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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바이오모프의 나라
생물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을까? 다윈의 답은 우연히 생겨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단순한 원시 형태에서 생물이 시작해서 점진적으로 한발씩 한발씩 변화하였다는 것이다.
이 장의 목적은 근본적으로 무작위적이지 않은 과정인 ‘누적적인 자연선택’의 힘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자갈이 깔린 해변 : 파도와 자갈이 자동적으로 질서를 만들어 내는 간단한 체계
ü 비록 사소한 것이지만 무질서로부터 질서가 나왔으며, 이 과정에는 어떠한 마음도 개입하지 않았다.
구멍
태양계
단순한 질서를 만들어 내는 ‘체’는 그 자체만으로 생물에서 관찰할 수 있는 거대한 질서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헤모글로빈 분자 : 아미노산들로 이루어진 4개의 사슬이 함께 모여 만들어짐. 사슬 하나는 아미노산 146개로 이루어져 있음. 생물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아미노산은 20개. 물건 20개로 146개의 고리가 있는 사슬을 만드는 경우의 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헤모글로빈의 수는 1 뒤에 0을 190개 붙인 것이다! 헤모글로빈이 운에 따라 만들어지길 바랄 때 필요한 행운이 바로 이 수만큼이다. 그리고 헤모글로빈은 생물의 복잡성을 고려할 때 단지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하게 걸러내는 것이나 그것만 가지고는 도저히 생물의 복잡성에 근접할 수 없다. 걸러냄은 생물이 가지고 있는 질서를 만들어 내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단순한 걸러냄 작용들은 모두 ‘1단계’ 선택에 속하는 예들이다. 반면 생물의 탄생은 ‘누적적인’ 선택의 결과이다.
1단계 선택에서는 선택되거나 따로 분류되는 것은 그것이 자갈이든 아니면 다른 것이든 한 번에 전체가 선택되거나 따로 분류된다. 반면 누적적인 선택에서는 그것들이 ‘새끼를 친다.’ 어떤 방법을 통해 첫 번째 거름 작용의 결과가 두 번째로 넘어가고 그 결과는 그 다음으로, 또 그 결과는 그 다음으로 하는 식으로 계속 넘어간다. 선택되고 분류된 것들은 연속되는 ‘여러 세대’에 걸쳐 다시 선택되고 분류된다. 한 세대에서 선택된 최종 산물은 다음 세대 선택의 출발점이 되고 그러한 과정이 여러 세대에 걸쳐 반복되는 것이다.
원숭이가 아무렇게나 타자기를 두들겨서 셰익스피어의 ‘Methinks it is like a weasel(내가 보기에는 그것이 족제비와 같다)’라는 짧은 문장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가정하자.
확률 : (1/27)28, 1 x 1040 분의 1 에 가까운 수
누적적인 선택의 경우는? 43세대, 41세대 만에 문장을 만들어 내었다.
이런 종류의 일에서 컴퓨터는 원숭이보다 약간 빠르지만 그 차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누적적인 선택에 따라 걸린 시간과, 같은 컴퓨터를 같은 속도로 작동시켜 1단계 선택이라는 다른 과정을 통해 원하는 문장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의 차이다. 1단계 선택의 과정을 통하면 대략 1030년이 걸린다. 이것은 우주 나이의 1018배이다. 원숭이 또는 아무렇게나 글자를 치도록 프로그램된 컴퓨터가 원하는 문장을 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우주의 나이와 비교하면 우주의 나이는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수이다.
이렇듯 (비록 작기는 하지만 매 번의 개선이 미래를 건설하는 기초가 되는) 누적적인 선택과 (매번 전혀 새로운 시도를 하는) 1단계 선택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만약 1단계 선택에 의존해야 했다면 진화는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눈먼 힘이 누적적인 선택의 필요조건을 충족시켜 주었다면 진화 과정은 실현 가능한 것이다. 그것이 실제로 바로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은 그러한 과정이 가장 최근에 낳은 가장 기이하고 놀라운 결과물이다.
