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낯선 누군가에게서 무섭도록 집요한 협박을 받는다. 으~ 생각만해도 고개가 절로 흔들린다. 그런데 지난 주 개봉하며 독특한 시도를 인정 받고 있는 영화 <손님은 왕이다>는 착한 주인공하고 편먹고 싶은 관객들에게 이 무시무시한 협박자의 감정을 이입 시키놓는 이상하고 멋진 영화다.
이야기는 이렇다. 삼대 째 내려온 '명' 이발관을 운영하는 소심한 이발사 안창권에게 '너의 더러운 비밀을 알고있다'라는 협박편지가 날아든다. 조용한 인생을 살다가 느닷없이 어떤 자의 표적이 된다는 것. 여러 공포, 스릴러 장르 영화의 도입 부분에서 자주 사용 되는 단골 시퀀스다. 허나 우리는 포스터를 보고 명계남이 이 협작자라는 것을 처음 부터 알고 보게 된다. 이건 공식에서 벗어난다. 초반부터 뭔가 이상한 영화임을 감지했다.ㅡㅡ++
나무랄데 없는 인생을 산 창권은 어렵지않게 몇 달 전 실패로 끝난 원조교제를 기억해낸다. 그러나 협박자는 창권의 원조교제가 아니라 뺑소니 사고를 빌미로 그를 협박한다. 뺑소니 사고를 낸 적이 없다는 창권에게 15만원을 요구하며 다음 번엔 두 배!라는 말을 남기고 가버리는데...딱 보기에도 창권은 뺑소니와 무관해 보이지만 이 이상한 협박자는 앞 뒤 없이 들이닥쳐 소심한 창권의 마음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며 조여온다. 이제 완전 갈 때 까지 몰려버린 창권은 협박자를 역공격하기로 한다. 그리고 고용한 해결사에게서 놀랍고도 슬픈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해결사의 조사에 의하면 그 남자는 전직 배우란다. 그것도 <초록물고기>에서 조폭 두목으로 출연한 배우 김양길이라고 한다. 이건 뭔 소리냐? 영화보다가 깜짝 놀랐다. 사실과 허구 사이에서 잠시, 약 1분간 혼돈에 시달렸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명계남이 나오는 영화를 잘 보고 있다가, 그와 완전 오버랩 되는 김양길이라는 사실적 허구 인물과 만나야하니 말이다. 이게 공포였다. ㅡㅡ; 단순히 재기발랄한 상상력에 머물렀을수도 있는 이 이상한 시도가 영화 속에서 어색하지 않게 녹아들어간다.
김양길은 배우였으나(현재도 그러하나) 녹녹치않은 그 생활로 인해 남은 것은 몸뚱이 뿐이다. 뺑소니로 아내를 잃고 딸아이는 불구가 되면서 그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배우로 살아 온 인생을 처음으로 후회 했다. 그리곤 결심한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후회도 없이, 자신의 인생을 찬양하며 최고의 연기를 펼치기 위해 마지막 캐릭터 '협박자'를 창조하고 최고의 명연기를 펼치기로. 그로 인해 평생을 순탄하게 살아온 착한 이발사가 살인욕구를 느끼는 인물로 변하게 할 정도로 실감나는 연기를 한 것이다. 그는 박수 받아야 한다. 열심히 인생을 살았고, 배우로서의 최대 목표인 무대 위에서 연기하다가 생을 마감하기 때문이다.
해결사 김양길이 피를 흘리며 죽어갈 때, 비디오플레이어로 <초록물고기>의 김양길이 칼 맞는 장면이 정지 되어 보여질 때 슬픈 마음을 추스릴 수가 없었다. 누구는 감상적이고 촌스럽게 느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배우라는 상징적 주인공을 내세워 인간들의 보편적인 인생과 그 쓸쓸함을 이야기하는 감독의 통찰력에 놀라웠다. 물론 초반의 황홀할 정도로 서늘한 긴장감이 어디서 부턴지 서서히 떨어져나간다는 아쉬운 점도 있다. 그러나 그 정도의 빈틈이 신인 감독의 것이라면 그냥 넘겨줄만 하다.
뭐, 이 영화는 딱 보면 한 마디로 끝낼 수도 있다. 명계남이라는 배우를 위해, 명계남을 생각하며 쓴 작품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무래도 감독이 명계남의 엄청난 팬인가 보다. ^^ 물론, 함께 출연한 성지루, 성현아, 이선균의 연기도 나무랄데 없이 좋았지만, 난 이 영화에서 명계남을 더 많이 기억할 거다. 그는 배우로서의 최고작을 만난 듯 하다.
첫댓글 사실 첨에 명계남의 극중 이름이 김양길이라길래 초록물고기때랑 같은 이름이네..라고 생각했드랬죠. 그랬군요. 이거 스포일러가 장난아닌데요ㅡㅡ;ㅋ
으엇!...그러네요... 쓰고보니..ㅡㅡ; ;ㅎㅎ 근데 <초록물고기>하니까 전에 무슨 영화상인가 후보작 화면 자막에서 <초록"불"고기>로 나왔던 기억이...ㅋㅋ
맞아요..청룡영화제때 그랬었죠..