게 하지는 못하게 하였다.
그런데 그것은 나의 혼자 생각만은 아니었다. 아내도 툭하면―나와 싸움을 할 때는 그런 소리를 하였다.
“웬수의 자식새끼만 없어보지 어느 미친년이 열첫거데 이런 고생을 하고 있을까. 이럭저럭 한세상 살기는 일반인데 기왕이면 남과 같이 잘 먹고 잘살 도리나 하다 죽지…… 이 원수놈의 씨알 머리야! 어서 죽어라 죽어라.”
하고 그는 지금 세 살 먹은 아들의 볼기짝을 사정없이 두드리며 사설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이런 생각을 하자 아내가 눈살을 꼬부랑해가지고 녹살을 떠는 것이 두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은 나로 하여금 생각의 실마리를 돌려서 김군의 부인은 연상케 하였다.
‘아! 나의 아내도 김군의 부인과 같었으면 나는 얼마나 행복을 느낄 것인가?’
하는 부러운 생각을 나게 하였다.
“과연 김군이 일꾼이라면 그의 부인은 또한 그 일꾼의 아내 되기가 부끄럽지 않겠다. 그야말로 동지가 아닌가?”
나는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사실 그들 부부를 경복하였다. 그중에도 김군의 부인에게 경복하였다. 나의 이런 마음은―어찌해서 다 같은 구식 부인으로서 한 사람은 김군의 부인 같은 진보적 부인이 되는데 나의 아내 같은 사람은 한대중으로 망골이 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의 생각이 떠올랐다.
그 순간에―나의 머릿속을 번개처럼 긋고 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나의 아내만을 공박할 것이냐? 함이었다. 그럼 너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더냐 하는 질문에 나는 사실로 대답할 것이 없었다.
나는 아내를 김군의 부인처럼 되지 못한 것을 한탄하였지만 나는 또한 사실로 김군의 부인만큼 그를 실천적으로 교양을 시키지 못하였다. 아니 그것 나의 아내라는 것보다도 우선 내 자신부터 김군의 부인만큼 수양을 못 한 터이었다. 그러면 첫째로 저부터도 못 한 것을 더구나 아내에게 요구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모순이 아니면 안 되었다.
나는 허구픈 생각이 나서 나중에는 제풀로 허허하고 웃었다. 나는 배고픈 생각도 없이 아침도 안 먹고 온종일 혼자 돌아다녔다.
그동안에 나는 점도록¹² 내 자신을 채찍 질해보았다.
나는 참으로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북받치고 이지(理智)의 칼날에 살점을 에이는 것 같아서 마침내 북악산 바위 위에 올라앉아서 끝없는 묵상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과연 말로나 글자로만 떠드는 것이 무슨 소용 있느냐? 실천이 없이 떠드는 것이다. 더구나 계급적으로 일하는 마당에서 부도수형 (不渡手形)¹³ 같은 빈말이 무슨 소용 있더냐? 그렇다면 나는 조금도 아내를 탓할 것이 없겠고 도리어 그의 모욕을 달게 받어야 할 것이 아니냐고…….’
나는 부지중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것은 절망의 눈물은 아니었다. 나는 계급적 양심의 거울에 비추어서 나의 과거의 생활을 청산한 끝에 나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사분¹⁴의 눈물이 아니라 ‘공분’¹⁵의 눈물이었다.
과연 나의 과거의 생활은 너무도 무의미하고 지지한 생활이 아니었던가? 개인적으로는 가족의 생활도 보장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일하는 것도 없이 마치 브로커나 룸펜 같은 생활을 하여 계급적 중간에서 뜨고 있었다. 물거품 같은 허튼소리를 방송하며 고무풍선처럼 허공에서 이리 밀 리고 저리 밀리고 하였다.
흐흐…… 그러면 무엇이 프롤레타리아냐? 주제넘게 계급 운동을 할 건덕지가 무엇이냐? 아내의 말마따나 아니꼽게 밤낮 일한다는 것이 무엇이더냐? 그까지로 시시한 일을 할 테면 차라리 고만두든지 밥 먹을 일이나 하는 것이 낫지 않으냐고. 마치 지금 하는 살림살이와 같은 지지한 살림을 하려거든 차라리 진작 떠엎고 마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말과 마찬가지로.
나는 주먹을 쥐고 입을 악물었다.
나는 마침내 최후의 결심을 하고 그 자리를 일어섰다.
늦은 여름철은 저녁 때가 되니까 제법 서늘한 기운이 돌았다.
남산의 솔밭과 그 너머로 멀리 뵈는 광주 남한산성의 윤곽이 뜨거운 태양열에 녹을 것같이 주저앉았다.
나는 눈이 부시는 것을 억지로 참고 정면으로 해를 쳐다보았다.
나는 무엇보다도 ‘열’ 이 필요하였다.
나는 그길로 내려오는 길에 어제 저녁에 김군이 부탁한 편지 몇 번 주저하고 있던 것을 전해주러 나섰다.
나는 다시금 부끄러운 생각이 났다.
명색이 사내로서 다소 의식이 있다는 사람으로 구식 부인의 김군 부인만치도 역할을 못 한다면 그야말로 낯이 뜨거운 일이다. 그것은 아무리 내가 반죽과 같은 이론으로 떡도 만들고 국수도 만들어 아니라고 변명을 하고 나의 생활에 합리화를 시키려 해도 이와 같은 엄청난 사실 밑에는 실천적 행동 밑에서도 아무리 해도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뒤로는 집에 들어가서도 아무 말 하지 않고 나 혼자 맡은 일을 정진하고 있었다.
-끝-
2016년 6월 21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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