다윈의 조리법에서 확률은 별볼일 없는 양념이다. 반면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절대로 무작위적이지 않은, 누적적인 선택이다.
선택적인 ‘번식’을 하는 각각의 세대에서 돌연변이 ‘자손’ 문장의 선택 여부는 ‘먼 미래의 이상적인’ 목표, 즉 ‘METHINKS IT IS LIKE A WEASEL’ 이라는 문장과 얼마나 닮았는가 하는 기준에 따라 판단되었다.
생물은 그렇지 않다. 진화에는 장기적인 목표 따위는 없다. 먼 미래의 목표, 선택의 기준이 될 궁극적인 완벽함 따위는 없다. 진화의 궁극적인 목표가 우리 인간이라는 믿음은 터무니없는 인간 허영심의 산물에 불과하다. 실제 상황에서 선택의 기준은 항상 단기적인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개체의 생존이거나 아니면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성공적인 번식이다. 수백만 년이 흐른 뒤에 뒤돌아보았을 때 그 과정이 어떤 머나먼 목표를 향해 조금씩 앞으로 나간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은 언제나 단기간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여러 세대에 걸친 우연적인 결과이다. ‘시계공’, 즉 누적적인 자연선택은 미래를 알지 못하며 장기적인 목표 따위는 갖고 있지 않다.
실제 자연에서 개개의 동물들의 형태는 배 발생을 통해 만들어진다. 진화가 일어나는 것은 세대가 거듭되면서 배 발생 시에 약간씩 변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이는 발생을 조절하는 유전자의 변화(돌연변이. 여기서 말하는 돌연변이는 무작위적이고 작은 변화이다.)에서 비롯된다.
동물의 유전자들은 몸 전체의 청사진, 즉 전체 계획이 결코 아니다. 유전자들은 청사진보다는 조리법에 가깝다. 게다가 발생 중인 배 전체가 아니라 각각의 세포, 또는 분열 중인 세포들의 국부적인 집합들이 이 조리법을 따른다. 배 그리고 나중의 성체가 전체적인 큰 형태를 갖는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전체적인 큰 형태는 작고 국부적인 세포들이 미치는 효과들이 모여 이루어졌으며, 이 국부적인 효과들은 기본적으로 두 갈래 가지 뻗기, 즉 세포가 두 개의 딸세포로 분열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유전자들이 궁극적으로 성체의 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이 국부적인 사건들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유전자들은 단백질 합성이라는 과정을 통해, 발생 중인 배의 성장 규칙으로 번역되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유전학자들은 대개 유전자들이 어떻게 배 발생에 효과를 발휘하는지 알지 못한다. 더군다나 동물의 완전한 유전 형식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하나의 유전자가 변한 것이라고 알려진 2개의 성체를 비교함으로써 그 유전자가 나타내는 효과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유전자들의 효과는 각각의 단순한 합보다 더 복잡한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들다.
바이오모프(biomorph, 생물 모양을 나타낸 장식적 형태) : 데스먼드 모리스가 자신의 초현실주의적 그림 속에 있는 어렴풋이 동물의 형태를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
신체는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지 않는다. 전해지는 것은 유전자이다. 유전자들은 그들이 자리 잡고 있는 신체의 배 발생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 다음 같은 유전자들이 다음 세대로 전해지기도 하고 전해지지 않기도 한다. 유전자의 성질은 그들이 자리 잡은 신체의 발생 과정에 참여했는가 하지 않았는가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신체의 성공 여부에 따라 다음 세대로 전해질 가능성이 영향을 받는다. 번식이 발생을 통해서 유전자의 값을 다음 세대로 전하며 또한 발생 과정 동안 성장 규칙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제외하면 두 과정은 서로 독립되어 있다. 발생은 절대로 유전자 값을 번식에 되돌려 주지 않는다.
번식은 돌연변이가 일어날 확률과 함께 유전자들을 다음 세대로 물려준다. 발생은 번식을 통해 주어진 유전자들을 받아서 그림을 그리는 동작으로 번역한 다음 컴퓨터 화면상에 신체의 그림을 나타낸다.
진화는 기본적으로 번식의 끝없는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세대에서 번식은 앞 세대로부터 유전자들을 받아 무작위적이며 조그만 실수인 돌연변이와 함께 다음 세대로 물려준다. 돌연변이는 무작위적으로 선택된 하나의 유전자가 원래 가지고 있던 값에 단순히 +1 또는 -1을 더하는 것이다. 이 말은 세대가 거듭됨에 따라 한 번에 하나씩 작은 변화들이 쌓이게 되고 결국 유전자 변이의 총량이 원래 조상과 비교하여 엄청나게 커질 수 있다는 말이다. 비록 돌연변이가 무작위적이기는 하지만, 세대가 거듭됨에 따라 축적되는 변화는 무작위적이지 않다. 한 세대의 자손은 무작위적인 방향으로 부모와 달라진다. 그러나 그 자손들 중 어느 것이 선택되어 다음 세대로 이어질 것인지는 무작위적이지 않다.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이 도입될 부분이 바로 이곳이다. 선택의 기준은 유전자들 자체가 아니라 유전자들이 발생을 통해 영향을 미친 신체의 형태다.
성공의 기준은 실제 자연선택에서 사용되는 생존이라는 직접적인 기준이 아니다. 실제 자연선택에서 어떤 신체가 살아남는 행운을 얻었다면 그 유전자는 자동적으로 살아남게 된다. 왜냐하면 신체 속에 유전자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살아남는 유전자는 자연히 신체가 생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자질들을 제공하는 유전자인 경향이 있다.
모든 동물의 유전자를 해독할 수 있는 특정한 유전자 형식을 선택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그러나 자연선택은 유전자를 직접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들이 신체에 미친 효과, 학술적인 용어로 ‘표현형에 미치는 효과’를 선택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암공작이 수공작을 선택할 때처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자연은 선택을 하기 위해 뭔가를 복잡하게 따져 보거나 계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연선택은 단도직입적이고 명확하며 단순하다. 자연선택은 사신(死神)이다. 물론 죽음을 면하고 살아남는 이유들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자연선택이 동물과 식물들을 엄청나게 복잡하게 만들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죽음 자체는 매우 조잡하고 단순하다. 그리고 자연 상태에서 선택적인 죽음은 전적으로 표현형을, 그래서 거기 담긴 유전자들을 선택한다.
컴퓨터 프로그램 상의 바이오모프 나라에 존재하는 각각은 항상 어떤 수학적인 공간에서 자기 고유의 위치에 머물러 있다. 특정한 바이오모프를 발견하는 일이 극히 어렵다. 왜냐하면 바이오모프의 나라가 무지무지하게 크고 거기에 존재하는 바이오모프의 숫자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유전자 공간)
모든 진화의 역사는 유전자 공간을 통과하는 특정한 경로 또는 궤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론적으로 도약이 보상을 더 빨리, 단 한번에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확률에 기대해야 하기 때문에, 가능한 유일한 방법은 단계마다 하나하나씩 성공을 쌓아 가는 것이다.
진화의 목표는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부모가 된 동물은 적어도 다 자랄 때까지 살아남을 정도의 좋은 자질을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 부모가 낳은 돌연변이 자식은 부모보다 더 잘 살아남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식에게 일어난 돌연변이가 매우 커서 유전자 공간에서 부모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 갔다면, 부모보다 더 좋게 될 가능성은 어떨까? 답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는 그대로이다. 만약 돌연변이가 매우 큰 것이라면 그 도약의 착지점이 될 수 있는 바이오모프의 수는 천문학적이다. 그리고 죽어 있는 방법의 수는 살아 있는 방법의 수보다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유전자 공간에서 아무렇게나 크게 도약한 결과가 죽음으로 끝날 확률은 매우 높다. 심지어 유전자적 공간에서 아무렇게나 작게 건너뛴 것이 죽음으로 끝날 확률도 꽤 높다. 그러나 도약하는 거리가 작으면 작을수록 그 결과 죽음으로 이어질 확률은 줄어들고, 오히려 개선이 될 확률이 커진다.
제4장 진화의 갈림길
① 사람의 눈이 전혀 눈이 아닌 것에서 시작해 여러 단계를 거치지 않고 단번에 발생할 수 있는가?
② 사람의 눈이 그것과는 약간 다른, 우리가 편의상 X 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떤 것에서 바로 발생할 수 있는가?
③ 지금의 인류가 갖고 있는 눈과 결코 눈이라고 볼 수 없는 상태의 어떤 것을 연결하는 연속적인 X의 계열이 있는가?
④ 결코 눈이 아닌 것과 의심의 여지가 없는 완전한 사람의 눈을 연결하는 가상의 X들을 가정할 때, 그 각각의 X들은 모두 바로 전 단계의 것에서부터 무작위적인 돌연변이를 거쳐 만들어질 수 있는가 ?
⑤ 사람의 눈과 결코 눈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을 연결하는 X의 계열에 있는 각각의 X들은 모두가 그것을 지닌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 이로운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가?
1982년에 출판된 프랜시스 히칭의 ‘기린의 목, 다윈은 어디서부터 잘못 생각했나’
눈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최소한 다음의 조건이 완벽하게 갖추어져야 한다. … 눈에 관한 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제 기능을 발휘하던가 아니면 전혀 기능하지 못하든가 둘 중 하나다. 따라서 눈이 어떻게 다윈의 이론처럼 느리고 꾸준하게 무한한 개선 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진화할 수 있었겠는가? … 보는 능력이 없는 눈이 개체가 생존하는 데 무슨 가치가 있을까?
5퍼센트의 눈이란 것이 어떤 도움이 될까?
의태 : 동물들이 의식적으로 다른 어떤 종을 닮으려 한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자연선택이 다른 종과 혼동되는 어떤 동물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
의태가 진화 초기에는 자연선택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리처드 골드슈미트
우리는 여기서 그 닮은 정도가 어느 만큼이어야 비로소 자연선택의 가치를 갖게 되는지 질문해 봐야 한다.
포식자들은 곤충이 갖고 있는 단지 한가지 제한된 특징만을 파악할 것이다.
포식자의 시각이 어떤 조건하에서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조건이 바뀌면 형편없는 것이 되고 만다.
밝기, 포식자와의 거리, 망막 중심부로부터 영상이 맺힌 지점까지의 거리, 그 밖의 유사한 변수들에서 중요한 점은 그것들이 모두 연속 변수라는 것이다. 그것들은 완전히 보이지 않는 극단에서부터 완전히 보이는 극단까지 변화한다. 그러한 연속 변수가 연속적이고 점진적인 진화를 추동한다.
골드슈미트가 진화가 작은 계단을 하나씩 밟아 올라가는 식이 아니라 단번에 몇 개를 뛰어 올라가는 식으로 일어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빛을 감지하는 세포들이 편평한 면에 배열된 것에서부터, 얇은 접시 모양으로 배열된 것 그리고 바닥이 깊은 컵 모양으로 배열된 것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인 단계가 있다고 할 때, 각 단계는 작든 크든 그 전 단계보다는 광학적으로 개선된 것이다. (아주 깊게 만들면 바늘구멍 사진기가 된다.)
바늘 구멍 사진기는 ‘뚜렷한 영상’을 만든다. 구멍이 작을수록 영상은 더 선명해진다.(그렇지만 어두워진다.) 구멍이 크면 영상은 밝아진다.(그러나 흐려진다.) - 앵무조개
폭탄먼지벌레는 적을 만나면 과산화수소와 하이드로퀴논이 섞인 치명적인 혼합물을 뽑아낸다. 이 두가지 물질이 혼합되면 폭발한다. … 복잡하고 미묘한 균형을 이루며 고도로 체계화된 이러한 메커니즘이 단순하게 단계적으로 발달했다는 생물학적 설명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화학적 평형을 약간이라도 흐트러뜨리면 그 결과는 즉각적으로 폭탄먼지벌레라는 종의 멸망으로 귀결될 것이다.
폭탄먼지벌레가 적에게 화상을 입힐 정도로 뜨거운 과산화수소와 하이드로퀴논의 혼합물을 뿜어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산화수소와 하이드로퀴논은 촉매가 첨가되지 않는 한 반응하지 않는다. 폭탄먼지벌레가 하는 일은 혼합물에 촉매를 첨가하는 일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이 진화하는 초기 단계에서 과산화수소와 다양한 종류의 퀴논들은 모두 생체화학 반응에서 다른 용도로 사용되던 것이었다. 폭탄먼지벌레의 조상은 이미 존재하는 화합물을 방어 무기라는 다른 용도로 사용한 것이다. 진화는 가끔 이런 식으로 일어난다.
절반의 허파는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자연선택의 결과 그러한 비정상적인 허파를 가진 생물은 틀림없이 도태될 것이다.
물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중요한 점은, 그 지속 시간이 0에서부터 시작하는 연속 변수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물속에서 살고 물속에서 호흡하지만, 가끔 가뭄을 만나 말라가는 웅덩이를 떠나 다른 웅덩이를 찾아가기 위해 땅으로 올라오는 모험을 하는 물고기가 있었다면, 그 물고기는 절반의 허파뿐 아니라 100분의 1의 허파로부터도 큰 도움을 얻었을 것이다.
절반의 날개는 무슨 소용이 있을까?
원시 형태의 날개가 추락하는 것을 방지하는 기능을 한다면 ‘특정한 크기 이하의 날개는 전혀 소용이 없다.’라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다.
종의 기원에서 다윈은 이렇게 말했다.
‘작은 개조가 수없이 거듭되는 것으로도 결코 만들어질 수 없는 어떤 복잡한 기관이 있다는 것이 증명이 된다면 나의 이론은 붕괴될 것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팬더의 엄지’에서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로서는 완벽한 형태를 갖춘 기관보다는 불완전한 기관이 더 강력하다고 말했다.
경골어류인 넙치와 가자미의 비틀린 두개골은 그들의 조상, 즉 출발점이 잘못 선정되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그렇지만 진화는 결코 깨끗한 제도지 위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진화는 이미 무언가 있는 데서 출발한다.
인간의 망막
시세포가 신경 섬유의 뒤로 연결되어 있고 이 신경이 빛을 먼저 받는다.
눈의 기원이 되는 기관이 무엇이든 간에 거기서 출발하여 망막의 방향을 바른쪽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경로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가상의 경로가 실제의 중간 생물의 몸에서 현실로 되었을 때, 그것은 불리한 것임이 판명될 것이다. 단지 일시적으로 불리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진화를 방해하기에는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당장의 생존과 번식이다.
일단 어떤 설계가 진화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훌륭한 것이라면 똑 같은 설계 원칙은 동물계의 다른 영역에서, 다른 출발점에서 다른 진화 경로를 거쳐 재차 진화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훌륭하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확인하는 데에는 뛰어난 설계를 보여 주는 실제의 예를 기술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그것은 바로 반향위치 결정법이다. … 최근 몇 억년 사이에 최소한 두 종류의 박쥐와 두 종류의 새, 이빨고래 그리고 보잘것없지만 다른 여러 종류의 포유류들이 모두 독자적으로 반향위치 결정 기술이라는 귀결점에 도달했다.
수렴진화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에 사는 약한 전기 물고기
매미의 발생 주기
각 대륙에서 서로 관련이 없는 동물들이 같은 ‘생활방식’을 채택
매미는 13년 변종과 17년 변종이 있다. 14년, 15년, 16년 변종은 없다. 13과 17은 소수라는 공통점밖에 없다. 가령 14년 주기를 가졌다면 7년 주기의 기생충의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기발한 생각이다. 13년과 17년이 무엇이 특별한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그 숫자들에는 틀림없이 특별한 어떤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세 종류의 매미들이 각기 독자적으로 그 주기에 도달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